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의 의미

고타마 싯다르타는 전륜성왕의 길을 포기하고 수행자가 되기 위해 출가를 한다. 싯다르타가 출가를 하고자 할 때 숱한 반대에 맞딱뜨렸다. 부모와 아내, 막 태어난 자식까지 ‘궁극적인 행복’을 얻고자 수행하고 싶은 싯다르타에게는 장애에 다름 아니었다.
이러한 장애를 뛰어넘은 싯다르타는 출가 후 맹렬한 수행을 통해 6년만에 열반을 증득한다. 장애를 뛰어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오직 수행에 일로매진함으로써 어려움을 극복했다.
우리가 싯다르타의 출가라는 역사적인 사건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힘들다고 생각하는 순간, 인생의 역경, 고난 같은 것들이 실제 객관적으로 힘든 상황인 것인지 단지 내 마음이 힘들다고 말할 뿐인지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럴 수 있으려면 자기의 마음을 잘 관찰해야 한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괴로움이라는 내가 만들어낸 허상에 속아넘어가지 않고 그 실체를 바로 보는 것을 체득해야 한다.

#나는누구인가, 마음, 수행, 알아차림, 출가

부처님의 출가

지지난주 BTN불교TV에서 출가재일을 앞두고 ‘출가’에 대해 10분 정도 간략하게 이야기해달라는 섭외전화를 받았습니다. 서울까지 갈 수 없으니 증심사에서 영상을 촬영하여 송고했는데요. 하필 제사를 앞두고 있어 마음이 바빠 차분하게 이야기하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오늘 관음재일 법회에서는 그 이야기를 다듬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카필라국의 고타마 싯다르타는 왕자의 지위르 버리고 출가하여 6년간 고행한 끝에 궁극의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었다.’

이 정도 이야기는 불자가 아니더라도 종교에 대한 상식으로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부처님은 전륜성왕의 길을 버리고 출가를 했다.’는 문장이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는데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부처님이 출가를 했다’는 말은 모순입니다. ‘부처님’이란 무엇입니까? 특정한 한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고 깨달은 사람은 다 부처입니다. 우리도 깨달으면 부처가 됩니다. 

그러니 ‘부처님’이 출가를 했다는 것은 말이 안 맞죠. 엄밀하게 말하면 출가를 한 사람은 ‘싯다르타 태자’라고 하는 우리와 꼭 같은 하나의 인간이출가한 것입니다. 이미 출가한 분이 왜 또 출가를 합니까? 그러니 출가는 부처님이 한 것이 아니라 싯다르타 태자가 한 것이라 해야겠습니다. 

또한 ‘부처님이 출가를 했다’는 문장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나머지 왜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를 했는지, 왜 그런 결심을 했는지, 당시의 싯다르타태자가 어떤 고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도대체 왜 출가를 했을까? 그것도 보장된 왕위까지 버리고 말입니다. 이러한 의문을 가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싯다르타의 출가

앞서 정정했다시피 정확한 표현은 ‘부처님의 출가’가 아니라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라는 것을 정리해두면서, 역사적인 하나의 사건으로써의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스님들에게 물어보는 질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런 것입니다. “스님은 왜 출가를 하셨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저는왜 그게 궁금한지가 궁금합니다. 제 입장에서는 오히려 ‘어떻게 20년이 넘도록 환속하지 않고 지금까지 출가생활을 잘 하고 있을까?’가 궁금한데요. 그런 질문은 하지 않고, 마치 누군가 나눠준 질문지를 보고 질문을 하는 것처럼 참가자들은 스님이 왜 출가를 했는지를 궁금해합니다. 

정작 불교라고 하는 인류사의 중요한 정신적인 유산을 남긴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 이유는 궁금해하지 않고, 저 같이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스님들의 출가 동기는 참으로 궁금해하니 저는 그것이 궁금한 것입니다. 

오늘은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한 인간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봅시다. 이미 깨달은 부처가 아니고 우리와 같은 중생으로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어떤 생각으로 출가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들 라훌라를 ‘장애’라 한 이유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언급이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로 자식이 태어난 일을 꼽습니다. 싯다르타는 태어난 아들에게 ‘라훌라’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우리 말로 하면 ‘장애’라는 뜻입니다. 왕자가 후사를 봤다는 것은 장차 왕이 될 왕손이 태어났다는 것인데 그 이름을 장애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출가를 합니다.

왕세자에게 장애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은 왕자가 왕세자를 장애라고 인식했다는 뜻입니다. 어떤 장애일까요? 수행을 해서 궁극의 깨달음, 영원한 행복을 얻는 데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게 내 일이라고 생각해봅시다. 내가 태자이고 후사를 이를 왕세자가 태어났으면 왕자인 나에게 주변에서 기대하는 바가 당연히 클 것입니다. 일국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길 것이고, 결혼을 해서 이룬 가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을 것이고, 온 나라의 백성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었을 겁니다. 

