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사상 vs 불교사상
불교가 등장하기 전에 인도사회를 지배하는 사상이 있었습니다. 브라만교 혹은 힌두교라고 알고 있지요. 불교를 공부하는 우리는 이 인도철학을 한 번쯤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도철학의 바탕 위에서 불교가 태동했기 때문입니다. 인도철학을 연구하는 몇몇 학자들은 몇 가지 단어만 바꾸면 인도철학과 불교철학과의 차이점을 구별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과연 전통적인 인도사상과 불교사상은 무엇이 다를까요? 이번 시간에는 불교가 등장하기 이전에 인도를 사회문화를 지배했던 사상을 알아봄으로써 불교가 어떠한 맥락에서 탄생했으며 인도사상과 비교하여 불교사상이 가지는 특징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와 함께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2,500년 전 순수한 초기불교에서부터 시작해 불교가 전개되어 온 역사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불교는 아비달마-초기 대승불교-중관-유식-여래장사상으로 이어져왔습니다. 이 같은 불교사상의 발전 과정을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되어 온 특징적인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시기 시기마다 달라져온 불교사상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불교의 역사를 톺아보아야만 지금 우리 불교의 모습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예로 스님들의 의복을 살펴볼까요? 스님들이 입고 있는 승복은 한복과 같은 우리 전통의상에 가깝습니다. 그 위에 입는 장삼은 엄밀하게 따지면 당나라 시대 도교 수행자들이 입던 형식입니다. 법당에 들어갈 때 걸치는 가사는 인도의 수행자들이 걸치던 누더기 천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렇게 스님들이 매일 입는 옷에는 한국, 중국, 인도 등 3개국의 불교문화가 섞여 있습니다. 불교사상의 역사를 알아야만 이 옷들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지금의 이 모습이 어떻게 해서 갖춰졌는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인도는 무지 크고 다양한 면모를 지닌 나라
인도라는 나라는 어마어마하게 큰 나라입니다. 문화권으로 치자면 네팔이나 부탄 등지까지 인도문화권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커다란 나라가 18세기 중엽부터 약 150년간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고, 독립할 때 두 개의 나라로 나뉘게 됩니다. 힌두교는 인도, 이슬람은 파키스탄으로 분리독립한 것이지요.
인도인들이 쓰는 언어는 몇 가지나 될까요? 소수부족의 언어까지 합치면 1천 가지 말이 넘고요, 그 중에서도 1백만 명 이상이 쓰는 언어는 30개에 달합니다. 헌법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한 언어는 몇 개일까요? 23개입니다. ‘인도의 국어는 힌디어다.’ 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말만 해도 이렇게 다른데 하물며 인도인이라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나의 코드나 키워드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상상하기 어렵지요.
인디아의 기원, 아리안족은
한편, 인도는 서쪽에서 들어온 아리안족이 인더스강에 와서 기존의 토착민을 지배하고 문명을 생성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아리안족은 인도뿐만 아니라 동서남북 여러 방향으로도 진출해 문명을 형성하여 살아왔습니다. ‘인도유럽어족’이라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 아리안족은 중앙아시아에서 유럽에 달하는 지역과 어원이 같은,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살아왔어요.
아리안족의 가장 상징적인 표식은 수레바퀴입니다. 인도의 국기에도 수레바퀴가 등장합니다. 불교에서는 전륜성왕, 부처님이 굴리는 법의 수레바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아리안족의 위대한 발명품이 바로 살이 있는 수레바퀴이며, 이로 하여금 전차가 등장하여 숱한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아리안족 문화에서 수레바퀴는 풍요와 행복을 상징하는 하나의 사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불교에서 ‘길상’을 뜻하는 만자(卍) 역시 아리안족에서 사용한 사인입니다. 게르만족이 아리안족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선언하기 위해 이 사인을 사용하면서 훗날에는 나치의 문양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현대의 우리는 과연 인도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카레와 마살라의 고향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요가의 발생지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인도는 종교를 이유로 마약을 하기도 하고 축제를 이유로 집단 환각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지리와 문화적 변화를 거쳐서 우리에게까지 알려진 일부 인도 문화를 두고 인도를 모두 이해한다고 착오해서는 안 됩니다.
인도사상의 출발, 베다와 제사
인도인들이 생각하는 종교의 핵심은 무엇이며 과연 불교와는 어떻게 연결될까요? 흔히 힌두교라고 말하는 인도사상은 기원 전 1500년에서 500년 사이의 종교철학 경전인 <베다>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이 경전은 베다라고 하는 선신(善神)을 칭송하는 일종의 찬가 혹은 게송입니다.
베다 시대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제사입니다. 여기에서 제사란, 선신과 악신이 싸우는 가운데 선신이 악신을 이기게 하기 위해 선신들에게 보급품을 보내는 개념인데요. 인도인들은 불을 피워 거기에 공양물을 태우면 공양물이 연기가 되어서 하늘로 올라가 신들에게 보급된다고 믿었습니다.
