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 왜 제사를 지낼까?

예전에는 집집마다 제사를 지냈는데 요즘은 절에 제사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 절에서 제사를 지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 정성을 다하는 것 같지 않고, 조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 같아서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사의 본래적 의미와 불교적 의미를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본디 제사는 인간 주위에 있는 광범위한 대상을 향해 제물을 바치는 행위였다. 이것은 살아있는 인간이 안락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기도이자 발원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행하는 제사는 유교적 의미로 재해석된 제사이다. 유교에서는 나의 근원인 조상에게 보답하는 의미로 제사를 재해석했다. 불교적 의미의 제사는 영가님이 깨달음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행위이다.
이처럼 다양한 층위의 제사라는 개념이 혼재되어 있으면 제사의 의미를 찾기 힘든 것이 당연하다. 시대에 맞게 변화해오는 제사의 흐름 속에서 불자인 우리가 길어올려야 할 것은 보다 불교적 의미의 재일 것이다.

#아미타불, 제사, 죽음

“제사가 불편해”

음력 정월에는 천도재가 많이 있습니다. 최근 제사에 관한 두 가지 질문을 받았습니다.한 분은 “조상님들을 잘 모시는 마음가짐으로천도재를 지내야 하는데 자꾸만 우리 가족이 잘 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게 된다. 그것이 마음속으로 조상님들께 죄스럽다.”는 말을 했고요. 다른 한 분은 “제사를 지내면 극락왕생하라고 하는데 예전에 돌아가신 조상님들은 벌써 환생하여 어딘가에서 잘 살고 계실 텐데, 어떻게 보면 환생해서 살아있는 분에게 다시 죽어서 극락에 가라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표현하였습니다. 

이런 질문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래적 의미의 제사가 무엇인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21세기 한국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통념 속에 자리잡고 있는 제사에 대한 생각이 무엇인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통념 속 제사와 본래적 의미의 제사가같은지 다른지, 같으면 왜 같고 다르면 왜 다른지를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불교에서의 제사는 어떤 내용이고 그 목적이 무엇인가를 살피겠습니다. 불교에서의 제사가 흔히 아는 제사와 어떻게 다른가를 잘 알아야 이 두 분의 의문에 속 시원하게 답을 해줄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들도 한편으로는 절에 오래 다니셨지만 그러려니하고 그냥 넘어가는 부분일수도 있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저 역시 제사의 본래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기회가 적었는데요. 이번 기회에 자료도 찾아보고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왜 절에서 제사를 지내는가?’ 하는 질문에는 뭔가 절에서 지내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부정적인 뉘앙스를 강조하면, 자고로 제사라는 것은 후손들이 정성을 다해 제물을 준비하여 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드리는 게 합당한 도리인데 어찌 그것을 절에 맡기는가? 하는 책망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두 가지 질문은 공통적으로 가정에서 지내는 제사와 절에서 지내는 제사간의 충돌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또한 40~50년 전만해도 집에서 제사 지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사의 중요성이 근 몇십 년 사이에 많이 퇴색한 것입니다. 인식이 이렇게 변했다는 것 역시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본래적 의미의 제사의 3요소

본래적 의미의 제사란 무엇일까요? 백과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천지신명 혹은 영혼이나 신령이나 샤머니즘적인 대상, 애니미즘적인 대상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정성스럽게 하는 행위’. 

제사의 특징 첫 번째. 제사는 대상이 광범위합니다. 천지신명, 신, 영혼, 조상, 바위, 동물 등등 엄청나게 많은 대상이 제사의 대상이 됩니다. 두 번째는 공양물이나 제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 사회에서 나름대로 정성스러운 의식을 하는 겁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갖춰지면 제사입니다. 

예를 들면 남미의 잉카문명 같은 경우에는 태양 숭배를 합니다. 높은 피라미드처럼 생긴 재단에서 산 사람을 죽여서 태양에게 피를 바치는 의식을 했습니다. 의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하는 사람은 제사장이고, 제사의 희생물이 된 공양물들은 적국의 백성들입니다. 

로마의 경우에는 한 해를 시작하는 2월, 당시에 섬기는 신들에게 보름 넘게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보면 많은 신들이 나오지 않습니까. 로마에서도 그렇게 제사를 사회적인 차원에서 지냈습니다.

 중국 같은 경우는 어떻습니까? 중국에서는 오로지 황제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었습니다. 황제가 아닌 자가 제사를 지내면 반역 행위입니다. 황제는 천자입니다. 하늘의 피를 이어 받은 하늘의 자식이기 때문에 오로지 황제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중국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한편,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종교의식은 제사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인도에서는 힌두교가가장 대표적인 종교인데요. 힌두교는 원래제사에서 시작했어요. 지금 인도에서는 제사를 두 가지로 나눕니다. 푸자와 스라타입니다. 

