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성제와 팔정도 ⑥ – 집성제2 십이연기의 열두가지 요소

십이연기의 요소를 역관으로 살펴보자. 일체의 괴로움인 노사는 태어남[생]을 조건으로 생긴다. 태어남은 존재[유]를 조건으로 생기는데, 존재는 과보를 만들어내는 힘으로써의 업이자 업의 결과로써 만들어진 존재를 포함한다. 이렇게 업과 업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존재는 집착[취]을 원인으로 생겨난다. 집착 가운데 가장 강한 집착은 내가 있다는 생각에 대한 집착 즉 유신견이며, 이러한 취착은 갈애에서 생겨난다.
집성제는 곧 십이연기이며 십이연기는 곧 갈애이다. 갈애와 십이연기를 모르는 것이 무명이다. 중생은 이러한 무명과 갈애의 끊임없는 수레바퀴 속에서, 그 원인과 결과로써 이 전생과 현생과 미래 생을 만들어내는 윤회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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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법에 따르자면 무수히 많은 조건들이 연결되어 있는데, 십이연기는 많은 조건들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근본적인 조건 하나만을 이야기한다고 지난 시간에 말했습니다. 십이연기에서 앞의 요소는 뒤에 오는 요소의 근본 원인, 즉 가장 강력하게 주도하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대웅전 앞마당에 배롱나무가 아름답게 피어 있는데요. 배롱나무가 빨갛게 꽃 피우기 위해서는 무수한 요소들이 필요합니다. 가장 먼저 씨앗을 심어야 할 것이고, 적절한 때에 비가 오고 햇빛이 비치고 바람도 불어주어야 합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조건들이 작용하여배롱나무에 꽃이 피는데요. 배롱나무 생장의 결과물 역시 하나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빨간색 꽃도 있고 이렇게 저렇게 휘어진 가지도 있고이파리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조건이 모여서 여러 가지 결과가 나온 것이죠. 

그런데 아무리 날씨가 좋고 병충해 예방이 된다 한들, 씨를 뿌리지 않으면 나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경우엔 씨앗이 가장 강력한 근본원인입니다. 근본 원인이 없으면 다른 조건들은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십이연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사가 생만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생이 노사의 가장 근본적인 강력한 조건입니다. 태어나지 않으면 고통을 겪을 일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안 태어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고대 인도 사람들은 이런 상태를 추구했습니다.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는 것, 궁극적으로 해탈하는 것을 말입니다. 

십이연기의 각 요소를 순서대로 보는 것을 순관이라 하고 뒤에서부터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역관이라고 합니다. 또한 일체 번뇌가소멸해가는 과정에 있어 순관이 ‘행’하는 데에 집중하여 괴로움과 번뇌가 어떻게 생기는지를 규명하는 것을 유전문이라 하고,  ‘멸’하는 데에집중하여 따져 들어가는 것을 환멸문이라 합니다. 

역관노사 – –  –  – 

무명(無明) · () · () · 명색(名色) · 육처(六處) · () · () · () · () · () · () · 노사(老死

이어서 십이연기 각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역관의 순서대로 뒤에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노사(老死)는 일체의 괴로움을 통튼 것입니다. 이러한 괴로움은 무엇을 조건으로 생기는가? 생(生)을 조건으로 생깁니다. 생은 태어나는것입니다. 태어나지 않으면 일체의 괴로움이 없습니다. 태어남은 무엇을 조건으로 하는가? 유(有)를 조건으로 생이 일어납니다. 유는 존재하는 것입니다. 

십이연기에서 존재[유]라는 개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의미는 과보를만들어내는 힘으로써의 업(業)입니다. 두 번째 의미는 업의 결과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우리가 우리라고 하는 것, 나 자신, 색수상행식, 오온. 이것이 바로 업의 결과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업과 업의 결과물로써 만들어진 나라는 놈, 유는 취(取)를 원인으로 하여 생겨납니다. 취는 말 그대로 꽉 잡는 것입니다.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집착, 애착 같은 개념입니다. 취도 여러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는데요. 감정이나 생각이 강해질 때 생기는 집착, 의식에 대한 집착, 견해에 대한 집착 등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심한 집착은 내가 있다는 생각에 대한 집착입니다. 이것을 유신견이라 합니다. 몸뚱이가 나라는, 혹은 나라는 놈이 있어서 이 몸뚱이를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에 집착합니다. 

이렇게 취착은 단순히 좋아하는 감정에 애착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견해를 고집하는 것, 습관이나 의식을 고집하는 것, 내가 있다는 생각을 고집하는 것을 통틀어서 취라 말합니다. 

