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1

비가 오면 감상에 젖어든다. 지나간 옛 인연을 떠올리기도 하고 괜스레 울적한 심상이 되기도 한다. 옛날 사람들은 내리는 봄비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중국의 시성 두보는 ‘춘야희우’라는 시에서 비가 내리는 정취를 묘사하면서도 아직 버리지 못한 사대부의 꿈, 즉 중생심을 드러낸다.
반면 진각국사 혜심스님은 내리는 보슬비를 보며 딴 생각 피우지 말고 연기실상의 이치를 깨닫도록 노력하라는 당부의 말을 했다.
알듯말듯한 연기실상의 세계. 진리. 오로지 그 생각만 하는 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며, 세상을 제대로 보는 것이다.

#무아, 사량심, 연기실상, 중생심, 화두

https://www.youtube.com/watch?v=CbJiN9ZFtGY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최근 보조국사 종재일이어서 송광사에 다녀왔습니다. 오가는 길에 보니 제가 본 중 가장 심하게 주암호가 말라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나마 엊그제 내린 봄비로 가뭄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을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봄비라고 하고 하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비와 찻잔을 사이에 두고…’ 등노랫말을 흥얼거리게 됩니다. 비라고 하면 우리 중생들은 왜인지 모르게 낭만적이고 로맨틱하고 감성적인 느낌이 듭니다. 

 우리 중생들 말고, 과거의 조사스님들은 비가 내리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어떤 감흥으로 어떤 기록을 남겼을까요? 오늘은 중생을 대표하는 시의 성인 두보, 그리고 수행자를 대표하는 진각국사 혜심스님의 게송을 비교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내리는 봄비를 보면서 사대부와 스님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헤아려 보겠습니다. 

춘야희우(春夜喜雨) – 두보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當春及發生(당춘급발생) 봄이 되어 내리네

隨風潛入夜(수풍잠입야)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와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 소리 없이 촉촉히 만물을 적시네

野徑雲倶黒(야경운구흑) 들길은 구름이 낮게 깔려 어둡고

江船火獨明(강선화촉명) 강 위에 뜬 배는 불빛만 비치네

曉看紅濕處(효간홍습처) 새벽에 붉게 젖은 곳을 바라보니

花重錦官城(화중금관성) 금관성에 꽃들이 활짝 피었네

춘야희우라는 시 제목은 농사를 짓기에 딱 알맞게 내려주는 비가 반갑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워낙 유명한 시인데요. <호우시절>이라는 영화 제목이 바로 이 두보의 시 첫 구절을 따서 더욱 일반인들에게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 

두보, 아직 버리지 못한 중생심

이 시를 이해하려면 두보라는 사람의 인생 역경을 알아야 합니다. 두보의 모든 시의 특징은 전쟁통에 고통 받는 백성들의 삶을 묘사했다는점입니다. 두보는 당 현종 때의 사람인데요. 당 현종은 양귀비와 놀아나다가 나라를 말아 먹은 왕입니다. 당 말기에 안녹산의 난이 터져서 온나라 백성들이 피난을 다니느라 정신이 없고 그 와중에도 관리들은 백성들을 뜯어 먹으려고 혈안이 된 시대였습니다. 

두보는 하급 관리를 잠깐 지냈습니다. 사대부 집안 출신이라 관리가 되는 것이 꿈인 가난하지만 평범한 사대부 집안의 자제였습니다. 겨우하급 관리가 되었는데 안녹산의 난이 터져 인생이 온통 피난길로 바뀌었습니다. 피난을 다니면서도 다시 관리가 되어 보려고 부단히 노력했으나 잘 안 되었어요. 두보의 삶을 들여다 보면 나름대로 백성을 위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출세하고 싶은 중생심을 고스란히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시를 살펴볼까요? 두보가 생각하는 좋은 비는 딱 맞춰서 내려주는 비입니다. 슬슬 농사를 시작해야지 할 때 때마침 내려주는비요. 이렇게 알맞게 내려주는 비가 나 잘났다고 티를 내지 않고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소리소문 없이 조용히 적시더라는 겁니다. 

그렇게 들길 따라서 구름이 깔려 있고 저 멀리 떠있는 배에서는 불빛이 비춰지는데, 참 아름다운 한 폭의 전원 풍경인 것이죠. 전쟁과 가난으로 어려운 시절에 희망을 갖게 하는 비 오는 풍경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 시는 이것은 아직 출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쓰촨성의 성도 쪽을 바라보고 있는 사대부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기도 합니다. 