태자에게 주어지는 기대가 태자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난관에 봉착한 것이었을 겁니다. 백생들은 내가 나라를 이어 받아 통치하기를 바라고 있고, 자식은 태어나고.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하다못해 보통 사람인 우리들에게도 주위의 기대감은 주어집니다.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고자 하면 부모를 비롯해 주위 사람들이 이런저런 조언을 합니다. 불안한 세상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공무원이 되어야 한다,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 3년은 뒷받침을 해주겠다, 하는 둥 여러기대가 있고 그런 기대들을 무시하기는 힘들죠. 

마음이 ‘수행’에 있었기에 ‘장애’를 뛰어넘다

그런데 태자는 수행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차있다보니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자식의 이름을 라훌라라고지은 것입니다. 안 그랬으면 자식 이름을 장애라고 지었을 리가 없지요. 

인생을 살다보면 힘든 시기가 있습니다. 어렵고 난관에 부딪치고 시련이 닥쳐오는 시기가 누구에게나 도래합니다. 그런 상황을 어떻게 하면 잘, 슬기롭게,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는가? 이것을 우리는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를 보며 배워야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사업을 시작하면 성공할지 못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시기가 오는데요. 이 사람들은 그 시기에 힘든지 안 힘든지 생각할 겨를 없이 그저 열심히 일했다고 합니다. 성공한 뒤에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시기가 정말 힘든 시기였다고 회고하지요. 

스스로 ‘진짜 힘들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 상황을 헤쳐 나가기가 힘듭니다. 아주 사소한 순간을 계기로 내가 힘들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예를 들어 장사가 안 되는데 가게 문은 열어야 하니 출근을 했습니다. 그런데 손님은 없고 창문으로 들이치는 햇살 가운데 먼지만 둥둥 떠다닙니다. 갚아야 하는 대출금 생각, 없는 손님 생각,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들면서 ‘아, 정말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나에게 닥치는 객관적인 상황을 보면 정말 힘듭니다. 

진짜 힘든 시기에는 힘들다는 생각 없이 그저 열심히, 아무 생각 없이 일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샌가 그 상황이 지나가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 거진 이런 맥락입니다. 

마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차 왕이 될 자식의 이름을 장애라고 지은 것처럼 말입니다. 싯다르타에게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입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일국의 왕자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보다 수행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던 것이지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출가를 한 것이고, 그렇게 수행했기 때문에 6년만에 깨달아 부처가 됐습니다. 

그래도 보통 사람들은 ‘내가 지금 힘들구나. 그래도 열심히 해야지.’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신력이 약한 사람들은 그 상황을 부정하고 자기만의 세계로 도피합니다. 가게가 망하고 있는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런 현실인식의 왜곡이 강해지면 정신이 분열됩니다. 

싯다르타의 출가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부처님의 출가에서 배울 점은 무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힘든 상황을 힘들다고 생각할 시간이 있으면 오히려그 시간에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자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힘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힘든 것을 어떻게 힘들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결국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겁니다. 내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그런 내 자신의 마음을 잘 관찰하고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어떤 계기로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실제로 객관적인 상황이 힘든 것인지 단지 내 마음이 힘들다고 하는 것인지. 내 밖의 상황을 볼 것이 아니라 내 마음상태를 잘 알아야 합니다. 

‘힘들다’, ‘어렵다’, ‘난항을 겪고 있다’ 이런 말은 그 말 자체가 주관적인 것입니다. 객관적이 상황이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장사를 하는데 하루에 1만 원을 벌었기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닙니다. 돈이 말을 할 수 있습니까? 1만 원이 나에게 이것이 힘든 상황이라고 말하나요? 아닙니다. 돈 1만 원을 두고 내가 스스로에게 힘들다고 말하는 겁니다.

 힘든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내가 왜 힘들어하는지, 어떤 계기가 나에게 작용해서 힘들다는 감정이 자라나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걸 모르면 그 힘든 감정을 핀셋으로 뽑아내듯 없앨 수가 없습니다. 그걸 알아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결론이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회귀하는 이유입니다. 

자기 마음을 잘 관찰하십시오.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아십시오. 출가에 대한 이야기로 지극히 불교적인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부처님에 대한존경을 표현할 수도 있지만 오늘은 출가를 가지고 이런 관점으로 짧게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싯다르타 태자가 ‘수행하고 싶다’는 것에 온 마음을 다해 왕위나 가족이나 자식과 같은 장애를 뛰어넘었듯이, 여러분도 여러분의 장애를 면밀하게 살피고 진정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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