살아있는 인간이 안락하고 행복하기 위한 의식

인도에는 카스트 제도가 있습니다. 브라만 계급만 제사를 지낼 수 있습니다. 제사의 기본적인 맥락은 제물을 태워서 연기를 하늘로 올려 보내는 것입니다. 하늘에는 신이 있습니다. 어떤 신인가? 고대 인도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하늘에서 선신과 악신이 싸우고 있다고 봤답니다. 인간들은 응원을 하듯 공양물을 연기로써 보내고, 그 제물을 받아 힘을 얻은 선신이 악신을 물리치기를 바란 겁니다. 

선신이 이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순리대로 돌아갑니다. 꽃이 피고 눈이 내리고. 세상이 순리대로 돌아가면 사람들은 씨 뿌릴 때씨 뿌리고 수확철엔 곡식을 거두어 배를 곯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거예요. 

왜 고대 인도 사람들이 신에게 제사를 지냈는가? 살아있는 사람들이 안락하고 행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자면 세상이 이치 대로 굴러가야 하고, 그러자면 선신이 악신을 이겨야 하고, 그러자면 우리가 선신에게 뭔가를 바쳐야 하는 일련의 과정이 형성된 겁니다. 이렇게 인도사회에서도 조상에 대한 숭배보다 훨씬 광범위한 차원에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제사라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돌아가신 조상을 잘 모시는 행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제사는 제사의 한 부분이지 제사 전체는 아닙니다.

우리민족의 제사: 과거와 현재

우리나라에서 제사라고 하는 행위에는 복잡한 격식과 절체가 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나라의 통치이념이자 백성들의 생활문화로 파고든 유교 때문입니다. 

고려시대는 불교국가였지만 불교만 가지고 정치나 사회제도를 꾸려가기에는 부족함이 있으니까 통치 이념이나 정치 제도 등은 유교적인 부분을 끌어다 썼습니다. 그렇지만 사회 전반적인 문화 도덕 윤리 이런 것들은 불교적인 마인드였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모든 것이 유교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고려말에서부터 조선시대 사이에 지금 우리가 아는 제사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제사의 양상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기점으로 하여 전과 후가 다릅니다. 조선 전기 즉 호란과 왜란을 겪기 전에는 자식이라면 누구나 제사를 지냈습니다. 장남만 지내는 게 아니라, 아들만 지내는 게 아니라, 딸이나 심지어는 사위도 제사를 지냈습니요. 이것이 가능했던 이우는 다들 비슷한 거리에 모여 살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집성촌에 모여 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제사를 돌아가면서 모실 수 있었습니다. 

또 조선 전기만 해도 제사는 자식들이 골고루 다 같이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피치못할 경우 한 자식이 제사를 전담한다면 그 자식에게 재산 상속의 우선권이 주어졌습니다. 힘든 걸 하기 때문에 포상처럼 재산을 준 것이죠. 이렇게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아들딸 구분 없이 제사도 지내고 재산도 균등하게 나눠주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사회가 가부장적으로 바뀝니다. 제사를 장남하고 맏며느리가 독점하고, 형식을 따지고, 장남이 제사를 독점하므로 상속 역시 장남에게 내려갔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복잡한 제사 의식들은 조선 후기로 넘어오면서 자리잡은 것들입니다. 

현대의 제사는 과도기적인 단계에 있습니다. 제사는 허례허식이고 복잡하고 너무 힘들다 혹은 요즘 여자들이 살림만 하는 게 아니라사회생활을 하니 제사를 지내기가 어렵다. 제사는 과거의 습이고 청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제사를 완전하게 무시하지는 못합니다. 몇백 년 동안 우리 민족에 뿌리 깊게 내려온 생각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세대에게 있어 제사는 귀찮고  복잡하고 꼭 해야 하는가 의문을 갖게 하지만 실제 제사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한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제사를 합치기도 하고 다른집에 떠맡기기도 합니다. 

유교적 의미의 제사: 근본을 찾아서 보답한다

과연 우리의 민족의식에 자리잡은 제사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유교적 의미의 제사입니다. 유교에서는 제사를 어떻게 봅니까? 살아있는 조상인 부모님과 조부모님에게는 성심성의껏 효도를 다하고, 돌아가신 조상한테는 제물을 정성껏 준비해서 은혜에 보답하는 것으로 봅니다. 유교에서 말하는 제사의 근본 정신은 원시보본입니다. 처음을 찾아서 뿌리에 보답한다는 겁니다. 나의 근본이 어디인지찾아보니 조상님들이 나의 근본이라는 것이죠. 

