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파에 맞서는 불자들의 마음자세

기후위기, 전쟁, 고금리, 물가… 개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세상이 어수선하고 불안정한 시국이다. 이러한 세파에 맞서는 불자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첫째, 모든 일은 무상하며 결국은 지나간다는 진리를 마음에 새긴다. 둘째, 사람은 사람의 일을 다 하고 결과는 인연에 맞긴다는 ‘진인사대천명’의 연기적 진리를 체득한다. 셋째, 홀로 있을 때는 대중과 함께 있는 것처럼 욕망을 다스리고 대중(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홀로 있는 것처럼 스스로 격려하고 스스로 위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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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파어수선한 세계불안정한 세상

요즘 세상이 참 각박합니다. 근본적으로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기후위기가 문제가 됩니다.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각종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는 데에는 기후위기라는 배경이 있습니다. 거기에 3년째에 접어들지만 그칠 기미가 없는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 역시 당장에 안정되기 어려워 보입니다. 옛날 같으면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들썩거리면 온 세계가 걱정을 할 텐데 요즘은 자기 코가 석자입니다. 

우리나라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는 미국입니다. 미국이 고금리 정책을 유지하면 우리나라도 자연스럽게 금리를미국에 맞춰 높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자율이 높으면 살림살이가 각박해 집니다. 더구나 부동산 경기가 한계에 도달하여 집값이폭락할 가능성, 또는 매물 자체가 나가지 않는 상황에 닥쳐 있습니다. 

작년까지는 비관적인 전망들과 걱정만 있었다면 해가 바뀐 올해는 이러한 현실이 우리 개개인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고있음을 체감하게 됩니다. 증심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신재에 준비하는 과일의 양은 작년과 올해가 같은데 가격은 올해 정확하게 두 배가 올랐습니다. 과일을 두 배로 사거나 가격이 다른 과일을 고른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사람들이 당장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 우선은 꼭 필요한 곳에만 돈을 쓰게 되지요. 작년 대비 같은 기간 동안 증심사 제사 접수도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제사야 지내면 좋기는 하지만 안 지낸다고 해서 당장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라는 심리가 작용했을 것입니다. 

이런 세상의 흐름은 나 개인의 잘못으로 발생한 것도 아니요, 내가 잘 해보고자 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이러한 세파에 맞서는 불자들의 마음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무상: 모든 일은 다 지나간다

인간이 평생을 살면서 하루하루가 고만고만하고 즐거울 수만은 없습니다. 힘든 날도 있고 괴로운 날도 있고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세상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것이 세상에서 닥쳐오는 파도, 세파(世波)입니다. 

세파가 닥쳐왔을 때 먼저 기억할 것은 ‘세상 일은 다 지나간다’는 말입니다. 다 지나간다는 말은 인생이 무상하다는 데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무상하다는 것은 인생이 허무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삶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항상 기쁜일만 있거나 항상 슬픈 일만 있거나 항상 괴롭거나 항상 즐겁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항상(恒常)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고 즐거울 때도 있고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돈이 잘 벌릴 때도 있고 돈이 없어서 쪼들릴 때도 있습니다. 홍수가 날 때도 있고 가뭄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한여름에 눈이 오는 날도 있고 한겨울에 영상 30도까지 기온이 올라가기도 합니다. 이것이 무상하다는 말입니다. 

2020년도에 광주 지방에 55일간 비가 내렸습니다. 그때 증심사 템플스테이 건물도 수해를 입어서 큰 고생을 했습니다. 당시를 생각하면 ‘도대체 이 비가 언제 그칠까? 혹시 이 비가 하염없이 내리지는 않을까?’라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그렇게도 끝날 것같지 않던 장마가 거짓말처럼 끝나고, 장마가 끝나자마자 엄청난 폭염이 찾아왔습니다. 

 또한 지나가리라

이렇게 세상 일이라는 것은 무상합니다. 흔히 무상을 잘못 이해하면 세상 일이 허무하다거나, 허무하므로 열심히 할 필요도집착할 필요도 없다는 뜻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상하다는 말은 세상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뜻입니다. 지금이 아무리 힘들어도 고통의 시간은 결국 지나가고, 지금 아무리 행복하고 즐거워도 그 시간조차 모두 지나갑니다. 세상이 무상하다는 것을 마음속에 세뇌하듯 되새김질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고통 끝에 즐거움이 와도 방심하지 않고 즐거움 끝에고통이 와도 낙담하지 않습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이라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전근대적인 문화와 자본주의를 타파한다는 명목으로 학자와 지식인, 대학교수 같은 사람들을 시골로 낙향시키는 하방운동이 거셌지요. 중국의 한 유명 교수도 문화대혁명을 피하지 못하고 시골로 하방을 당했습니다. 

