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초기불교의 이해

온라인 일요강좌, 초기불교 이해 5

제7장 나는 누구인가 – 초기불교의 인간관

지난 시간에는 사성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사성제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바를 1분 요약한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럼에도 사성제 안에 불교의 모든 진리가 들어가 있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오늘은 오온을 살펴보는데요. 불교 기본 교리를 조금이라도 공부하셨거나 불교대학이나 기초학당 같은 곳에 다녔다면 오온 그 자체는 모두 들어보거나 어렴풋이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그게 무엇인지 딱 떨어져서 생각나지는 않는데요. 이 책 <초기불교 이해>를 정독하다 보면 확실하게 감이 잡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109쪽부터 시작하는 제7장 나는 누구인가 – 초기불교의 인간관, 오온 1 부터 162쪽까지의 부분이 오온에 대한 부분입니다. 페이지 수는 많은 것 같지만동어반복도 많고요. 주의 깊게 살피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지식, 실용 논리로써의 오류에 빠지지 말자

오온이나 12처, 12연기를 접할 때 우리가 쉽게 빠지는 오류가 있습니다. 제일 첫 번째는 이런 것들을 지식으로만 이해하는 것입니다. 프랑스 수도는 파리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섬은 제주다, 물은 H2O다, 이런 것들은 알고 있다 하더라도 일상생활과는 밀접하게 관련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 지식입니다. 많은정보 중 내 안에 들어오는 하나의 정보일 뿐이죠. 그런데 이런 식으로 불교의 교리에 접근하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식으로써만 오온, 12처 같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제일 큰 오류였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두 번째 오류도 같은 맥락입니다만, 단순한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에서 조금 더 나아갔지만 단지 살아가는 데에 조금 힘이 되는 것으로만 받아들이는 것도곤란합니다. 어떤 지식이나 어떤 정보는 내가 살아가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됩니다. 세무 회계라던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전망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면 아무래도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데에 이익을 취하거나 손해를 덜 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은 내 삶과 직접 연관이 있는 실용적인 지식입니다. 또 정치적인 견해라거나 나름의 관점, 주장은 내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가치관이나 신념 같은 것들이지요. 이런 것들도 넓은 의미에서는 내 삶에 보탬에 되는 지식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두 번째 범주의 지식으로써 불교를 대할 수도 있습니다. 환경권이라던가 동물권, 생명권에 대한 자기 주장을 이야기 할 때 불교의 논리를 바탕으로 주장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주장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환경을 사랑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삶을 실제로 살아가는가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단지 자신의 사상이나 이념, 노선이 생각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설령 불교의 개념과 지식을 습득한 차원을 넘어서서 좀 더 체계화, 정교화시키더라도 내 일상적인 삶에까지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이런 경우도불교를 지식으로만 이해한 한계적인 모습입니다. 

두 문장으로 요약한 불교(81p), 목적은 열반

그런데 이 책 81쪽 두 번째 문단을 보면 불교의 전체적인 체계를 요약해서 정리하고 있습니다. 

  •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나라는 개념적 존재는 5온으로 해체해서 보고, 일체 존재는 12처로 해체해서 보고, 세계는 18계로 해체해서 보고, 생사문제는 12연기로 해체해서 보게 되면, 온, 처, 계, 연 등으로 설해지는 조건지워진 법들의 무상, 고, 무아가 극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처럼 존재를법들로 해체해서 그들의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통찰하여, 염오하고 탐욕이 빛바래고 그래서 해탈, 열반, 깨달음을 실현한다는 것이 초기불전의 일관된 흐름이다. 

이 두 문장이 불교입니다. 불교가 무엇이냐? 누군가 묻는다면 이 두 문장을 이야기해주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문장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 안에 불교 교리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불교는 열반을 이루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잘 이해하는 것이 불교의 목적이아닙니다. 내가 열반을 성취하는 것이 불교의 명확한 목표입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나라는 존재를 5온으로 해체하고, 일체 존재는 12처로 해체하고, 세계는 18계초 해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공의 과정입니다.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죠. 그 해체한 법들 각각이 괴롭고 무상하고 무아라는 것을 철처히 통찰해서 법공을 깨달아서 염오하고 탐욕이빛바래고 소멸하는 과정을 거쳐서 열반에 이르는 것입니다. 

