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

정초에 왜 칠성기도를 할까?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정초가 되면 칠성기도를 올린다. 칠성신앙은 불교가 흡수한 민간신앙 중 하나로,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님에게 가족들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데에서 시작됐다. 과학과 의료, 복지의 발달로 전보다 평안한 생활을 영위하는 현대인들은 오랜 옛날부터 풍습과 문화로 전해져온 칠성기도를 미신이나 기복신앙으로 치부한다. 칠성기도의 본뜻을 헤아려보고 스스로 복을 쌓아 가까운 사람에게 나누는 수행과 공덕의 일환이라고 재해석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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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

부처님은 어디 계신가?

개인의 깨달음을 중시했던 상좌부 불교와는 달리 대승불교는 부처님을 신격화 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일반 종교에서의 신이 전지전능한 존재인 것과는 달리 부처님은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의 삶을 살다 갔으며, 제자들에게 "너 자신을 등불로 삼고 방일하지 않게 정진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는 우리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는 종자를 가졌기 때문이며, 이러한 불성사상을 마음 깊이 믿고 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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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윤리

생활불교의 길: 지계

구산스님의 '생활불교의 길' 두 번째 날은 지계의 날이다. 지계는 올바름의 날이다. 불교에서의 올바름은 부처님의 진리인 법을 바르게 하자는 의미이다. 법의 기준이 바르게 서있으면 선악의 판단, 혹은 규범이 제대로 갖춰지게 된다. 지계는 법에 근거하여 양심에 거리낌 없는 것이다. 양심의 기준이며 지침이 되는 것이 오계이다. 오계를 따르면 크고작은 선택의 상황에서 편하게 삶을 건너갈 수 있다. 양심을 지키면 손해보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양심에 따라 사는 것이 더 큰 복과 덕을 쌓을 수 있는 이익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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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윤리

생활불교의 길: 보시

법보시는 내 마음을 주는 것이다. 마음을 보시한다는 것은 '나'라고 하는 놈이 없는 것이라는 아공의 도리를 깨쳐야 가능하다. 재보시는 물건을 아낌없이 주되, 내가 보시를 했다는 행각이나 타인이 나의 보시를 받았다는 생각 없이 보시하는 것이다. 내가 주었다는 상을 내면 번뇌가 따르는 복이며, 상에 얽매이지 않으면 번뇌가 없는 참된 복이다. 보시는 또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며 없애주는 것이다. 때문에 번뇌를 없애고자 하는 우리의 모든 행은 그 자체로써 보시이며, 모든 보시는 본질적으로 번뇌를 없애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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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

부처님 전생담 이야기

부처님 전생담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전생담들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같은 결이다. 매를 피해 도망친 비둘기를 살리고자 한 왕은 비둘기와 인간의 생명의 무게가 같음을 보살행으로써 표현한다. 가리왕에게 억울한 누명을 쓴 인욕수행자의 전생담에서는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인욕행을 증명하고, 설산 야차에게 법을 청하는 수행자 전생담에서도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 법을 구하는 서원을 드러낸다. 자비행과 인욕행과 서원은 그 무엇보다 큰 장애인 아상으로써의 장애를 뛰어 넘음으로써 증득할 수 있으며, 그 수행과 복덕의 힘이 깨달은 자, 붓다의 바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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