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감정, 명상으로 다스리기
부정적인 감정이 들면 마음이 괴롭다.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첫째, 평소에 꾸준히 마음을 단련해야 하고 둘째, 상비약처럼 평상시 좋아하는 경전이나 책 구절을 꺼내 억지로라도 외는 것이며 셋째, 그래도 어려울 때에는 본인의 상태를 인정하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마음을 단련하는 방법은 명상이다. 명상은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것이다. 요즘 사회에서 유행하는 멍때리기와 본질적으로 같다. 그렇지만 멍때리는 동안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는 실로 어려운 일이다.
명상은 우리의 마음을 찾는 연습이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런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는 행위다. 찰나 생 찰나 멸하는 생각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직전에 생겼다 사라진 마음을 보는 순간 우리는 직전 감정을 끊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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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은 불교인가?
템플스테이에서는 명상을 한다. 불교박람회의 주제를 명상으로 삼기도 한다. 불교와 명상은 일견 아주 밀접한 관계처럼 보인다. 과연 명상은 불교일까?
명상의 근원을 찾아 올라가면 힌두교가 있다. 제사를 지내는 바라문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던 베다시대에 이러한 바라문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수행자들이 등장한다. 바라문은 형식과 의례에 치우친 제사에서 한 발 나아가 신과 바라문의 합일점을 찾는 수행으로 명상을 내세운다. 힌두교에서 명상은 신과 합일하기 위한 수행이었으며, 명상에 들기 위한 신체적 준비를 하는 것을 요가라고 이름 붙였다.
요가와 명상은 기실 불교의 핵심인 삼법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 삼법인을 깨닫기 위한 불교의 지관수행이나 위빠사나, 참선 수행 등과 외형적 모습이 비슷하기 때문에 명상을 불교적 수행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명상이 불교가 아니라고 해서 배척할 필요는 없다. 불교적 수행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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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일요강좌, 초기불교 이해 8 (完)
이 시간에는 초기불교의 수행법을 공부하기보다 현재 우리의 수행 모습을 점검해본다.
수행을 해야 한다고 불자라면 누구나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 수행하는 불자는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과연 수행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왜 강력한 동기를 갖고 수행하지 못하느냐고 다그칠 수 있을까?
인도사상과 인도불교의 핵심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수행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수행 전통이 한 번도 메인 컬쳐가 되본 역사가 없다. 종교라는 외피를 입고 우리나라에 유입된 불교는 기존의 민간신앙, 토속신앙 등 주술성을 기반으로 한 제례의식에 풍부한 사상과 이론을 제공하는 역할에 그쳤을 뿐, 참선이나 간화선 수행은 소수 엘리트를 위한 것에 불과했다.
이렇게 개인이 열심히 수행하는 기반이 단단하지 않은 현재 우리사회에서 수행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그리고 어떻게 행해져야 하는가? 이러한 고민을 공유하면서 초기불교 공부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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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 시간
'명상'이라는 말이 일반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 요즘이다. 불교 밖에서 명상은 '힐링'의 이음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일반인들은 명상을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무언가' 혹은 '눈을 감고 고요하게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불교에서 명상의 목표는 팔정도를 이루는 것이며, 팔정도와 계정혜 삼학은 항상 같이 움직이다. 계율을 지키고 선정을 닦고 지혜를 찾는 것. 불교 명상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지금 우리 사회에서 보편화되고 있는 명상을 균형 있는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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