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곡 해설 1

참선곡은 근현대 한국불교의 큰스님 경허스님이 참선수행을 권장하며 지은 노랫말이다. 경허스님은 우리 불교 간화선의 전통이 사그라지던 때에 쉬운 언어로써 참선수행의 방법과 이득을 일러주었다.
참선공부는 왜 해야 하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이 꿈과 같기 때문이다. 삶이 무상하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부처님 공부를 할 마음의 준비가 된 것이다.
경허스님은 부처가 되면 얻는 이득이로 더 이상 윤회를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상, 락, 아, 정의 네 가지 부처의 마음 경지에 이른다고 말한다.

#경전, 기도, 수행, 참선

https://youtu.be/7NDfvt9nPX8

참선곡(參禪曲)

경허선사(鏡虛禪師)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몽중(都是夢中)이로다.
천만고(千萬古) 영웅호걸 북망산이 무덤이요,
부귀문장(富貴文章) 쓸데없다, 황천객을 면할쏘냐.
오호라! 이 내 몸이 풀끝에 이슬이요, 바람속의 등불이라.

삼계대사(三界大師) 부처님이 정령(丁寧)히 이르사대
마음깨쳐 성불하여 생사윤회 영단(永斷)하고
불생불멸 저 국토에 상락아정(常樂我淨) 무위도(無爲道)를
사람마다 다 할 줄로 팔만장교 유전(遺傳)이라.

사람 되어 못 닦으면 다시 공부 어려우니
나도 어서 닦아보세

경허스님은 조선 후기에 태어나 임진왜란 이후 쇠락해가던 불교 수행전통에 다시금 불을 지핀 근현대 한국불교의 중흥조입니다. 참선곡은 경허스님이 지은 노랫말로, 경허스님은 간화선의 전통이 사그라지던 때에 쉬운 언어로써 참선을 설명하여 많은 이들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했습니다. 참선곡의 자구를 해석하면서 경허스님의 가르침을 새겨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몽중(都是夢中)이로다

‘도시’는 ‘도대체’라는 의미의 한자어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도대체가 꿈과 같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 것입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려면 계기와 동기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 일도 없는데 불교공부를 하라고 하니 마지못해 하는 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첫 구절은 경허스님이 ‘중생들이 참선을 열심히 해야지만 부처가 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한 후 중생들에게 참선을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먼저 언급하는 것입니다. 경허스님이 던지는 질문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이 꿈과 같지 않느냐?”, “사는 것이 허무하지 않은가?”, “인생이라는 것이 하룻밤 새 사라져버리는 꿈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가!”

참선이라 함은 책 많이 보고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 아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무상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면, 회의가 들고 의문이 든 적이 있다면 당신은 부처님 공부를 할 마음의 준비가 된 것이라고 경허스님은 말하고 있습니다.

천만고(千萬古) 영웅호걸 북망산 무덤이요


천년만년 전 옛날부터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중생계에 와서 한 시대를 주름잡고 갔습니다. 유비, 관우, 진시황 등 제아무리 시대를 호령한 영웅호걸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죽어서 어디로 갑니까? 무덤으로 갑니다. 이렇듯 대단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죽어서 무덤에 묻히는데 우리 같은 중생들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한편 북망산은 당나라 시대의 수도인 장안에서 마차로 하루 거리에 있는 산이자 공동묘지입니다. 당대의 사람들은 북망산 하면 무덤을 떠올렸다 합니다. 때문에 참선곡에서 무덤의 상장으로 북망산을 지칭한 것은 일견 조선시대에 남아있던 사대주의 정신의 잔재이기도 합니다.

부귀문장(富貴文章) 쓸데없다, 황천객을 면할쏘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살아서는 부귀요 죽어서는 문장이라.’ 살아서는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이 최고이나 죽어서는 아무리 돈과 명예가 높은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했듯, 죽어서는 그가 살아있을 때 남긴 글, 문장이 최고라는 옛말입니다.

그러나 살아서 부귀하고 죽어서 탁월한 문장을 남겼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황천에 가는 객 신세를 면할 수가 없습니다. 죽어서 저승에 가는 것은 그 어떤 영웅호걸이나 부자, 문장가라도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 경허스님은 참선을 이야기한다면서 생사의 일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 뜻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호라! 나의 몸이 풀끝에 이슬이요, 바람속의 등불이라.

