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계(五戒) : 불망어(不妄語)

아함경에 기록된 부처님의 말씀을 통, 해 이해하는 오계, 불망어.
“라훌라야, 고의로 거짓말하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의 출가수행이란 이와 같이 조금 남아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부처님은 고의로 거짓말하는 것과, 고의로 거짓말을 하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과, 특히 부끄러워하지 않는 출가수행자를 경책했다.
출가수행자는 언제나 철저하게 계를 지켜야 하며, 불망어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농담으로라도 거짓을 말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재가자의 경우에는 엄격하게 불망어계를 지키기 어려운 현실이므로, 최소한 법회날이나 포살일만이라도 제대로 계를 지키고자 하는 스스로의 의지가 필요하다.

라훌라에게 전한 부처님의 ‘불망어’ 가르침

부처님의 아들 이름이 라훌라입니다. 라훌라도 어린 나이에 출가를 했는데요. <아함경>에 부처님께서 라훌라에게 했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입니다.

부처님께서 발 씻는 물그릇의 물을 조금 남기고 라훌라에게 물으셨다.

“라훌라야, 너는 이 물그릇의 물이 조금 남아있는 것이 보이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라훌라야, 고의로 거짓말하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의 출가수행이란 이와 같이 조금 남아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탁발을 나갔다가 돌아오셔서 발을 씻으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고의’입니다. 나도 모르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알면서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고의입니다.

고의로 하는 거짓말과 부끄러움

모르고 하는 거짓말도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 텔레비전을 보다가 형님이랑 싸운 적이 있습니다. 서울역 앞에 있는 건물이 대우빌딩인지 현대빌딩인지를 가지고 말입니다. 저는 현대빌딩이라고 우겼고, 목소리가 커서 이겼는데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건물은 대우빌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릴 적 제가 했던 말은 거짓말이었을까요? 아니죠. 그때는 어릴 때였고 현대빌딩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고의로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지요. 실제로 현대빌딩이라고 알고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모르고 하는 거짓말이 아닌 것이 고의로 하는 거짓말입니다.

두 번째 포인트는 ‘부끄러워한다’입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라는 오계의 하나 불망어계를 어기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어기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계율을 100%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잘 지키는 것이 아니라 어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입니다. 부처님이 생각하시기에 계율을 어기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계율을 어기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그것이 문제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의 출가수행이란 조금 남아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계율이라는 것은 오계를 말합니다. 계는 자발적으로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수계식은 계를 받는 의식입니다. 수계식에서는 계사스님이 “지키겠느냐?”라고 세 번 묻고 계를 받는 사람은 “지키겠습니다.”라고 세 번 말합니다. 계를 지키지 않으면 벌금 얼마, 징역 몇 년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맹세하는 자리입니다. 이렇게 계는 스스로 자발적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발적으로 지키겠다고 해놓고 어겼을 때 부끄러운 마음이 없다면, 그런 사람이 하는 수행은 정말 하찮은 것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부끄러워하지 않는 출가수행자

세 번째 포인트는 ‘출가 수행자’입니다. 부처님은 계를 지키는 대상으로 출가수행자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바새나 우바니가 아닙니다. 출가수행자라면 계를 어겼을 때 모름지기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하고 항상 계를 지키야 합니다. 불망어 같은 경우에는 농담이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재가자들은 살다보면 거짓말을 안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숱하게 많지요. 상사가 “이 일이 잘 될 것 같아?”라고 물을 때 속마음 그대로 “이거 잘 안 될 겁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잘 될 것입니다.”라고 거짓말로 대답을 하게 되지요. 임종을 앞둔 어머니가 “형제끼리 사이좋게 지내거라.” 했을 때 설령 그러지 못할 것을 알더라도 “예 어머니. 화목하게 지내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눈 감으십시오.”라고 하얀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세속에서 사회생활을 하자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이 생깁니다. 그러나 부처님 이야기를 그대로 하자면, 머리를 깎고 세속을 떠난 출가수행자라면 농담이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조금 남은 그 물을 쏟아버리고 라훌라에게 물으셨다.

