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가 불교이게끔 하는 것은?
지난 초사흘 때 윤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바라문교의 윤회사상이 인도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불교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불교는 그것을 불교 나름의 색깔로 재해석하여 불교만의 윤회사상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접하는 불교에서 과연 어디까지를 순수한 불교라고 볼 수 있을까요? 불교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치게 되는 고민입니다.
오늘은 불교가 인도에서 전파되어 갔던 과정들을 따라가면서 불교를 불교이게끔 하는 것이 무엇인가, 다시 말해 아주 진정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엇일까를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2,500년 전 인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2,500년이라는 시간이 얼른 실감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조선시대였습니다. 지금 한국에 고조선시대의 유물이 남아있습니까? 없습니다. 환인이나 단군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알 수 없는 전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런 시대에 인도에서는 부처님께서 불교의 가르침을 설파를 했습니다. 부처님이 특별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당시의 인도 분위기가 대체로 그랬습니다. 세상의 시작은 어디인가?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세상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인간의 본질이 뭔가? 이런 것들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을 인도 사람들은 2,500년 전에 하고 있었습니다.
고대 인도인들의 고차원적 철학과 고민
비슷한 시기에 중국은 춘추전국시대, 쉽게 말하면 공자 왈 맹자 왈 하던 시기였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중원에 왕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내 말대로 하면 왕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즉 중국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통치를 잘할 수 있는지, 요즘으로 치면 정치경제학에 관심이 많았던 것입니다. 공자, 맹자, 순자, 묵자, 법가 등 자신만의 이론을 내세운 사람들이 난무했던 때가 춘추백가시대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땠습니까? 알 수 없습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왕이 되느냐 하는 문제와 인간의 근원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 중 어떤 것이 더 고차원적입니까? 우리는 2,500년 전 인도문명이 정신적인 차원에서 어마어마한 선진문명이었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인도 문명이 전 세계로 전파될 때, 순수한 인도문명 그대로가 전파된 것이 아니라 본의 아니게 불교가 인도의 문화와 철학과 사상을 운반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살펴보면 왜 오늘날의 우리가 윤회에 대해서 선뜻 이해하기가 힘든지를 알 수 있습니다.
불교를 타고 퍼져나간 인도문명
제일 먼저 인도 바깥으로 나간 불교사상은 소승불교입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후 200~300년 뒤에 아소카 왕이 인도를 통일하고 인도 전체를 불교 국가로 만듭니다. 인도 역사상 전무후무한 왕인 아소카 왕은 지금의 스리랑카, 즉 바다 건너에 있는 실론섬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나섭니다. 그때 당시의 불교는 당연히 소승불교였지요.
이렇게 약 2,000년 전에 스리랑카로 전파된 소승불교가 미얀마로 가고 태국으로 가고 지금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로 갔습니다. 때문에 동남아시아의 소승불교는 부처님 사후 200년 정도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소승불교, 남방불교는 학문적으로 말하면 상좌부 불교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 불교의 원형이 그나마 보존된 형태인 것입니다.
대승불교의 경우에도 원형을 대부분 보존한 상태로 전파된 지역이 있습니다. 티벳입니다. 부처님 사후 600~1,000년 사이에 대승불교의 형태를 완전히 갖춘 후기 대승불교가 티벳으로 전파되었고 이것이 다시 중국으로 넘어옵니다. 삼장법사가 손오공과 사오정, 저팔계를 데리고 서역으로 가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서유기에 나오는 서역 및 천축국이 바로 인도입니다. 삼장법사가 왜 서역으로 갑니까? 경전을 가져오기 위해서 갑니다. 지금으로 치면 어떤 중국인이 미국에 가서 이론서를 가져온 후 자기나라 말로 번역한 것을 보고 후대 학자들이 공부를 하는 식입니다.
중국 불교가 경전을 가져와 번역한 것과 달리 티벳의 불교는 인도 스님들 몇 백 명이 통째로 티벳에 온 것이기에 왜곡과 손실이 거의 없습니다. 당시 티벳에서 인도의 제일가는 고승을 초청하자 수백 명의 스님들이 함께 티벳으로 건너온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티벳 불교가 인도 후기의 대승불교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티벳 사람들은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티베트 불교는 시기적으로 부처님 열반 이후 약 천 년이 지난 후의 불교입니다. 이미 그때의 인도 불교는 힌두교와 상당히 많이 융합이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제석천, 아미타불, 미륵불과 같은 부처님들은 힌두교에서 따온 것이지요.
