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으로 가는 지름길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은 무엇일까? 자기 성찰이다. 알아차림이다.
법구경 33, 34, 35번 게송을 통해 마음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아보자. 마음은 본디 흔들리고 지키기 어려운 것이다. 때문에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을 잘 다스리겠다고, 중생심에서 벗어나 해탈로 가는 수행을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가장 먼저 몸부림치고 반항하는 것이 바로 마음이다. 수행하지 않은 마음이 바로 중생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스스로의 마음을 믿지 말고 항상 다스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마음을 다스릴 때에는 누군가 언제나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처럼 방일하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마음을 길들이면 길들여진 마음이 행복을 가져온다.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 즉 자기 성찰은 비단 불자들만의 일이 아니다. 나랏일을 하는 정치인들과 위정자들 역시 다른 어떤 것보다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고 성찰할 줄 알아야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정책을 펼 수 있다.

#마음, 마음챙김, 수행, 알아차림, 행복

https://www.youtube.com/watch?v=wiAEajnN-g4

법구경 속 ‘마음’ 이야기

오늘은 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일입니다. 법구경 제33번, 34번, 35번을 주제로 법문하겠습니다. 법구경은 쉬운 내용이지만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경전입니다. 짤막한 이야기마다 저마다의 상황과 가르침이 담겨 있어 법문하기에도 참 좋지요. (웃음) 오늘 구절들은 ‘마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흔들리고 동요하며 보호하기 어렵고 지키기 어려운 마음을 슬기로운 이는 곧게 만든다. 화살을 만드는 이가 굽은 곳을 곧게 펴듯이.  – 법구경 제33번
  • 물 밖으로 던져진 물고기가 몸부림치듯 이 마음도 또한 그렇다. 마라의 왕국에서 벗어나려고 수행대상에 집중하면 마음은 싫어하며 몸부림친다. – 법구경 제34번
  • 마음은 다스리기 어려웁나니 항상 좋아하는 곳으로 빠르게 치닫는다. 마음을 길들여야 훌륭하나니 길들여진 마음이 행복을 가져온다. – 법구경 제35번

마음을 잘 길들여야 행복이 온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33번과 34번은 부처님 당시에 메기야 존자라는 비구에 관련된 이야기이고, 35번은 나름대로열심히 수행하여 타심통을 얻은 마띠까라고 하는 여성 재가신도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부처님을 시봉한 제자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아난 존자입니다. 그러나 아난 존자만 부처님을 곁에서 모시지는 않았습니다. 총 8명의 제자가 부처님을 시봉했습니다. 33번과 34번 게송에 등장하는 메기야 존자는 아난 존자 직전에 부처님을 시봉한 제자입니다. 

메기야 비구의 간청

하루는 비구 메기야와 부처님 딱 두 분만 같이 계시던 때가 있었습니다. 메기야 스님이 탁발을 하고 돌아오다 보니 강 건너에 아주 멋진 망고나무 숲이 있는겁니다. 그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망고나무 숲이 참 아름답구나! 이 숲은 정진하길 원하는 훌륭한 가문의 아들이 정진하기에 알맞다. 세존께서 허락하신다면 나는 이 망고나무 숲에 정진하러 오겠다.’ 본인이 생각하는 ‘정진하길 원하는 훌륭한 가문의 아들’이 본인입니다. 근사한 곳에서 수행하고 싶은 마음이 든것이지요. 

메기야 스님이 탁발을 다녀와서 부처님께 허락을 구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메기야여, 우리는 둘 뿐이므로 다른 수행승이 올 때까지 기다려라.” 메기야 비구가 다시 또 간청을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더이상 하실 일이 없고 하신 일에 더 이상 보탤 일이 없지만 저는 더 할 일이 있고 할 일에 보탤일이 있습니다. 세존께서 허락하신다면 망고나무 숲으로 정진하러 가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깨달음을 얻었으므로 더 수행할 일이 없지만 본인은 아직 수행할 일이 많이 남아있으니 망고나무 숲에 가서 수행을 하겠다는 겁니다. 당신과 나의 처지가 다르지 않느냐는 겁니다. 실은 시봉하는 스님들의 고민 중 하나입니다. ‘나도 빨리 공부해야 하는데’ ‘나도 선방에 가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시자들은 하고는 합니다. 메기야 스님도 그랬던가 봅니다. 

경전에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두 번째까지는 당신의 뜻을 말하지만 세 번째에는 말하는 사람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십니다. 메기야 스님이 다시 한번 간청하자 부처님께서 망고나무 숲에 가서 수행하기를 허락합니다. 그렇게 메기야 스님이 정진을 하기 시작했는데 문제가 생깁니다. 부처님과 수행할 때는그렇지 않았는데 혼자 수행을 하다 보니 세 가지 건전하지 못한 문제가 드러나는 겁니다. 