불교는 어떻게 하면 열반을 성취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모든 것이 귀결됩니다. 5온을 이해하는 것도 분명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5온을 이해하는 것은열반을 성취한다는 분명한 목적을 위해서 행해집니다. 그냥 지식으로써 아는 것은 불교의 지향점인 열반이라는 목표로 가는 것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점을 확실하게 머릿속에 새기고 있어야 합니다.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5온이 무엇입니까? 색수상행식이라는 걸 불자들은 다 압니다. 색은 물질이고 수상행식은 정신이다, 세상은 물질과 정신으로 이뤄져 있다. 이렇게 오온을이해하는 것은 열반을 성취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도 이야기하지만 나라는 존재를 5온으로 해체해서 그 각각의 법들이 무상하고괴롭고 무아인 것을 깨달아서 열반을 이뤄야 합니다.

오온은 색수상행식의 지식 아닌 통찰하기 위한 수단

5온이 무엇입니까? 나를 해체한 것이 5온입니다. 결국은 내가 5온입니다. 나라고 하는 것이 5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점을 많은 경우에 놓치고 있습니다. 5온을 왜 이야기하는지, 5온이 어디에서 출발하는 지를 놓치고 있습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를 해체해서 보니까 다섯 가지 온(무더기)로 나눌 수 있더라는 것입니다. 왜 나를 해체합니까? 나라는 존재가 무상하고 괴롭고 무아라는 것을 통찰하기 위해서 해체하는 것입니다.

왜 나라는 존재가 무상하고 괴롭고 무아라는 것을 통찰해야 하느냐? 열반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왜 열반을 성취하느냐? 행복하기 위해서 입니다. 열반이 곧 궁극적인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목표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아무리 내가 교리에 정통해도 내 삶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만약 불교 교리에 정통한 것으로만 열반에 이를 수 있다면, 전 세계상에 있는 불교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나 평생 교학 공부를 한 스님들은 모두 아라한과를 얻어서 깨달음을 얻어야 하고 번뇌가 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을 그렇지 않습니다. 목표의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5온은 나라는 것을 해체하니까 다섯 가지 무더기로 나눌 수 있더라 라는 것을 먼저 이해하고 나서 각론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다섯 가지 무더기가 무엇인지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이것을 확실하게 이해하십시오. 

여기에서 말하는 나라는 존재는 무엇입니까? 사실은 경전에서 오온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경전이 있습니다. 반야심경입니다. 반야심경의 첫 구절이‘마하반야마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도일체고액(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보고일체의 액란을 건너느니라.)’ 입니다. 오온이 공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모든 고통에서 벗어났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머릿속 고정관념일 뿐인 ‘나’를 다섯 조각으로 해체

오온이 색수상행식이고 내가 곧 오온이며, 이 다섯 가지 무더기가 모여 있는 나라는 것이 깨닫고서 모든 고통에서 건넜다는 것이지요. 내가 공하다는 부분에서 ‘나’는 누구일까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데에서 오는 가장 큰 오류가 무엇이냐면요. 

어떤 대상이 앞에 있을 때 우리는 이것을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핸드폰이라고 하면 손에 쥘 수 있는 까맣고 딱딱한 물체를 핸드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은 그것은 핸드폰이라는 이름입니다. 핸드폰의 이미지는 내 머릿속에 있습니다. 전화도 할 수 있고 사진도 찍을 수 있고 계산기도 쓸 수 있는핸드폰이라는 개념은 내 안에 있지요.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생각합니다. 우리 머릿속의 이미지가 아니라 손으로 만져지는 이 물체 자체가 핸드폰이라고 말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나는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는 몸뚱이입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말하면 나라고 하는 것은 핸드폰처럼 내 머릿속에있는 고정관념입니다. 그 생각을 해체를 해서 보니까 색의 덩어리, 느낌의 덩어리, 인식의 덩어리, 의도의 덩어리, 의식의 덩어리 등 다섯 가지 법으로 나누어지더라 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것의 뭄뚱이에 매스를 들이대서 해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머릿속의 인식을 해부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81쪽에는 ‘나라는 개념적 존재’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나’는 ‘개념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 개념을 다섯 조각으로 쪼갰다는 것. 이것만 잘 이해해도 절반 이상 이해했다 할 수 있을 겁니다. 

법의 고유한 성질[자상]과 공통된 성질[공상]

법은 고유의 성질을 가지고 있고 찰나생 찰나멸 하는 것입니다. 색은 색의 고유의 성질이 있을 것이고, 수는 수의 고유의 성질이 있을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 고유의 성질은 각각 찰나생 찰나멸합니다. 

