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일요강좌, 초기불교이해 1

각묵스님의 <초기불교 이해>로 알아보는 불교의 원형.
부처님 당대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초기불교는 다양화된 한국불교의 원형을 알 수 있게 하고, 대승 중심의 한문 경전이 익숙한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과 시사점을 제시하기에 중요하다.
초기불교의 핵심은 “해체해서 보기”이다. 초기불교는 명칭과 개념을 해체한다. 개념의 해체를 통해 연기실상을 통찰할 때 존재에 대한 욕심과 집착이 떨어지며, 그랬을 때 연발이 실현된다.
‘어떻게 하면 궁극적인 행복으로 갈 수 있는가?’에 불교는 대답을 제시한다. 초기불교에서는 보시, 지계, 수행이 궁극적인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하며, 세 가지 영역이 모두 잘 이루어질 때 금생의 행복과 내생의 행복 그리고 영원한 행복을 증득할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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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의 네 번째 방법은 ‘조고화두와 반문문자성’이다. 참선은 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돌이켜서 자성을 듣는 것이며, 화두를 환하게 비추어서 살피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행하는 것은 순류이다.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고 느껴지는 것이 끌려다니고 순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행은 역류다. 순류의 과정에서 생기는 필연적인 결과물인 망상을 제거해나가는 과정이다.
참선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부차적으로 생사심과 장원심이 있어야 한다. 생사심은 이 몸을 가지고 있는 이 생에 수행해야 한다는 간절함이고, 장원심은 잘되는 못되든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이다.
초심자는 습과 아만으로 인해 공부가 어려우나, 단지 놓아버리고 일념만을 들 수 있으며, 구참자는 백척간두에서 나아가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으나 해온대로 면밀하게 공부할 수 있는 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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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참선의 방법을 알아본다. 좌선을 할 때 몸은 자연스럽고 올바르게 자세를 취해야 하고 마음은 너무 초조하거나 급박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심신이 피폐해지고 심한 경우 마가 붙게 된다.
‘공부에 착수하는 법’은 손님과 주인을 인식하는 것이다. 마음은 생각(망상)과 다르며, 생각은 조건에 따라 생하고 멸하는 객과 같고 마음은 주인처럼 허공처럼 변함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이다.
‘화두와 의정’은 본래 성품으로 가는 수단이다. 한 생각 일어나기 전, 즉 화두 이전이 바로 마음이고, 화두를 관하며 의심을 일으키는 것은 자성을 보는 다양한 방법 중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외부세계를 인식하지 않을 때 참 공부가 시작되며, 이렇게 참 공부에 들어가 망상을 제거했다면 망상을 제거한 무기의 세계에 머물지 말고 참선의 목적인 자성을 보는 것으로 즉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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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운스님이 제시하는 공부의 입문방법은 네 가지다. 첫째, 인과를 깊이 믿을 것. 둘째, 계울을 엄히 지킬 것. 셋째, 신심을 굳게 지닐 것. 넷째, 수행의 문을 정할 것 등이다. 이는 도를 깨치는 선결조건을 획득하는 방법이다.
인과를 믿는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되기를 바라지 않고 세상 모든 것이 인연의 법칙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굳게 믿는 것이다.
계율을 지키는 것은 계정혜 삼학의 첫 번째 단계이다. 계율을 지키면 선정이 생기고 선정이 갖춰지면 지혜가 생긴다. 계정혜는 처음에는 순차적인 단계로 가고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후에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성장한다.
신심을 굳게 지닌다는 것은 모든 행위의 바탕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믿음이 없이 의심이 있으면 무언가를 행동할 수 없다. 믿음은 모든 일을 이루게 하는 원동력이다.
수행의 문을 정한다는 것은 입문의 단계에서는 어떤 수행이든 하나의 수행을 진득해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네 가지 선결조건을 깊이 알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깨달음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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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감각으로 설명하는 ‘참선의 선결요건’.
인간은 공간적으로 사고한다. 시각으로 정보의 70% 이상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시간도, 감정도, 생각도 공간적 사고 패턴으로 받아들인다.
참선은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보기 위해서 한다. ‘있는 그대로’는 인식된 세계, 허상, 말로 표현되는 세계 너머에 있는 실상을 의미한다. 있는 그대로 인식한다는 것은 기존의 인식을 통해 실상을 인식하는 데에 오류가 있다는 거는 아는 것이다. 나의 인식 패턴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생각의 전환 그 자체이다.
공간적 사고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 하며, 그 수행의 방식이 화두를 관하는 것이다. 화두를 관하는 간화선른 다른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한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자리로 바로 가는 것이다.
주체와 객체를 나누는 사고 패턴을 깨부술 때 너와 내가 둘이 아닌 자성을 볼 수 있고, 이것이 연기실상을 보는 것이고, 성품을 보는 것이고, 참선의 목적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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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중국불교 중흥조 허운스님의 ‘참선요지’로 공부하는 온라인 참선 강좌.
참선의 목적은 마음을 밝혀 성품을 보는 것이다. 마음을 밝히는 것은 마음의 오염을 제거하는 것이고 성품을 보는 것은 자성의 참모습을 실답게 보는 것이다.
참선의 선결 조건은 망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성품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망상을 제거한다는 말은 분별하기 이전의 있는 그대로는 보는 것이며, 이는 참선을 하는 목적이다.
망상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내 밖의 모든 것들과 내 마음이 부딪쳐서 생멸하는 생각이 없어져야 한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이 생각을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을을 돌이켜 통찰하는 것이 화두이며, 그 결과로써 번뇌와 보리, 생사와 열반은 모두 거짓 이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반야심경 해설 4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관자재보살은 오온이 ‘공’하다는 것을 ‘비추어 보아’ 온갖 괴로움에서 벗어났다. 공(空)을 비어있다고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공은 곧 연기다. 모든 것은 조건 지어져 있으며 스스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무언가에 의지해서 생긴다는 진리다.
내 안에 괴로운 감정이 생기는 것은 연기의 이치이다. 이것을 똑바로 비추어 보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비추어 보기 위해서는 깨끗하고 고요한 마음의 힘을 키워야 하며, 마음의 여백을 통해 나 자신의 감정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중생의 고통이 시작된다. 모든 것이 조건 지어져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비추어 보아 아는 것이 바로 불교의 핵심을 아는 것이다.

