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하는 마음

미운 마음이 커지면 원망이 되고, 원망이 커지면 원한이 되고, 원한이 사무치면 저주를 품는다.
원망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을 내 뜻대로 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생겨난다. 내가 힘든 원인이 내가 아닌 타인에게 있다는 전제로 원망은 자라난다.
그러나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은 남을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남의 인생에 간섭하여 이 길로 가라, 저 길로 가라고 통제하는 것은 부처님도 못(안) 하는 일이다.
<뚱보 비구의 일화>와 <뚱보 비구의 전생담>에 비추어 원망하는 마음의 근원을 찾아본다.

그랬구나

미움과 증오로 휩싸인 번뇌의 불꽃을 끄는 주문은 “그랬구나~”이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프레임은 다른 관점 혹은 입장에 의해 다르게 짜여진다.
일어난 현상과 내 마음을 또렷하게 관찰해야만 나의 입장과 관점에 휘둘리지 않고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다. 있는 그대로를 보면 궁극적으로 갈등의 원인을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지혜로운 이가 미움을 대하는 모습이다.
“다른 사람이 분노하는 것을 알고 주의 깊게 마음을 고요히 하는 자는 자신과 남 그 둘 다를 위하는 것이다.”

마음의 상처

부처님은 첫 번째 화살을 맞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쓸데없이 비탄에 잠기고 혼미해지는 두 번째 화살을 스스로 자초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과 듣지 않은 사람은 두 번째 화살을 맞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차이를 드러낸다.
두 번째 화살을 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이미 일어난 일을 가지고 생각을 불려가면서 기분이 좋다 나쁘다 화가 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화살의 상처를 만들듯 사람들은 마음으로 세상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스스로가 만든 세계를 잘 살펴볼 일이다. 이것이 내가 만든 감정인지 밖에서 온 행위인지를 잘 관찰하면 두 번째 화살 역시 자연스럽게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혼자가 나아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가족 형태는 1인 가구이다. 학생, 취업한 청년, 주말부부 등 다양한 형태의 1인 가구가 존재하지만 최근 급증하고 있는 것은 55세 이상의 ‘황혼 이혼’ 가구이다.
오랜 세월 살아온 부부가 결별하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 왜 나의 배우자가 남보다 못한 사람이 되었는가? 그것은 그 사람에게 덧칠한 나의 감정 때문이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에게 나의 감정을 덧칠한다. 내 감정으로 덧칠하기 전 원래 그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사라졌을까? 오랫동안 덧칠한 감정을 걷어내고 볼 때 비로소 대화가 시작될 것이다.

제사가 궁금해! 귀신은 있다? 없다?

백중은 영가님들을 위해 천도재를 지내는 불교의 명절이다. 천도재를 지내는 것은 돌아가신 영가님이 실재한다고 전제하는 바, 영혼의 유무와 귀신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있다고 믿자니 찝찝하고 없다고 치부하자니 무언가 미덥지 않은 ‘귀신’의 존재!
귀신은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마음 속에서 만들어낸 귀신이라는 상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은 일체유심조. 마음이 만들어내고 마음이 상을 키운다.

희망에 대하여

희망, 소망, 바람, 소원 같은 말은 모두 ‘무언가를 바란다’는 뜻이다. 절에 기도를 하러 오는 사람들도 갖가지 희망을 진고 있다. 희망은 삶의 필수 요건이지만, 희망이 삶 속에서 어떻게 전개되어 가는지를 아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흔히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내가 원하는 바를 또렷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들어주는 의존적인 소원을 내 스스로 이뤄나가는 희망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나의 욕망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자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보시하는 마음

불교에서 추구하는 것은 번뇌의 불꽃을 완전히 꺼버리는 니르바나 즉 열반이다. 열반을 이루기 위해서는 계율을 지키고, 선정에 들고, 지혜의 눈을 여는 계정혜 삼학을 닦아야 한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사람이 계정혜 삼학에 매진할 수는 없는 일. 일반 불자들이 금생과 내생의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 해야 할 일로 보시와 지계를 제시한다.
보시의 의미를 넓게 설정하면, 다른 사람에게 내 자신을 낮추는 모든 행위가 포함된다. 요즘 말로 ‘봉사’라고 한다. 또한 불자 5계를 지키는 지계 또한 선업을 쌓는 훌륭한 방법이다.
이번 생에 쌓은 보시와 지계, 두 가지 선업으로 하여금 내생에 분명히 좋은 과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환승역

나는 화를 내고 싶지 않은데 왜 주변 사람들은 나를 도와주지 않을까? 왜 세상은 나를 화나게 하는 걸까?
‘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화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화는 누군가와 주고 받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이다.
마음이 거친 상태에서 고요한 상태로 갈 때는, 마음 중간에 만들어 놓은 환승역으로 찾아가자. 환승역이란 다름 아닌 평상시에 습관적으로 해왔던 수행이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 ‘버럭!’ 대신 ‘옴!’ 하고 외치는 것. 그것이 화를 해결하는 비결이다.

자신만의 침묵

해외여행을 떠나면 느껴지는 편안함이 있다. 낯선 사회와 낯선 언어로 하여금 그 나라와 내가 차단되는 데에서 오는 해방감이다.
세계와의 차단은 일상생활에서 나도 모르게 받는 스트레스를 풀어 준다. 이런 상태를 침묵이라고 할 수 있다. 침묵의 의미를 확장시키면 보는 것, 말하는 것, 행하는 것으로부터의 차단까지 나아간다.
침묵이 중요한 이유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바깥으로 나가는 마음을 잠시 중단시키는 일, 그 연습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마음의 눈이 멀면

법구경 1, 2번째 게송과 함께 하는 행복의 조건.
아라한과를 증득했지만 눈이 멀어버린 짝꾸빨라 스님과 치료비를 아끼려다 죽음에 이른 구두쇠의 일화를 통해 수행에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한다.
마음의 눈이 멀었다는 것은 지금 여기의 마음을 살피지 못한다는 뜻이다.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을 본다는 것은 바로 전 찰나의 마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의 내 마음을 보지 못하면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