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김치다

김치와 사랑에는 닮은 점이 있다. 첫째, 김치는 주재료인 배추에 각종 양념과 복잡한 레시피가 첨가되어 복합적인 맛을 낸다. 사랑도 집착과 소유욕 등 다양한 감정과 욕망으로 양념되어 있다.
둘째, 김치는 매운 맛이고 사랑은 집착 맛이다. 김치의 매운 맛이 고춧가루의 매운 맛이 아니라 김치 고유의 매운 맛이듯, 사랑의 대표적인 맛은 업그레이드 된 집착이다.
셋째, 김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익어가듯 사랑도 시간과 공력을 들인 후에야 익어간다. 익다가 더 오랜 세월이 지나면 묵은지 같은 살아이 된다. 다른 양념 필요 없이 오직 배추 하나로 맛있는 맛을 내는.
어떻게 하면 잘 사랑할 수 있을까? 연기에 입각한 처세술로 사랑을 대해야 한다. 모든 것은 지나가며 진인사대천명이다. 스쳐가는 많은 인연들을 정심으로 대하되 그 결과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연기에 입각한 사랑이다.

#감정, 관계, 김치, 사랑, 진인사대천명, 집착

https://www.youtube.com/watch?v=MLT4Kj7Pnac&t=1s

얼마 전 한 보살님이 다녀갔습니다. 젊은 아들을 먼저 보낸 분이었습니다. 눈물 반 대화 반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사랑이 뭐길래 사람을 저렇게 힘들게 할까.’ 괜히 저도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오늘은 사랑에 대해서 법문을 해볼까 합니다. 

여러분은 ‘사랑’ 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젊은 사람들이야 남녀간의 연애라고 말하겠지만, 여기 계신 분들은 자식사랑을 먼저 떠올릴 것 같습니다. 뿐인가요? 친구간의 우정, 나라를 향한 애국심도 사랑입니다. 사랑에는 종류도 많고 대상도 다양하기 때문에 정의를 내리기가 힘듭니다. 정의를 하기보다는 비유를 드는 것이 사랑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랑에도 양념이 있다

얼마 전에 증심사에서 김장 울력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사랑을 김치에 한 번 비유해보려고 합니다. 

김치의 주재료는 배추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김치를 배추 맛으로 먹지 않습니다. 재료 본연의 맛으로 먹는 게 아니지요. 주재료는 배추인데 거기에 고춧가루, 배, 채수 등 여러 가지 양념과 복잡한 레시피가 조화를 이루어서 김치가 만들어집니다. 오히려 주재료인 배추 자체보다 부가적인 양념에 무얼 넣었는가가 더 중요해요. 주재료를 배추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무, 열무, 파 등 배추가 아닌 것들로 만드는 김치도 많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의 주재료는 사람입니다. 사람과 사람간의 소통과 공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어떤 복잡미묘한 감정.그게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사랑 안에는 질투, 분노, 소유욕, 갈망 등 온갖 감정들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주재료는 사람인데 사람만으로 사랑을 이야기할 수 없어요. 그 안에 다양한 양념과 부재료들이 들어가있다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이 사람간의 소통이라는 것을 우리는 곧잘 잊어버립니다. 소통은 주고 받는 것인데, 우리 주변에는 일방적인 사랑도 아주 많습니다. 반려동물을 향한 사랑도 분명히 있지만, 동물하고 완벽하게 소통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사람이 일방적으로 예뻐하는 감정을 전달하는 겁니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쏟는 사랑도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본연의 사랑이라기보다 일방적인 측면이 많습니다. 왜일까요? 사랑이 가지고 있는 복잡미묘한 감정들, 욕망들에 정신이 팔려서 그렇습니다. 일방적인 사랑은 사실은 병든 사랑입니다.

김치는 매운맛? 사랑은 집착맛? 

두 번째 생각할 거리는 이런 겁니다. 김치는 무슨 맛입니까? 매운 맛이라고 얼른 떠올리지만 그냥 고춧가루의 매운 맛은 아닙니다. 양념이 들어가고 배추가 숙성되면서 김치만의 독특한 매운맛을 냅니다. 김치의 대표적인 맛은 매운맛이지만 실은 그냥 매운 맛이 아니라 김치 맛이 나는 거죠. 

사랑의 대표적인 맛은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집착입니다. 만약 내가 새로운 차를 사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이것도 일종의 집착입니다. 그런데 이런 차에 대한 집착이 사랑의 감정과 똑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사랑에서 발생하는 집착은 사람간의 소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미묘한 감정과 욕망과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한 집착하고는 다릅니다. 김치의 매운 맛이 고춧가루 매운 맛하고 완전히 다른 맛인 것처럼요. 

사랑을 할 때 느끼는 감정이 많습니다. 즐거움, 행복, 설렘, 질투, 쓰라림, 미움, 외로움 등 온갖 감정이 다 있어요 . 또 사랑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고 싶은 소유욕을 느낍니다. 그 사람을 내 뜻대로 하고 싶은 지배욕이나 권력욕이 생기기도 하고요. 

사랑하다가 헤어질 때 한 명이 “나 이제 당신이 싫어졌으니 헤어져.” 라고 말하면 상대방이 뭐라고 합니까?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이 말은 네가 내 뜻대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지배욕이 표현된 말입니다. 그냥 사랑이라는 말로 다 퉁치지만, 사실은 지배욕이고 소유욕입니다. 사랑 안에 이런 욕망들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가지는 서운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때는 나를 잘 따랐던 자식이 좀 컸다고 부모는 안중에도 없으니 서운합니다. 그런 소외감이 어디에서 생겼을까요? 아이에 대한 지배욕과 소유욕에서 생겼습니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내가 돌봐주어야만 아이가 생존할 수 있습니다. 아이의 생명이 내 손 안에 있고, 내가 아이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으니 아이는 내 것이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로 착각하는 겁니다. 