예를 들어 색은 물질이라고 하는데 변형되는 것을 말합니다. 형태와 모양이 있어서 그것이 변화하는 것이 색이라는 법의 고유한 성질인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각각의 법은 자상((自相, 고유 성질)이 있고 공상(共相, 공통된 성질)이 있는데, 고유한 성질은 각 법마다 다르고 공통된 성질은 찰나생이고 무상하고 고이고 무아라는 것입니다. 

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하고 마쳤다면 각각의 법에 대한 자상만 오늘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색의 자상 즉 고유성질이 무엇이냐? 수의 고유성질이 무엇이냐? 그것만 이해하면 됩니다. 또한 색온 따로 식온 따로 이야기하지 않고 왜 항상 오온이라고 한 데 묶어서 이야기하는가? 이 두 가지만 알면 오온에 대한것은 다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색, 형태가 변하는 고정관념

색온은 변형된다고 해서 물질이다. 특별히 수상행식과 비교해서 보자면 수는 느낌, 상은 인식하는 것, 행은 여러 가지 심리 현상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특별한 모양이나 형태가 없는데 색은 형태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형태가 변화한다 이겁니다. 왜냐? 찰나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찰나찰나 생하고 멸하면서 계속이어집니다. 그것을 상속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형태가 변화한다고 해서 물질이라고 하며 이것이 색의 고유한 성질입니다. 색=물질 같은 말입니다. 

물질은 눈으로 보고 만지는 이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말하는 색은 이것에 대한 내 머릿속의 고정관념입니다. 항상 모든 법은 고정관념입니다. 고정된 생각입니다. 핸드폰 하면 내 머릿속에서 나도 모르게 떠올리는 고정된 생각. 그 생각 속에는 모양과 느낌, 그것이 다른 전자기기와 비교했을 때 무엇이 다른지에 대한 생각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을 말하는 거지 실제 세계에서 보고 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만 확실하게 이해하면 됩니다. 그래서 색온은 변형된다고 해서 색입니다. 색이라는 것은 형태가 변하는 고정관념입니다.

인식과정과 연결해서 색온을 이야기할 때는 보통 이렇게 얘기합니다.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입니다. 즉 따뜻하다 날카롭다 다른 것보다 크다라는게 아니고, 그냥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 색입니다. 색은 생각입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에서 뭐라고 합니까? 색은 공하고 수상생식도 공하다고 합니다. 

색이 만약 우리가 눈으로 보고 만지고 듣는 현실 세계의 이것이자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물질이라고 하면 반야심경처이 틀린 것입니다. 있는데 없다고 하면틀린 것이잖아요. 그런데 실제 색이라는 것이 관념이고 생각이기에 공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색온이라는 것은 찰나찰나 계속 생하고 멸하면서 찰나찰나가 쭉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이라는, 무더기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나머지를 다 이해하면 전혀 어렵지가 않습니다.

첫번째 오온은 나라는 고정관념을 오온으로 해체한 것입니다. 내가 오온입니다. 나도 마찬가지고 오온도 마찬가지고 일종의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고정관념 중에서 특별히 색온의 특징은 무엇이냐 했을 때, 이 말을 불교용어를 써서 표현하면 색의 고유성질이 무엇이냐, 색의 자상이 무엇이냐는 것이됩니다. 형태가 변화한다는 것이 색의 고유성질이다, 라고 정리하면 됩니다. 

수, 내가 느끼는 다섯 가지 느낌

수온은 느낌이죠. 책에 나오는 내용을 대충 훑어보는 느낌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괴로운 느낌, 즐거운 느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 등 세 가지가 있습니다. 괴로움도 육체적인 괴로움과 정신적인 괴로움으로 나뉩니다. 즐거운 느낌도 마찬가지고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은 것은 삼매에 들어을 때의 상태입니다. 이렇게 느낌이라는 것은 총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육체적인 괴로움, 육체적인 즐거움, 정신적인 괴로움, 정신적인 즐거움, 괴롭지도 즐겁지도않은 느낌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첫 번째 전제가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어야 합니다. 오온은 무엇이다? 내가 오온이다. 그러면 느끼는 것은 누가 느끼는 것인가? 내가 느끼는 것입니다. 나를 오온으로 해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느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느끼는 것입니다. 이 전제조건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오는 것이 수상입니다. 이것은 심소라고 합니다. 법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누면 심, 심소, 색, 열반의 네 가지가 됩니다. 열반을 빼고 심, 심소, 열반에 오온이 다 들어갑니다. 식은 심이고 수상행까지가 심소이고 색은 색입니다. 수상행이 심소라는 것은 마음과 항상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온은 항상 같이 생기고 같이 사라집니다. 순서가 있어서 색온이 먼저 생기고 수온이 다음에 생기고 식온이 마지막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생하고 동시에 멸합니다. 이 오온을 내가 느끼는 무언가가 아니고 객관적인 무언가로 오해하면 순차적인 진행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색온으로 무언가 있다는 느낌이 있고 그것이 괴로운 느낌인지 즐거운 느낌인지 받아들이고, 그 느낌 위에 다른 것과 비교함이 있는 것처럼 순차적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잘못된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 내가 느끼는 것이고, 내가 뭔가를 보면 그것에 대해 생각할 때 내 상태를 다섯 가지로 해체하는 거니까 동시생 동시멸입니다. 

