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길 위의 시간

일상 속에서 육체의 건강을 영위하기 위한 방법으로 산책을 하곤 한다. 산책은 육체 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좋은 처방전이 된다. 사람들은 일상을 떠나 여행길에 나선다. 제주 올레길, 산티아고 순례길, 시코쿠 순례길 등 길을 걸으며 무언가 이성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털어내고는 한다. 일상을 떠나 여행을 떠나는 것. 일상에서 길을 떠나오는 것. 그것은 마음을 내면으로 향하게 하기 위해서다. 낯선 곳에 자신을 내던짐으로써 자신을 바로 보는 것이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큰 지혜이다. 일상에서는 나와 남 회사, 크게는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봉사의 자세로 살고 일상을 벗어난 시간은 내 마음의 수행을 위해서 쓸 수 있다면 지혜와 자비 양 날개를 두루 갖추는 불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Read more

불교교리

자연재해와 무아사상  

2020년 여름, 증심사는 수해를 입었다. 연이틀 퍼붓는 비에 건물과 진입로, 배수로 등에 피해를 입은 것이다. 피해 당사자가 남이 아니라 내가 되는 순간 이성은 사라지고 감정이 앞선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내가 뭘 잘못했다고!" 모든 초점이 '나'로 모아진다. 내가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자연의 온갖 변화 앞에서 분노하고 원망하고 불안해하는 마음만 들끓을 것이다. 자연재해 앞에서 파국으로 가지 않으려면 내가 있다는 생각에 눈 멀어 있는 현실을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수행이 곧 지구를 정화하는 길임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Read more

영가전에

영가전에 4

극락은 비행기나 차를 타고 이동해서 갈 수 있는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다. 극락이란 번뇌망상이 없어져 무명업장을 벗어난 곳이다. 백중에 영가님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은 영가님이 삼독심을 버리고 무명업장을 벗어나기를 바라는 행위이다. 삼독심을 버리고 극락에 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무상임을 깨쳐야 한다. 무상이란 무엇인가? 생과 사, 생과 멸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연이 주도함을 아는 것이다. 흔히 무상을 무언가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오해하지만, 사실 모든 것은 찰나찰나에 생하고 멸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이 몸을 떠나 다음 생을 받는 것 역시 생멸의 자연스러운 이치임을 이해한다면 떠나는 육신과 삶에 탐진치 하지 않고 극락에 한 발짝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Read more

영가전에

영가전에 3

불교에서 말하는 '죄'는 탐진치 삼독이다. 내가 무엇인지 몰라서 집착하고 화를 낸다. 탐욕과 분노는 나를 제대로 모르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된다. 무명으로 인한 악업에는 반드시 과보가 따른다. 모르고 지은 죄, 알고도 지은 죄를 없애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죄의 실체가 본래 없다는 것을 제대로 알면 된다. 죄는 마음 따라 생겨날 뿐 그 자체로써 자성을 가진 것이 아니다. 죄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한 후에는 참회를 해야 한다. 이해와 참회가 함께 갈 때 비로소 죄가 사라진다. 참회한다는 것은 내 마음을 닦는 수행을 한다는 것이다. 수행과 참회는 같은 말이다.
Read more

영가전에

영가전에 2

중생은 육신과 정신이 별개라는 것을 전제로로 하여 지수화풍으로 이뤄진 육신에 의지하여 한평생을 살아간다. 육신은 다만 인연에 따라 생기고 흩어질 뿐 영원한 것이 아니건만, 육신이 영원히 '나'일 것으로 착각하여 육신에 집착하게 된다. '육신=나'라는 생각은 내가 느끼는 외부의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상은 다만 우리가 대상이라 생각한 것일 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몸이라는, 내 것이라는 집착과 소유욕을 알아차리고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무상의 진리를 체득할 때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