첫 번째 감각적 쾌락, 두 번째 분심(화), 세 번째 무언가에 대한 폭력 혹은 공격적인 마음입니다. 번뇌 중에서도 거친 번뇌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메기야 스님은 깨닫지는 못했지만 부처님 곁에 있을 때는 이렇게까지 거친 번뇌가 일어난 적이 없었는데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여 부처님께 돌아가서 이야기를 합니다. 

메기야 비구의 난관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를 하였는데 세 가지 번뇌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왜 이런 일이생기게 된 것입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에 의한 해탈이 성숙하지 않았다면 다섯 가지 원리가 도움이 된다.” 아직 메기야 스님은 마음에 의한 해탈이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의 여건에 많이 휘둘린다는 겁니다. 탐심을 가지고 좋다고 생각했던 망고나무 숲에 있으니까 마음 속에 거친 번뇌가 더 많이 작용을 한 것이지요. 이런 경우에는 다섯 가지원리가 마음을 성숙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다섯 가지 원리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주변에 항상 훌륭한 도반이 있어야 한다.
2. 계를 잘 지켜야 한다.
3. 쓸데없는 신변잡기나 의미 없는 이야기를 나누지 말고 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4. 꾸준히 정진해야 한다.
5. 항상 마음을 지혜롭게 쓰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 다섯 가지 마음은 해탈을 하기 위한 일종의 준비 작업입니다. 이런 준비가 바탕이 된 후에는 네 가지를 해야 합니다. 

  1. 탐심을 없애기 위해서는 부정관을 해야 한다. 
    탐심이란 욕망이 강한 것입니다. 부정관은 이 몸이 청정하지 않고 덧없고 무상하고 사라지는 것임을 관하는 겁니다. 자기 몸을 그렇게 관해서 욕심을없애는 수행입니다.
  2. 분노하는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는 자애관을 해야 한다.
    자애관은 자비관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자비심을 키우는 수행입니다.
  3. 분별심을 없애기 위해서는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을 해야 한다. 
    들숨과 날숨을 관찰하면서 수행하는 호흡관을 말합니다.
  4. 내가 있다는 생각[아상]을 없애기 위해서는 무상에 대한 자각을 닦아야 한다. 

마음은 본디 흔들리는 것

메기야 비구의 이야기를 보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첫 번째 흔들리고 동요하며 두 번째 그래서 보호하기 어렵고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항상 안정되어 있고 믿을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마음은 원래 흔들리고 동요하고 지키기 어려운 것입니다. 때문에 더욱이 마음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 마음 가는 대로 쫓아가면 메기야 비구처럼 망고나무 숲이 좋다고건너갔다가 오히려 더 많은 번뇌에 휩싸이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화살을 만들려고 할 때 나무가 삐뚤빼뚤 굽어 있으면 쓸 수가 없습니다. 화살이 화살로써 자기 용도를 다하기 위해서는 올바르고 곧아야 합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언제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할지 내가 모르면 마음 역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마치 굽은 화살이 쓸모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때문에 슬기로운 이는 마음을 항상 잘 다스립니다. 왜냐? 마음이란 원래 보호하기 어렵고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상생활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세상 일이 내 생각대로 되지가 않는구나!” 그래서 화도 나고 우울증도 생깁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내 마음에 있습니다. 세상이, 타인이 내 마음대로 안 해주는 게 우선이 아니라 내 마음을 내가 어쩌지를 못합니다. 거기에서 번뇌가 생깁니다. 내 마음을 잘 다스려야만 곧은 나무가 화살로써의 효용이 있는 것처럼 마음에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마음을 믿지 말고 언제나 다스릴 것

같은 내용을 비유를 바꾸어서 다시 이야기합니다. 물 밖으로 내던져진 물고기가 몸부림치듯, 내 마음 또한 같다고 말입니다. 탐심 진심 무명이라고 하는 중생심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제일 먼저 누가 반항합니까? 내 마음이 먼저 브레이크를 겁니다. 마치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가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것처럼, 중생심이 ‘나 하던 대로 돌아갈래!’ 하면서 몸부림을 치는 겁니다. 

부연설명이 나옵니다. 마라의 왕국에서 벗어나려고 수행대상에 집중하면 마음은 싫어하며 몸부림친다고 말입니다. 마라는 마왕 파순입니다. 쉽게 말하면중생계의 번뇌와 욕심을 먹고 사는 존재들의 대장이 마왕 파순입니다.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기 직전에 등장하는 마왕이지요. ‘저 사람이 깨달음을 얻으면 중생들의 번뇌와 욕심을 먹고 사는 우리들(마군)이 설 곳이 없구나!’ 라고 생각하고 군대를 보내고 딸들을 보내 성불을 방해한 것을 알고 계실겁니다. 

