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사는 법

사람들은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공동체가, 행복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행복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
긍정심리학자 마틴 샐리그만은 행복의 세 가지 요소로 즐거움, 몰입, 의미를 제시했다.
이 세 가지는 행복의 조건이라기보다는 현상에 가깝다. 즐거움은 유지되거나 증가하지 않고 갈수록 감소하고, 몰입은 유지하기 어렵다. 삶의 의미 역시 부여하기 어렵고 또는 너무 주관적이어서 늘 변동하게 된다.
행복은 삶의 목표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부수적인 감정에 불과하다. 반드시 행복해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한 ‘이것이 행복’이라는 목표를 설정하지 말고, 최소한의 부정적인 상태가 아닌 모든 것을 행복으로 설정해놓아야 보다 자주, 보다 쉽게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감정, 괴로움, 알아차림, 행복, 희망

https://www.youtube.com/watch?v=DIFy25FgWRs&t=12s

긍정심리학: 행복에 대하여

여러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먼저 행복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해야 하고요. 그 다음은 행복에 집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만 명심하면 어느정도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누가 저한테 이런 물음을 던졌습니다. 스님은 사는 게 딱히 재미있어 보이지도 않고 제약도 많은데 행복하냐고 말입니다. 이 질문의 이면에는 ‘머리 안 깎고 밖에서 사는 나도 고달프고 재미가 없는데 스님들의 삶은 얼마나 더 재미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담겨있었을 겁니다. 제가 답하기를, 그럭저럭 행복하게 사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 삶에 행복이란 키워드가 참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그런데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곰곰하게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행복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심리학 분야 중에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라는 분야가 있다고 합니다. 기존 심리학이 심리, 정신적으로 힘들고 병든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분석하지 않습니까? 반대로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분야가 긍정심리학입니다. 긍정심리학을 대표하는 학자가 마틴 샐리그만이라는 사람인데요. 이 사람이 말하기를 행복은 세 가지 요소가 갖춰져야 한다고 했답니다. 첫 번째는 즐거움, 두 번째는 몰입, 세 번째는 의미입니다. 

행복의 요소: 즐거움, 몰입

먼저 즐거움을 볼까요? 행복하다는 말은 쉽게 말하면 기분이 좋은 겁니다. 즐겁고요.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져 행복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분위기도 사람을 즐겁게 합니다. 또 좋은 집으로 이사하면 기분이 좋죠. 그게 행복입니다. 행복은추상적이고 거창한 개념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서 행복한데 계속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볶음밥을 좋아하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볶음밥만 먹으면  나중에는 지겨워지고 싫어집니다. 이런 현상을 경제학 용어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행복의 첫 번째 요소인 즐거움은 유지가 되지 않습니다. 즐거우면 즐거울수록 즐거움이 더 줄어드는 문제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즐거움이라는 감정은 일종의 보상심리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배가 고픈데 뭘 먹을 생각을 하지 않으면 굶어죽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특하게도 나 자신을 굶기지 않고 배고프다는 신호가 왔을 때 뭔가 먹을 것을 챙겨주었으니 그에 따른 보상을 주어야지요. 그래서 배고플 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은 거예요. 모든 욕망에는 보상이 따르는데 중요한 것은 보상이 점점 줄어든다는 문제입니다.

두 번째는 행복의 요소는 몰입입니다. 몰입은 무언가에 빠지는 겁니다. 예를 들어 난을 키우는 데에 재미를 붙였다고 하면 하루종일 난을 가꾸어도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이게 몰입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루 24시간을 계속 몰입할 수가 없습니다. 몰입하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를 요하기에 꾸준히 계속 유지할 수 없습니다. 

행복의 요소: 의미  

행복의 세 번째 요소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어떤 생각을 합니까? 삶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내가 왜 사는가?’, ‘내가 이 일을 왜 하는가?’, ‘내 직업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내가 존재하는 이유, 나의 의미 같은 것들이 우리에게 행복감을 부여합니다. 내 직장과 내 일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고 도움을 주는지 스스로에게 의미 부여를 할 수 없는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이 재미가 없습니다. 즐겁지도 않고요. 억지로 합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있습니다. 의미 부여라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태어날 때 이유가 있어서 태어난게 아니거든요. 내가 뭘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닙니다. 태어나서 살다보니까 나라는 사람을 스스로 자각하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의미있을것 같아 일을 하지요. 태어나는 것에 이유가 없듯 죽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떻게 죽을지 선택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데에는 이유가 없는데, 그냥 사는데, 그냥 살자니 마음이 항상 불안합니다. 지금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내일도 모레도 한달 뒤, 일년 뒤에도 잘 살 수 있을까? 불안합니다. 지나간 과거는 후회되고, 지금은 만족스럽지 않고, 미래는 불안합니다. 그냥 살면 이런 맘을 가지게 됩니다. 