상, 심리현상의 밑바탕이 되는 인식

상온은 인식이라고 이 책에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식한다고 해서 인식의 무더기입니다. 그러고 설명하기를 지식, 철학, 사상, 이념 같은 우리의 이지적인 심리현상들의 밑바탕이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심리현상의 토대가 된다는 것은 마치 목수들이 목재 등에 먹줄로 표시하는 것처럼 인식할 수 있는 원인이 될 표상을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을 쉽게 말하자면 이름을 짓고 개념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핸드폰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상온이라고 말합니다. 이름을 짓는 것이 상온입니다. 이름을 지어줘야 그 바탕 위에서 나름의 철학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게 뒤에 말하는 행온이 됩니다. 

공통된 성질(공상)은 계속 강조하지만, 모든 법은 무상하고 괴롭고 무아라는 것입니다. 색도 무상하고 괴롭고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는 것이고, 수상행식다 마찬가지로 무상, 고, 무아를 공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죠. 각각은 나라는 것을 해체했을 때 나오는 것이니까 한몸으로 움직입니다. 각각이 따로 존재하는게 아닙니다. 나라는 개념적 존재를 다섯 가지로 해체한 것이니까, 이 다섯 가지가 모여 있는 것이 나라고 하는 고정관념이니까, 이 다섯 가지는 언제나 같이움직입니다. 

단지 수와 상의 차이, 느낌과 인식의 차이는 이렇습니다. 수는 감성적이고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정신작용에 관련되었다면 상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차근차근 순차적으로 생각하는 정신작용에 관련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수가 먼저 있고 상이 다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 마음과 함께 일어났다 사라지는 심리현상

행온은 심리현상으로 번역합니다. 50가지의 심리현상이 있다고 합니다. 앞에 이야기한 수, 상과 함께 더불어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마음과 함께 일어나고 함께 멸하는, 동일한 대상을 가지고 동일한 토대를 가집니다. 나라는 개념적 존재가 말 그대로 존재를 하려면 그 개념적 존재의 바탕이 있어야 하고, 그 개념적 존재가 대상으로 삼는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대상은 책이나 핸드폰과 같은 것이고요. 그런 대상을 인식하는 바탕이자 토대는 보는 눈, 듣는 귀 같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안과 대상, 보는 눈과 보는 대상이 결합하면 거기에서 보는 내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동일한 대상과 동일한 바탕을 가집니다. 여기에서도 오온 각각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오온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행오는 예를 들면 어떨 때는 내가 누군가를 시기질투할 수도 있고 어떤 때는 평온한 마음일 수도 있고 분노할 수도 있고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심리현상들이 그때그때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거죠. 그 심리현상들은 앞에서 말한 색온 수온 상온과 항상 결합해서 나타납니다. 분노, 시기, 질투, 평온함, 행복함 이런 것들이 심리현상이죠. 이런 심리현상들이 다른 오온과 함께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들이 쭉 이어지는 겁니다. 

정리하자면 행온은 심리현상이며 심리현상에는 유익한 것, 해로운 것, 유익하지도 해롭지도 않은 것 등 50가지가 있습니다. 기존의 아비달마 부사론에서는심소법이라고 번역을 하기도 합니다. 용어는 다르지만 결국 마음과 함께 일어나고 마음과 함께 소멸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마음은 곧나오는 식온(알음알이)입니다. 

식, 대상을 아는 작용

식온은 아는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감각기관을 통해서 대상을 아는 작용을 뜻합니다. 무언가 대상을 보고, 대상을 듣고 아는 작용이 바로 식입니다. 그 식이 찰나찰나 생멸하면서 계속 이어지니까 쌓이고 쌓여서 무더기가 됩니다. 그것이 식온입니다. 

