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절따라] 불국토 경주를 가다

경주 남산은 고대 신라인들의 불교에 대한 간절하고 깊은 신심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신라인들에게 남산은 그 자체로 하나의 불국토였고 부처님 그자체였다.
중생에게는 무언가 의지할 대상이 필요하다. 불상과 탑과 같은 조형물은 우리 중생들에게 의지처가 되어 준다. 우리가 불상 앞에서 기도하고 깨달음을 얻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순간에 우리의 마음은 보살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부처님을 친견할 때의 마음을 믿고 의지처로 삼아 일상생활에서의 온갖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수행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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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토 경주 남산

코로나로 인해서 지난 2년 동안 못 갔던 ‘길따라절따라’ 경주 남산 답사를 지난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3일에 걸쳐 다녀왔습니다. 경주! 얼마다 대단하기에 2년 동안이나 답사를 기다려왔을까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불자라면 일생에 한 번은 봉암사 참배를 다녀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경주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경주 남산이야말로 일생에 한 번은 꼭 참배해야 할곳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불교적인 의미가 깊은 지역입니다. 

경주 남산은 그냥 산이 아닙니다. 과거, 고대 신라사람들에게 남산은 그 자체로 하나의 불국토이고 부처님이었습니다. 물론 산 자체도기암괴석이 펼쳐져 있고 영험한 기운이 넘치지만, 달리 산이 특별해서 라기보다는 신라사람들은 실제 자기들이 살고 있는 도읍을 불국토로 삼은 것이라는 데에 의미가 있겠습니다. 경주 남산에서는 고개만 돌라면 다 석탑이고 마애불입니다. 

실은 남산 같은 산은 우리나라에 참 많습니다. 서울 북한산 같은 산은 산으로만 치면 남산보다 훨씬 기운이 있고 멋있습니다. 하지만불국토는 아닙니다. 어떤 차이일까요? 한양을 도읍으로 삼은 사람들은 유교를 신봉하는 양반들이었고, 신라의 수도를 서라벌로 삼은 사람들에게는 불교국가의 중심이 당연히 불국토라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남산은 그야말로 신라사람들이 불교를, 부처님을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여실히 드러내는 곳이라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백제도 불교국가였는데요. 만일 신라가 아니라 백제가 삼국을 통일하고 불교국가로서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면 어땠을까요? 무등산 골짜기 골짜기가 부처님이고 탑이었다면 우리나라의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상상해봅니다. 불국토의 기운이 땅에 서려서이곳 남도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나 운명이 바뀌지 않았을까. 그만큼 신라시대 남산이 가지고 있는 기운이나 정신이 대단하다는 생각을했습니다. 

중생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

혹자는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신심이라는 게 굳이 경주까지 가야지만 나는 것인가? 실생활에서 신행 하고 봉사 잘 하면 되지, 남산까지 가서 볼 필요가 있는가?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중생의 한계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여기셨으면 합니다. 

우리가 만약 날 때부터 부처였다면 탑을 세우고 때 되면 기도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억지로 마음을 내고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종교생활을 할 필요가 없어요. 그러나 우리는 중생으로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중생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중생에게는 무언가 의지할 대상이 필요합니다. 하다 못해 답사 길에 만난 왕벚꽃길을 보고도 감탄하고 경탄하고 예찬하는 것이 우리 중생입니다.

중생은 무언가 대상에 의지해서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서 언젠가는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야겠다고 독려합니다. 의지처가 필요하기 때문에 불상을 모시고 탑을 세우는 것입니다. 

신라인들은 부처님 법과 부처님 세계에 의지하려는 마음이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더 강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부처님께 의지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남산이라고 하는 산 전체를 하나의 경배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기술이 발전했다거나 돈만 있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발을 딛기 힘든 곳에 조차 부처님을 조성해 놓았습니다. 

회의감과 반조

낮 동안 남산에서 신심 나는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는 지인과 함께 벚꽃나무 밑에서 피크닉을 했는데요. 사람이 와글와글한 가운데 색색의 조명을 꽃을 향해 쏴두고 식도락을 즐기는 모습이 마냥 아름답게 보이지만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경주란 곳이 조상들의 문화적, 지역적 유산을 파먹으며(?) 살고 있구나 하는 회의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한 어린아이가 꽃을 보고 “참 예쁘다!”라고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누가가르쳐줘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어른들이 아이를 붙잡아 놓고 꽃이 아름답다고 교육시킨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도 꽃이 아름답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압니다. 

