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전생담 이야기

부처님 전생담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전생담들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같은 결이다.
매를 피해 도망친 비둘기를 살리고자 한 왕은 비둘기와 인간의 생명의 무게가 같음을 보살행으로써 표현한다. 가리왕에게 억울한 누명을 쓴 인욕수행자의 전생담에서는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인욕행을 증명하고, 설산 야차에게 법을 청하는 수행자 전생담에서도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 법을 구하는 서원을 드러낸다.
자비행과 인욕행과 서원은 그 무엇보다 큰 장애인 아상으로써의 장애를 뛰어 넘음으로써 증득할 수 있으며, 그 수행과 복덕의 힘이 깨달은 자, 붓다의 바탕이 된다.

#보살행, 서원, 의지, 인욕행, 자타카, 전생담

부처님 전생담은 아주 많습니다. 각각의 이야기들도 의미 있지만 모든 이야기들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오늘은 세 가지 전생담을 알아보며 전생담의 교훈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1. 비둘기 목숨의 무게

한 전생에 부처님이 한 나라의 왕으로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매에 쫓기던 비둘기가 왕의 옷 속에 숨어들었습니다. 매가 왕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며칠 굶어 비둘기를 먹지 않으면 죽을 지경입니다. 당신 옷에 숨어든 비둘기를 내놓으십시오.” 왕이 대답합니다. “어찌 살기 위하여 품안으로 찾아온 비둘기를 내어줄 수 있겠는가? 비둘기를 제외한 다른 것을 원하는 대로 제공해주겠다. 무엇을 원하느냐?” 매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갓 잡은 따뜻한 고기를 원합니다.”

왕이 생각하기를, 매에게 따뜻한 고기를 주기 위해서는 살생을 해야 하는데 차마 남의 생명을 해칠 수는 없었습니다. 하여 자신의 몸의일부를 떼어서 매에게 먹이로 주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왕이 자신의 허벅지살을 떼어주겠다고 말하자 매는 정확히 비둘기와 같은 무게를 받고 싶다며 저울에 무게를 달아줄 것을 요구합니다. 

왕은 저울 한 쪽에 기둘기를, 다른 한 쪽에 떼어낸 허벅지살을 올렸습니다. 허벅지살이 더 큰데도 불구하고 저울은 비둘기 쪽으로 기울어 있었습니다. 왕은 자신의 팔을 떼어서 저울에 올렸습니다. 여전히 비둘기가 더 무거웠습니다. 왕은 두 다리를 잘라 저울에 올렸습니다. 그러나 저울은 비둘기 쪽으로 기울어 있었습니다. 왕은 급기야 저울 위에 본인이 직접 올라가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러나 두 손 두 발이 없는 상태에서 안간힘을 쓰다가 기절해버리고 맙니다. 

한참 뒤 정신을 차리고 깨어난 왕이 스스로를 꾸짖었습니다. “마음아, 나는 오랜 옛날부터 네게 시달리며 생사를 윤회하며 온갖 고초를 맛보았지만 제대로 복을 짓지 못했다. 지금은 정진하여 보살행을 할 때지 게으름을 피울 때가 아니다.”

왕이 다시 힘을 내어 비둘기의 반대쪽 저울에 올라섰습니다. 이때 온세상이 진동하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며 매가 제석천으로 모습을 바꾸는 것입니다. 제석천이 왕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수행이 얼마나 깊은가를 시험하기 위해 매로 변하여 나의신하인 비둘기로 하여금 그대의 품속으로 숨게 하였습니다. 당신은 무엇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보살행을 행하려고 했습니까?”

왕이 답했습니다. “나는 다른 그 무엇도 바라지 않으나, 다만 보살행으로 복을 지어 다음 생에는 반드시 부처가 되고자 했을 뿐이다.” 제석천이 말했습니다. “지금 당신의 몸이 너무나 많이 상해 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 후회는 없습니까?” 

왕이 대답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후회하지 않았으니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것이다. 만일 내 말이 사실과 다르지 않다면 내 몸은 곧 회복될 것이다.” 왕의 말이 끝나자마자 몸은 곧 회복되었고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훌륭한 몸이 되었습니다. 