책에 보면 심, 의, 식은 같은 말인데 조금씩 다르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의(마노)는 안이비설신의에서 의를 말합니다. 안의비설신의를 통하지 않고 법을 인식하는 작용을 특별히 이야기할 때 의(마노)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고, 그냥 마음(시타)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몸과 상대적인 의미로 쓰일 때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마음챙기는 공부의 네 가지 주제인 신, 수, 심, 법에서의 심이 바로 마음입니다. 

마지막으로 식은 색수상행식 할 때의 식입니다. 결국은 심, 의, 식이 다 같은 말입니다. 무언가를 아는 작용입니다. 식은 단지 대상을 아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이 다입니다. 그래서 나라고 하는 것은 오온인데 오온은 항상 같이 생하고 멸합니다. 언제까지? 번뇌 무명이 사라지기 전까지입니다. 언제 번뇌 무명이사라집니까? 열반을 성취했을 때 사라집니다. 그 전까지는 항상 같이 생하고 같이 멸하는 것이 계속 이어집니다. 

오온을 통찰하면 염오가 일어나 번뇌의 소멸로

다시 81쪽의 핵심 문장을 살펴봅시다. 

  • 나라는 개념적 존재는 5온으로 해체해서 보고, 일체 존재는 12처로 해체해서 보고, 세계는 18계로 해체해서 보고, 생사문제는 12연기로 해체해서보게 되면, 온, 처, 계, 연 등으로 설해지는 조건지워진 법들의 무상, 고, 무아가 극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처럼 존재를 법들로 해체해서 그들의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통찰하여, 염오하고 탐욕이 빛바래고 그래서 해탈, 열반, 깨달음을 실현한다는 것이 초기불전의 일관된 흐름이다. 

  존재를 법으로 해체합니다. 예를 들면 나라는 개념적 존재를 오온으로 해체해서 각각의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통찰합니다. 즉 아공과 법공으로 통찰하면어떻게 된다? 염오하고 탐욕이 빛바래고 그래서 해탈, 열반, 깨달음을 실현합니다. 

염오한다는 말은 아주 넌더리친다, 역겹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아공과 법공을 깨닫게 되면 제일 먼저 일어나는 것이 염오의 과정입니다. 이것을 141쪽에서는 강한 위빠사나라고 설명하고요. 무상, 고, 무아를 잘 살피는 것은 약한 위빠사나라고 설명합니다. 

  • 있는 그대로를 알고 보는 여실지견은 얕은 위빠사나를, 탐욕의 빛바램은 도를, 해탈은 아라한과를, 지견은 반조의 지혜를 말한다. ‘으뜸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아라한과로 나아간다는 말이다. 

지금은 용어로 구분하기보다 개념을 알고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표현들은 알아도 좋고 몰라도 좋은데요.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게 낫지요. 

중요한 것은 아공,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구나 라는 것을 깨치고, 법공, 나라고 하며 구성되어 있는 것들도 각각을 살펴보니 무상하고 괴롭고 무아더라 라는것을 깨치고나면 나라는 것에 대해서, 일체에 대해서 진저리가 쳐지고[염오], 이 염오의 과정은 내 안에 쌓여있던 탐욕들이 무뎌지고 빛바래지는 과정을 거쳐서 결국은 소멸, 번뇌가 사라져서 궁극적인 열반에 이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오온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나라는 존재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오온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알고, 끊임없이 흘러가는 과정인 법에 대한 공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으면 오온 각각에 대한 자상만 이해하면 되는 것이지요. 

오온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

149쪽 제9장은 7장과 8장을 정리하고 있는 챕터입니다. 

오온은 동시발생입니다.(149p)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라고 하는 개념적 존재가 오온이므로 각각을 따로 떼어내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오온은동시발생입니다. 매순간 함께 생하고 함께 멸합니다. 

오온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입니다. (152p) 나를 오온으로 해체하므로 나는 오온이고 오온이 나입니다. 불교를 공부하다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불교란 무엇인가? 스스로 질문했을 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이라는 생각이요. 그런데 실제로 부처님은 ‘나는 오온이다’라고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해체해서 보면 무상, 고, 무아가 보입니다.(154p) 아공은 해체하는 것입니다. 나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라고 할만한 것들을 법으로 해체해서 놓고 보니 각각의 법도 무상하고 무아고 괴롭더라 하는 것이 법공입니다. 여기에서 왜 무상이고 무아이고 고냐? 라고 질문을 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무상, 고, 무아는 모든 법의 공상입니다. 보편적인 성질입니다. 찰나적 존재라는 특성때문에 무상, 고, 무아라는 보편적인 성질을 가집니다. 찰나적 존재라는 말은 모든 법은 찰나생 찰나멸하는 것을 계속 이어서 반복한다, 상속한다는 것이 법의 공통된 특징입니다. 

