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가을이 와 낙엽을 보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낙엽은 사실 나뭇잎이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과정일 뿐인데 우리는 왜 그 모습을 아름답다고 생각할까?
그 이유는 우리는 실제 세계를 보지 않고 마음이 그린 그림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원효스님이 당나라 유학길에서 깨달은 것도 이와 같다.
원효스님의 '일체유심조'은 세상이 마음 먹은 대로 된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그린 그림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데에 그 참뜻이 있다.
우리는 마음이 그린 그림을 실제 세상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낙엽이 아름답다. 연기실상을 깨친다는 것은 낙엽을 아름답게 보는 것이 아니라 낙엽의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보는 것이다. 이 모든 세상이 다 연결되어 있고 그 실제 모습과 내가 보는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내 삶이 완전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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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들의 소원

공원에 가면 일상의 작은 행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중생들에게 행복이란 지금보다 조금 덜 행복한 삶, 지금보다 조금 덜 괴로운 삶이다.
이런 평범한 사람들에게 불교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사회적, 물질적 의미의 무언가를 해줄 수는 없다. 다만 불교에서는 '걱정할 시간에 공을 들이라.'고 제안한다.
공을 들이는 목적은 결코 현재 여기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데에 있지 않다. 공을 들이는 것은 삶 너머에 있는 궁극적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다.
현대인들은 매우 축소된 종교의 역할 속에서 단지 힐링, 명상, 쉼 같은 것을 원하지만 불교가 추구하는 행복, 불자가 추구해야 할 행복은 궁극적 행복이다.
궁극적인 행복인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원을 세워야 한다. 매일 아침 행선축원을 읽는 것부터 궁극의 행복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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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코로나19 교회 집단 감염 사건으로 보는 광신과 본능.
2020년 여름, 교회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가 일어나 경각심을 일으켰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이해할 수 없는 '맹신'의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교회는 인간의 본능에 내재되어 있는 '군집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놀거리가 있고 즐거움이 있고,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는 군집욕구를 충족시키기 때문에 강한 믿음의 대상으로 발전하곤 한다.
그러나 부처님은 욕구와 본능을 다스릴 수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고, 사람들과 어울려 있다보면 불필요한 번뇌가 생기므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리고 말씀하셨다. 자비심으로 본능을 다스릴 때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부처님이라면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인간은 복으로 산다"고 말씀하실 것 같다. 선업의 과보로써 받는 복과 덕으로 인생을 살아가자. 올바른 부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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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재해와 무아사상

2020년 여름, 증심사는 수해를 입었다. 연이틀 퍼붓는 비에 건물과 진입로, 배수로 등에 피해를 입은 것이다. 피해 당사자가 남이 아니라 내가 되는 순간 이성은 사라지고 감정이 앞선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내가 뭘 잘못했다고!" 모든 초점이 '나'로 모아진다.
내가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자연의 온갖 변화 앞에서 분노하고 원망하고 불안해하는 마음만 들끓을 것이다. 자연재해 앞에서 파국으로 가지 않으려면 내가 있다는 생각에 눈 멀어 있는 현실을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수행이 곧 지구를 정화하는 길임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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