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우리나라의 칠성신앙
1960년대 후반, 제가 어릴 적 할머니께서는 해질녘이 되면 방 한쪽에 상을 펴고 물을 떠다가 공을 들이시고는 했습니다. 옆에서 졸다가 보기도 하고 놀다가 보기도 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 생각하니 칠성신앙에 뿌리를 둔 것 모습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칠성신앙은 ‘북두칠성’ 일곱 개의 별을 신격화시킨 것입니다. 예불을 할 때 ‘칠원성군’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이 실은 도교적인 표현이고 불교에서는 일곱 분의 여래라 합니다. 불교에서는 칠성여래가 화현한 것이 칠원성군이라고 기존의 민속신앙인 칠성신앙을 재해석한 것입니다.
칠성신앙은 중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도교에서 북두칠성의 신앙 안에 도교적인 내용을 담아냈으며 그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유독 북두칠성을 신성시하는 신앙으로 굳어졌습니다. 칠성신앙은 고구려시대부터 조선시대, 심지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니, 어느 정도로 우리 정신세계와 밀접하느냐 하면 경복궁 근정전에 있는 그림에서도 그 흔적이 묻어납니다. 이른 바 임금을 북극성으로 비유하고 좌우로 일광 월광이 보필하고 그 주위를 일곱 마리 용이 호위하고 그 주변으로 스물 여덟 개의 대신들이 호위하는 형상입니다. 칠성탱도 같은 맥락이지요.
비를 내리고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님
그렇다면 칠성님은 주로 어떤 역할을 할까요? 첫 번째, 비를 많이 내리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물을 상징합니다. 어릴 적 할머니처럼 기도를 할 때 떠놓은 물 자체가 칠성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칠성님은 수명을 관장합니다. 특히 어린 아이들이 탈 없이 오래 살게 해 달라고 칠성님께 빌었으며, 수명을 관장한다 함은 태어나서 살고 죽는 모든 과정을 관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옛 선조들은 생각했습니다.
하여 예전에는 칠성님께 공을 들이는 것으로 액막이를 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 탯줄이 목에 걸렸다던지 피가 유난히 많이 묻었다던지 하는 경우에는 칠성님께 공을 들이며 액막이를 했고, 사람이 죽을 때는 관 바닥에 칠성판이라고 하는 것을 깔았습니다. 염을 해서 시신을 묶을 때 일곱 매듭으로 묶는 것 또한 칠성님을 상징합니다. 흔히누군가 돌아가셨을 때 ‘돌아가셨다’라는 말을 씁니다. 우리 선조들은 ‘사람은 칠성님의 품에서 와 이 세계에서 살다가 다시 칠성님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믿었습니다. 인간이 처음 온 그 자리가 바로 칠성님의 품이라고 할 만큼 칠성님을 우리의 생과 사를 관장하는 신령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민간에서는 어떻게 칠성님을 모셨을까요? <전설의 고향>에 나오듯 아낙네가 목욕재계하고 장독대 위에 물을 받아 놓고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기도를 올립니다. 마을 단위에서는 칠성바위를 지정해서 고사를 지내기도 하고, 사찰에서는 칠월칠석날 칠성각이나 큰 법당 탱화 앞에서 재를 지내는 방식으로 칠성님께 공을 들여왔습니다.