내리는 비에서 연기실상을 본 진각국사

중생심을 아직 버리지 못했던 두보의 시에 이어 불교 수행자였던 진각국사 혜심스님의 게송을 살펴보겠습니다. 진각국사는 실은 과거 급제를 하고 나서 출가를 해 스님이 되었습니다. 아주 뛰어난 문장가라 하겠습니다. 먼저 전문을 읽어보겠습니다. 

보슬비 – 진각국사

보슬보슬 보슬비 천기를 누설하고

불어오는 맑은 바람 조사의 뜻 분명하네

따지거나 여기저기 날뛰지 말고

다만 시절 인연을 기다려라

  비가 오는데 주륵주륵 오는 게 아닙니다. 보슬보슬, 아주 가느다란 비가 내립니다. 비가 오는데 비가 오는 게 아님으로써 천기를 누설한다 함은, 보슬비를 보면서 연기실상의 이치가 드러난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맑은 바람의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을 쓸어버리니 조사의 뜻, 즉 연기실상의 이치가 드러납니다. 따지거나 분별하여 헤아리지 말고 다만 시절을 관하라. 

봄비가 와서 연기실상의 세계가 우리 눈앞에 다 드러나고, 맑은 바람이 불어서 세상의 이치가 환하게 드러났으니 쓸 데 없는 망상만 피우지 말고 다만 시절인연을 관하라는 조사스님의 당부입니다. 

분별심을 내거나 따지지 말라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여러분, 대표적인 공안 중 하나가 ‘개는 불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조주스님은 불성이없다고 했는데 도대체 무슨 말일까? 단지 비유를 든 것일까? 개와 같은 동물처럼 개 같은 마음을 쓰면 불성이 없다는 말일까? 중생심을 내면불성이 사라지는 걸까? 이것이 바로 분별심을 내는 것입니다. 이리저리 따져보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자연 현상을 관측하여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도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것은 분별심이 아닙니다. 사실을 밝혀낸 것입니다. 우리 아들이 군대를 갔는데 적응은 잘 할까? 생각하는 것도 분별심이 아닙니다. 그냥 걱정하는 겁니다. 분별심이라고 하는 것은요, 쓸 데 없이궁리하는 겁니다. 개가 왜 불성이 없지? 있는데 일부러 나 정신차리라고 한 말인가? 이런저런 생각들을 혼자서 막 하는 것이 바로 분별심, 사량심입니다. 

사량심을 내는 것은 모두 귀신의 소굴

전강선사의 게송 중에도 분별심을 표현한 구절이 있습니다.

전강선사

이리저리 헤아려 생각하는 것은 모두 귀신굴이요

문자는 술을 짜고 버린 찌꺼기이니라

그럼 묻노니 어떤 것이 옳으냐? 

몽둥이로 때리되 마치 빗방울과 같다. 

상량심귀굴이라는 것은 사량심을 내는 것은 귀신의 소굴이라는 겁니다. 문자라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술찌꺼기 같은 것이니, 어떤것이 옳은가? 빗방울 하나하나가 나를 때리는 듯 몽둥이질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나를 몽둥이로 마구 패면 정신이 혼미합니다. 빨리 도망 가야겠다는 생각 말고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화두라는 건 다른게 아닙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60살 넘어서 동창회를 나갔는데 그 자리에 나오지 않은 친구 이야기를 합니다. 그 친구의 말투, 얼굴 생김새, 그 친구와 관련된 기억은 다 나는데 도무지 이름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화두란 그런 겁니다. 알듯말듯한 명제를 두고 오로지 그 생각만 하는 겁니다. 조주스님이 죽으라고 하면 죽을 수도 있을 정도로 존경하는스승님인데, 스승님이 왜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 오로지 그 생각만 하는 겁니다. 

다시 진각국사 게송으로 돌아가자면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시절에 분별심 내지 말고 오로지 연기실상의 이치를 관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비가 내림으로써 세상에 훤히 드러나 보인 연기실상의 세계를, 중생들아, 제발 제대로 보라는 당부입니다.

앞서 두보의 시는 비 내리는 풍경을 보며 아직 털어내지 못한 중생심이 있음을 확인했고요. 진각국사 스님의 게송에서는 비 내리는 현상하나에도 연기실상의 이치를 깨닫도록 노력하라는 간절한 마음이 들어있음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들도 비가 오면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잘 먹고 잘 살고 있을까?’ 괜한 것 궁금해하지 말고요. 부단히 연기실상의 세계를 깨치도록 노력하는 마음을 내어야겠습니다. 

Previous

신냉전시대, 불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봄비 2

Next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