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성제와 팔정도 ⑥ – 집성제2 십이연기의 열두가지 요소
십이연기의 요소를 역관으로 살펴보자. 일체의 괴로움인 노사는 태어남[생]을 조건으로 생긴다. 태어남은 존재[유]를 조건으로 생기는데, 존재는 과보를 만들어내는 힘으로써의 업이자 업의 결과로써 만들어진 존재를 포함한다. 이렇게 업과 업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존재는 집착[취]을 원인으로 생겨난다. 집착 가운데 가장 강한 집착은 내가 있다는 생각에 대한 집착 즉 유신견이며, 이러한 취착은 갈애에서 생겨난다.
집성제는 곧 십이연기이며 십이연기는 곧 갈애이다. 갈애와 십이연기를 모르는 것이 무명이다. 중생은 이러한 무명과 갈애의 끊임없는 수레바퀴 속에서, 그 원인과 결과로써 이 전생과 현생과 미래 생을 만들어내는 윤회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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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이 병들어 있다고?
2020년 증심사 템플스테이관이 산사태 피해를 입었다. 산사태가 처음 발생했을 때는 분노가, 산사태 근원지를 확인하고서는 교만이,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두려움이 일었다. 상황 따라 일어나는 감정들은 과연 '자연'스러운 것인가?
그렇지 않다. 자연에는 감정이 없다. 감정이란 삼독심에 의해 일어나는 부작용일 뿐이다. 해독의 시작은 병을 인지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가 삼독심으로 인해 병들었음을 알고 부처님의 말씀으로 하여금 해독해나가는 것. 그것이 불교의 수행이며 삶을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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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백중을 맞이하며 생각하는 죽음과 삶.
법당에 모셔진 종이 위패를 보며 그들이 생전에 살아숨쉬었을 모습을 생각해본다. 동시에 지금 살아있는 우리도 10년, 20년 후에는 종이 위패 한 장으로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길 것이라는 상상을 한다.
산 사람은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에, 경험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영역에의 죽음을 두려워한다. 두려움은 무명에서 나온다. 무명으로 인해 죽음을 삶의 끝자락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회피하거나 못본척하거나 심지어 통제하려고 한다.
죽음은 다만 일상이 끝나는 순간에 있는 무엇이다. 어떻게 살 것인지 나름대로의 해답을 내리기 위해서는 주변 친지들의 죽음을 바로 보고 동시에 간접적으로 나의 죽음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죽음과 삶은 전혀 별개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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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화를 낼까?
심리학 연구 결과 사람들은 불공평한 상황,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상황, 부도덕한 것을 목격한 상황에서 화를 낸다. 이렇게 화가 나는 상황에는 공통점이 있다. '나' 혹은 '나의 생각'이 공격 당한다고 느낄 때 화가 나는 것이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화는 내가 있다는 생각, 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 즉 무명에서 발생한다. 또한 화는 오로지 내가 공격받는 상황에서 나오며, 내가 안전하다고 여기는 상황에서 표출된다.
화가 치솟을 때에는 화가 생기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 누구의 잘못인지를 따지기보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찾아서 그 문제를 해결하면 분노 상황은 대부분 원만하게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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