칠성각이 절에 들어와 당당하게 하나의 전각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불교가 들어올 당시 혹은 그 이후에도 칠성신앙이 광범위하게 일반 백성들 속에 퍼져 있었다는 뜻에 다름 아닙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불교가 이를 수용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실제 증심사에서도 매년 하는 기도들이 있습니다. 정초기도, 입춘기도, 동지기도, 백중기도, 칠석기도 등입니다. 매달 하는 기도로는 신중기도, 지장기도, 칠성기도 등이 있는데, 그 중 칠성기도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동참합니다. 사중 입장에서는 보다 불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신중 기도에 많이 동참해주기를 바라나, 십수 년 동안 여전히 칠성기도에 더 많은 신도들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칠성신앙이 불자들이나 일반인들의 마음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칠원성군으로 화현한 여래…칠성탱의 주인공들
칠성탱에는 어떤 분들이 계실까요? 북두칠성이 북극성 주변을 도는 것처럼 칠성탱에도 북극성이 가운데 있고 그 주변에 일곱 분의 보살님들이 있습니다. 도교에서는 이를 칠원성군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그들이 모두 여래인데 칠원성군으로 화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칠성탱의 가운데 있는 분이 바로 치성광여래님입니다. 치성광여래란 어마어마한 빛이 나는 부처님이라는 말입니다. 별 가운데 가장 빛나는 별은 북극성입니다. 고로 치성광여래님은 북극성을 상징합니다. 중국에서는 북극성을 자미대제라고 하고, 인도에서는 묘견보살이라 합니다.
치성광여래는 해와 달이 보위합니다. 오른쪽 어깨 위의 빨간 원이 일광보살 즉 해를 상징하고, 왼쪽 어깨 위 하얀 원은 월광보살 즉 달을 상징합니다. 해와 달이 양쪽에서 북극성을 보위하고 있는 이 같은 모습은 송광사 관음전 후불탱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송광사 관음전이 원래는 왕실의 안녕을 비는 승수전이었기에 왕실의 대신들이 늘어서 있고, 마치 임금님이 계신 것처럼 해와 달이 관세음보살님을 호위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왼쪽을 더욱 상서롭게 여깁니다. 하여 일광이 왼쪽이고 월광이 오른쪽에 위치합니다. 사족으로 부처님의 왼쪽, 오른쪽을 이야기할 때는 부처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기준이 아니라 부처님을 기준으로 왼쪽과 오른쪽을 구분짓는다는 것을 알아둡시다.
나머지 스물여덟 분의 대신들이 28수 별자리를 상징합니다. 북두칠성 주변의 28개 별들이 북두칠성을 호위하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마음, 칠성신앙에 깃든 마음
우리나라 민간신앙에서 칠성신앙은 산신신앙과 더불어 뿌리깊고 자연스럽게 불교로 들어와 자리 잡은 신앙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한용운 스님은 ‘칠성신앙은 미신’이라고 딱 잘라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저 역시 얼마 전까지는 한용운 스님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얼마 전 눈이 많이 왔을 때 사람들이 눈사람으로 멋진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 뉴스 전파를 탔습니다. 그런 눈사람을 누군가 부수고 지나갔다는 소식 또한 들려왔습니다. 자신의 남자친구가 누군가 정성들여 만든 눈사람을 폭력적으로 짓밟는 것을 보고 헤어짐을 결심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에서 저는 칠성신앙을 떠올렸습니다.
옛 선조들은 북극성이나 북두칠성, 산 등을 신격화하여 믿고 숭배했습니다. 물 한 잔도 허투루 대하지 않고 깨끗한 그릇에 담아서 정성스럽게 대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그런 것 다 미신이니까 필요 없고 오로지 돈이 모든 걸 다 해결해준다’고 믿습니다. 현대인들에게는 돈이 신앙입니다. 돈이 신앙이니까 돈이 아닌 다른 것들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옛날 사람들처럼 하늘의 별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들이 우리들에게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칠성신앙이 미신이라고 배척하기 전에 그 행위에 어떤 마음이 담겨있는지를 봅시다. 나무 하나 풀 하나 별 하나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다시 봅시다. 그런 마음으로 칠성님께 비는 것이 돈을 더 많이 벌고 주변 사람들을 막 대하고 길가에 누군가 정성스럽게 만든 눈사람을 아무 이유 없이 발로 차서 부수는 것보다 백배천배 나을 것입니다.
칠성신앙을 미신이라고 배척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의미를 부여합시다. 행위 하나하나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합시다. 그리하여 이 사회에서 조금 더 바르고 도덕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