그 교수가 힘든 시기에 마음에 새겼던 문구가 ‘다 지나간다’는 것이었답니다. 중국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이런 일은 수십 번도넘게 있었지만 결국 다 지나갔다는 것을 되새겼지요. 그 믿음처럼 문화대혁명도 지나가고 그 교수는 다시 복권되어 현재는 원로지식인이 되었습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게 힘든 상황에 놓였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는 마음을 굳게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불자가 부처님의 법을 자신의 생활에서 올바로 실천하는 길입니다. 

2. 불교적 처세술: 진인사대천명

두 번째로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불교의 진리를 함축하고 있는 처세술이기도 한데요. 사람은 사람의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입니다. 유교적 고사이지만 세상의 이치와 삶의 지혜를 가장 잘 표현하고있는 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열심히 하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오고, 그런 결과가 나와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열심히 했는데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세상을 원망하기도 하고, 힘든 여건에서도 내가 열심히만 하면 모든 것이 완성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착취하기도 합니다. 인연의 도리를 모르는 행위이지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일은 안 됩니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습니다. 세상 일은 인과 연, 인연에 따라 흘러갑니다. 나와 관련된 인연에서 가장 크게 작용하는 변수는 물론 나의 노력입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하는 것이 맞지요. 다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결과에 집착 말고 연기에 의해서”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몇 년을 준비한 끝에 카페를 열었다고 합시다. 자기 생각으로는 정말 좋은 장소에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무조건 된다’라고 매장을 오픈했는데 생각보다 장사가 안 되는 겁니다. 왜일까요? 엄청난 불경기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이루어지게 하는 인연은 개인의 노력이나 의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인연법을 쉽게 이해하고자 하면 ‘하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나 옥황상제의 뜻이 아니라, 연기법이 그렇게 흘러가더라는겁니다. 연기법이란 무언가 하나를 이뤄내는 데에 무수히 많은 인연들이 작용한다는 이치입니다.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나의 노력이 가장 큰 변수이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변수가 있고, 그 변수란 내가 아는 것도 있지만 내가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 많은 변수들이 모여서 하나의 결과가 나오는데 어찌 내가 뜻한 바 대로 되기를 바라겠습니까. 진인사(盡人事) 내가 해야 할일은 열심히 하되, 대천명(待天命) 그 결과에 대해서는 집착하지 말라. 결과는 인연 따라 가는 것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세상일이 내 마음대로 안 되더라도 ‘아, 인연이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라고 수용하면서 이렇게 일어난 일 자체를 두고 수행할 수 있는마음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3. 홀로 또 함께

세 번째. 유교에 ‘군자는 신독(愼獨)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름지기 군자는 홀로 있는 것을 삼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혼자 있으면 마음 속의 욕망이나 번뇌를 다스리기 힘들기 때문에 항상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겁니다. 

불교에서는 다르게 말합니다. 혼자 살 때는 마치 대중과 함께 있는 것과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되 대중과 함께 살 때는 마치 혼자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말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산속 암자에 혼자 산다면, 혼자 사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대중들과 같이 살고 있다는 마음으로살아야 합니다. 밥 먹는 시간도, 예불하는 시간도, 수행하는 시간도, 잠자는 시간도 대중과 함께 하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오늘은 수행이 잘 되니까 철야정진을 해볼까?’ 대중들과 같이 살면 그렇게 혼자 철야정진 할 수 없죠. 이렇게 신구의 삼업을 대중과함께 있을 때와 같이 잘 다스려야 합니다. 

반대로 대중 속에 살면서 혼자 있는 것처럼 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요즘 같이 어려운 시대에 각별히 마음에 새겨야 하는 대목입니다. 

바라는 마음을 접고수행은 셀프

재가불자들의 경우 많은 분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살아갑니다. 가족을 떠난 삶을 생각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애착도 큽니다. 이 말은 곧 가족이라고 하는 일종의 대중, 집단에 의지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요즘 같이 힘든 시기에는 가까운 사람에게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장사도 안 되고 되는 일도 없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가족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발생하지요. 

가까운 사람에게 기대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세상 일이 수월하게만 굴러가면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지만요. 요즘 같이 개개인 모두 힘든 세상에서는 서로서로 상대방에게 기대하고 실망하고 분노하고 상처를 주게 됩니다. 

나 스스로가 홀로 서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속한 집단에 나도 모르게 의지하는데,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으면 괜히 성질을 내거나 들들 볶거나 투닥거리게 됩니다. 상대에게 기대하고 의지할수록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아마 여러분들도 살면서 충분히 피부로 경험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일상에서 여러분은 대중과 함께 있으면서도 마치 나 혼자 깊은 산속에서 독자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혼자 있을 때는 누가 나를 위로합니까? 나밖에 없습니다. 내 마음이 힘들고 내 마음이 외로울 때는 내가 위로해야 합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서로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실망하고 상처입기보다 내가 나를 위로하고 내가 나를 격려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세파에 맞서는 우리 불자들의 마음자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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