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절따라] 서산 마애여래삼존불을 친견하다

길따라절따라 서산 마애여래삼존상 답사기. 백제시대에 조성된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은 당시 백성들에게 소원을 이뤄주는 신앙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실제 마애부처님이 취하고 있는 수인(手印)은 중생들의 두려움을 없애는 시무외인과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여원인이다.
따지고 보면 부처님은 신(神)이 아니라 깨달음을 증득한 수행자일 뿐인데 사람들은 왜 소원을 빌었을까? 고대 인도사회의 푸자(공양) 문화가 변화한 것으로, 수행자에게 공양을 올리고 공양을 올린 공덕으로 큰 복을 받는다는 통념이 이어져온 때문이다.
불교는 수행을 하는 수행자와 수행자를 의지하고 공양하는 신도라는 두 개의 축이 상호 교류함으로써 유지, 발전된다. 불교의 수행과 정신문화를 후대에 이어나가는 것도 이 두 개의 축임을 잊지 말고 신행과 수행에 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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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절따라 서산 답사 

지지난주에 길따라절따라 서산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서산에 가서 마애삼존불, 보원사지, 개심사, 수덕사를 참배했습니다. 오늘은 그 후기를 들려드릴 참입니다.

서산 마애삼존불은 불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들이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백제의 미소’라고 알려진 부처님입니다. 실제로 보면 부잣집 도련님 같은 느낌입니다. 뭐든지 말하면 다 들어줄 것 같은 인자한 모습을 가지고 계십니다. 표정도 아주 맑게 웃고 있는 모습이라서 백제의 미소라는 별명이 참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마애삼존불이 위치한 곳은 백제시대 당시로 보면 오다가다 길에서 잘 올려다 보이는 길목입니다. 백제 수도인 부여나 사비성에서 중국을 가기 위해서는 서산 일대 가야산을 지나 태안반도로 가서 배를 타고 산둥성으로 가게 되는데요. 오가다가 마애삼존불을 보면서 여러 소원을 빌었겠다는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인 

석가모니 부처님을 나타내는 수인에는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항마촉진인, 선정인, 전법륜인, 시무외인, 여원인 등입니다. 일반적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수인은 항마촉진인입니다. 항마촉진이 의미하는 것은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수행자가 깨달은 것을 천신과 지신이 증명하며 심지어 마왕이 굴복했다는 것입니다. 선정인은 참선을 할 때 양손을 모으는 모습이고요. 전법륜인이라고 하면 법륜을 굴리는 것을 의미하면서 양 손을 동그랗게 만들고 있는 모양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서산 마애삼존불이 하고 있는 수인은 시무외인과 여원인입니다. 두 가지 수인을 합쳐서 통인이라고 합니다. 시무외인은 손바닥을 들고 있는 모양입니다. 두려움 없음을 중생들에게 보시한다는 뜻입니다. 여원인은 손을 밑으로 들고 있는 모양인데, 이 손은 무언가를 증여한다, 공유한다는 뜻입니다. 보통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같이 하고 있는데요. 두려워하는 중생들에게 두려움을 다 없애주고 원하는게 있으면 원하는 걸 다 들어주겠다는 것입니다. 

마애삼존불의 석가모니 부처님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하고 있다는 말은, 반대로 말하면 백제시대 나그네들이 오가며 바위에 새겨진 부처님에게 무탈하게 다녀올 수 있기를 빌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며 그런 염원을 담아서 이 부처님을 조각했을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엄밀하게 따지면 수행을 통해 영원한 행복을 증득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백제사람들은 산신령에게 소원을 빌듯이 석가모니 부처님한테 소원을 빌었다고 하니, 뭔가 좀 안 맞아 보입니다. 부처님은 신이 아니고 열심히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인데, 이 수행자가 소원을 이뤄준다고 믿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왜 수행자에게 소원을 이뤄달라 할까? 

역사적인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고대 인도사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인도라는 사회에서는 삶의 흐름을 네 단계로 나눕니다. 1단계는 학생으로서 배우고 익히는 시기이고 2단계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책임을 지는 시기이고 3단계는 자식들을 결혼시켜 출가시킨 후에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 했으니 숲으로 들어가서 수행을 하는 시기, 4단계로는 수행을 열심히 하다가 말년이 되면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않고 머물지 않고 떠돌다가(유행) 생을 마감하는 시기입니다. 