제석천의 시험은 믿음의 문제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가장 먼저 부처님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아닌 부처님이라서 실천할 수 있는 보살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내가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과연 왕과 같은 보살행을 실천할 수 있을까? 라고 자문하게 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을 얻으려면 이 정도의 자비행을 실천해야 하는데 나라면 그 정도까지는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생담을 볼 때는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통해 어떤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가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말입니다. 

첫째. 이 이야기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석천이 매와 비둘기로 변해 왕의 보살행을 시험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보살행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입니다. 믿음은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냥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에요. 초발심시변정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을 내는 것이 수행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올바른 믿음을 내는 순간 이미 수행의 반을 한 것과 다름 없습니다. 

우리는 괴로워도 기도를 열심히 하고, 아무 것도 변하는 것이 없는 것 같아도 참선을 하고, 의심과 회의가 들어도 꾸준히 수행해야 합니다. 내 안에 확실한 믿음 즉 확신이 생길 때까지는 내 안에서 어떤 불안과 두려움이 생겨도 그 모든 것이 과정이라 생각하고 밀고 나가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이야기는 믿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보살행의 가장  장애는 

둘째. 이 이야기는 우리가 평소에 간과하고 있는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중생은 자신이 아닌 다른 중생을 취하지 않고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이 단순한 진리를 다시금 깨우치고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매는 성격이 포악해서라거나 재미로 비둘기를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비둘기를 잡아먹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비둘기를 쫓습니다. 

육식동물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초식동물을 잡아먹고, 초식동물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풀을 취하고, 풀도 자신이 살기 위해서 물을 취합니다. 우리 중생들의 삶에 이런 연쇄작용이 있다는 것을, 얽히고설킨 고리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자비를 실천하는 데에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나를 장애물을 극복하지 않으면, 나 자신을 희생하는 결단을 하지 않으면 완전한 자비를 실천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이야기에서 건져올릴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입니다. 

비둘기와 허벅지살이라는 너무나 극단적인 예시이기 때문에 얼른 체감되지 않는데요. 예를 들어 나의 허벅지살이 아니라 나의 재산, 나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떻습니까? 나의 소유물을 내놓으면 아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내놓으면서 하다 못해 눈에 보이지 않는 대가, 말하자면 명예라도 드높이기를 원합니다. 보살행의 가장 큰 장애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2. 가리왕과 인욕수행자

  이 이야기는 부처님께서 가리왕이라는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인욕수행을 하는 수행자였을 때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밤 가리왕이 잠든 저녁, 궁녀들이 숲속을 노닐다 선정에 잠긴 수행자를 발견했습니다. 궁녀들은 수행자 옆에 둘러 앉아 예배를 올리고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한편 잠들었던 가리왕이 문득 깨어나 주위를 보니 궁녀들이 한 명도 없는 겁니다. 신하 4명을 거느리고밖에 나가보니 궁녀들이 수행자 주위를 둘러싸고 집중하고 있는 것이 보였지요. 

화가 난 가리왕이 수행자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무엇을 하는 수행자인가?” 수행자가 말했습니다. “저는 인욕을 수행하는 수행자입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그대는 깨달음을 얻었는가?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면 나와 같은 중생일 진데 어찌 나의 궁녀들을 취하여놀고 있는가?” 

화가 난 왕이 다시 말했습니다. “그대의 인욕행이 얼마나 대단한지 시험해보겠다.” 가리왕은 수행자의 두 손을 칼로 잘랐습니다. 그런데 인욕수행자는 아무런 동요 없이 고요한 선정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더욱 약이 오른 가리왕이 수행자의 두 발을 잘랐지만 수행자는 여전히 미동이 없었습니다. 왕이 수행자의 귀와 코를 잘랐지만 수행자는 선정의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수행자의 제자들이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어찌 이런 고통을 당하면서도 인욕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십니까?” 수행자가 말했습니다. “나는 마음이 고요하여 흔들리지 않는다.”

이 말을 들은 가리왕이 말했습니다. “그대는 내게 화가 나지 않고, 무엇이든 잘 참고 견딘다고 말했는데 과연 그러할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겠는가? 겉으로만 고요한 척을 하는지 제대로 인욕행을 하고 있는지 증명해보라.”

