삶의 지혜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백중을 맞이하며 생각하는 죽음과 삶. 법당에 모셔진 종이 위패를 보며 그들이 생전에 살아숨쉬었을 모습을 생각해본다. 동시에 지금 살아있는 우리도 10년, 20년 후에는 종이 위패 한 장으로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길 것이라는 상상을 한다. 산 사람은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에, 경험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영역에의 죽음을 두려워한다. 두려움은 무명에서 나온다. 무명으로 인해 죽음을 삶의 끝자락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회피하거나 못본척하거나 심지어 통제하려고 한다. 죽음은 다만 일상이 끝나는 순간에 있는 무엇이다. 어떻게 살 것인지 나름대로의 해답을 내리기 위해서는 주변 친지들의 죽음을 바로 보고 동시에 간접적으로 나의 죽음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죽음과 삶은 전혀 별개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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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윤리

생활불교의 길: 지계

구산스님의 '생활불교의 길' 두 번째 날은 지계의 날이다. 지계는 올바름의 날이다. 불교에서의 올바름은 부처님의 진리인 법을 바르게 하자는 의미이다. 법의 기준이 바르게 서있으면 선악의 판단, 혹은 규범이 제대로 갖춰지게 된다. 지계는 법에 근거하여 양심에 거리낌 없는 것이다. 양심의 기준이며 지침이 되는 것이 오계이다. 오계를 따르면 크고작은 선택의 상황에서 편하게 삶을 건너갈 수 있다. 양심을 지키면 손해보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양심에 따라 사는 것이 더 큰 복과 덕을 쌓을 수 있는 이익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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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윤리

생활불교의 길: 보시

법보시는 내 마음을 주는 것이다. 마음을 보시한다는 것은 '나'라고 하는 놈이 없는 것이라는 아공의 도리를 깨쳐야 가능하다. 재보시는 물건을 아낌없이 주되, 내가 보시를 했다는 행각이나 타인이 나의 보시를 받았다는 생각 없이 보시하는 것이다. 내가 주었다는 상을 내면 번뇌가 따르는 복이며, 상에 얽매이지 않으면 번뇌가 없는 참된 복이다. 보시는 또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며 없애주는 것이다. 때문에 번뇌를 없애고자 하는 우리의 모든 행은 그 자체로써 보시이며, 모든 보시는 본질적으로 번뇌를 없애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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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

열정을 사랑하라

열정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열정은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는 반면 잘못하면 주객이 전도되어 나 자신이 열정에 끌려가기 쉽다. 누구나 열정을 다했다가 실패하고 좌절하는 경험을 한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더이상 열정을 다하고 싶지 않아지기도 한다. '열반경'의 공덕천과 흑암천 이야기에서는 행복의 공덕천과 불행의 흑암천을 모두 거절하는 성인의 일화가 나오지만, 중생의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우리의 삶에서는 행복과 불행 모두를 수용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인 선택일 것이다. 열정을 사랑하자. 열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에만 열정의 긍정적 측면도 부정적 측면도 내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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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

부처님 전생담 이야기

부처님 전생담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전생담들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같은 결이다. 매를 피해 도망친 비둘기를 살리고자 한 왕은 비둘기와 인간의 생명의 무게가 같음을 보살행으로써 표현한다. 가리왕에게 억울한 누명을 쓴 인욕수행자의 전생담에서는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인욕행을 증명하고, 설산 야차에게 법을 청하는 수행자 전생담에서도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 법을 구하는 서원을 드러낸다. 자비행과 인욕행과 서원은 그 무엇보다 큰 장애인 아상으로써의 장애를 뛰어 넘음으로써 증득할 수 있으며, 그 수행과 복덕의 힘이 깨달은 자, 붓다의 바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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