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교리

사성제와 팔정도 ⑨ | 멸성제 – 해탈 (解脫)

멸성제는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 괴로움의 소멸은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한 것이고 집착 없음이고 해탈이다. 해탈은 부처님 당시의 수행자[사문]들이 두루 사용했던 개념이나, 해탈에 대한 정의는 당시 사문들과 부처님의 그것이 확연히 다르다. 당시 사문들은 내 안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나인 ‘아트만’을 상정했고, 아트만이 돌아갈 곳인 세상의 근원 ‘브라흐만’을 상정했다. 사문들에게 ‘해탈’이란 아트만이 카르만의 조종으로 윤회를 거듭하지 않고 본래 근원인 브라흐만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부처님은 아트만과 브라흐만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되, 다만 세상은 연기의 법칙에 의해 무시무종으로 이어지며 윤회한다고 전제했다. 멸성제는 부처님의 고유한 깨달음으로써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설명이며, 괴로움이 소멸할 때 해탈 즉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남은 절로 획득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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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

사성제와 팔정도 ⑦ – 집성제 3 십이연기 중 과보(果報)

불교에서의 윤회는 당구와 같다. 한 공이 다른 공을 때리면서 한 공에는 정지가 다른 공에는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처럼 삶을 지속하는 주체적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원인과 조건에 따라 일어나고 멸할 뿐이다. 당구공처럼 우리의 인생에서 전생과 이생을 연결하는 것은 무의식이라 하는 마음이다. 마음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가운데 과거의 원인으로 현재의 결과가 생겨난다. 그것이 십이연기를 관통하는 과보의 개념이다. 무명과 행은 과거 생이며, 과거생의 과보로써 현재생에 받는 것이 식, 명색, 육처, 촉, 수이다. 이것이 작동하는 기제는 과보로 이미 결정된 것으로 바꿀 수 없으나, 애와 취는 현재 생에서 수행을 통해 다듬어 갈 수 있는 것으로 그 과보는 아직 결정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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