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기 같은 외로움 (feat. 법정스님)

외로움과 고독은 우리의 오랜 친구와 같다. 외로움은 나의 소유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의 손아귀를 벗어났을 때 느끼는 상실감이자 빈자리이다. 소속감의 부재에서 오는 고독감이다.
법정스님은 “시장기 같은 외로움을 느껴야 하며, 이를 통해 자기 정화를 할 수 있다”고 썼다. 외로움은 눈에도 귀에도 입에도 코에도 있다. 이러한 외로움을 벗어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리하여 그 감정의 원천이 소유욕과 갈애라는 것을 깨닿고, 이것을 털어내는 연습일 해야만 진정한 홀로 있음, 고독을 누릴 수 있다.

#갈애, 공동체, 법정스님, 외로움, 탐욕

https://www.youtube.com/watch?v=PAba6YPjE5s&t=4s

외로움이란

외로움과 고독이란 게 참 우리 인생의 가장 절친한 친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이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얼마 전 템플스테이 차담 시간에 한 분이 질문했습니다. “그동안 받은 질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이 무엇이냐?”고요. 언젠가 템플스테이에 혼자 오신 60대 보살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외롭다. 남편은 평생 바람 피우고 밖으로만 나다니는데 나는 지금까지 고생하면서 살았다. 교회에 가봐도 성다엥 다녀도 그 외로움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절에 와서 스님에게 나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속 시원한 대답을 듣고 싶다.’고요.

그 다음 날은 젊은 친구가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독립을 해서 혼자 나와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외로운데 이런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당시 뉴스에서는 중년 여성이 백화점에서 난동을 부리고 편의점에서 중년 아저씨가 난동을 부리는 등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런 뉴스들과 사람들이 호소하는 ‘외롭다’는 감정과 연관이 되어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부처님은 외로움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을지 오늘은 그 내용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내 소유가 아니라는 빈자리 

우선은 외롭다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요즘 20대, 30대 젊은 친구들은 외로움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궁상맞아 보이는 것 같아서 외롭다는 티를 내지 않지요.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 외로운 감정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감정이기 때문에 부끄러워하거나 숨길 필요는 없없습니다. 외로우면 외로운 대로 사는 거죠. 

세상 모든 사람들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눈다면 내 사람과 내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도저도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외롭다는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내 사람은 한 명도 없구나’라고 하는 상실감입니다. 그 상실감에서 비롯되는 감정이 외로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외로움을 느끼는 대표적인 상황이 어떤 겁니까? 남녀간에 연애를 하다 헤어지면 어느 한쪽은 못 잊어 슬퍼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힘들고 외로움과 그리움에 사무치죠. 왜냐? 연애를 하는 동안에는 상대방이 내 것이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나에게 등을 돌려도 그 사람만은 내가 하는 말을 다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사람. 그게 내 사람이죠. 그런 사람이 없어졌으니 그 텅 빈 자리가 주는 상실감과 허전함, 거기에서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일어나는 겁니다. 나의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군대에 갔다면 그 빈자리가 얼마나 휑합니까. 그때 느끼는 감정또한 외로움입니다. 

내 사람이 있다가 없을 때 생기는 상실감이란 결국 소유욕을 의미합니다. 사랑의 바탕에는 소유욕이 있습니다. 그러니 다시 정리해 보자면 외로움이란 내가 생각하는 소유물에 대한 욕망이 채워지지 못했을 때 생기는 감정입니다. 

소속감 부재에서 오는 고독감 

소유욕으로만 외로움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젊은 친구들이 독립해서 혼자 사는 경우에 느끼는 외로움은 소유욕과는 결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친구들이 외로움을 느끼는 원인은 첫 번째, 그동안 가족이라는 무리 속에서 살다가 혼자 떨어져 나와서 생기는 감정입니다. 두 번째, 혼자 힘으로 모든 일상을 헤쳐나가기가 두렵고 버겁고 확신이 없는 경우에 외로움을 느낍니다. 젊은 친구들은 사회에서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불안합니다. 그래서 나이 먹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외로움을 느낍니다. 어쨌든 사람이라면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합니다. 

과거 우리 사회를 보면, 태어난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먹고 살다가 죽었습니다. 평생만나는 사람이 거기에서 거기였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가족 외에도 끈끈한 유대감으로 연결된 마을 사람들이 있지요. 마을공동체 속에 있으면 크게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공동체랄 게 없습니다. 가구의 형태 중 1인 가구가 가장 많습니다. 예전처럼 문 밖에 나가도 아는 사람이 있는게 아니에요.  모두 낯선 사람들이고 집에 오면 나 혼자입니다. 현대 사회의 특징이지요. 이런 경우에는 소속감의 부재에서 기인한 고독감을 느낍니다. 이것도 외로움의 일종입니다. 

시장기 같은 외로움 

지금까지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했고요. 이제부터는 수행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외로움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법정스님의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때로는 옆구리를 스쳐가는 외로움 같은 것을 통해서 자기 정화, 자기 삶을 맑힐 수 있다. 따라서 가끔은 시장기 같은 외로움을 느껴야 한다.”

