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왕삼매론 4
2.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5.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되면 뜻을 경솔한 데 두게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여러 겁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 하셨느니라.
인연, 세상을 살아가는 키워드
오늘의 키워드는 ‘인연’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언가 하고자하는 일들이 잘 안 되고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곤란, 재앙이 닥쳐오는 경우에 명심해야 할 것으로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제안합니다.
곤란(困難)은 피곤하고 힘든 상태를 말합니다. 왜 피곤하고 힘들까요?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니까 그렇습니다.
지난 시간에 어떤 이야기를 했습니까?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 남이 나에게 순종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자연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런 마음은 중생심에서 비롯됩니다. 오히려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이타심이 자연적인 것이며 이것이 인연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모든 중생들이 서로 관계 맺는 데에서 이와 같은 연기실상의 이치를 잘 알아야 합니다.
원하는 대로 하려고 하면 반드시 곤란이 따릅니다. 오늘의 경구도 같은 맥락입니다. 말장난 같지만 말을 조금만 바꿔보면, 내 뜻대로 모든 것을 하려는 것은 인연을 부정하는 것이고, 인연법을 부정하는 것은 공한 이치에서 굴러가는 세계의 이치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연기실상을 부정하면 세상이 망가진다
연기실상의 세계를 부정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망가져버립니다. 곁다리입니다만 그러한 이치를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습니다. 오직 인간의 욕심으로, 인류의 욕심대로만 살다보니 지구가 병들고 있지 않습니까.
1958년 중국에서는 대약진 운동이 펼쳐집니다. 원래는 공산 혁명 후 중국을 부강한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 펼친 운동이었습니다. 마오쩌둥이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켜 중화인민공화국을 설립하고 사실상 황제로 군림하다보니 20세기는 산업화를 하고 근대화를 해야겠다는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근대화를 하려면 철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공장도 만들고 기계도 만들지요. 하여 중국 전역에 철공소를 만들고 온 나라를 동원시키는데 그게 마음대로 됩니까? 공업용 철은 잘 제련하여 만들어야 하는데 시골 대장간에서 가능한 일이겠느냐 이겁니다. 더구나 온 국민들이 대장간에 매달려 있으니 원래 짓던 농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세상 일이 마음대로 되기를 바란 결과
시찰을 나간 마오쩌둥이 현장을 둘러보니 그나마 있는 곡식들을 참새들이 쪼아 먹고 있더라 이겁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참새를 소탕하라고 지시합니다. 그렇게 참새를 소탕하고 나니 이번에는 벌레가 판을 칩니다. 벌레를 잡아먹는 참새가 없어졌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나마 있는 곡식마저 벌레들이 다 먹어치워버렸지요. 그 결과 중국에 대기근이 일어나 불과 이삼 년 사이에 수천 명의 국민이 기근으로 아사하게 됩니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요? 한 사람이 세상 자신의 생각대로 만들어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일이 쉽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 때 이런 결과를 도출하게 됩니다.
특히나 보통 사람,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야 잘못된 판단을 하더라도 피해를 받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지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결정에 무거운 짐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수월한 일은 없음을, 쉽게쉽게 되는 일은 없음을 인지하고 언제나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일을 풀어가야 합니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장애는 ‘잘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장애를 피해 수월하게 일을 하려고 하면 마음에 또 다른 장애가 생깁니다. 교만하는 마음, 자랑하는 마음입니다.
‘원인 모름’과 ‘기대’가 곤란(困難)을 부른다
왜 세상살이에 곤람함이 따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일까요? 왜 세상 일이 쉽게 풀리지 않고 곤란하고 당황스러운 역경으로 다가오는 것일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그 일의 이유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모르면 재앙으로 다가옵니다. 예를 들어 수확을 앞둔 농부가 태풍 피해를 받았을 때, 과거에는 말 그대로 천재지변이며 재앙이었지만 현대에는 미리 알고 대비하여 피해를 최소화합니다. 태풍이 왜 생겨나는지 이유를 모를 때에는 그저 하늘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러나 태풍이 왜 일어나는지, 그 경로가 어떠한지를 알고 있다면 손 놓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비를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농사의 결실이 좋을 것이라 예상하면서 여러 계획을 세웠는데 수확 직전에 태풍이 와서 일 년 농사를 망쳐버렸다면 그야말로 허무하고 허탈한 재앙이 될 것입니다. 왜 허무합니까? 내가 원하는 수확량이 있었는데 원하는 대로 거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바가 없다면, 혹은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음을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였다면 앞의 경우처럼 엄청난 청천벽력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관게에서 인연법을 길어올리다
인연법을 모르고 살면 나에게 찾아오는 예기치 않은 일들은 재앙일 것이요, 인연법을 알고 살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인연법이란 무엇일까요? 발우공양을 할 때 외는 오관게를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는 받기고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을 버리고
몸을 보호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내 앞에 있는 음식이 어떤 인연으로 나에게 왔는가를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자연과 중생들의 노고가 음식 한 그릇에 담겨있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사람이 아닌 식물, 비와 바람이 이 그릇에 담겨있습니다. 그러니 한 그릇의 공양을 받을 때에도 깨달음을 얻기 위한 약으로써 알고, 이토록 무거운 공덕을 받들겠다는 서원인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촘촘하고 깊은 인연의 사슬 속에서 살고 있는지를 항상 명심하라는 뜻이 오관게 안에 담겨 있습니다.