그냥 사는 삶이란 것은 비유하자면 동서남북을 모르고 사막 한가운데 있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느 쪽으로 가야하는지 전혀 모릅니다. 당연히 ‘이 길로 가면 먹을 게 나올까? 오아시스가 나올까? 사람 사는 동네가 나올까?’ 불안합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왜 이렇게 가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는 것이 쉽지 않고 또 주관적입니다. 어떤 때는 내가 하고있는 일에 만족도 하고 의미 부여도 하는데, 어떤 때는 스스로 부정하기도 하고 불만족스럽기도 합니다. 

위의 세 가지를 요소를 종합해보자면 행복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행복하더라도 잠깐 행복하고 많은 시간은 행복하지 않거나,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삶을 살게 됩니다. 

행복은 목표가 아닌 부수적인 감정 

즐거움은 신체에서 일어나는 감각입니다. 믿고 신뢰할만한 게 못 됩니다.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감각은 한순간입니다. 몰입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문득 ‘이게 행복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미 몰입이 깨진 겁니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자각한다는 말은 모순입니다. 몰입도 행복도 현재형, 미래형이 아닌 과거형입니다.

긍정심리학자 샐리만의 말을 빌리면 우리 인생에서 행복한 시간은 별로 없습니다. 의미있는 일에 몰입하면서 거기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이게 행복인데, 매일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노력을 합니다. 행복하기 위해서요. 더 큰 집, 더 좋은 사람, 더 좋은 직장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면 강할수록 지금 내가 행복한가 스스로 의심하게 되고, 이 정도 가지고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에 빠져들게 됩니다. 지금 이 상태가 만족스럽지 못하니까 더 행복하고 싶고, 더 행복하고 싶으니까 더 가지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악순환입니다. ‘이것이 행복이야.’ 라고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불행에 빠집니다.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은 다 행복이 아니니까요. 

오늘 아침 뉴스에, 수영장에서 아이들과 노는 사람들과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출연자는 “날씨가 너무 덥고 습한데 아이들하고 즐겁게 노니까 정말 행복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행복의 세 가지 요건이 모두 맞아 떨어지니까 행복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내 삶의 최우선 가치는 가족이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의미 부여가 됩니다. 물놀이를 하면 노는 데에 몰입하게 되고요. 그러니까 즐겁습니다. 행복이라는 게 별 거 없고요. 이 분은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행복이 ‘가족과 함께 물놀이에 몰입하며 즐겁게 노는 것’이라면, 그렇게 정해버리면요. 하루 중 행복한 순간은 그 물놀이 할 때 밖에 없습니다. 물놀이를 잠깐 하고 나서 아이들이 배고프고 덥고 피곤하다고 징징거리면 행복은 도망가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긍정심리학에서 말하는 행복의 세 가지 요소는 필수 조건이라기 보다는 결과에 가깝습니다. 이런것을 가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낄 때 이런 상태에 있더라는 것이죠.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요. 내가 살아가는데 부수적으로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일뿐, 행복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는 겁니다. 행복이 목표가 되는 순간 지금의 행복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행복을 찾게 됩니다. 즉 행복은 목표가 아니고 살아가면서 따라오는 부수적인 현상이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행복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것이지요. 

행복 강박에서 벗어나는 길 

 행복은 무엇일까요? 스님은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기에 그럭저럭 행복하다고 답했을까요? 제 생각에는요. 나 스스로가 괴로움 속에 있지 않을 때가 행복한 겁니다. 

괴로움은 번뇌입니다. 무명으로 인해서 고통스러운 상태입니다. 슬프거나 불안하거나 우울하거나 화가 나거나 짜증나거나 무기력한, 부정적인 감정에 있지 않을 때 행복한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행복을 좀 더 넓은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야 행복을 목표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행복이다’라고 하면 나도 모르게 행복이 목표가 됩니다. 과제가 되는 것이죠. 과제를 달성하려고 노력했는데 충족이 안 되면 불행해지지요. 그럼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불행하게 보내는 것이에요. 반대로 부정적인 감정이 아닌 상태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면 행복자체가 삶의 목표가 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할까요? 목표의 역할은 내가 어딘가를 향해 가는 동안 불안해하지 않고 갈등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행동에 신뢰와 믿음을 주는 것이 목표의 역할입니다. 이룰 수 없는 목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실행 가능하고 측정가능한 구체적인 목표가 목표로써의 의미를 가집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있습니다. 남들과 비교해서 내가 좀 더 행복하지 못하면 괴롭습니다.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까? 라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고, 서로에게 행복을 강요하는 사회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행복을 강요당해서야 되겠습니까? 행복해야 한다는 심적인 부담감을 털어내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도 항상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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