이 마왕 파순이 부처님에게 최후의 수단으로 제시한 회유책이 무엇이었습니까? 이 세계를 당신이 다스리라고 하는, 전륜성왕의 지위를 제안합니다. 부처님은 그것 마저도 뿌리치고 깨달음을 얻었고 말입니다. 마라는 중생심이 들끓는 사바세계, 그리고 곧 중생계 그 자체를 말합니다. 내가 중생심을 벗어나기 위해서 수행을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하면 나의 중생심 그 자체는 너무 괴로운 겁니다. 하기 싫다고 떼를 쓰는 겁니다. 이게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메기야 비구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중생심이라고 하는 스스로의 마음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믿어 보아야 결국에는 욕심의 끝과 분노의 끝을 보는 것 뿐입니다. 때문에 이 마음을 항상 다스리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마띠까 여인과 수행자들

법구경 제35번은 마띠까 여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처님을 따르는 수행자 무리 6,000명 정도가 안거할 장소를 찾다가 한 마을 부근에서 잠을 청합니다. 이 마을의 촌장이 마띠까이고, 이 이야기는 마띠까 촌장의 어머니와 얽힌 이야기입니다. 마띠까 촌장의 어머니는 불심이 깊은 양반이었습니다. 마을에 수행자들이 왔다고 하니 공양을 올리고서 어디로 가는지를 묻지요. 안거철을 날 장소를 찾고 있다고 하는 수행자 일행에게 마띠까 여인이 이 마을 부근에 머무르기를 청하고, 수행자들은 수락합니다. 

수행자들이 안거를 날 때에는 지켜야 할 규칙이 있었습니다. 아침에는 함께 탁발을 하고, 낮에는 두 비구 이상 같이 있지 말며, 저녁에는 함께 모여서 장로를 시봉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에는 함께 밥을 먹고 낮에는 혼자서 개인 수행을 하며 밤에는 어른 스님을 모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특별한 일이 있거나 병이 난 스님이 있으면 종을 쳐서 대중에게 알리기로 했습니다. 

하루는 마띠까 여인이 공양을 대접할 요량으로 사원으로 향했습니다. 평소에는 스님들이 탁발을 나오는데 이 날은 마띠까 여인이 수행처를 찾아간 것이지요. 그런데 수행처에 사람이 보이지 않아 두리번 거리다가 한 스님을 만나 물었습니다.

“왜 수행처에 스님 밖에 없습니까?”

“지금은 개인 수행 시간이라 모두 흩어져서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마을에 탁발을 나올 때에는 다 함께 나오지 않았습니까?”

“수행을 할 때는 개개인이 각각 수행을 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공양을 올리기 위해서는 한 분 한 분 찾아다니면서 올려야 합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종을 치면 스님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마띠까 여인이 종을 치자 스님들이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모여 들었습니다. 그렇게 모인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렸지요. 스님들이 수행하는 모습에 감명을받은 마띠까 여인이 “저도 수행을 하고 싶으면 어떻게 합니까?” 묻습니다. 한 스님이 대답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무상과 고와 무아를 체득하여 열반하는 것이 우리의 수행입니다.” 그 말을 들은 마띠까 여인이 집에 가서 열심히 수행을 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신통력을 얻은 마띠까 여인과 한 수행자

깨달아 신통력을 얻은 마띠까 여인은 수행자들이 공부를 잘 하고 있나 천안통으로 들여다 봅니다. 그런데 이번 철에 깨달을 스님이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이번 생에 깨달음을 얻을 스님이 있나 하고 살펴보니, 이번 생에 깨달을 인연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깨달을 인연은 있는데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있는것이지요. 혹시 스님들이 게을러서 그런가? 신통력으로 다시 살펴보니 그렇지는 않습니다. 

음식이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마띠까 여인은 수행자들이 생각만 하면 그것을 알아채고 공양물을 올리는 등 지극한 정성으로 공양을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 철에 스님들이 모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들은 안거가 끝나고 부처님에게 가서 그간의 사정을 모두 말했습니다. 마띠까 여인의 지극한 정성으로 우리가 모두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입니다. 

이 이야기가 널리 퍼졌겠지요. 한 수행자가 마띠까 여인을 시험해보려는 마음으로 마을에 찾아 갑니다. 수행자가 마을에 다가가면서 ‘수행을 하고 싶다’고생각하자 그 생각을 알아차린 마띠까 여인이 미리 수행처를 청소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먼길을 와서 시원한 과일주스가 먹고 싶구나.’ ‘아침에 일어나니 부드러운 죽이 먹고 싶구나.’ 생각만 해도 마띠까 여인이 모두 챙겨서 보내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타심통이 있다고 하는 그 여인이 보고 싶다.’고 생각하자마띠까 여인이 사원을 찾아옵니다. 

