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경문 해설 6

사바세계 중생들을 움직이는 힘은 욕망이다. 욕망에서 모든 행이 비롯된다. 욕망은 나쁜 것일까? 그릇된 것일까?
부처님의 가르침은 욕망을 제거하자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은 욕망에 반하는 고행 수행의 극단까지 체험했으나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다. 욕망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깨달음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욕망을 부정하는 것도, 욕망에 충실하는 것도 아니다. 중도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중도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매순간 깨어있어 나 자신을 살펴야 한다.
자경문에서는 본능적인 욕망을 다스리고 행동가지 하나하나를 성찰하는 지혜를 갖추기를 독려한다.

#기도, 깨달음, 수행, 알아차림

다섯째, 삼경 외에는 잠을 자지 말지니라.

아득한 옛날부터 수행의 장애에는 수마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하루 종일 정신을 맑게 차려 화두를 꽉 붙잡아 흔들리지 아니하며,

앉고 눕고 가고 오는 모든 행동 중에도 세밀하고 세밀하게 마음 광명을 돌이켜서 스스로를 볼지니라.

한평생을 헛되이 보내면 두고두고 한이 되니, 모든 것은 덧없어 잠깐임을 사무치게 알아서

나날이 놀랍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공부할 것이니라.

사람의 목숨도 순간이라 참으로 시간 시간을 보증할 수 없으니

만약 조사의 관문을 뚫지 못한다면 어찌 편안히 잠잘 수 있으리오.

송하여 이르되 수마가 휘감으면 마음 달 흐려지고 길 가는 나그네는 앞길을 모른다네.

지혜의 날랜 검으로 수마를 쫓아내면 구름은 간데없고 지혜광명 밝아지리.

본능적인 욕심을 다스리라

“잠을 줄여라.” “먹는 것을 줄여라.” “욕심을 내지 말라.” “말을 많이 하지 말라.” 자경문에서는 이처럼 하지 말라는 것이 많습니다. 이것들은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본능입니다. 인간의 대표적인 본능은 식욕, 수면욕, 성욕입니다. 명예욕이나 재물욕과 같은 물욕도 있고, 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소유욕 역시도 본능에 가까운 욕심입니다. 이런 본능을 잘 다스리라는 것이 자경문에 일관되게 흐르는 핵심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사바세계이며 사바세계 중생들을 움직이는 근본 힘은 욕망입니다. 그런데 자경문에서 여러 욕심을 줄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일찍이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고행을 했습니다. 고행은 괴로운 행입니다. 욕심대로만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욕심대로 하지 않고 욕심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 괴롭습니다. 예를 들어 잠을 자야 하는데 잠을 자지 않는 것, 편하게 앉아있고 싶은데 계속 서있는 것, 먹고 싶은데 먹지 않고 단식을 하는 것이 고행입니다.

고대 인도인들은 욕망에 반하는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현대에도 이러한 고행 수행의 전통을 잇고 있는 수행자들이 인도에는 있습니다.)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수행자도 당대의 다른 수행자들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고행을 한 것이지요. 고타마 싯다르타는 고행의 극단까지 체험한 후에 고행을 통해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욕망의 극단이나 고행의 극단에 깨달음은 없다

익히 알려진 석가모니 부처님의 고행상을 보면 알 수 있듯, 뼈만 남도록 치열하게 고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욕망을 제거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욕망은 부정할 수도, 제거할 수도 없습니다.

현대 우리사회에 보편화된 정서는 욕망을 인정하고 나아가서 욕망에 충실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올림픽에 참여하거나 관전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어떻게 변화했습니까? 과거에는 무조건 금메달에 집착했습니다. 메달권이 아니면 목표로 삼지도 않았고 그 결과를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요즘은 메달의 색깔이 어떻던, 또한 꼭 메달을 따지 못해도 참가 자체를 즐깁니다. 욕망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여 금욕적으로 사는 대신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자는 것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또 한편으로 실제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일상생활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 삶을 ‘욕망에 충실한 삶’이라고 포장하기도 합니다. 욕망에 충실한 것도 올바른 자세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자가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즐거워하되 방탕에 빠지지는 말고 슬퍼하되 몸과 마음이 상할 정도로 슬퍼하지는 말라고 말입니다. 기뻐하더라도 그 즐거움을 탐닉하지 말고 슬퍼하더라도 그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지는 않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욕망을 부정해서도 안 되지만 욕망이 가는 대로 따라가서도 안 됩니다. 결국은 중용의 길을 가야 한다는 말이지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중도, 환한 빛을 비추듯 자신을 성찰하는 것

자경문에서는 이렇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앉고 눕고 가고 오는 모든 행동을 하는 중에 환한 빛을 비추듯 세밀하게 보라고 말입니다. 어스름한 빛과 달리 환한 광명의 빛은 대상을 더욱 또렷하게 나타냅니다. 이렇게 광명을 돌이켜서 자기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욕망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욕망에 충실한 것도 아닙니다. 중도의 길을 가야 합니다. 스스로를 환하게 살펴볼 때 욕망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나날이 놀랍고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야 매순간 자신을 살필 수 있습니다. 사람 목숨이 한순간이라는 절박함이 있어야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지를 잘 살필 수 있습니다.

잠자는 것이 수행에 도움이 방해가 되니 수마라고 표현합니다. 수마가 자신을 휘감으면 마음이 흐리멍덩해집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의 날랜 검으로 수마를 쫓아내라는 구절은 무슨 뜻일까요? 지혜롭다는 것은 지식이 많다는 말과는 다릅니다. 사람의 목숨이 한순간이므로 놀랍고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지혜로운 마음입니다. 매순간 자기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이렇게 지혜로써 수마를 쫓아내면 구름은 간데없고 지혜광명이 밝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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