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가전에 2
중생은 육신과 정신이 별개라는 것을 전제로로 하여 지수화풍으로 이뤄진 육신에 의지하여 한평생을 살아간다.
육신은 다만 인연에 따라 생기고 흩어질 뿐 영원한 것이 아니건만, 육신이 영원히 '나'일 것으로 착각하여 육신에 집착하게 된다.
'육신=나'라는 생각은 내가 느끼는 외부의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상은 다만 우리가 대상이라 생각한 것일 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몸이라는, 내 것이라는 집착과 소유욕을 알아차리고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무상의 진리를 체득할 때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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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일요강좌, 초기불교 이해 4
사성제는 불교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 부처님이 불교란 무엇인지 1분 요약으로 설명한 것이다. 당시 인도사회의 보편화된 개념이었던 열반을 주제로 어떻게 열반에 이를 것인가를 이야기한 것이다.
부처님은 열반의 키워드를 '괴로움'으로 삼았다. 열반이란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사성제의 전반부에서 괴로움이 무엇인지, 왜 괴로운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이어서 열반이 무엇이다는 것을 괴로움의 소멸로 정의하고, 소멸에 이르는 방법으로 팔정도를 제시한다.
불교의 핵심은 괴로움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개념을 해체하는 것을 통해 무상, 고, 무아를 이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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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일요강좌, 초기불교 이해 3
불교에서 말하는 법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써의 법(담마)이요, 둘째는 존재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로써의 법(다르마)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두 번째 의미의 법이다. 존재의 기본 단위로써의 법은 또한 두가지 성질로 나뉘는데, 먼저는 더이상 나눌 수 없는 고유성질을 가진 것이고, 이어서는 그러한 고유성질을 유지하는 최소단위인 찰나이다.
우리가 현실에 실제한다고 착각하는 것은 고유성질로 해체할 수 있으니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아공이다. 또한 법은 찰나생 찰나멸이기에 무상하고 이는 법공을 의미한다.
초기불교에서는 아공과 법공을 공히 성찰해야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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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과 열반
불자와 불자 아닌 사람을 나누는 기준은 '원력'에 있다. 모든 사람들의 원력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불교적 원력은 부처님의 설파한 가르침인 연기법과 공성을 지혜를 깨닫겠다는 초발심이다. 그것을 깨달아야만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이다.
한편, 흔히 같은 말로 쓰이는 깨달음과 열반은 그 의미가 엄밀하게 다르다. 깨달음은 '안다'는 것이며, 아는 것의 깊이는 사람에 따라 수행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열반은 어떠한 지점이나 목표가 아니다. 다만 말 그대로 '번뇌의 불길이 완전하게 꺼진 상태'이다.
불자들은 괴로움을 벗어나겠다는 서원을 세운 사람들이다. 절에 가는 이유가 희미해졌다면, 그저 관성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초발심을 되새김으로써 불자로써의 기준을 다시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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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참선강좌, 참선요지 8
참선요지 마지막 시간. 허운스님의 법문으로 알아보는 공부하는 방법.
공부하면서 많은 조사어록과 큰스님들의 법문을 접하게 된다. 끽다거, 차나 한 잔 들라는 말과 모든 연을 쉬어버리라는 말, 있음과 없음의 두 갈래 길이 난 곳을 간다는 말, 생사에 윤회한다는 말, 모든 사물이 꿈이고 허깨비 같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모든 비유가 향하는 곳은 결국 처음이다. 참선의 목적이다. 마음을 밝혀 망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위의 모든 비유는 화두를 드는 마음 자세에 대해 이르는 말이며, 모든 망상이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자연스럽게 참 마음이 드러난다는 것을 다시금 다시금 설명하는 말이다.
때문에 깨닫지 못한 우리 같은 범부가 해야 할 일은 다만 정진 수행하는 일이다. 참선의 목적을 정확하게 이해하면 그것이 곧 수행의 동력이 되며, 그것이 바로 불교의 참된 신심의 요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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