사상의 전파가 서쪽 장벽에서 멈춘 이유
한편 앞서 이야기한 나라들은 모두 인도를 기준으로 동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듭니다. 왜 불교는 동쪽으로만 전해졌을까? 왜 중동이라던가 인도의 서쪽으로는 전파되지 않았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역사 자료들을 쭉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은 인도의 종교분쟁의 역사와 흐름을 같이 합니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할 때 지도자였던 간디는 힌두교도에게 암살당했습니다. 독립을 하자마자 지도자를 잃고 종교적인 갈등이 심해진 겁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갈등이 심화된 결과 인도는 세 개로 갈라졌습니다. 힌두교도들은 인도, 이슬람교도들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으로 쪼개진 것입니다.
인도에 이슬람교가 들어온 것은 대략 8~10세기 사이입니다. 이슬람교는 서쪽 아라비아에서 동쪽 인도로 들어와 북부를 장악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슬람교가 퍼지는 방식입니다. 흔히 우리는 이슬람교가 한 손에 코란, 한 손에 칼을 들고 전쟁을 해서 토착민을 정복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조금 다릅니다. 알라신을 믿을 것이냐 죽을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고, 알라신을 믿으면 세금을 면제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슬람교가 급속하게 영토를 확장해가다가 인도에 다다랐는데 인도에서는 이것이 통하지 않습니다. 알라신을 믿을 것이냐 세금을 낼 것이냐를 물었을 때 일부는 수용하고 일부는 거부합니다. 결국 인도의 일부에만 이슬람 세력이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인도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카스트제도입니다. 우리는 카스트제도를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등 네 가지로만 알고 있는데, 실은 수천 가지의 신분이 정해져 있어서 그 신분이 그대로 세습됩니다. 신분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격하게 나뉘어 있으며 너무나 정교하게 고착되어 있습니다. 오죽하면 저 사람들은 동물보다도 못 하니까 손도 대면 안 된다는 의미의 불가촉천민이라는 계급이 있겠습니까. 아래 계급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힌두교가 좋을 리 없습니다. 평생 고생해 봐야 자식도, 그 자식도 빨래만 하고, 시체만 치우고, 하수구 청소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2 종교의 자리를 이슬람에 내준 불교
이슬람 세력이 들어오기 전 기존 카스트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은 불교를 많이 믿었습니다. 부처님이 평등을 주창하며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왕도 부처가 될 수 있고 노예도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출가 역시 왕과 귀족은 물론 그 귀족의 머리 깎는 노비도 똑같이 할 수 있었습니다. 700~800년까지는 7:3 정도의 비율로 불교가 인도 내 제2의 종교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인도 성지순례를 하면 꼭 들르는 나란다 대학에 10만 명의 스님들이 공부했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슬람교는 불교처럼 카스트제도같은 신분제를 부정했습니다. 게다가 오직 단 하나 알라신만 믿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슬람교가 들어오면서 불교가 차지하던 제2종교의 자리를 이슬람교가 차지해버립니다. 인도사회에서 제2의 종교로 자리를 잡고 있었던 불교는 200~300년의 시간을 두고 서쪽의 이슬람에 밀려 급속하게 쇠락하면서 동쪽으로 전파됩니다. 티벳으로, 중국으로 말입니다.
티벳과 중국을 타고 동쪽으로…
다시금 정리하자면 대승불교는 티벳과 중국 등 두 가지 축으로 전파됩니다. 먼저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 전해진 불교는 경전만 달랑 들어왔기 때문에 경전을 나름대로 공부하고 해석하여 중국화 된 불교가 됩니다. 공(空)이다 하는 말들은 실은 도교에 있는 말을 불교로 가져와서 쓴 것입니다. 중국화 된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중국화 된 불교 + 한국화 된 불교가 되고, 한국화 된 불교가 또 일본으로 가면서 중국화 된 불교 + 한국화 된 불교 + 일본화 된 불교로 변형 전파됩니다.