인도인들은 제사를 지낼 때 <베다>를 읊었으며, 그 제사에서 중요한 것을 만트라(진언)로 외우고는 했습니다. 불교의 진언도 여기에서 유래했으며 불교 자체적으로 발생한 의식이 아닙니다.
우파니샤드, 베다의 권위를 부정하다
베다시대는 우파니샤드시대로 연결됩니다. <우파니샤드>는 <베다>의 해설집에서 시작해 구절 하나하나에 대한 더욱 깊이 있는 분석과 비판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베다의 권위를 부정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우파니샤드시대에 <베다>의 권위를 부정한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부처님 당시는 기원 전 500년경. 중국으로 비유하자면 제자백가 시기와 같았습니다. 부처님이 어떻게 등장했는지를 알려면 부처님이 왜 <베다>의 권위를 부정했는지를 알아야 하며, 그러자면 도대체 <베다>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윤회의 단초, 카르마(업), 다르마(법), 진리의 단초가 사실은 <베다>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다시 <베다>의 기본 개념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제사를 통해 공양물의 보급이 잘 되어서 신들이 이기면 우주의 순환이 원활하게 이뤄집니다. 이를테면 제 때에 비가 내려 생명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게 됩니다. 베다 시대에 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서로 순환적으로 의지해서 살아가며, 이런 순환을 유지하는 것이 제사입니다.
제사를 지내는 공양물을 들여다볼까요? 공양물 중 가장 중요한 공양물을 소마(soma)라고 합니다. 인도인들은 선신 중 가장 강력한 인드라가 소마를 먹으면 시금치를 먹은 뽀빠이처럼 힘이 난다고 믿었습니다. 소마의 정체는 갈대(Ephedra) 혹은 독버섯(Amanita Muscaria)이라고 하는데요. 먹으면 취한다는 의미에서는 술로 표현하기도 하고, 환각작용을 일으킨다는 의미에서는 마약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미 베다시대 때부터 환각작용이 제사에 일정 부분을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정신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수행자들이 자연스럽게 환각작용을 이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다에 나타난 제사의 원리와 믿음
한편 제사에는 신들조차 따라야 하는 근원적인 힘이 있습니다. 르따(Rta)입니다. 신들에 대한 제사가 르따와 상응하여 신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바라는 결과가 일어납니다. 르따가 사회에 적용되면 그것을 다르마(Dharma)라고 합니다. 르타의 통제적인 측면이 사회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르타에 상응하여 노래와 기도, 봉헌과 예배를 하면 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힘을 얻습니다. 이러한 제사를 관장하는 것이 브라만(바라문·사제)입니다. 브라만은 제사를 정확하게 ‘아는’ 소수의 사람입니다. 제사를 관장하며 만트라를 외우는 브라만은 제사의 힘으로 우주를 통제하고요, 우주와 사회를 통제하는 제사를 정확하게 알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바라문뿐입니다. 브라만의 권위는 자연스럽게 강력해지겠지요.
제사에서 하는 행위는 업입니다. 이 업에 따라 세상과 우주의 질서가 바뀔 수 있습니다. 즉 행위에 뒤따르는 결과가 분명한 것이지요. 이때 제사를 지내는 구체적인 지식을 알면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제사에서 하는 행위가 세상의 일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도 전통 사상에서는 아는 것, 즉 지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제사와 관련한 믿음 중 또 한 가지 중요한 지점이 있습니다. 윤회의 문제입니다.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면 무(無)가 된다는데
베다시대에는 죽으면 저승으로 가서 5대에 걸쳐 제사를 받고, 5대를 넘으면 그제야 진정한 하늘나라로 가서 완벽한 삶을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없으면 선조들까지 제사를 받지 못해 하늘나라로 가지 못하며, 그런 영혼은 달에 가서 살다가 초승달이 되면 자리가 없어서 비가 되어 이승의 땅으로 내려온다고 믿었습니다.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들은 환생하지 못하고 무(無)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대를 잇기 위해서는 아들이 있어야하므로 인도 남아선호사상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이 윤회사상의 기반이 됩니다.
문제는 사회가 발전하고 도시가 형성되면서부터 발생합니다. 기원 전 8세기경이 되면 도시가 형성되는데요. 촌락 규모의 사회는 제사 중심으로 움직일 수 있었지만 상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커지다보니 무사 계급이나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힘이 커지고 반대로 제사의 중요성은 약해집니다. 사람들은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왜 제사를 지내야 할까?’ ‘왜 윤회를 할까?’ ‘윤회를 하는 주체는 무엇일까?’ ‘근원적인 힘에는 자아가 있는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베다시대의 관심은 제사와 자연의 질서, 그리고 제사와 자연의 운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우파니샤드 시대 즉 부처님 당시로 넘어오면서 인간 내면의 세계에 천착하기 시작하고, 아트만이나 브라흐만과 같은 고차원적인 개념이 등장하며 철학적인 탐구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