취는 무엇을 조건으로 생기는가? 애(愛), 갈애에서 생겨납니다. 갈애는 사랑이 아닙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구하듯 갈망하는 거예요. 갈애와 취착의 근본 뿌리는 탐욕입니다. 탐욕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이고 싫어하는 것을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 갈애이고, 이런 마음이 강해지면 취착이 됩니다. 때문에 갈애를 조건으로 업이 작동하여 착을 발생시키는 것이지요. 

갈애를 모르는 것이 무명

집성제는 괴로움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밝히는 성스러운 진리입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갈애라고 경전에서는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십이연기에서는 갈애에 해당하는 수, 애, 취 같은 구성요소가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무명이 맨 처음에 등장합니다. 가장 먼저 원인이 되는 것이 무명이므로 괴로움은 무명에서 일어난다고 해야 맞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것은 경전의 다른 구절을 보면 해결할 수 있는 의문입니다. 경전에 ‘십이연기에는 두 개의 출발점이 있다. 무명과 갈애 이 두 가지가 십이연기의 출발점이다.’라고 합니다. 출발점이라 하면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직선의 가장 처음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우리의 삶은 직선으로펼쳐진 것이 아니라 수레바퀴처럼 끝도 없이 굴러간단 말입니다.

이렇게 끝도 없이 돌아가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무명입니다. 경전에서는 무명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명이란 사성제를모르는 것입니다. 사성제를 아는 것은 무엇입니까? 십이연기를 아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십이연기를 모르는 것이 무명입니다. 

무명이라고 하는 것은 무언가 또렷한 실체나 정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러한 십이연기의 굴레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모르는 것 자체가 무명입니다. 무언가를 갈망하고 애착하고 애착이 심하다 못해 다음 생을 낳고 또 갈망하고 집착하는 줄 모르는 것이 무명입니다. 우리가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삶의 이유이자 전부이지만, 깨달은 입장에서는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무명입니다. 십이연기를 모르고 살아가는 모습이지요. 

삼세와 인과

부처님께서 고성제가 집성제인 갈애에서 비롯된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십이연기는 기준에 따라 몇 가지 그룹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시기를 기준으로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리고 원인과 결과가 수레바퀴처럼 맞물려서 끊임없이 빙글빙글 돌아갑니다. 

한 사람이 사리불 존자에게 물었습니다. 

“무명은 무엇을 조건으로 생깁니까?” 

“번뇌를 조건으로 무명이 생긴다.” 

“번뇌는 왜 생깁니까?”

“번뇌의 조건은 무명이다.”

무명의 조건이 번뇌인데 번뇌는 무명때문에 생기다니. 말장난 같지만 이것이 진실입니다. 첫 번째 말하는 무명은 지금의 삶이요 두 번째등장하는 무명은 이전 생의 무명을 말합니다. 바로 앞 생의 무명이 지금의 생을 과보로써 만들어낸 것입니다. 바로 앞 생에서 사성제를 알지못하고 행했던 모든 업에서 금생의 번뇌가 나온다고 사리불 존자가 일러준 것입니다. 

십이연기를 나누는 두 번째 기준은 원인과 결과입니다. 원인과 결과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서 시작도 없는 옛날부터 끝도 없는 미래까지 무시무종으로 돌아갑니다. 삼세양중인과설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원인과 결과가 두 생에 걸쳐서 중복되는 것입니다. 이전 생의 원인의결과가 지금 현생이고, 현생의 원인이 그 다음 생의 결과가 됩니다. 

삼세양중인과설에서 삼세에 걸쳐 반복된다고 하면, 단순히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생각하기 쉽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삼세란 지금 현생을 중심으로 바로 이전생과 바로 이후의 생을 말합니다. 

십이연기를 자세히 보면 삼생이 연결되는 세 개의 열결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행 – 식으로 넘어가는 지점에서 이전생과 현재 생이 연결됩니다. 두 번째, 식(識) · 명색(名色) · 육처(六處) · 촉(觸) · 수(受)까지가 이생의 원인으로 현생에 내가 쌓는 업으로 연결됩니다. 수에서 애로 넘어가는 지점이 또 하나의 연결점이고, 그 다음 유에서 생으로 넘어가는 지점이 현생에서 다음 생으로 넘어가는 또 하나의 연결지점입니다. 

십이연기란 결코 쉬운 이야기가 아닌 만큼, 한 번 들어서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너무 자책하거나 지레 포기하기 마시고, 계속 듣고 자꾸들여다 보기를 바랍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이해가 되는 지점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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