중생이라는 존재는 아름다움을 계속 더 즐기고 싶어 합니다. 야간 꽃놀이를 즐기고 벚꽃이 보이는 모든 길목에는 카페에 술집이 즐비해 있습니다. 왜죠? 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자리에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까 했던 회의적인 생각, 즉 중생들이아름다움을 탐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낮에 남산 곳곳을 구경하면서 멋지고 신심이 난다고 경탄했던 마음 역시 어린아이가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내는 마음과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불자들의 기준으로는 부처님이 멋있습니다. 잘 조성된 부처님을 보면 신심이 납니다. 그런 마음은 불자라서 경건한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이번 경주 답사에서 제게 가장 큰 가르침을 준 것은 이런 마음을 돌이켜 생각하게 해준 그 어린아이였습니다. 

보살의 마음이 되는 순간

그렇다면 신라시대 당시에 불상을 만든 석공 혹은 시주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불상을 어떻게 대했을까요? 단순히 멋지다는 마음과는좀 달랐을 것 같습니다. 훨씬 더 진지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산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런 마음은 중생의 마음보다는 보살의 마음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인간이 중생계에 태어나기는 했지만 매순간 중생의 마음으로만 살지는 않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깨달음을 얻겠다는 마음을 가지면그 순간만은 보살의 마음입니다. 불과 몇 초에 불과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보살이고 부처입니다. 내가 부처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신심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신심과 믿음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의지처가 있을 때, 그리고 스스로 간절하면 간절할 수록그러한 의지처는 더 굳건하게 자신의 앞에 나타나게 됩니다. 예전 신라인들이 남산에 올라 돌에 부처님을 새기고 기도를 할 때의 마음은그야말로 보살의 마음이었을 겁니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남산 부처님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 긴 세월을 내려오면서 간절하게 기도한 사람들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단순히 문화답사를 한다는 마음, 부처님의 양식이나 복식을 뜯어보는 식으로 접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보살의 마음을 의지처 삼아

셋째 날에는 부처골, 탑골이라고 하는 곳에 갔습니다. 감실부처님이라 하여 돌 안쪽에 새겨진 부처님이 있습니다. 이 부처님의 상호는다소 친근한 할머니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해설사가 말하기를 화강암은 조각하기가 아주 힘들다고 합니다. 그렇게 힘든 소재를 이토록 깊이 파서 부처님을 새기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이 부처님에게는 달빛이 환한 밤에 와서 기도를 한다고 하는데요. 

이 부처님을 보면서 우리 같은 불자에게 중요한 것은 시대니 양식이니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이 부처님 앞에서 열심히 기도를 했을 거라는 점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를 하는 사람 앞에 부처님이 나투셨을 것이고, 그렇게 친견한 부처님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서이 부처님을 새겨야겠다고 누군가 생각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실제 끌과 정을 들고 부처님을 조각했을 것입니다. 한두 사람의 정성으로 이뤄진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의 공력과 정성과 기도가 녹아있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보살의 마음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바로 보살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남산에 가서 실제 그 부처님들을 친견할 때 우리의 마음은 보살의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 먼 곳까지 찾아가서 기도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보살이 되고 그 시간만큼은 보살로 사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 확신이 생깁니다. 그런 시간들로 인해서 일상생활에서도 보살의 마음을 내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상황에 일희일비하면서 화내고 미워하고 안타까워하고 들뜨는 마음을 믿지 말고, 굳이 멀리 찾아가서 부처님을 친견했을 때 드러났던 부처로서의 나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을 조금이라도 키우기 위해서 봉정암 산꼭대기까지 올라가기도 하고 경주 남산이라는머나먼 곳까지 가서 부처님을 친견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믿음을 증장시키기 위해서 날짜가 되면 절에 나오고 불공을 드리곤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의 핵심은 공을 들인다는 데에 있습니다. 공을 들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공을 들일 때 비로소 내 마음이 부처가됩니다. 

중생들이 꽃을 보고 아름다워 하는 마음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싶어서 조명을 쏘고 땅을 파고 건물을 지어서 아름다움으로 유인하여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들이 잘못된 것이지, 꽃을 보고아름다워 하고 새소리를 듣고 아름다워 하는 마음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천진한 마음을 신심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 답사에서 느낀 점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친견할 때 만큼은 스스로가 부처가 됩니다. 보살님을 친견할 때 만큼은 내가 보살이 됩니다. 그러한 마음을 믿고, 일상생활을 하는 나 자신의 의지처로 삼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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