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란 무엇인가?
절에 나오시는 분들은 대략 절에서 어떻게 제사를 지내는지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제사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시식과 법식을 베풀어서 영가님들로 하여금 하루 빨리 깨달음을 얻도록 하는 것이 불교의 제사입니다. 며칠 전에 <스님과 차 한 잔>을 통해‘절에서 왜 제사를 지낼까?’를 주제로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은 거기에 더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모든 종교의 제사를 다 놓고 볼 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제사는 제사상을 가운데 두고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만나는 자리입니다.
쉽게 하면 제사상을 가운데 두고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마주하는 겁니다. 이것은 좁은 의미의 제사입니다. 제사를 지낼 때에는 돌아가신 조상님에게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닙니다. 태양에게도 제사를 지내고 천지신명에게도 제사를 지냅니다. 제사의 대상이 영혼에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에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만나는 자리라고 하기에는 협소한 감이 있습니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만남
제사는 넓게 보면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만나는 자리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의 입장에서 볼 때 제사는 눈에보이지 않는 세계의 도움을 받아서 눈에 보이는 세계의 삶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것이 제사의 목적입니다. 이것이 모든 제사의 공통점입니다.
내가 불행하기 위해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이 세계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제사를 지냅니다. 돌아가신 조상님에게제사를 지내서 덕을 좀 보겠다는 거지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제사라고 행위에는 이러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제사를 구성하는 요소 중 첫째는 눈에 보이는 이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입니다. 둘째는 그 두 세계 사이에 놓인 제사상입니다. 셋째는 의식입니다. 종교, 문화, 사회, 시대에 따라서 형태는 다르지만 무언가 의식을 합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무엇일까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져서 촉각으로 느낀 후 내 기억속에 남아 있는 이미지 모두를 통틀어서 눈에 보이는 세계라고 합니다. 이것을 모아서 우리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우리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무언가가 있으니까 본다, 무언가가 있으니까 듣는다, 새가 노래를 하니까 내가 듣는다, 자동차가 달려가니까 내 눈에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순서가 바뀐 것입니다. 무언가가 존재한다, 산이 있다, 건물이 있다는 것은 그러한 정보들이 내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무언가가 있어서 보는 게 아니라 내가 보니까 있는 겁니다. 이것이 눈에 보이는 세계입니다.
인식할 수 없는 세계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고 혀로 맛볼 수 없고 손으로 만져서 느낄 수 없고 그러한 정보들을 종합해서 머릿속으로 만들 수 있는 이미지가 없는 것입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귀신입니다. 사람들이 귀신에 대해서 제일 궁금해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귀신이 정말 있느냐는 겁니다. 귀신이 있다 혹은 없다는 것은 내 눈으로 볼 수 있는가? 내 손으로 만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귀신이 있다는 증거로 종종 내세우는 것들이 CCTV에 책상이 혼자 움직이더라, 흐릿한 것이 지나가더라 하는 것이죠. 눈에 보이는 세계에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인식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라는 것은 우리의 그러한 인식 범위를 벗어나 있는 세계입니다. 인식할 수 없으니까 있다 혹은 없다 라고 말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도 눈에 보이는 세계와 비슷한 방식으로 생각합니다. 있기는 있는데 눈에 보이는 정상적인 세상과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비정상적으로 비치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증거로 내밀지만 엄밀하게말하면 그것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못 보는 겁니다. 인식 범위를 벗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귀신이 있다 혹은 없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성립하지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내생이 존재하는가? 영혼이 존재하는가? 이때 부처님은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있다고 말해도 틀리고 없다고 말해도 틀리기 때문입니다.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다만 연기법을 이야기 했습니다.
존재하지만 인식할 수 없는 것
제사가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만남이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 도대체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라는 의문이 따라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하게 무언가 작동하는 것은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이것’이 사라지는 순간 인류는 단 하루도 못 살고 극심한 혼란에 빠져서 멸망할 것입니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고 코로 냄새 맡을 수도 없고 입으로 맛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가장 흔하면서 전혀 인식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전기입니다.
벼락이 치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는데 왜 전기를 인식하지 못하냐고 묻는다면요, 벼락이 치는 것은 어떤 물리 작용에 의해 빛이 보이는 것이지 전기가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혹은 내가 감전이 됐다고 하면 일정 수준 이상의 강한 힘이 작용해서 신체에 변화가 생긴 것이지, 전기를 손으로 만진 것은 아닙니다.
왜냐? 전기라는 것은 다만 전자의 흐름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눈에 보이는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주고 있다는 사실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전기입니다.
전기는 에너지입니다. 그렇다면 원래부터 전기는 에너지인가? 그것은 아닙니다. 수력발전소의 경우에는 높이에서 떨어지는 위치에너지가 전기에너지로 바뀐 것이고요, 화력발전소에서는 열에너지가 전기에너지로 바뀝니다. 에너지라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굳이 말하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너무나 많지만 그것 자체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서 살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설법하는 자리에 누가 오는가
경전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요. 초기경전에서는 부처님이 법을 설할 때 1250명의 비구들에게 법을 설했다고 하는데, 후기경전으로 넘어가면 불보살님과 천신들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수백 수천 명의 존재가 부처님이 법을 설하는 영축산에 모여들었다고표현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문학적인 상상력 혹은 허황된 이야기라고 치부해야 할까요?
