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계(五戒) 불살생(不殺生) 1

오계 중 첫 번째인 불살생으로 우리 시대의 살인을 고찰하다.
살생 가운데 사람을 죽이는 것을 두고 특별히 살인(殺人)이라 말한다. 살인은 불교뿐만 아니라 모든 문명, 문화권에서 금지하는 것이지만 어쩔 수 없는 살인이나 전쟁 중의 살인, 자발적 안락사와 같이 판단을 고민하게 하는 상황에서도 일어난다.
어떠한 살인이라 하더라도 불교에서는 동기와 의도에 의해 판단한다. 동기는 행위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의도는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의 구체적인 목표이다.
동기가 선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의도에 따라 업을 쌓으며 업의 과보를 받는다.

공인의 덕목

공인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자, 양도받은 권력을 대신 사용하는 사람이다. 양도받은 권력만큼 공인에게는 큰 권력이 있으며, 발언 하나 행동 하나에 커더란 파급력이 따른다.
공인과 수행자의 공통점은 언제나 자기성찰에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시민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으며, 자신은 단지 시민들의 대리인에 불과함을 잊지 말고 자기 성찰을 해만 양도 받은 권력을 올바로 쓸 수 있다.

보왕삼매론 해설 2

공부하는 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말고, 수행하는 데 마(魔)가 없기를 바라지 않아야 한다.
장애가 없고 마가 없으면 마음공부의 단계를 차근차근 밟지 않은 것이며, 배움의 등급을 뛰어넘어, 깨닫지 못했는데도 깨달았다고 말하는 불망어죄를 저지르게 된다.
마음공부에 장애는 자연의 이치와 같이, 인간의 생로병사와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참선을 할 때 망상에 빠지고 포기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다. 마음은 찰나 생 찰나 멸한다.
장애라고 생각되는 마음도, 마장이라고 생각되는 현상도 생하고 멸할 것을 알아야 한다. 지레 이를부정하거나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수행의 진정한 장애가 된다.

보왕삼매론 해설 1

보왕삼매론은 원나라 말기 묘협스님의 저서 ‘보왕삼매염불직지’ 중 제17장 10대 애행만을 따로 떼어서 다시 한 번 축약한 경전이다. 열 가지 장애를 수행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어떤 장애도 생길 때부터 ‘누군가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라는 본분으로 나지 않는다. 자연 그대로인 상태를 누군가가 장애로 느낄 뿐이다. 장애라는 생각에서 장애가 되는 것이다.
중생들은 내가 있다는 생각과 이것이 나라는 생각에 속박되어 있다. 나라는 무명에 속박되어 있는지를 살피면 자연 아닌 것이 없고 장애인 것도 없다.
때문에 몸에 병이 있는 것도 장애가 아니며, 병의 인연을 살펴 병의 성품이 공한 것을 알면 병이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

자경문 해설 8

여색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다. 사랑은 흔히 3단계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서로에게 눈이 맞아 이끌리는 성욕의 상태이다. 두 번째는 자기만의 영역에 상대방이 들어와도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거리낌이 없는 친밀함의 단계이다. 세 번째는 애착, 곧 집착의 단계이다.
자경문에서는 사람에 대한 소유욕, 애착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재물과 여색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방법이 바로 팔정도 가운데 하나인 정념이다. 비록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닌 것 같은 마음가짐, 초지일관의 마음가짐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 재물과 여색을 다스리는 길이다.

자경문 해설 7

식욕, 수면욕, 성욕의 목적은 생존과 번식이다. 나 잘났다는 생각, 뽐내는 모습의 뿌리도 생존 욕망에 있다. 생존 욕망에 충실하여 본능적으로 살면 남을 업신여기고 내가 잘났다고 으스대게 된다. 아상에는 인정욕구가 자연스럽게 따라 붙는다.
원시의 생존 양식을 탈피하지 못하고 아상을 키우는 삶을 살면 죽은 후에 삼악도에 떨어질 확률이 커진다. 도가 높을수록 더욱 경계해야 하는 것은 너와 나의 분별에 따른 아상이다.
언제나 마음을 겸손히 할 때 만복이 저절로 들어오며, 항상 자기 자신을 성찰할 때 아상에 빠지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자경문 해설 6

사바세계 중생들을 움직이는 힘은 욕망이다. 욕망에서 모든 행이 비롯된다. 욕망은 나쁜 것일까? 그릇된 것일까?
부처님의 가르침은 욕망을 제거하자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은 욕망에 반하는 고행 수행의 극단까지 체험했으나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다. 욕망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깨달음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욕망을 부정하는 것도, 욕망에 충실하는 것도 아니다. 중도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중도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매순간 깨어있어 나 자신을 살펴야 한다.
자경문에서는 본능적인 욕망을 다스리고 행동가지 하나하나를 성찰하는 지혜를 갖추기를 독려한다.

자경문 해설 5

불교에서는 선우(善友)를 사귀고 악우(惡友)를 멀리하라고 말한다. 좋은 도반이 없거든 차라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수행하라는 구절도 있다. 요즘은 처세술의 일환으로 이러한 말을 ‘손절’이나 ‘관계 끊기’의 근거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기실 이 말의 전제는 스스로가 충실한 수행자라는 데에 있다.
스스로를 수행자로 규정지어도 여러 현실의 여건상 타인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구분짓고 부러 가까이 하거나 부러 멀리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를 선우나 악인으로 분별하기에 앞서 스스로가 충실한 수행자인지를 살펴보고, 누군가를 분별하는 데에 나의 욕심이 개입되지는 않았는지 가려보아야 한다. 좋은 것을 가까이 하는 것은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깨달음을 얻는 수행에 전념하기 위함임을 명심해야 한다.

자경문 해설 4

삼악도 고통의 근본은 탐욕에 있다. 재물에 인색하지 말고 남의 물건을 탐내지 말아야 한다. 내 안의 탐심을 없애는 데에 제일 가는 수행은 보시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몸으로 봉사하거나, 재물로 보시하거나, 마음으로 뭇 중생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모두가 훌륭한 보시의 방법이다.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간다고 말하지만, 기실 우리는 사는 동안 쌓아온 업의 과보를 지니고 떠난다. 보시하고, 수행하고, 말을 떠나 홀로 자신을 성찰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사는 동안 쌓을 수 있는 선업이자 공덕에 다름 아니다.

영가전에 4

극락은 비행기나 차를 타고 이동해서 갈 수 있는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다. 극락이란 번뇌망상이 없어져 무명업장을 벗어난 곳이다. 백중에 영가님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은 영가님이 삼독심을 버리고 무명업장을 벗어나기를 바라는 행위이다.
삼독심을 버리고 극락에 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무상임을 깨쳐야 한다. 무상이란 무엇인가? 생과 사, 생과 멸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연이 주도함을 아는 것이다. 흔히 무상을 무언가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오해하지만, 사실 모든 것은 찰나찰나에 생하고 멸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이 몸을 떠나 다음 생을 받는 것 역시 생멸의 자연스러운 이치임을 이해한다면 떠나는 육신과 삶에 탐진치 하지 않고 극락에 한 발짝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