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절따라 일본 답사기

2023년 3월 다녀온 길따라절따라 일본 답사기. 길따라절따라 일본 교토 탐방을 통해 11개 사찰을 돌아보며 일본불교와 우리불교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라 지역의 사찰들은 삼국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도래인들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백제, 신라시대 사찰 양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 불교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밀교적 측면이 두드러지는데, 우리나라와는 달리 밀교에 등장하는 여러 불보살이나 화려한 장식들이 불상 배치에 드러나고 있다.
선종의 경우, 초기에는 참선을 하고 대중생활을 하는 전통이 유지되었지만 이후 사무라이 정신과 맞아 떨어지면서 기교적인 방식만 활성화되었고, 이는 다시 일본의 토속신앙인 신도와 결합하는 형태를 보인다.
불교의 한 부분만을 떼어 파편화하고 도구화하다 보면 불교의 중심인 ‘계정혜 삼학’과는 무관한 것이 되고 만다. 우리들의 신행이 어떠해야 할지, 현재 일본 불교의 모습을 보며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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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 사찰 참배 

얼마 전 일본 오사카, 교토 등지로 길따라절따라 일본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3박4일간 11개 사찰을 참배했는데요. 다녀온 절들을 간단하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우리나라에 비견하면 삼국시대에 만들어져서 통일신라 시대 즈음의 양식이 그대로 남아있는 절인 나라의 법륭사(호류지), 흥복사(고후쿠지), 교토에 있는 광륭사를 참배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불국사처럼 유서 깊은 절들이지요. 

그 다음은 평등원이라는 절에 다녀왔습니다. 평등원은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절인데요. 서기 1,100년 정도에 일본에서는 부처님 열반 후 1,500년 정도 되었으니 ‘말법시대’라고 하여 정토사상이 유행했습니다. 정토사상을 구현해놓은 대표적인 사찰의 평등원입니다. 비슷한 시대인 헤이안 시대 말기에 지어진 33간당, 그리고 가마쿠라-무로마치 시대라고 하여 우리나라 고려 후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만들어진 동복사, 은각사도 다녀왔습니다. 고려시대 우리나라가 무신정권 시대였듯 일본의 가마쿠라 시대는 사무라이의 시대였습니다. 동복사는 사무라이 시대에 두각을 드러낸 초기 선종사찰을 대표하는 사찰입니다. 

서본원사(니시혼간지)라는 절에도 다녀왔습니다. 일본에서 현재 가장 큰 종파인 정토진종의 대본산입니다. 꼭 들어맞는 비유는 아닙니다만, 교토 시대에 있는 가장 큰 종파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조계사를 떠올리게 하는 절입니다. 그 유명한 교토 청수사도 들렀고요. 외곽으로 좀 빠져나가서 선종사찰이자 임제종 본산인 천룡사에도 다녀왔습니다. 

일본은 흔히 종파불교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번 답사에서는 일본의 대표적인 종파들의 절을 다 다녀왔습니다. 진언종이라고 하는 밀교 사원은 시간, 거리적 이유로 다녀오지 못했지만 시대를 대표하는 사찰들은 두루두루 살펴본 셈입니다. 3박4일간 돌아보기에는 빡빡한 일정이었습니다. 우리 팀을 인솔한 가이드도 “가이드 생활을 오래 했지만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절만 다니는 경우는 처음 봤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단지 관광을 간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마음으로 다녀왔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일본에 남아있는 삼국시대 불교 

일본 불교를 실제 답사하면서 느낀 점이 여러 가지 있었습니다. 먼저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사찰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지어진 일본 절들이 그냥 우리나라 절 같습니다. 익산 미륵사지가 불타지 않았다면 이런 모습이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특히 법륭사에 가면 아주 유명한 불상이 있는데요. 구다라관음상, 즉 백제관음상입니다. 백제와 깊은 연관이 있는 관음상입니다. 

일본 아스카 시대, 나라 시대에 지어진 사찰들은 우리나라 사찰과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사찰들은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단청을 화려하게 했습니다만,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본의 사원은 빨간색으로 단청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일본식이 아니라 백제, 신라시대의 단청 방식이라고 합니다. 

7~8세기까지는 우리나라 불교와 일본 불교가 그다지 다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백제인, 신라인, 어떤 경우에는 고구려의 스님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사찰을 짓고 불상을 조성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인들이 말하는 ‘도래인’이란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불법을 전파했습니다. 

우리가 백제 불교를 알고 싶다면 당시 지어진 일본 사찰을 보면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 일본에는 아직까지 남아있습니다. 지금 익산 미륵사지에 가면 어마어마하게 넓은 잔디밭밖에는 볼 것이 없습니다. 역사는 어디까지나 승자에 의해 기록되기에 패전한 국가인 백제의 모습은 거의 사라져버렸습니다. 우리 땅에 더이상 없는 백제의 불교와 문화가 일본에 가면 아직도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일본 불교의 밀교적 특징

둘째. 일본의 밀교 문화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고려시대가 삼국시대에 존재했던 여러 종파, 즉 화엄종, 삼론종, 법상종, 율종 등의 종파가 하나로 통합됩니다. 누구에 의해서입니까? 원효스님의 화쟁사상으로 통불교가 됩니다. 삼국시대에 나눠졌던 5교9산, 고려시대의 선교양종,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화엄사상에 기초한 간화선 등이 하나로 회통되었습니다. 