인욕수행자가 말했습니다. “나의 인욕행이 진실하고 거짓되지 않다면 내 몸에서 흐르는 피가 멎어지고 잘린 팔다리가 회복될 것입니다.” 수행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행자에 몸에서 흘러나오던 피가 맞고 몸이 회복되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참회하는 가리왕에게 수행자가 말했습니다. “내가 훗날 깨달음을 얻게 되면 왕과 왕의 대신 4명을 가장 먼저 제도할 것을 약속합니다.” 가리왕과 네 명의 대신이 바로 부처님이 깨달은 뒤에 제일 먼저 법을 설한 대상, 녹야원의 다섯 비구의 전생이라고 합니다. 

이 전생담도 비둘기 일화와 같은 전개로 펼쳐집니다. 수행자의 인욕행을 눈으로 증명해보라고 요구하고, 수행자는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그것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지요. 비둘기 일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인욕수행자의 경우 자신이 잘못해서 증명을 요구당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오해를 받고 억울하게 매도당했다는 것입니다. 인욕수행자는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는 상황에서 따지거나 싸우려 들지 않고 다만 참고 견디는 것을 택했습니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생깁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누군가 나를 오해하거나 힘들게 합니다. 중생들은 ‘나는 결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많은 경우 본인의 잘못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것입니다. 본의 입장에서는 내 잘못이0%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사람에게도 40%의 잘못이 있습니다.

 40%의 잘못이 본인의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라고 하는 상(像)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가리왕과 인욕수행자의 일화에서도 인욕행의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다시금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설산 야차의 시험

마지막 전생담은 부처님께서 전생에 설산수도를 하던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수행자가 히말라야 설산에서 수행하고 있던 때, 제석천이 야차로 변하여 수행자의 믿음을 시험하고자 합니다. 

야차가 수행자의 귀에 들리도록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습니다. “모든 것은 무상하니 이것은 일어나고 사라지는 법이다.” 이 게송을들은 수행자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 이 게송은 완전한 깨달음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것은 반쪽짜리 게송이구나. 나머지 반을 들어야 완전한 깨달음의 내용을 알 수 있는데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

수행자는 게송을 읊은 주인공을 찾아 헤맨 끝에 야차와 마주했습니다. 수행자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말한 게송의 나머지 반을 이야기해주십시오.” 야자가 답하기를, “게송을 읊어주는 것은 힘들지 않지만 지금은 너무 배가 고파서 말 한 마디 할 힘이 없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면 나머지 반의 게송을 읊어주겠다.”

수행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먹습니까?” 야차가 답했습니다. “나는 따뜻한 피가 흐르는 더운 고기를 먹는다.” 수행자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뜨거운 피가 흐르는 더운 고기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수행자는 자신의 몸을 야차에게 바치겠다며 나머지 반의 게송을 알려주기를 청합니다. 

야차가 나머지 절반의 게송을 말했습니다, “일어나고 사라짐이 소멸하면 열반의 즐거움이다.” 이 말을 들은 수행자는 몹시 기뻐하며 바위에 게송의 내용을 써넣고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간 뒤 투신하였습니다. 야차에게 더운 고기를 먹이기로 약속했기에 자신의 몸을 바친 것입니다. 

뛰어내린 수행자를 받아 든 야차가 물었습니다. “왜 그대는 이렇게까지 해서 그 게송을 듣고자 했는가?” 수행자가 답했습니다. “깨달음을 이루어서 모든 중생을 생사의 괴로움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함입니다.” 야차는 제석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수행자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뒤 찬탄하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틀림없이 내세에 가장 높고 밝은 깨달음을 이룰 것이니 그때 저희들을 제도해주십시오.”

이 전생담 역시 설산에서 수도한 수행자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여 이를 시험하고자 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굳이 시험하려고 하니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근기에 맞는 형태로 믿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더불어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를 가로막는 최후의 것이 바로 나 자신, 나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욕망, 나에 대한 집착과 애착임을 꾸준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의 가장 큰 장애인 나를 뛰어 넘어야만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열의와 의지, 굳건한 서원이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부처님의 전생담에서 공통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부처가 되고자 하는 이는 첫째, 자비행을 실천해야 하고 둘째, 인욕행을 수행해야 하며 셋째,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의자와 서원이 무엇보다 강해야 합니다. 이런 구도의 행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가 바로 나 자신이며, 부처님은 전생에 이러한 장애를 모두 뛰어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살신성인의 수행과 그 복덕으로 부처님이 되었으니 부처님의 깨달음이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Previous

삼신불(三身佛) 제대로 알기

열정을 사랑하라

Next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