유교는 제사를 유교식으로 재해석하고 유교식 논리로 재구성했습니다. 본래적 의미의 제사는 인간이 주변에 있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게 공물을 바치고 정성을 바치는 행위입니다. 살아있는 내가 안락과 행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유교는 이러한 제사의 의미를 계승 발전시켰습니다. 나의 근본인 조상에게 보답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렸던 질문으로 돌아가볼까요? 조상을 위해서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나의 안위를 바라게 되니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였지요. 나의 행복과 안락을 위하는 마음은 당연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제사를 지내고자 하는 자체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정성을 다해 손수 준비해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절에서 지내니까 마음이 불편합니다. 

이것은 우리들 마음 속에는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유교적 의미의 제사 때문에 그렇습니다. 절에 맡겨버리는 것이 나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죄책감이 드는 것이죠. 본래적 의미의 제사를 한 인간으로 지내는 것인데 유교적 의미의 제사가 익숙하기 때문에 두 개념이 서로 상충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유교적 의미의 제사가 맞다고 생각한다면 집에서 직접 준비하여 제사를 지내야 할 것입니다. 절에 돈 몇 푼 주고 “스님들 잘 부탁해요.” 한다면 유교적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지탄받아야 할 일일 겁니다. 죄책감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죠. 

불교적 의미의 제사: 공양과 서원의 재(齋)

그렇다면 과연 불교에서 제사란 무엇일까요? 불교적 의미의 제사는 영가님이 깨달음으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재(齋)라는 형식을 통해서 인도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재는 삼보님들에게 정성껏 공양물을 올리고 불교의 의식에 맞춰서 다짐하고 귀의하는 일련의 의식입니다. 

천도재만 재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법회가 관음재일 법회입니다. 관세음보살님께 우리가 준비한 공양물을 바치고 관세음보살님처럼 청정하게 살아서 깨달음을 얻겠다고 서원하고 귀의하는 날입니다. 똑같은 것을 영가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천도재입니다. 영가님들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도록 재를 영가님들에게 베푸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천도재는 영가님이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하는 불교의식입니다. 여기에서 두 번째 질문이 생기는 겁니다. 천도재는 조상님들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재인데, 30~40년 전에 돌아가셔서 이미 환생을 하여 젊은 몸으로 살고 있을 영가님들에게 극락왕생을 하라고 하는 것이 맞느냐? 하는 의문이 들지요. 

극락왕생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젠가 정토신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극락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극락은 다른 곳이 아닙니다. 젖과 꿀이 흐르고 금은보화가 넘치고 매일매일 산해진미가 차려지는 곳이 극락이 아닙니다. 극락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이 열심히 수행을 하여 부처가 되면서 서원하기를, 나의 영토를 만들어서 여기에 오는 중생들은 바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하겠다 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평생 악업을 짓고 살아오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 후회하며 ‘어느 세월에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겠는가’ 한탄한다면, 이럴 때 아미타 부처님이 손을 내미는 것, 그것이 극락입니다. 그래서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고 극락왕생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극락왕생은 영가님으로 하여금 어서 빨리 깨달음을 얻어서 중생 제도의 길에 나서시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저기 어디엔가 있는 극락이라는 땅으로 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을 알고 있다면 재를 지낼 때 영가님에게 극락왕생하시라 하는 것에는 이생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깨달음을 어서 빨리 얻어서 성불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영가님이 깨달음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에 부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겁니다. 이것이 불교적 의미의 제사입니다. 

유교는 유교 나름대로 제사를 재해석하고 재구성했습니다. 불교 역시 제사를 불교의 사상과 교리와 기존 의식으로 재해석하고 재구성했습니다. 영가님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재입니다. 

제사, 시대에 맞게 그리고 불교적 의미를 되새기며 

첫 번째 질문한 분 같은 경우에는 내가 지내는 제사가 유교적 의미의 제사인지 본래적 의미의 제사인지를 생각해보고, 이것을 아예 불교적 제사로 전환하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분 같은 경우엔 본래적 의미의 제사에 임하는 순수한 마음이 있으니까 유교적 의미로 보아서는 죄책감이 있었던 겁니다. 이러한 마음의 불편함을 인지했다는 것은 오히려 좋은 일입니다. 계기가 있어야 불교적 의미의 재를 지내야겠다는 마음으로 변화해나갈 수 있습니다. 

절에서 재를 지낼 때는 유교적 의미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닙니다. 영가님에게 재를 베푸는 것입니다. 누가? 부처님이 베푸는 것을 우리가 대신 해주는 겁니다. 그러니 절에서 재를 지낼 때 유교적이나 본래적인 목적으로 제사를 지내기보다 불교적 의미를 인지하고 임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그런가하면 생각은 불교적으로 하는데 집에서는 유교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주 일반적입니다. 불교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생각은 불교식으로 하고 행동은 유교식으로 하고 가끔 무당집에 가서 점도 봅니다. 불교는 이것을 다 허용합니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집에서 제사를 지낼 때는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내는 게 당연합니다. 다만 절에서 재를 모실 때에는 불교식 재의 의미와 정신을 마음에 새기고 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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