삶의 세 번째 단계가 수행하는 기간입니다. 수행을 할 때는 어떻게 먹고 삽니까? 수행자들은 돈을 벌지 않습니다. 재가자들이 올린 공양으로 먹고 사는 것이 인도사회에서는 보편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이걸 푸자(Puja)라고 합니다. 불교의 스님들한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수행자들한테 푸자를 올렸습니다. 

남자라면 생의 어느 시기에는 반드시 수행을 할 것이기 때문에, 여자라면 내 남편, 아버지, 남동생이 그렇게 할 거니까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푸자를 올리는 것이 인도사회에서는 당연한 정서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수행자에게 공양을 올리면 큰 복을 짓는다. 그 복을 지어서 다음 생에는 더 좋은 몸을 받아서 태어난다.’는 사상이 생겼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불교에서는 무엇으로 정착되었을까요? 보시라고 말하면 30점 정도입니다. 불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비구는 복전(福田)이다. 복을 일구는 밭이라는 뜻입니다. 신도들이 스님이라는 밭에다가 복이라는 씨앗을 뿌리면 이것이 성장하여 열매가 맺힙니다. 그 열매는 신도들이 따가는 거예요. 스님들을 잘 시봉하라는 뜻이 담겨 있지요. 이런 게 불교의 전통이 아니라 인도 사람들의 인생 주기에 따라 파생된 보편적인 문화였습니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수행자인데 사람들이 수행자에게 비는 것. 이러한 발상은 당시 인도사회에 보편적으로 퍼져 있었던 공양(푸자)의 정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열심히 수행하는 수행자에게 공양을 올리면 ‘큰 복을 짓는 것’는 생각이 발전하여 ‘복을 달라’는 기복으로 변화했습니다. 복 받을 마음이 급한 것이죠. 

수행자와 신도, 두 개의 축 

이런 역사를 알고 있으면 불교라는 수레바퀴에 두 개 축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축은 수행하는 집단이고 다른 한 축은 불교를 종교와 신앙으로써 믿는 집단입니다. 어느 하나만 있으면 안됩니다. 불교에 오직 수행자들만 있다면 제 아무리 고상하고 대단한 수행자라도 먹고 살 수가 없습니다. 신도들만 있으면 신도들이 신앙할 대상이 없으니 지속될 수가 없습니다. 둘 중 하나에만 편협하게 집착하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스스로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었으니까 나도 열심히 수행하는 것 말고는 다 소용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생각은 불교에서 경계하는 아상에 다름 아닙니다. 반대로 열심히 부처님께 빌면 언젠가는 부처님이 나의 기도에 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여타 유일신앙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불교가 아닌 것이지요. 

한편, 초기불교에서 수행자와 재가자의 관계로 ‘신앙’이 태동한 데 반해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양상이 나타납니다. 부파불교라고 들어보셨지요?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부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풀이하는 데에 관심이 많이 가다 보니까 일반 재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불교의 모습은 약해지고 수행자들끼리의 교학 불교가 강해졌습니다.

이런 부파불교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등장한 것이 대승불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탈 수 있는 수레를 끌어야지[대승], 왜 일부 스님들만의 불교를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죠. 대승불교가 나오면서 기존의 수행자-재가자의 관계가 부처님-신도의 관계로 변화합니다. 신앙의 대상이 수행자가 아니라 부처님으로 설정된 것이지요. 여기에서 백제시대 마애삼존불 같은 모습을 한 신의 형태가 등장합니다.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하고 중생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모습의 석가모니 부처님이지요.

이런 경우에 부처님 즉 깨달은 자와 중생은 어떤 관계를 설정해야 할까요? 부처님은 중생을 더없는 자비심으로 대합니다. 번뇌를 안고 살아가는 중생들의 모습을 보니 그 모습이 너무 마음 아픕니다. 연민의 마음으로 중생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 부처이고요. 중생들은 부처님에게 귀의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귀의한다는 말은 쉽게 말해서 ‘나도 부처님처럼 살겠다.’라고 마음가짐을 내는 것입니다. 

부처와 중생의 이런 관계 속에서 길을 오가는 나그네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부처님이 등장한 겁니다. 부처님의 자리를 산신령이 대신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소원만 비는 것이 아니고, 산신령에게 귀의하면서 ‘산신령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을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처님의 자리는 산신령으로 대신할 수 없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불교는 부처님과 중생 두 개의 축으로 굴러갑니다. 어느 한쪽으만 치우치면 안됩니다. 부처님은 중생들에게 자비의마음을 가지고 중생들은 부처님에게 귀의하는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대합니다. 이것이 불교의 모습입니다.

