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민간신앙

불교를 믿는 불자라 하더라도 정초가 되면 정초기도를 하고 삼재풀이를 하는 등 민간신앙적 의식을 행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교식으로 생각하고, 유교식으로 생활하고, 어려울 때는 점집에 찾아가는 등 다중적 신앙형태를 띠고 있다.
조선시대, 불교는 사대부들부터 억압을 받았지만 백성들의 삶에는 항상 불교가 함께였다. 백성들은 불교와 관련은 없지만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여겼던 날이 되면 절에 가서 부처님께 불공을 올렸다. 사대부의 억압과 백성들의 관행에 따라 불교는 자연스럽게 민간신앙을 흡수하게 되었으며, 해방 이후 서구식 교육이 도입된 이후 불교와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종교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종교는 인간에게 마음의 평화, 안락한 인생, 희망과 같은 부족한 무언가를 채워준다. 반면 종교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도 있다. 욕심을 줄이고 자신을 낮추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 종교 안에 들어온 민간신앙의 형태를 잘 살펴보고, 지혜롭고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해나가자.

#수행, 정체성,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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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신앙형태

조선시대 불교와 민간신앙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지 어언 1,600여 년이 넘었습니다. 조선이 숭유억불 정책을 내세워 불교를 억압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미 1천 년 가까이 불교가 우리 민족의 삶 속에 녹아 있었기 때문에 억압을 한다고 하여 쉽게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조선시대 간경도감에서 최초로 찍어낸 한글 책이 <석보상절>, 즉 부처님의 말씀이 담긴 경전인 것에 비추어 보아도 조선 왕실에서 불교를 믿고 부처님을 따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나 일반 백성들의 삶에서 불교는 떼레야 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정초, 칠월칠석, 동지 등 불교와 관련은 없지만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여겼던 날이 되면 백성들은 절에 가서 공양미를 올리고 부처님께 공을 들였습니다. 이런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요.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불교만 억압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전통적인 민간 신앙도 함께 배척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스님 뿐만 아니라 무당 역시 천민으로 분류됐습니다. 사대부의 억압에 노출된 불교는 민간신앙을 대거 수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절에는 산신각과 칠성각이 있습니다. 불교에서 기원한 것은 아니지만 민간신앙이 불교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와서 자리잡은 것들입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의 불교와 민간신앙

조선 말,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든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통해 ‘전국 조직’을 갖추고 있는 불교를 통제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대처육식 등의 왜색불교 정책을 펼치지만, 경허스님, 만공스님, 효봉스님과 같은 뛰어난 스님들의 노력으로 왜색불교를 배척하고 우리 불교의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해방 후, 미국 문명의 유입과 함께 기독교가 득세하면서 불교는 한발짝 뒤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민간신앙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습니다. 불교와 민간신앙은 흥(興)과 쇠(衰)의 궤를 같이 했습니다. 해방 후 서구식 교육을 받으면서 ‘민간신앙은 미신이며 저열한 것’이라고 업신여기는 풍조가 생겨났지만, 그런 와중에도 민간신앙은 완전히 뿌리 뽑히지 않았으며 불교와는 오히려 더욱 밀접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의 불교와 민간신앙

현대에 이르러 불교와 민간신앙의 결합은 두 가지 측면에서 진행됩니다. 첫 번째, 불교가 민간신앙을 수용한 것 뿐만 아니라 민간신앙도 불교를 상당부분 자기들 속으로 가져간 것입니다. 민간신앙은 불교의 심오하고 체계적인 교리 사상을 차용했습니다. 제가 말사에 살 적 절 뒤에 아주 영험하다는 굿당이 있었습니다. 우리 절은 콘크리트로 지은 허름한 시멘트 건물인데 굿당은 그야말로 목재를 제대로 써서 지은 근사한 한옥집이었습니다. 어느 날 굿당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니 놀랍게도 반야심경이었습니다. 민간신앙에서 불교의 양식을 차용하여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두 번째, 1980년대 노태우 정부에 접어들어 불교 종단 설립이 상대적으로 용이해지면서 민간신앙이 불교의 군소종단으로 등록하는 사례가 많아졌습니다. 1970년대까지 무당이나 굿당을 사회적으로 업신여기는 가운데, 민간신앙은 스스로를 불교 종단으로 등록함으로써 활로를 찾고자 했습니다. 이에 1980년대 들어 흔히 ‘무당 절’이나 ‘보살 절’들이 불교의 군소종단화 되면서 불교와 민간신앙의 경계가 더더욱 애매모호해졌습니다.