반면 일본불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고려시대쯤 되면 일본에서는 천태종과 진언종(밀교)이 대거 유입되고 퍼지기 시작합니다. 실제 일본 절에 가서 보면 부처님 주변에 여러 인물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사천왕상이 산문에 있는데, 일본에 가면 법당 안에 있는 부처님 옆에 사천왕이 있습니다. 사방으로 배치되어 부처님을 호위하고 있는 형식입니다. 

금강역사 같은 분들도 절 앞에 있기도 하지만 주로 부처님 주변을 호위하고 있고요. 명왕이라고 하여 밀교에서 파생된 신과 같은 존재들이 부처님 주변에 포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교토 33간당에 가면 금강역사, 팔부신중, 부동명왕, 사천왕 같은 분들이 역동적으로 표현되어 참배객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밀교가 거의 힘을 못 썼는데, 이상하게 일본에 가서 보면 지금도 밀교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거 남아 있습니다.

기교적으로 변화한 선종 

셋째. 선종 사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초기 선종 사찰이었던 동복사 같은 경우에는 우니라라 해인사나 통도사차럼 수백 명의 스님들이 모여 참선을 하고 대중생활을 했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뒤로 넘어갈수록 절이 절인 것 같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교토의 금각사, 은각사, 고태사, 용안사 같은 절들은 관광지로도 유명한데요. 기하학적인 배치로 돌들을 쌓아 놓고 온 마당에 이끼를 깔아 놓은 것을 보면 절이라기보다는 ‘정원이 멋있더라’라는 기억만 남습니다. 우리로 치면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무로마치 시대, 에도시대에 만들어졌던 이들 선종 사찰은 도대체가 절인지 고관대작의 별장인지 구분이 안 갑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요? 일본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선종, 간화선에서 이야기하는 ‘백척간두진일보’라는 정신이 당시 사무라이 정신과 연결되는 측면이 있었는가 봅니다. 용맹정진하는 수좌들의 자세가 생사를 걸고 싸우는 무사들의 모습과 겹쳐 보였기 때문일까요? 무사들이 선종을 옹호하고 비호하면서 받아들였습니다. 밀교 같은 경우에는 복잡한 절차와 화려한 장식, 다양한 보살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당시의 귀족적인 정서와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무사들이 선종을 비호하면서 간화선의 정신은 사라지고 기교적인 부분, 테크닉적인 부분만 활성화되었습니다. 다도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차를 마시는 것에서도 격식을 중시하게 되었지요. 선종에서는 좌선을 해야 하는데, 기교적인 부분만 강조되다 보니 정원을 멋있게 만들어서 보고 관하는 것도 ‘도’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일본에서는 왜 선종이 기교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을까? 하는 궁금증을 화두처럼 들고 있었던 답사길이었습니다. 

일본 불교는 밀교적인 측면이 두드러집니다. 서본원사라는 절에도 다녀왔습니다만,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있으면서 신도들의 출입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 일행이 방문한 날에도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50여 명이 법당에서 ‘아미타 부처님은 어떤 분일까요?’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에는 주지스님과 아이들, 학부모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것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주지스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상당히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쓴, 스님보다는 대형 교회 목사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신행은 어떠해야 하는가? 

왜 일본 불교는 우리와 정서와 내용 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일까? 하는 생각을 답사를 하는 내내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사실 일본인들의 주된 종교는 신도(神道)입니다. 강력하게 뿌리 내리고 있는 토착 신앙이지요. 이들은 불교에서 선종, 혹은 밀교라고 하는 자기네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떼어 신도라는 기본적인 틀 속에 끼워 넣어 재구성한 듯합니다. 

이것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회에서도 명상이나 힐링 같은 것들이 크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사업화, 도구화되어 일반인들에게도 상당 부분 노출되고 있지요. 특히 서구 사회에서는 불교의 수행 기술만 따로 떼어서 상품화시킵니다. 이것이 명상이지요. 내가 필요한 부분만 선별하여 이용하는 것은 올바로 불교를 접하는 자세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불교는 계정혜 삼학이 세트로 움직여야 합니다. 계를 지키고 선정 수행을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가 되어 같이 움직여야만 진정한 불교입니다. 부처님은 팔정도를 강조했지 좌선만 하라거나 기도만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내 구미에 맞는 일부분만 떼어내서 신행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불교를 파편화하고 도구화하다 보면 현재의 일본 불교 같은 모습으로 변해가게 될 지도 모릅니다. 일본 불교를 반면교사 삼아 계정혜 삼학을 항상 균형 있게 닦을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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