“라훌라야, 너는 조금 남은 이 물이 버려지는 것을 보았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라훌라야, 고의로 거짓말을 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의 출가수행이란 이와 같이 버려진 것에 지나지 않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그 물그릇을 뒤집어 엎고 라훌라에게 물으셨다.

“라훌라야, 너는 이 물그릇이 엎어진 것을 보았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라훌라여, 고의로 거짓말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의 출가수행이란 이와 같이 엎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발을 씻는 물이 조금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이야기 하시고, 두 번째는 그 물을 버리고 이야기하시고, 세 번째는 뒤엎어놓은 물그릇을 보고 이야기하십니다. 이어서 이야기하십니다.

거짓말과 물그릇의 비유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그 물그릇을 다시 바로세우고 라훌라에게 물으셨다.

“라훌라여, 너는 이 물그릇이 바닥이 드러나고 비어있는 것을 보았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라훌라여, 고의로 거짓말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의 출가수행이란 이와 같이 바닥나고 비어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라훌라여, 고의로 거짓말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어떤 악한 행위라도 저지르지 못할 것이 없다고 나는 말한다. 라훌라여, 그러므로 ‘나는 농담으로라도 결코 거짓말하지 않으리라’ 라고 익혀야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부처님이 라훌라에게 법을 설하신 내용입니다. 네 번에 걸쳐서 한 말씀 중에 강조점은 무엇입니까? 고의로 한 거짓말, 부끄러워하지 않음, 부끄러워하지 않는 출가수행자의 수행에 대해 경책하고 계십니다.

모르고 한 거짓말을 그럴 수 있지만 고의로, 알면서 계를 어겨서는 안 됩니다. 계를 어겼다면 자고로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무엇을 하더라도 하찮고, 바닥을 드러내고, 텅 비어있는 행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부끄러워하는 것을 나 혼자 속으로만 부끄러워하면 그것이 부끄러워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끄러워한다면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내 입으로 맹세한 계를 어겼을 때, 이것이 참으로 부끄럽다면 참회를 해야 합니다. 참회를 하지 않는다면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계와 십악참회

그래서 우리가 열 가지에 대해 참회를 합니다. 십악참회라고 하지요. 살생중죄, 투도중죄, 사음중죄, 망어중죄, 기어중죄, 양설중죄, 악구중죄, 탐애중죄, 진애중죄, 치암중죄를 오늘 내가 참회한다는 것입니다.

단지 불자라서 참회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들 중 하나라도 어겼다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구나!’라는 마음으로 참회하는 것입니다. 계를 어겨서 부끄러운 마음을 표현하고자 심악참회를 하는 것입니다.

오계를 지킨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십악에 대해 참회하는 것입니다. 왜냐? 살생하지 않겠다는 죄를 어겼기 때문에 참회하는 것입니다. 불투도하겠다는 것을 어기면 참회하고, 사음하지 않겠다는 계를 어겨서 참회합니다. 거짓으로 말하고[망어] 그럴듯하게 기만하는 말을 하고[기어] 한 입으로 두 말하는 말[양설]을 하는 것은 세 가지 모두가 네 번째 계인 불망어계를 어긴 것입니다.

오계를 지키려고 자발적으로 노력하는 이유는 내 안의 탐진치를 없애기 위함입니다. 탐애와 진애, 치암을 몰아내겠다는 마음으로 오계를 지키는 것이고, 오계를 지키지 못할 때마다 참회를 하는 것이지요.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으면 진정한 참회가 되지 않고, 진정한 참회가 되지 않으면 내 안의 삼독심이 녹아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계를 지킨다는 것은 자발적인 것이고 반드시 참회로 이어져야 합니다.

부끄러움 자체를 없애버리면…

신도분 중에 종종 이런 분이 계십니다. 관세음보살님 사진이나 조각을 집에 모시고 있다가 절에 가져오십니다. 관세음보살님이 보는 앞에서 가족들과 다투고 함부로 하기가 어렵다면서 말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이 지켜보고 계실 때만이라도 올바로 행동하고, 그것이 어렵다면 관세음보살님을 떠올리면서 참회하는 것을 좋은 일이지, 그마저도 없애버리면 부끄러움 자체가 없어져버립니다.