한국인의 다중적 신앙형태

우리나라 종교는 다중적인 신앙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교식으로 생각하고, 유교식으로 생활하고, 여의치 않을 때는 점집에 찾아가는 행태를 보입니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생각도 코란 대로, 생활도 코란 대로입니다. 모든 것은 코란의 율법에 따라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생각은 이슬람식으로 하고 일상생활은 기독교식으로 하고, 의례는 유대교식으로 한다고 하면 그는 이슬람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다중적 신앙이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불자들만 놓고 봐도 그렇습니다. 불교 신도인데 제사를 지낼 때는 유교 의례에 따라 제사를 지내고, 묫자리를 쓸 때는 풍수지리를 따지고, 마을에서 기우제나 산신제를 지낸다고 하면 아무 거부감 없이 참석합니다.

한국인 의식의 가장 밑바닥에 민간 신앙이 깔려 있습니다. 그 위에 1천 년 이상 백성들과 함께 한 불교가 있고, 그 위에 최근에 들어온 기독교나 서구 사상이 올라가 있는 셈입니다.

일본도 비슷한 종교형태를 띱니다. 일본 종교 중에는 불교가 대세라고 이야기하지만 일본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가장 밑바탕에는 일본의 전통 민간신앙인 ‘신도(神道)’가 있다. 일본에서 불교는 신도의 내용을 더 보완하고 강화하고 체계화하는 방편입니다.

우리나라는 반대로 민간신앙이 의식 속에 내면화되어 다른 종교, 외래 종교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 있습니다. 불교나 기독교 같은 외래종교가 되려 민간신앙화되는 것이 우리나라 종교현상의 특징입니다.

인간이 종교를 찾는 이유

전통적으로 내려온 민간신앙 역시 큰 틀에서 보면 모두 ‘종교’의 범주에 속합니다. 토착종교란 고등종교만큼 교리, 교단 등 조직된 체계를 갖추지는 않았지만 오래 전부터 각 나라의 민간 속에서 전해져 온 신앙입니다. 이러한 ‘토착신앙’이 전 세계 종교 순위 가운데 5위를 차지합니다. 불교는 7위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따지면 토착종교를 믿는 인구가 불자 인구보다 더 많은 셈입니다.

인간들의 마음속에는 종교가 뿌리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종교를 찾을까요? 인간들에게는 무언가 결핍된 결여된 부분이 있으며, 그런 부분을 종교가 채워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확고한 신념을 통해서 안정된 마음을 찾고, 또 어떤 이는 영원한 존재에 의지하여 인생의 안락함을 찾고, 또 어떤 이는 눈앞의 어려움을 종교의 힘을 빌어서 해결하여 소망을 이루고자 하고, 또 어떤 이는 종교가 가지고 있는 교리나 계율, 율법을 통해 깊은 철학과 높은 도덕을 갖추고자 합니다. 우리는 종교에게서 이런 것들을 원합니다. 그 종교는 불교일 수도 있고 민간신앙일 수도 있고 기독교일 수도, 카톨릭일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믿음이 독이 되는 경우

신앙이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에 병폐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마 전 이웃종교를 믿는 분이 상담을 하러 왔습니다. 그분에게는 초등학생 아들이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철학관에 가니 아들 사주가 좋지 않아 아들을 절에다 팔아야 하고, 팔 수 없으면 보시를 크게 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안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 불안했는데 그 말을 듣자 불안한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게 되어 증심사까지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 보살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살님의 마음이 불안하니까 그런 이야기에 마음이 더 걸리는 것입니다. 보살님이 평소 마음을 건강하게 했다면 그런 불안이 마음을 병들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보살님이 믿는 신에 의지하여 마음을 건강하게 하십시오. 마음이 건강해지면 불안감은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입니다.”

이처럼 민간신앙이 마음에 짐을 얹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건강하게 해줄 수 있는 것 또한 종교라고 확신합니다.

종교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

종교는 인간에게 부족한 무언가를 채워줍니다. 올바르게만 믿는다면 종교는 인간에게 마음의 평화, 안락한 인생, 세상에 대한 희망 같은 것들을 분명히 줍니다.

대신 종교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도 있습니다. 욕심을 줄이고 조건 없이 이웃을 사랑할 것을 요구합니다. 종교생활의 절반은 기도하고 절하고 예불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믿는 존재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개인의 욕심을 줄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갑니다.

이기적인 신앙생활을 경계하자.

종교생활에 있어서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은 딱 한 가지입니다. 불교 같은 고등종교든 무속 같은 민간신앙이든 이 한 가지만 조심하면 종교는 반드시 우리 인간에게 많은 것을 제공합니다. 그것은 나의 이기심으로, 오로지 인간만을 위하겠다는 생각으로 종교를 이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종교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듯이 우리도 종교에게 무언가를 제공해야만 종교로부터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인간만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종교를 이용한다면 우리가 종교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불교와 민간신앙, 서로 선을 긋기보다, 무엇이 고등하고 하등한 종교라고 단정짓기보다 이러한 종교의 특징을 바로 알고 지혜롭고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하기를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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