무언가를 할 때 변수가 나 하나밖에 없다면 세상에 어려울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고려해야할 변수는 조금 과장하자면 70억 지구 인구수 만큼입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조건들이 있으니 모든 조건을 한결같이 챙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것이 당연하지요.
원하고 기대하면 괴로움과 슬픔이 온다
부처님 당시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 수행승이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재가자의 집으로 탁발을 나갈 때 ‘사람들은 나에게 보시를 해야지 거절해서는 안 된다, 많이 주어야지 조금 주어서는 안 된다, 좋은 것을 주어야지 나쁜 것을 주어서는 안 된다, 서둘러서 주어야지 머뭇거리며 주어서는 안 된다, 공손하게 주어야지 공손하지 않게 주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탁발을 나가면 어떻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은 조금 주고 많이 주지 않으며, 나쁜 것을 주고 좋은 것을 주지 않으며, 머뭇거리면서 주고 서둘러서 주지 않으며, 공손하지 않게 주고 공손하게 주지 않는다. 그러한 마음으로 탁발을 나간다면 그는 괴로움과 슬픔을 맛보게 될 것이다.”
보왕삼매론에서 말하는 바와 비슷하지요. 내가 원하는 대로 주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대하는 바대로 이뤄지지 않으므로 괴로움과 슬픔을 맛보게 된다고 합니다. 욕심을 내지 말고, 주면 주는 대로 안 주면 안 주는 대로, 나쁜 음식을 주면 그것대로, 머뭇거리면서 주면 그 역시 그것대로 받아야 합니다.
내가 욕심을 내고 남에게 무언가를 바라면 오히려 나에게는 그 반대의 것들이 돌아옵니다. 욕심을 내지 말고 인연이 나에게 다가오는 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수행입니다. 인연법을 이야기할 때 오관게와 탁발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해 봄직합니다. 인연법의 이치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 이야기에서 길어올려야 합니다.
인연을 핑계삼는 잘못
역경과 곤란이 닥쳐오더라도 인연법대로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를 자칫 이렇게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다 인연대로 흘러가는 것이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일이 잘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인연법이 원래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곤란이 닥치면 가장 먼저 좌절하고 실망합니다. 괴로움과 번뇌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곤란을 어떻게든 쉽게 해결하려고 합니다. 신을 믿는다던가 점을 보러 간다던가 절에 와서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아무런 노력 없이 인연법을 들먹이며 합리화를 하고 내 밖의 어떤 대상에게 쉽게 의탁해버립니다.
인연(因緣)은 인과 연을 합친 말입니다. 인은 내가 의도적으로 주체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말하고 연은 주변의 상황을 말합니다. 인은 씨앗과 같고 연은 씨앗이 나라나는 토양입니다. 인과 연이 합쳐져야지 인과 연이 정상적으로 작동합니다. 인연법을 잘 표현하고 있는 말 중 하나로 ‘진인사대천명’을 들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자칫 인연을 잘 못 해석하면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순응합니다. 나에게 왔다가 사라지는 인연 중 가장 큰 조건은 바로 스스로가 노력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장 중요한 조건을 빼놓고 주변 상황이나 외적인 조건만 따져서는 안 됩니다.
곤란, 인연의 이치 따라 왔다 가는 것
곤란은 인연의 이치에 따라 나에게 왔다가 가는 것이지, 그것을 재앙이고 역경이라고 생각하면 생각 그대로 재앙이 되는 것입니다. 전문가는 해당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어떤 문제 상황에 대한 여러 가지 대책을 가진 사람입니다. 누구나 주체적으로 노력하고 준비하고 계획하면 자기 분야에서는 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아무런 준비가 없었을 때 재앙이 닥치는 것과 나름대로 계획하고 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뜻한 바대로 되지 않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현재의 재앙이 재앙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대책을 위한 발판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