“마띠까 여인이여, 당신은 타심통이 열렸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타심통이 열리지 않아도 우연히 맞아떨어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마띠까 여인이 바로 대답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대답을 피했습니다. 그렇게 마띠까 여인이 돌아가고 나서 이 수행자가 생각하기를, ‘좋은 생각을 할 때는 상관이 없지만 내가 나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훤히 들여다 본다면 불안하지 않은가!’라고 합니다. 시주의 공덕으로 수행을 하면서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고나를 쫓아내면 어떡하나 싶은 마음에 야반도주를 하여 부처님께 찾아갑니다. 

누군가 지켜보는 것처럼 마음을 다스릴 것

자초지종을 들은 부처님은 의외로 이 수행자를 다시 그 마을로 돌려보냅니다. 꼭 그 마을에서 수행을 해야 하는 인연이 있다면서 말입니다. 수행자가 그래도 영 내켜하지 않자 부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너의 마음만 잘 지키면 된다. 너의 마음이 다른 생각, 나쁜 생각, 안일한 생각을 하지 않도록 마음만 잘 지키겠다고 생각하고 마을에 들어가면 아무 일이 없을 것이다.”

그 말을 명심한 수행자가 다시 그 마을에 들어가서 오로지 열심히 수행을 하여 깨달음에 이르릅니다. 깨닫고 보니 자신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마띠까 여인이 자신을 정말 많이 도와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이번 생에만 나를 도와줬을까? 신통력을 발휘해서 전생을 들여다 보니 전생과 그 전생, 전생의 전생에도 언제나 자기를 도와주었던 겁니다. 전생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99번째 전생에 이르렀습니다. 99번째 전생에서 이 여인은 이 수행자와 부부의연을 맺었는데, 다른 남자와 정분이 나서 자기를 살해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같은 시각 마띠까 여인도 두 사람의 전생을 쭉 훑어 올라가서 99번째 전생을 보게 됩니다. 마띠까 여인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 전생인 100번째 전생을살펴봅니다. 거기에서는 정 반대의 상황이었습니다. 수행자가 아내를 죽인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두 사람은 계속해서 악연을 주고 받았던 것이죠. 수 생에 걸쳐 영향을 주고받아온 두 사람이 결국 금생에 서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여러분. 마음을 잘 지키고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타심통 이야기가 나온 것은 왜인가요? 내 마음은 내가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해도 상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내 마음을 다스릴 필요가 없지요.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는 마치 누군가 내마음을 환히 들여다 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잘 다스리라고 합니다. 

  • 마음은 다스리기 어려웁나니 항상 좋아하는 곳으로 빠르게 치닫는다. 마음을 길들여야 훌륭하나니 길들여진 마음이 행복을 가져온다. – 법구경 제35번

내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다른 사람이 내 마음대로 안 한다고 화를 내고 슬퍼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내 마음부터 내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대통령에게도 필요한 ‘자기 성찰’ 

어제 한 기자가 와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20대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두고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을 묻더라고요. 제가 대답하기를, “자기 성찰을 하는 데에게으름이 없었으면 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 같은 성직자나 정치인이나 추구하는 목표는 같습니다. 중생들의 행복입니다. 다만 방법이 다릅니다. 성직자는 종교저인 시스템, 특히 불교는 불교적 수행을 통해 중생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고요. 대통령은 법과 제도를 통해서 중생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1970~80년대까지 정치인이든 일반 국민이든 당면 과제가 잘 살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유신정권을 독재 정권이라고 지금은 비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70년대에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룬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80년대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가난에서 벗어나는 데에 모든 역량을 쏟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우리는 이미 먹고 살만 하고 우리사회 전체가 가진 부(富)도 상당합니다. 그런데 주위를 돌아보면 어떻습니까? 가진 사람들은 더 잘 살기 위해서 애를 쓰고, 남이 잘 되면 배가 아픕니다. 사회에 갈등이 산재해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인 행복이 아닙니다. 이제는 우리 국민들이 모든 면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정치하는 사람들이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가장 중요한 것이 스스로의 마음을 먼저 다스리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면서 이런 정책, 저런 정책을 펴고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과 소통할 수 있겠습니까?

권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고집이나 아집, 내가 옳다는 생각만 커지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는 듣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현재 상황을 올바르게 보라고 조언해주지 못한다면 내 스스로가 항상 자기 성찰을 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흔들릴 일은 없을 것입니다. 몇 시간 뒤에 판가름 날 20대 대통령이 오늘 법구경 게송이 나온 이 이야기를 마음에 새기고 국정 운영에 임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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