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이유

불교의 의식이나 경전은 삼귀의로 시작한다. 삼귀의는 거룩한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하겠다는 다짐이다. 귀의란 '피난처로 삼겠다'는 뜻이며, 이는 유일신 신앙에서 흔히 말하는 순종 혹은 복종과는 달리 나 자신과의 약속에 다름 아니다. 지혜와 자비를 동시에 구족한 부처님은 이 세상의 이치인 연기를 깨달은 분이다. 모든 것이 서로서로 의지하고 있으며 모든 것은 한몸이라는 데에서 나오는 커다란 자비심이 바로 동체대비이다. 이러한 동체대비를 낼 수 있도록 언제나 부처님을 생각하고 수행하는 것이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의 참뜻이다. 가르침에 귀의한다는 말은 '마음은 마치 화가와 같아 욕심에 따라 세상을 그려낸다'는 마음의 진리, 실상을 바로 본다는 말이며, 그러한 길로 인도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믿는 것이다. 승가에 귀의하는 것은 수행자 공동체를 유지하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율을 지키는 것이다.이렇게 불법승 삼보에 귀의할 때 우리의 삶은 보다 행복해지고 부처님의 진리에 한걸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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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경문

자경문 해설 6

사바세계 중생들을 움직이는 힘은 욕망이다. 욕망에서 모든 행이 비롯된다. 욕망은 나쁜 것일까? 그릇된 것일까? 부처님의 가르침은 욕망을 제거하자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은 욕망에 반하는 고행 수행의 극단까지 체험했으나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다. 욕망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깨달음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욕망을 부정하는 것도, 욕망에 충실하는 것도 아니다. 중도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중도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매순간 깨어있어 나 자신을 살펴야 한다. 자경문에서는 본능적인 욕망을 다스리고 행동가지 하나하나를 성찰하는 지혜를 갖추기를 독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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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경문

자경문 해설 2

불교에서 법(法)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첫 번째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연기와 공의 진리이고, 두 번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이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은 연기의 진리이다. 연기법은 인연화합, 인과업보, 상의상관의 세 가지 특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러한 법은 시간과 공간, 흥과 쇠의 분별이 없는 절대 진리이다. 부처님이 발견한 이러한 법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열심히 수행해야 한다. 공안에 대한 믿음과 의심으로 끊임없이 참구하여 깨달음을 얻겠다는 커다란 원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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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

부처님의 열반

일반적으로 부처님의 죽음이나 큰스님의 죽음을 두고 "열반했다"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열반이라는 말은 깨달음을 얻은 경지를 말하기에 엄밀히 말하면 성인이 돌아가셨을 때에는 '반열반' 또는 '입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적절하다. 부처님은 돌아가시면서 세 가지 유언을 남겼다. 부처님 당신이 아닌 스스로를 의지하고 부처님이 설한 법을 의지하라는 의미를 담은 '자등명 법등명'. 자기 자신을 의지하기 위한 방법으로써의 '사념처'. 사념처 수행을 대하는 자세로써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정진할 것'이 그것이다. 부처님의 마지막 유언으로 하여금 현재의 불자들이 나아가야 할 길과 공부해야 할 과제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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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

깨달음과 열반

불자와 불자 아닌 사람을 나누는 기준은 '원력'에 있다. 모든 사람들의 원력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불교적 원력은 부처님의 설파한 가르침인 연기법과 공성을 지혜를 깨닫겠다는 초발심이다. 그것을 깨달아야만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이다. 한편, 흔히 같은 말로 쓰이는 깨달음과 열반은 그 의미가 엄밀하게 다르다. 깨달음은 '안다'는 것이며, 아는 것의 깊이는 사람에 따라 수행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열반은 어떠한 지점이나 목표가 아니다. 다만 말 그대로 '번뇌의 불길이 완전하게 꺼진 상태'이다. 불자들은 괴로움을 벗어나겠다는 서원을 세운 사람들이다. 절에 가는 이유가 희미해졌다면, 그저 관성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초발심을 되새김으로써 불자로써의 기준을 다시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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