오온은 수행으로 가는 첫 걸음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끝이면 이 모든 것들이 단순 지식에 불과합니다. 무상, 고, 무아를 그저 외우기만 해서는 내 인생에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부처님은 이것을 실험 장비나 관측 장비로 발견한 것이 아니고, 수행을 해서 법이라는 개념을 창안하고 법의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도 수행을 통해 이것을 확인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이론적으로 공부하여 아는 것은 단순히 지도를 손에 지니고 있는 정도라 할 것입니다. 

무상, 고, 무아를 통해 해탈합니다. (154p) 무상, 고, 무아를 깊이 깨치게 되면 염오하고 이욕하고 소멸합니다. 염오는 넌더리치는 것이고 이욕은 탐욕이바래는 것이고 소멸은 번뇌의 불꽃이 완전히 꺼지는 것입니다. 수행을 통해서 무상, 고, 무아의 공상을 체득하면 해탈이 옵니다.

진아란 없습니다. (155p) 오늘 이야기의 핵심은 ‘나는 오온이다’라는 겁니다. 나를 해체해서 보니 다섯 가지 법으로 나눠지고, 다섯 가지 법 각각은 무상하고 고이고 무아입니다. 그러니까 진아라고 하는 무언가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156쪽에 ‘초기불교와 아비담마는 아공법유를 주장하는가?’의 소주제에 대해서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지금까지 쭉 해왔습니다. 159쪽 ‘오온과 오취온의차이’를 보겠습니다. 취 자가 들어갔다는 것은 대상이 열반에 이르기 전까지는 집착하는 것이고 탐착하는 것이므로 오온은 오취온과 동일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161쪽에서 요약하고 있으니 살펴봅시다.

  • 요약하면, 모든 색수상행식은 더미라는 뜻에서는 모두 온이라 불린다. 그러나 아라한이 열반의 경지에 든 경우의 수상행식을 제외한 모든 오온은모두 취착의 대상이 된다는 뜻에서 역시 오취온이 된다. 그러므로 아라한이 열반을 대상으로 혹은 열반의 상태에 들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오온은 오취온이다. 아라한이 열반의 상태에 들어 있는 경우 그때의 수상행식은 취온이 될 수 없다. 

중생들에게 오온이나 오취온은 같은 의미고, 아라한이 열반을 깨치는 경우에 수상행식은 오취온에서 제외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마음 혹은 알음알이를 절대화하면 절대로 안된다는 이야기가 162쪽에 나와 있습니다. 

결국 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아비달마 불교는 거의 대부분을 각각의 법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에 할애됩니다. 각각의 법을 안 후에야 오온, 12처, 18계와같은 이야기가 제일 뒤에 나옵니다. 

오늘 한 이야기의 핵심은 첫째, 오온입니다. 내가 오온입니다. 오온에 대해서 왜 이야기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왜 오온을 이렇게 설명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오온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합니다. 두 번째, 불교를 이해하는 가장 핵심적인 것은 우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존재는 실제 세계의 존재가 아니라 고정관념입니다. 실제 무엇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의 고정관념을 존재가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있다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고정관념에서출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가장 큰 착각은 머릿속의 고정관념을 실제 여기에 있는 그 무언가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를 이해할 때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만 확실하게 이해하면 세세한 부분은 그때그때 보고 이해하면 됩니다. 그러고나서 직접 수행하는 것이죠. 

이 책이 그다지 친절한 책은 아닙니다. 원어라던가 원본의 내용이 충실하게 실려 있어서 초보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에요. 그러나 너무 어렵고이질감이 느껴지는 부분을 떼어내고 보면 이 책 만큼 불교의 개념을 정확한 관점의 바탕 위에서 설명하고 있는 책이 없습니다. 쉽다고 생각하는 개론서나 입문서를 보는 것보다 좀 어려워도 이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이 훨씬 낫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고 나서 아비달마 책을 보면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않도록 내가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를 짚어주는 책입니다. 같이 열심히 공부해봅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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