이슬은 해가 뜨기 전에 맺히고 해가 뜨면 한순간에 증발되어 버립니다. 이처럼 잠시 있다 사라지는 것이 풀끝의 이슬이고, 바람이 불면 꺼져버리는 것이 등불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엄청 길다고 느끼지만 실은 해가 뜨면 사라지는 아침이슬, 또한 바람이 불면 꺼져버리는 바람 속의 등불만도 못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우리는 모릅니다.

이 사실을 모르면 참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어느 순간 이러한 사실을 절감할 때가 옵니다. ‘나도 언젠가는 죽는구나.’,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언제 죽을지 모르겠구나.’, ‘세상 사는 것이 참 덧없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 참선공부를 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런 생각조차 들지 않으면 공부를 해봐야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기 삶에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간절함, 무상함, 공허함을 항상 마음에 두기 위해서 경전을 보고 기도를 하고 예불을 드리는 것입니다.

부처가 되는 길과 부처가 되면 얻는 이득

삼계대사(三界大師) 부처님이 정령(丁寧)히 이르사대

마음깨쳐 성불하여 생사윤회 영단(永斷)하고

불생불멸 저 국토에 상락아정(常樂我淨) 무위도(無爲道)를

사람마다 다 할 줄로 팔만장교 유전(遺傳)이라.

욕계, 색계, 무색계 등 온 세계에 두루하신 큰 스승 부처님께서 조곤조곤 일러주시기를, 마음을 깨쳐 성불하여 생사윤회를 영원히 끊고 생하지도 멸하지도 않는 깨달음의 경지에 누구다 다 갈 수 있다 하였다고 팔만대장경에서 이미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선공부를 하는 이유는 부처가 되기 위해서인데, 부처가 되는 길은 무엇입니까? 마음을 깨치면 부처가 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마음은 중생심과 번뇌에 젖어있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무엇인지를 깨치면, 알고 보니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며 내가 바로 부처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운동을 한다든가 체력단련을 해서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만 깨치면, 마음만 바꾸면, 한 생각 돌리면 부처가 됩니다.

부처가 되면 어떤 이득을 얻는지를 이어서 말합니다. 태어나고 죽는 윤회가 영원히 끊어집니다. 불교에서는 지금 한 번 생만 사는 것이 아니라 윤회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전생과 그 전생… 몇 번을 살았는지 모릅니다. 인간으로만 산 것이 아니라 짐승으로 살았는지 곤충으로 살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생의 삶이 고통스럽고 힘들다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전생과 그 전생에도 고통스럽고 힘든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다음 생에도 고통스럽게 살 것입니다. 잠들기 전에 눈을 감고 가만히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지금껏 무수히 많은 삶을 이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해보고, 앞으로 오는 무수히 많은 삶 동안 이렇게 살아갈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살아도 될까 하는 반성이 생깁니다. 그러다가 부처가 되면 어떤 이득이 있습니까? 윤회를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윤회를 하지 않고 고통스러운 삶을 끝내기 위해서는 부처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상락아정, 부처의 네 가지 경지

부처가 되면 상락아정의 경지에 들어갑니다. 상락아정의 한 글자 한 글자가 부처님의 경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상(常)은 항상하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인데 부처가 되면 모든 것이 항상하다고 하니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나고 멸하는 가운데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상입니다.

락(樂)은 즐겁다는 말입니다. 즐거운 상태를 쾌락이라고 합니다만 쾌와 락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쾌는 일시적인 것입니다. 호쾌하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합니다. 좋았다가 나빴다가 합니다. 그런데 락은 그렇지 않습니다.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는 번뇌를 벗어난 즐거움입니다.

아(我)는 나를 말합니다. 여기에서 나는 지금의 나, 거짓된 나, 번뇌 속에서 헤매는 나, 어떤 때는 자존심이 높았다가 어떤 때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나, 이러한 내가 아닙니다. 너와 나의 구별이 없는 참 나를 말합니다. 내 것, 네 것, 우리 집, 너희 집, 내 마음, 네가 모르는 내 마음 등의 구별을 상태를 넘어선 상태입니다. 이러한 마음상태는 정청하고 고요합니다. 이것이 정(淨)입니다. 이 네 가지가 부처의 경지입니다.

부처가 되면 이런 마음상태를 가지게 되며, 누구나 이런 경지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팔만대장경에 다 나와 있으니 지금 사람 몸을 받았을 때 열심히 공부하라는 이야기로 마무리 됩니다.

여기까지가 참선곡의 서론입니다. 정리하자면 우리의 삶이 유한함을 깨닫고, 이 삶이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생에 걸쳐 고통스러운 삶을 윤회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윤회를 끊기 위하여 참선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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