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우리의 마음이 병들어 있다고?

2020년 증심사 템플스테이관이 산사태 피해를 입었다. 산사태가 처음 발생했을 때는 분노가, 산사태 근원지를 확인하고서는 교만이,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두려움이 일었다. 상황 따라 일어나는 감정들은 과연 '자연'스러운 것인가? 그렇지 않다. 자연에는 감정이 없다. 감정이란 삼독심에 의해 일어나는 부작용일 뿐이다. 해독의 시작은 병을 인지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가 삼독심으로 인해 병들었음을 알고 부처님의 말씀으로 하여금 해독해나가는 것. 그것이 불교의 수행이며 삶을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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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

12처(處)로 풀어본 김춘수의 꽃

시인 김춘수는 말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대상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사랑하고 애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욕망하는 대상에게만 이름을 붙인다. 이름을 붙이기 전에는 자신의 세계에 인식되지 않는다. 부처님은 이것을 "작자는 없지만 행위는 영원하다"고 말했다. 행위에 대해 욕망을 가지면 이름을 부여하게 되고, 이름을 부여하면 마음에 이미지가 생성되고, 마음에 이미지가 생성되었을 때야 비로소 그것은 나에게 있어 '존재하는 것'이 된다. 내가 따로 있고 대상이 따로 있어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보는 행위, 듣는 행위, 행위가 있기에 여기에 따라서 보는 나와 보이는 대상이 생겨난다. 때문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세상이라는 것은 없다. 중생은 욕망 없이는 살 수 없다. 우리의 욕망을 보살의 원력으로 바꾸는 것이 수행이며, '원래 있는 세계'라는 것이 우리의 뒤바뀐 헛된 생각임을 깨닫는 방법 역시 오직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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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

있는 그대로

가을이 와 낙엽을 보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낙엽은 사실 나뭇잎이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과정일 뿐인데 우리는 왜 그 모습을 아름답다고 생각할까? 그 이유는 우리는 실제 세계를 보지 않고 마음이 그린 그림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원효스님이 당나라 유학길에서 깨달은 것도 이와 같다. 원효스님의 '일체유심조'은 세상이 마음 먹은 대로 된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그린 그림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데에 그 참뜻이 있다. 우리는 마음이 그린 그림을 실제 세상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낙엽이 아름답다. 연기실상을 깨친다는 것은 낙엽을 아름답게 보는 것이 아니라 낙엽의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보는 것이다. 이 모든 세상이 다 연결되어 있고 그 실제 모습과 내가 보는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내 삶이 완전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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