우리는 조금 다른 각도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사를 지낼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 눈에 보이는 세계가 만나게 되는데, 그것을 경전에서는 위의 형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부처님이 설법을 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여러 부류들이 참석합니다.
제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불보살님들이 제사에 참석을 하고, 제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영가님도 참석하고, 인연 있는 모든 영가들이 참석하고, 갈 곳 없는 영가, 슬픈 영가, 외로운 영가들도 참석합니다. 내가 비록 보거나 느끼지는 못하지만 제사 시식을 할 때에는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존재들이 두루 참석한다는 겁니다.
왜죠? 부처님이 법을 설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는 스님이 요령을 흔들면서 염불을 하는 것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는 부처님이 법을 설하는 자리입니다. 왜냐하면 제주인 내가 그렇게 청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청했기 때문에 부처님이오시고 영가님이 오고 유주 무주 애혼 고혼들이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 존재들이 있다 없다로만 따지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의 기준으로만 이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치 귀신이 있다는 증거로 CCTV의 흐릿한 형체를 제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기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전기를 눈으로 볼 수 없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라고 하는 그 무엇은 우리의 인식 범위를 벗어나 있다 뿐이지 사실은 우리의 삶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법석을 마련하는 것은 공덕을 쌓는 일
제사는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와의 소통입니다. 그 소통을 통해서 공덕을 짓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의 존재들 뿐만 아니라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그 무엇에 대해서도 공덕을 짓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사입니다.
제사는 영가님으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하기 위해서 시식과 법식을 올리는 행위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에 사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모든 무엇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고 보시를 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게 무주상보시를 하는 것입니다. 그 존재들에 대해 공덕을 짓는 것입니다. 공덕을 짓는 이유는 나도 모르게 지은 악업을 소멸하기위함입니다.
이렇게 제사는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간의 소통이며, 눈에 보는 세상에 사는 중생이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에게 보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사의 1차적인 의미입니다.
음식과 법을 베푸는 자리
불교식 제사를 지낼 때 제사상을 시식(施食)이라고 표현합니다. 베푸는 음식이라는 뜻입니다. 불교의 제사상은 유교적 의미의 제사상과 다릅니다. 유교의 제사상은 생전 조상님이 좋아하던 음식을 차려서 한 끼 잘 대접하는 것입니다. 반면 불교식 제사에서 시식은 유주무주 애혼고혼과 영가님과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분들에게 보시를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베푼다는 것입니다. 영가님이 즐겨 드시던것을 특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에게 보시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절에서의 제사상, 시식입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구성 요소는 법식(法食)입니다.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나라 불보살님들이 법석이 차려진 자리에 와서 법을 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법을 모든 중생들이 와서 듣습니다.
그 자리를 누가 마련하는가? 눈에 보이는 세계의 우리가 그 자리를 마련합니다. 그것이 법식입니다. 법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차려진 제사상입니다. 절에서 제사를 지낼 때 스님들이 염불을 하는 것은 부처님이 법을 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우리들에게는 소리를 내야 귀로 들리기 때문에 스님들이 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신도님들은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보면 누구는 목청이 좋고 누구는 목소리가 좋고 누구는 요령을 잘 흔든다고 합니다. 또는 염불 잘 하는 스님이 능력 있는 스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세계의 것으로 판단을 해서는 안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부처님이 법을 설하는 자리라는 핵심을 알고있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제사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제사상 즉 법식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 법으로 차려진 제사상이 더욱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제사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만나는 자리인데요. 과연 이 두 세계가 가만히만 있으면 만나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두 세계 사이의 소통은 오랜 시간 속에서 정해진 의식을 통해 더욱 간절해집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정성을 다한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을 통해 검증된 의식에 따라서 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제사라는 것이 단순하게 제사상을 차려서 스님이 염불하는 단순한 행위라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 소통하는 자리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사, 깨달음과 공덕의 장
제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정리해보겠습니다. 제사를 왜 지내는가? 첫 번째는 영가님으로 하여금 어서 빨리 깨달음을 얻어서 극락왕생하게 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제사는 제사가 아니고 사실은 법회입니다. 살아있는 우리가 아직 깨치지 못한 눈에 보이지 않는 중생들을 위해 법회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 중생들이 바로 우리의 조상이고 인연 있는 영가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에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제사는 무엇인가? 시식을 차리고 법식을 차림으로 인해서 공덕을 짓는 것입니다. 공덕을 지음으로 해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쌓아왔던 악업들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 산자들의 세계에서 제사는 복을 짓는 자리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영가들의 세계에서 제사는 깨달음의 장입니다.
제사를 많이 지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요. 제사를 지낼 때에 제사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참여하시라는 당부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