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齋),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의식
생전예수재의 핵심은 ‘참회’와 ‘공덕’입니다. 오늘은 참회와 공덕을 키워드로 생전예수재의 의미를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절에서는 제사(祭祀)의 ‘제’를 ‘재(齋)’라고 씁니다. 재란 무엇입니까? 이 글자는 삼가하다 또는 부정하다는 뜻이며,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속가에서 신이나 영혼과 접한다는 의미의 ‘제’와는 의미가 다르지요. 재의 핵심은 몸과 마음을 깨끗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어로 클리어(clear), 이것이 재의 핵심입니다.
깨끗해야 한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비유를 들어봅시다. 어떤 사람이 피부관리에 신경을 쓴다고 할 때, 피부를 깨끗이 하려면 로션을 바르고 영양크림을 바르고 피부에 좋다는 마사지를 받는 것도 좋지만 제일 먼저는 세수를 잘 해야 합니다. 첫 번째로 깨끗하게 불순물을 잘 제거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도 똑같습니다. 마음의 불순물을 먼저 제거해야 합니다. 마음의 불순물이란 악업으로 지은 과보이며, 악업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참회를 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마음에 영양분을 제공해서 윤택하게 하는 것은 선업을 쌓는 것입니다. 선업을 쌓는 것을 다른 말로 공덕을 쌓는다고 합니다. 즉 생전예수재는 마음을 깨끗이 하는 의식이지요.
살아생전에 몸과 마음의 업을 닦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면 첫 번째 악업을 소멸하기 위해서 참회를 해야 하고, 두 번째 선업을 쌓는 공덕을 많이 쌓아야 합니다. 마음이 깨끗해지면 행이 올바르게 됩니다. 행이 올바르면 마음 또한 올바르게 쓰게 됩니다. 마음이 깨끗하면 몸도 행도 청정하고 올발라집니다.
생전예수재의 또 다른 포커스는 ‘생전’과 ‘예수’입니다. 생전(生前)은 흔히 ‘살아생전에’ 라는 말을 쓰는데 여기에서도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또 예수(豫修)라고 할 때 예는 미리, 예비한다는 말이고 수는 수행을 말합니다. 생전예수재란 생전에 살아있는 동안 진 빚, 즉 업을 죽기 전에 잘 닦아서 청정한 몸과 마음으로 죽음에 대비하고자 하는 수행의식입니다.
생전이라 함은 다음 생의 전이니까 지금의 생입니다. 다음 생에 받을 과보를 지금 미리 소멸하고 청정하게 합니다. 왜일까요? 다음 생에는 내가 어떤 몸을 받아서 어떻게 살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여 그 생이 오기 전에 미리 수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수행이 바로 참회와 공덕입니다. 모든 수행은 참회와 공덕으로 귀결됩니다.
생전예수재는 ‘집중 수행 주간’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왜 특별한 기간을 정해서 생전예수재를 하는 것일까요? 이런 질문은 왜 어버이날을 만들었을까? 하는 질문과 일맥상통합니다.
부모님을 존경해야 하는 것에는 정해진 기간이 없지만 살다보면 잊기도 하고 무심히 지나치기 때문에 일부러 1년 중 하루 특별한 날을 잡아 기념하지요. 일 년 중 하루만 부모님을 공경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공부와 수행이 부족하여 매일 그렇게 하지 못하므로 일부러라도 되새기자는 의미입니다.
생전예수재도 마찬가지입니다. 1년 365일 참회하고 선업을 쌓는 게 당연한데 중생들은 그게 잘 안 되니까 1년에 단 며칠, 이 기간만이라도 공덕을 짓자는 의미에서 생전예수재를 지냅니다. 생전예수재에 접수하고 소지의식을 하면 다른 때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생전예수재를 말미암아 그러한 마음을 일상생활에까지 이어가자는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다음 생에도 수행할 수 있는 몸 받을 수 있을까
이런 의문도 듭니다. 왜 하필이면 재라는 형식을 가졌을까요? 일상적으로 흔히 하는 제사는 영가에게 부처님께서 법문을 하는 형식입니다. 여기에 생전예수재의 두 번째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의 나는 살아있지만 지금 나의 몸은 현재의 한 부분이지 다음 생에 어떤 몸을 받게 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이 몸을 갖고 있는 이 순간에 열심히 수행을 해야 합니다. 이 몸을 가진 순간은 이 생, 단 한 번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언젠가 죽습니다. 그러니까 평상시에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평상시에 ‘나는 죽을 것이다’라고 주문을 외우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생전예수재 기간에라도 ‘우리의 삶은 항상 죽음과 함께 하는구나’라는 것을 명심하기 위하여 재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생전예수재는 윤달에만 열립니다. 왜일까요? 윤달에는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나지 않는다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 윤달은 뭘 해도 괜찮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덤으로 있는 달이니까요. 때문에 이 때 현세의 복만이 아닌 내생의 복까지 닦는 생전예수재를 지낸다고 이야기 합니다.
경전 빚, 돈 빚 갚으면 그만?
잘못 이해되고 있는 개념도 있습니다. 경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경전을 읽어야 할 빚은 예수재를 진행하며 경전을 독경하여 갚고, 돈으로 진 빚은 종이로 만든 돈을 명부전의 왕들께 올리는 것으로 갚는다고 말입니다. 재를 올린 후에는 빚을 갚았다는 증표를 받아 한 조각은 불사르고 다른 조각은 죽을 때 지니고 가서 명부의 왕들에게 보여 극락왕생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예수재의 핵심적인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경전을 읽어서 경전을 읽지 않은 빚을 갚고, 종이 돈을 준비해서 돈으로 진 빚을 갚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단지 빚 갚는 데에만 마음을 써서는 안 되겠지요. 경전을 독경하고 다른 이들을 위한 보시를 행하라는 맥락을 길어 올려야 합니다.
‘빚을 갚다’에 강조점을 두지 말고 ‘경전을 많이 읽으라’는 데에 강조점을 둬야 합니다. 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가진 재물을 보시하라는 데에 강조점을 둬야 합니다.
빚을 갚는다는 데에 초점을 둔 것은 생전예수재를 좁게 보는 것이며 내 복만 챙기려고 하는 기복신앙으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생전예수재의 본 뜻은 살아생전에 경전을 많이 읽고 주변에 내가 할 수 있는 보시를 많이 하라는 데에 있습니다.
선근공덕과 참회수행을 펼치는 장
생전예수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첫 번째 항목은 선근 공덕을 쌓으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참회하는 것입니다. 살아생전 지은 악업 때문에 죽어서 고통 받을까 걱정하지 말고 지금 열심히 참회하고 공덕을 쌓으라는 것이 생전예수재의 참 뜻입니다.
올바른 불자의 자세는 어떤 것입니까? 매일매일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절에 와 예불을 드리고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내서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윤달에 생전예수재라는 특별한 의식을 만들어서 평소에 하지 않는 기도를 합니다.
생전예수재라는 행사 자체에 너무 마음을 뺏기기보다, 생전예수재라고 특별히 시간을 내서 절에 오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자신에게 차분하게 되물어보기를 바랍니다. 생전예수재란 매일 수행을 더 열심히 하겠다고 자기 자신을 독려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가슴에 새기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