반야심경 해설 3 집성제 멸성제

사성제 중 멸성제는 고통을 멸하는 방법을 이야기 한다. 반야심경 첫구절에 따르면 관자재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해서 고통에서 벗어났다.
반야바라밀다는 곧 육바라밀이다. 지혜 바라밀이 나머지 지계, 인욕, 선정, 정진, 보시바라밀을 포함한다. 육바라밀은 곧 계정혜 삼학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계와 인욕은 계를, 선정과 정진은 정을, 혜에 해당한다. 육바라밀과 계정혜 삼학은 곧 팔정도이기도 하다. 이것들을 닦음으로써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특히 다른 누구에게 보거나 듣거나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실참해야만 하는 정정과 정념 즉 정진은 반드시 마음을 내어 직접 해보는 시간을 갖기를 권한다.

반야심경 해설 2 고통과 행복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보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반야심경의 첫 구절에 불교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과연 고통이란 무엇일까?
고통의 원어인 두카(dukkha)는 수레바퀴가 어긋났다는 데에서 유래했다. 무언가 어긋나있어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가 두카이며 괴로움이다.
괴로움은 내 마음속 욕망과 나를 둘러싼 조건이 어긋날 때 일어난다.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생각과 마음이 따로 노는 상태가 괴로운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
스스로 욕망과 불안, 분노를 다스릴 수 있으면 그것은 괴로운 상태가 아니다. 우리는 괴로움 아닌 상태를 더욱 오래 유지하기 위해 수행을 하고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반야심경 해설 1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반야심경은 반야부 대승경전의 정수로써 팔만대장경의 내용을 압축해놓은 경전이자 불교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경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불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경전이기도 한 반야심경을 8회에 걸쳐 자세히 알아본다.
불교의 깨달음은 안다와 모른다로 나뉜다. 무엇을 아는가?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올바로, 제대로 아는 것이 곧 깨닫는 것이다. 모르면 괴롭고 알면 고통에서 벗어난다.
‘오온이 공하다’는 것을 모르는 불자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지식에 불과한지 내 삶을 바꾸는 깨우침인지를 스스로 진단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