김치의 매운 맛이 업그레이드된 매운 맛이듯, 사랑이 가지고 있는 집착 역시 업그레이된 집착입니다. 다만 우리는 이것을 업그레이드된 집착이라고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고 사랑이라고 에둘러 이야기하는 겁니다. 

아이를 먼저 보낸 보살님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들을 사랑해서 입니까? 엄밀히 말하면 남이 아니라 내 자식이니까 그렇습니다. 내 것인 내 자식이 나보다 먼저 가버렸으니까요. 아주 슬픈 일이지만 냉정하게 보면 이 역시 업그레이드된 집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랑은 친밀감으로 익어간다

세 번째. 김치가 제대로 김치맛을 내려면 익어야 합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첫눈에 반한 것은 사랑이라기보다 호기심입니다. 성욕이고요.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예를 들어 아이를 낳자마자 입양을 보내고 3년 뒤에 다시 만났다면, 30년 동안 내 손으로 키운 자식에게 느끼는 감정하고 같지는 않을 겁니다.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공력이 들어가야 해요. 시간을 들여 친밀감이 형성되어야 해요. 친밀감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누군가가 내가 생각하는 나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낍니다. 지하철을 탈 때 모르는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심리적인 거부감이 있는 거예요. 친밀감은 문화마다 다르기도 한데요. 북유럽 같은 경우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줄을 서더라도 한 사람당 3미터의 공간을 띄고 섭니다. 개인주의가 심한 문화이기 때문에 타인과 그 정도는 떨어져 있어야 편안함을 느끼는 거죠.

친밀감은 나의 사적인 영연 안에 들어와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감정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스킨십을 하려고 합니다. 가까이 있으려고 해요. 특히 내 자식이다 그러면 계속 품에 안고 싶지 않습니까. 

이것을 달리 말하면 내 사적인 공간에 들어오는 것들은 다 내 것이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생긴다는 겁니다. A라는 사람이 내 주변1미터안에 들어와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내 마음 속에 이 사람에 대한 소유욕이 생깁니다. 사랑이란 필연적으로 소유욕을 동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친밀감 없이는 사랑을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묵은지 같은 사랑 

김치의 재료와 맛과 시간처럼 사랑에도 이 세 가지 요소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엔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김치 중에서 좀 특별한 김치가 있습니다. 김치라고 말하지 않고 묵은지라고 특별히 지칭하지요. 

그런데 묵은지를 먹을 때는 양념을 다 씻어버리고 먹습니다. 양념도 없이 배추만 남은 것인데 그냥 배추는 아닙니다. 묵은지는 원래는 김치였지만 지금은 김치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 무엇입니다. 배추라는 본연의 재료가 어마어마하게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양념이나 다른 재료가 필요없진 겁니다. 

사랑에도 묵은지 같은 게 있습니다. 사랑이 깊어지면 필연적으로 발생했던 여러가지 감정과 욕망들이 다 털어지고 오직 그 사람만 남습니다. 그 사람 자체가 조건 없이 그냥 좋은 거예요. 이런 사랑은 주변에서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업그레이드된 집착을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할까요? 연애 잘 하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 아마 모든 부모님들의 평생 숙제일 겁니다. 부모로써 자식을 대할 때, 손자를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국은 지난 시간에 이야기 했던 연기법에 입각한 처세로 연결됩니다. 

연기에 입각한 처세술과 사랑

첫 번째. 세상 모든 일은 다 지나갑니다. 사랑도 미움도 슬픔도 행복도 불행도 기쁨도 지나간다. 왜냐? 모든 것이 무상하기 때문입니다. 무상하다는 것은 항상하지 않다는 거예요.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다 지나가요. 

죽고 못 사는 사람도 지나고 나면 딴방에서 자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입니다. 아들을 앞세운 부모도 지금이야 눈물이 뚝뚝 떨어지지만 5년10년 뒤에도 지금과 같이 감정이 북받칠까 생각하면 그렇지 않을 겁니다. 물론 마음 한구석이 아프겠지만 지금 같진 않을 거예요. 다 지나갑니다. 이걸 우리가 항상 마음속에 명심하고 살아야 합니다.

두 번째. 진인사 대천명이라,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해야 합니다. 세상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할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 합니다. 이것 역시도 나의 운명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나 결과는 하늘의 뜻을 기다립니다. ‘내가 열심히 했으니까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와야 된다.’ ‘내가 자식들을 이렇게 아끼고 사랑하니까 자식들도 나에게 효도를 해야 한다.’ 이런 생각은 대천명 하는 자세가아닙니다.

열심히 하되 결과는 하늘의 뜻에 맡겨야 합니다. 사람 일에는 내가 알 수 있는 것과 내가 미처 모르는 엄청나게 많은 인연들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건 슈퍼컴퓨터로도 다 분석을 못합니다. 따로 하늘이 있어서 점수를 주는 게 아니라요. 많은 인연들이 오고 가고 스쳐가기에 그 결과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대천명의 자세입니다.

사랑을 대할 때도 자식을 대할 때도 첫 번째, 모든 것은 다 지나가며 두 번째, 진인사대천명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연기법에 입각한 처세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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