법정스님의 이 문장이 외로움의 본질 혹은 핵심을 정확하게 지적한 말인 것 같습니다. ‘시장기 같은 외로움’이라는 것. 시장기라는 건 무엇입니까? 배가 고프다는 겁니다. 배를 채워야 하는데 채울 수 없을 떄 느끼는 게 시장기입니다. 배고픈 데만 적용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눈이 고픈 경우도 있습니다. 뭔가 재밌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은데 그런 게 없을 때 심심함과 따분함을 느낍니다. 귀가 고픈것도 있죠. 라디오나 음악 앱을 봐도 귀에 쏙 들어오는 노래가 없다면 귀가 고픈 거예요. 입이 고프기도 합니다. 어떤 집 팥빙수가 맛있는데 다른 집에 가서 먹었더니 뭔가 허전하다면요. 혀를 자극하는 뭔가를 채우고 싶은데 채워지지가 않는거죠. 

우리 주변에는 이렇듯 시장기라고 할 수 있는 게 많습니다.  그런 시장기가 느껴질 때 우리는그걸 어떻게든 채우려고 합니다. 조금만 고파도 뭔가를 먹으려고 하고 심심하면 뭔가를 하려고 합니다. 무언가 허전한 상태를 견디지 못해요.  그게 우리 중생들입니댜. 

시장기를 참지 못한다는 말을 다시 말하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본인은 아닌 것 같습니까? 잘 생각해보십시오. 집에 혼자 있으면서 하루종일 유튜브를 끊임 없이 보고 있다면 당신은 외로운 겁니다. 외롭다는 게 누굴 보고 싶고 연애를 하고 싶은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배도 고프고 눈도 고프고 혀도 고프다 

법정스님은 시장기 같은 외로움을 느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배가 고프고 눈이 고프고 귀가 고프고 혀가 고플 때 어떻게든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장기를 온전히 느껴보라고 했습니다. 시장기를 견뎌보고 친구삼아 일상의 동반자로 지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절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대중생활을 할 때에는 마치 혼자 토굴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하고, 혼자 토굴에 살 때는 마치 대중생활을 하듯이 생활하라’고요. 

여러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마치 혼자 있는 것처럼 내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내 마음이 밖으로 달려 나갑니다. 그러니 남의 행동을 판단하기보다 먼저 내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입니다.

반면 혼자 있을 때는 아무도 없으니 하루종일 퍼져 있지 말고, 귀찮다고 아무 것도 안 하지 말고, 주변에 도반이 있는 것처럼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때가 되면 예불하고 공부하라는 겁니다. 공동의 규범처럼 스스로 규칙을 정하여 일거수일투족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말입니다. 대중 속에서 있을 때는 혼자 있는 것처럼 나 자신을 돌아보는 노력을 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로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합니다. 

탐욕과 갈애를 버리는 것

“홀로 사는 것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부처님께서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시기를, “과거는 버리고 미래는 바라지 않으며 현재는 자신의 소유에 대한 욕망과 탐애를 모두 버리는 것이다. 모든 사물에 물들지 않고 모든 것을 버리고 갈애를 부수어 해탈하니 나는 그를 홀로 사는이라 부르네.”

이 말을 자세히 보면 법정스님 이야기하신 ‘시장기 같은 외로움’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것이 제대로 홀로 사는 것인가? 어떻게 내가 살아야 홀로 사는데 있어서 올바른 모습으로 사는 것인가? 대답의 핵심은 자신의 소유에 대한 욕망과 탐애를 모두 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은 내가 소유하지 못하지만 장차 소유하고 싶은 것, 그런 원하는 것을 미래에 바라지 말라는 겁니다. 또한 지금 내가 취할 수 있는모든 소유에 대한 욕망을 버리는 것이 진정으로 홀로 사는 것입니다. 홀로 있음을 한자로 쓰면 외로울 고, 홀로 독, 고독(孤獨)이라고 합니다. 내 안의 모든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완전히 뿌리 뽑는 것이 바로 나 홀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초기 경전 <숫타니파타>에 나오듯,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것은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완전히 버렸을 때 가능합니다. 

외로움을 오롯이 느낄 것 

무언가 결핍되어 있을 때 그것을 채우려고 하면 내 밖에 있는 뭔가를 가져와야 합니다.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채우려 하지 말고 시장기 같은 외로움을 오롯이 그대로 느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사람을 소유하고자 하고, 물건을, 시간을, 권력을, 명예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오롯이 느껴야만 도리어 그런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홀로 있음입니다. 고독입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인생을 살다가 외롭다던가 쓸쓸하다던가 하는 마음이 될 때는 오늘 이야기 한 부처님의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내 안의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만들어 내는 감정입니다. 이 욕망을 빨리 털어내야 되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법정스님 말처럼 시장기 같은 외로움을 느끼면서, 내 안의 소유하고자 하는 갈망을 느끼면서, 그런 갈망을 털어내고자 노력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야 말로 우리는 진정으로 자립적인 사람, 주체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Previous

불교의 자비 vs 기독교의 사랑

길따라절따라 일본 답사기

Next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