반면 티벳으로 간 불교는 후기 대승불교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만, 당시 불교 자체가 부처님 재세시의 순수한 불교는 아니고 힌두교와 상당히 융합된 모습의 불교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윤회사상, 업, 해탈 등의 개념은 사실 인도 힌두사회의 고유한 사상으로 불교가 본의 아니게 아시아에 전파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불교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부처님이 직접 말씀하신 순수한 불교인지, 어떤 것이 힌두교와 결합 내지는 힌두교의 사상을 불교적으로 발전시킨 것인지, 또 어떤 것이 중국사상과 결합된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바다를 건너 서양으로 전파된 불교
약 100여 년 전부터는 불교가 서양 쪽으로 전파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서양에 전파된 불교는 크게 세 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서양의 학자들이 <아함경>과 같은 소승불교 경전들을 영어나 독일어로 번역하여 서구사회에 전파한 것입니다. 마치 경전을 통해 중국에 불교가 전파되었듯 말입니다. 두 번째로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개화된 일본식 불교가 상당히 빨리 서구사회에 들어갔고, 세 번째로 티벳이 중국에서 쫓겨나 망명정부가 되면서 티벳 스님들이 온 세계로 퍼져감에 따라 미국이나 유럽 등으로 전파된 형식입니다.
번외로 세계에서 절이 가장 많은 도시가 어딘 줄 아십니까?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입니다. 절이라기보다는 명상센터가 대부분입니다. 스님이 없고 재가자가 스스로 절을 만들어서 지도를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지금 서양에 전파되고 있는 불교는 지금까지 인도에서 힌두교와 융합되어 티벳이나 중국으로 전파되었던 과거의 불교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외피를 거의 다 벗어버리고 불교의 수행체계, 수행시스템, 불교의 철학적인 사상 등의 정수만 서양인들의 정서에 맞게 재구성되어 전파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여전히 개신교국가이고 앞으로도 그럴 테고 갈수록 무신론자가 늘어나겠지만, 불교적인 명상이 서양의 개인주의적인 성향하고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본인들이 취할 수 있는 부분만 취하는 겁니다. 이것이 다시 우리나라로 역수입된 게 무엇입니까? 요즘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힐링 명상, 요가 명상 등입니다. 불교의 모습은 이렇게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인도사상이 더해진 불교에서 찾아야 하는 진짜 알맹이는?
서두에 왜 우리가 윤회 등의 사상을 이해하기 어려운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다시 이 질문으로 돌아와 답해보겠습니다. 윤회를 이해하는 것이 왜 어렵냐 하면, 첫 번째로 인도의 고유한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힌두교, 자이나교, 불교를 망라한 인도의 오랜 철학이 인도인들의 생활 속에 깊이 박혀 있는 것이 윤회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도에 살아보지도 않았고 인도 사람들의 문화도 잘 모릅니다. 당연히 이해가 어려울 밖에요.
부처님은 인도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힌두교적 윤회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갔습니다. 윤회사상과 무아사상을 결합한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에 윤회를 하려면 윤회를 하는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부처님은 윤회하는 주체가 없다고 하면서도 윤회를 한다고 하니까 참 이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첫째, 무엇이 가장 순수한 부처님 말씀인가를 알아야 하고 둘째, 이것이 어떻게 힌두교나 다른 인도사회의 사상과 결합이 됐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하고 셋째, 중국이나 우리나라로 전파되면서 불교 바깥에 있는 것 중 어떤 것이 불교 안으로 들어온 것인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옥석을 가리듯 신중히 찾아가는 가장 순수한 불교
불교의 중심, 불교의 핵심, 가장 순수한 불교 그대로 모습은 무엇입니까? 계속 이야기 합니다. 무아사상입니다. 윤회와 연기사상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작자는 없지만 행위는 있다’, ‘작자는 없지만 업보는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 말씀의 핵심입니다. 윤회도 이 틀에서 보면 이해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오늘은 백중 3재입니다. 여러분들 각각 열심히 돌아가신 분들이 극락왕생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3년 전에도, 작년에도, 올해도 백중 기도를 하고 있는데 속으로는 ‘도대체 우리 할아버지는 극락왕생을 한 거야, 안 한 거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 법문을 들으신 불자님들은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사 혹은 기복적인 요소가 어떻게 불교로 들어오게 되었는가를 헤아려보고, 무엇이 중심이고 무엇이 나중에 불교와 융합되었는지, 무엇이 부처님 당대 인도사회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던 사상이었는가를 구별할 줄 알면 불교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