이런 경우는 마음으로만 부끄러워하고 행동으로는 참회하지 않는 심리와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마음이 참 선하고 착한 마음 같지만,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일부로라도 관세음보살님을 모시고, 싸울 땐 싸우더라도 이후에 참회를 하면 됩니다. 마음이 불편하니까 치워버리자, 해서는 안 됩니다. 부끄러운 마음에서 참회하는 행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계를 지킨다는 것은 불자로서의 양심을 지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경전에서 출가 수행자를 대상으로 법문을 했습니다. 부처님은 재가자를 대상으로 법문할 때 두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지계와 공덕입니다. 계를 지키고 공덕을 쌓아 선업을 지으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재가자는 공덕만 쌓으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계를 지키는 것 자체가 수행입니다. 이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출가자의 지계와 재가자의 지계

출가 수행자를 대상으로 한 이 법문에서는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언제? 24시간, 항상, 머리를 깎고 부처님 제자로 있는 동안은 철저하게 계를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가자에게는 이렇게까지 엄격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일상생활에서 격려하기 위한 거짓말, 원활한 관계를 유지위한 거짓말은 어쩔 수 없이 하게 됩니다. 현실적으로 세속에서는 24시간 계를 지키는 것이 힘듭니다. 때문에 한 달에 두 번 포살일만이라도 철저하게 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인도의 대표적인 인물인 마하트마 간디의 어머니는 자이나교였다고 합니다. 자이나교와 불교는 공통분모가 상당히 많은데요. 간디는 일주일 중 월요일을 침묵하는 날로 정하고 평생을 지켰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간디가 혼자 떠올린 것은 아니고 자이나교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재가자면서 1년 365일 수행을 할 수는 없지만 일주일 중 하루라도 제대로 수행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 재가자들도 법회가 있는 날만이라도 오계를 지키겠다고 스스로 자발적으로 맹세를 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렇게 스스로 정했을 때 이를 어겼다면 참회를 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지키기로 한 계를 어겼을 때 참회도 하지 않고 부끄러운 마음도 없다면 애초에 계를 지키겠다고 맹세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킬 수 있는 계를 받고 받은 계는 지킬 것

부처님께서 비구 스님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재가수행자에게 계를 줄 때, 본인이 다섯 가지를 다 지키겠다고 하면 다섯 가지 계를 다 주고, 오계의 일부 예를 들어 불살생만 지키겠다고 하면 불살생의 계만 주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생업이 정육점이라서 불살생의 계를 지킬 수 없다면 불살생 계를 뺀 네 개의 계를 받는 것이 맞고요. 받은 계를 매일 지키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정한 날에는 반드시 계를 지키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출가자와 재가자의 차이입니다.

오늘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첫 번째,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은 말 그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특별히 대망어라고 하면 거짓말 중에서도 아주 큰 거짓말, 깨닫지 않고도 깨달았다고 하는 거짓말을 의미합니다만, 망어라는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아는 거짓말로 이해해도 무방합니다. 어떤 것이 거짓말이고 어떤 것이 거짓말이 아닌가는 본인 스스로가 가장 잘 알 것입니다.

두 번째, 고의로 한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하며, 거짓말을 했다면 즉 계를 어겼다면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세 번째, 재가자는 세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철저하게 계를 지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듭니다. 그러니 포살일이나 법회가 있는 날만이라도 계를 지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이 세상에는 형식이라는 주는 힘도 있습니다. 내가 혼자 스스로 “나는 불자다”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정식으로 수계식에 참여해서 오계를 수지하는 것이 겉으로는 다르지 않아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 스스로 불자라고 천명할 때는 계를 실천하던지 하지 않던지를 오직 자신의 양심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큰스님들 앞에서 계를 지키겠다고 맹세하고 수계식을 한 불자라면 계를 어겼을 경우 마땅히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하며 나아가 참회를 해야 합니다.

지계의 핵심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며, 이로 인한 참회임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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