 마누라가 둘인 산신령 

오늘의 주인공인 서산 마애삼존불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산 마애삼존불에 5분도 안걸리는 거리에 보원사지라는 폐사지가 있습니다. 그 폐사지에 있는 탑이 백제시대 양식인데요. 절터라고 추측은 되는데 물증이 없으니 1959년도에 문화재 발굴팀이 탑주변을 발굴합니다.

그 지역을 발굴하면서 마을 사람들한테 문화재 비슷한 것이 있는지 탐문도 했겠지요. 어떤 나무꾼이 말하기를, “산에 가면 산신령이 있는데 웃고 있는 산신령이다. 그 산신령이 양쪽에 마누라 둘을 거느리고 있다. 한 마누라는 다리를 꼬고 앉아 있고, 다른 한 마누라는 옆에있는 마누라가 미워서 손에 돌멩이를 쥐고 있는 모양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교수들이 ‘뭐가 있겠다’ 싶어서 가보니 그게 바로 마애삼존불이더라는 겁니다. 백제시대 사람들은 부처님을 새기서모셨는데 천년이 지나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양쪽에 마누라를 데리고 있는 산신령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 일화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불교를 국교로 삼아 융성했던 나라가 망하고 조선시대에 숭유억불을 당하는 과정을 거쳐 천년이 지나니 불교가 불교인지도 모르는 상황은요. 신도들이 아무리 부처님을 믿고 따른다 하더라고 불교의 사상과 교리를 유지, 발전시키는 수행집단 없이는 불교가 유지되지 못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지금 절들이 어디에 있나 보면 산에 많이 있습니다. 고려시대까지는 절이 산에도 있고 들에도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 불교가 주변부로 밀려나면서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이 절에는 나중에 도착하는 거예요. 육지에 있는 절들은 그 영향을 직접 받으니까 쇠락하여 없어지고, 산중 절들은 영향이 그나마 덜 가기 때문에 그럭저럭 유지된 것입니다. 산에 있는 절들이 살아남은 것일 뿐, 절을 일부러 산에만 지은 것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수행과 신앙의 유지발전은 상호협력

답사에서는 개심사와 수덕사 참배도 갔습니다. 개심사 대웅전은 조선시대 초기에 중수한 것입니다.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시대 충렬왕때 중수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려시대에 지어진 수덕사 대웅전 양식이 훨씬 뛰어납니다. 왜일까요? 고려시대에는 각종 인적 물적 자원이 불교에 우선 배당되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의 불교는 자원과 지원이 부족했습니다. 스님들이 기와도 굽고 건물도 짓고 그림도 그리고 다 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전문성이 좀 떨어지지 않았겠습니까. 

수덕사 대웅전

불교가 유지되고 발전되려면 신도들의 신앙심만 있어도 안되고, 수행자들끼리만 열심히 수행해도 안됩니다. 두 집단이 서로 교류하고 소통해야 합니다. 이번 길따라절따라 답사를 다녀와서 제가 느낀 것입니다. 

수덕사를 대표하는 스님은 만공스님이고 만공스님의 은사스님은 경허스님입니다. 조선후기에 혜성처럼 등장한 경허스님은 우리나라의 쇠락하는 수행전통을 다시 살린 근대의 큰스님입니다. 현재, 21세기에 선종으로써의 수행전통이 제대로 남아있고 작동하는 나라는 동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가 유일무이합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학자를 중심으로 한 불교학은 발달했습니다만 수행자들의 수행이랄 것은 없습니다. 장례불교에 불과하지요. 중국은 문화대혁명으로 인해서 불교문화가 사라지다시피 했습니다. 공산당원이 큰절 방장을 하고 있지요. 그런 이웃나라의 실정에 비하면 우리나 불교는 어떻습니까? 이렇다 저렇다 말도 많지만 매 철마다 1,000명이 넘는 스님들이 선방에서 참선수행을 합니다. 수행을 잘 하는지 못 하는지는 그 마음 속에 들어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무튼 열심히 수행하는 전통이 살아숨쉬고 있습니다. 

그러한 수행전통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가? 경허스님이 조선후기에 홀연히 등장하여 쓰러져가는 우리 불교를 다시 세운 것입니다. 수행 전통, 또 불교라는 전통의 사상체계가 사라지면 정체성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정체성을 잃은 불교는 불교라고 할 수 없지요. 정체성을 지킨다며 수행자들끼리 열심히 수행만 하면 불교가 유지 발전되는가? 그것도 아닙니다. 우리 재가자들이 신앙으로써 불교를 받아들이고 귀의하는 마음을 낼 때 불교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수행자와 재가자가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불교를 유지 발전시키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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