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식 제사의 의미
절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시식과 법식을 베풀어서 영가님들로 하여금 하루 빨리 깨달음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다.
제사는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만남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우리의 감각 기관으로 인식할 수 없는 세계이다. 인식의 범위를 벗어났기 때문에 있다 혹은 없다고 말할 수 없으나 전기에너지와 같이 분명하게 작용하고 있다.
제사는 부처님을 청해 법을 설하는 자리이다. 부처님이 설법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여러 부류들이 참석한다. 불보살님은 물론 대상이 되는 영가와 유주무주 고혼애혼들이 두루 참석한다.
이렇게 부처님의 법을 설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그 자체로 공덕을 쌓는 것이다. 공덕을 쌓아 나도 모르게 지은 악업을 소멸시키는 일이다. 이렇게 불교식 제사는 부처님의 법을 베푸는 깨달음의 장이자 공덕을 짓는 수행의 장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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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은 존재하는가?
극락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실제하는 세계인가?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것처럼 부처님을 믿으면 극락에 갈 수 있는가?
극락은 "아미타부처님을 10번만 찾으면 서방정토에 나게 하겠다"는 본원력을 가진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는 곳이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정토사상은 염불을 통해 깨달음을 얻겠다는 자기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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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전에 7
불교에서는 중생들의 삶의 형태를 네 가지로 분류한다. 태어나는 찰나 '생유', 임종하는 찰나 '사유', 태어나 죽기까지의 인생 '본유', 임종 후 다음 몸을 받기 전까지의 상태 '중유' 등이다.
이 중 태어나는 순간과 임종의 순간은 아주 중요한 순간으로 정의된다. 임종하는 찰나의 마음이 다음 생유의 마음에 결정적인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임종하는 순간에는 육신에 대한 애착, 가족에 대한 애착 없이 오로지 청정한 마음으로 부처님만을 생각해야 한다. 그 마음으로 다음 생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상이며 이미지라는 일체유심조를 깨닫고, 여남은 애착마저 다 놓고 극락세계에 가서 좋은 몸을 받아 태어나시라는 당부로 '영가전에'는 마무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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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전에 4
극락은 비행기나 차를 타고 이동해서 갈 수 있는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다. 극락이란 번뇌망상이 없어져 무명업장을 벗어난 곳이다. 백중에 영가님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은 영가님이 삼독심을 버리고 무명업장을 벗어나기를 바라는 행위이다.
삼독심을 버리고 극락에 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무상임을 깨쳐야 한다. 무상이란 무엇인가? 생과 사, 생과 멸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연이 주도함을 아는 것이다. 흔히 무상을 무언가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오해하지만, 사실 모든 것은 찰나찰나에 생하고 멸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이 몸을 떠나 다음 생을 받는 것 역시 생멸의 자연스러운 이치임을 이해한다면 떠나는 육신과 삶에 탐진치 하지 않고 극락에 한 발짝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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