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성제와 팔정도 ⑩ | 멸성제 – 해탈 (解脫) 2
해탈은 염오 – 이욕 – 해탈지견의 과정으로 이뤄진다. 계정혜 삼학을 닦아 선정과 삼매로써 통찰지에 이를 수 있다. 지혜가 밝아지면 오온을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오온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욕망[갈애]하는 마음을 완전히 끊어낼 수 있다. 염오와 이욕의 결과로 드러나는 구체적인 깨달음의 내용이 바로 일체개고, 제행무상, 제법무아의 삼법인이며, 삼법인을 완전히 체화하는 것이 열반의 경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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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법과 가까워지기 (feat. 조용필 ‘바람의 노래’)
조용필 '바람의 노래'의 불교적 해석을 통해 알아보는 불교의 인연법.
일상에서 흔히 쓰는 "인연"이라는 말은 불교의 인연생기(연기법)에서 파생했다. 인연은 조건들이 결합해서 결과가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인연은 나이면서 동시에 네가 되는 연기법에 의해서만 성립한다. 나와 네가 각기 따로 있고 독단적인 존재라는 잘못된 생각이 고통과 번민과 번뇌를 만든다.
부처님이 제시한 세상의 이치는 연기법이고, 부처님이 제시한 인생의 기준은 계율이다.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을 통해 부처님의 연기법과 계율을 다시금 새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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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은 불교인가?
템플스테이에서는 명상을 한다. 불교박람회의 주제를 명상으로 삼기도 한다. 불교와 명상은 일견 아주 밀접한 관계처럼 보인다. 과연 명상은 불교일까?
명상의 근원을 찾아 올라가면 힌두교가 있다. 제사를 지내는 바라문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던 베다시대에 이러한 바라문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수행자들이 등장한다. 바라문은 형식과 의례에 치우친 제사에서 한 발 나아가 신과 바라문의 합일점을 찾는 수행으로 명상을 내세운다. 힌두교에서 명상은 신과 합일하기 위한 수행이었으며, 명상에 들기 위한 신체적 준비를 하는 것을 요가라고 이름 붙였다.
요가와 명상은 기실 불교의 핵심인 삼법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 삼법인을 깨닫기 위한 불교의 지관수행이나 위빠사나, 참선 수행 등과 외형적 모습이 비슷하기 때문에 명상을 불교적 수행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명상이 불교가 아니라고 해서 배척할 필요는 없다. 불교적 수행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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