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영가전에

영가전에 5

백중맞이 <영가전에> 특강 5

맺고쌓은 모든감정 가시는길 짐되오니

염불하는 인연으로 남김없이 놓으소서

미웠던일 용서하고 탐욕심을 버려야만

청청하신 마음으로 불국정토 가시리라

본마음은 고요하여 옛과지금 없다하니

삿된마음 멀리하고 미혹함을 벗어나야

반야지혜 이루시고 왕생극락 하오리라

부처님이 관밖으로 양쪽발을 보이셨고

달마대사 총령으로 짚신한짝 갖고갔네

이와같은 높은도리 영가님이 깨달으면

생과사를 넘었거늘 그무엇을 슬퍼하랴

뜬구름이 모였다가 흩어짐이 인연이듯

중생들의 생과사도 인연따라 나타나니

좋은 인연 간직하고 나쁜인연 버리시면

이다음에 태어날때 좋은인연 만나리라

사대육신 흩어지고 업식만을 가져가니

탐욕심을 버리시고 미움또한 거두시며

사견마져 버리시어 청정해진 마음으로

부처님의 품에안겨 왕생극락 하옵소서

이생을 떠날 때 발목을 잡는 것, 마음

영가님이 이생의 몸을 버리고 다음 생으로 갈 때 무엇이 짐이 될까요? 육신이 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맺고 쌓은 모든 감정 즉 마음이 짐이 됩니다. 돈이나 명예, 권력 같은 것들이 다음 생으로 갈 때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고 이생을 살면서 맺고 쌓은 온갖 감정들이 짐이 됩니다.

이런 감정들을 다 놓기 위해서는 염불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염불하는 것이 원인이 되고 조건이 되어서 맺고 쌓은 모든 것을 다 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염불이라고 하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정근하는 것만 염불이라고 생각하는데, <영가전에> 같은 내용을 독송하는 것도 넓은 의미의 염불입니다.

<영가전에>를 읽을 때 내 안에 있는 맺고 쌓인 감정들을 다 털어내겠다는 마음으로 염불을 하면 스스로도 다음 생으로 갈 때 마음이 짐이 되지 않고, 내 염불을 듣는 영가님들의 짐도 덜어내는 인연을 지어줄 수 있습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다음 생으로 갈 때 발목을 잡는 것은 육신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청정한 마음이 곧 불국정토

한편 불국정토에 가려면 마음이 청정해야 합니다. 마음이 청정하지 못하면 불국정토에 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청정한 마음이 곧 불국정토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세계를 청정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청정한 마음으로 생활하면 그렇게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불국정토입니다.

그런데 늘 누구와 싸우고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이 세계는 아수라의 세계에 불과합니다. 아수라는 신(神)이지만 참는 마음이 없어서 늘 싸우는 신이에요. 내가 참지 못하고 맨날천날 싸우고 살면 이 세계는 별 수 없이 아수라의 세계로 전락하고 맙니다.

불국정토에 가려면 어마어마하게 성능이 좋은 우주선을 타고 갈 것이 아니라, 다만 내 마음을 청정하게 하면 됩니다. 청정한 마음일 때 그곳이 바로 불국정토이며, 같은 세계라도 마음이 탐욕심으로 가득 찬 사람에게는 욕계가 되는 것이지요.

마음이 청정하려면 탐진치 삼독을 버려야

마음이 청정하려면 두 가지를 해야 합니다. 첫째, 미웠던 일을 용서하고 둘째, 탐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탐진치 세 가지 중에서 탐심과 진심을 버려야 청정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늘 자신도 모르게 탐욕과 화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에 휩싸여 있지만, 과연 원래 마음이 태어날 때부터 삼독심에 젖어 있었을까요? 원래 내 마음이 생기기를 삼독심으로 태어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본래 마음은 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은 마음이 없는 평온한 상태이며 고요한 상태입니다. 노력하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고요한 상태란 마음이 들뜬 상태도 아니요 마음이 괴롭고 힘든 상태도 아닙니다. 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상태, 말하자면 중립적인 상태가 고요한 상태입나다.

따로 ‘고요한 느낌’이라는 게 아니라 즐겁지도 괴롭지도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상태가 고요한 마음입니다. 고요한 마음 자체를 열심히 수행하고 참선하고 삼매에 깊이 들었을 때 가지는 특수한 경지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평상시에 마음을 잘 다스리면 언제든 고요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고요한 마음을 1분 1초라도 유지하기가 쉽지 않지요. 사람의 마음은 항상 느낌과 함께 일어났다 사라집니다.

앞서 청정한 마음으로 불국정토에 가려면 미웠던 일을 용서하고 탐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탐진치 삼독 중에서 탐심(貪心)과 진심(嗔心)이 이에 해당합니다.

불국토에 가려면 삿되고 미혹한 마음을 버려야

다음 구절에서는 삼독심 중 마지막 하나, 치심(癡心) 즉 어리석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반야지혜를 이룬 마음이 청정한 마음이고 반야지혜를 이룬 마음으로 살아가는 세상이 극락세상이고 그 세상이 불국정토입니다. 청정한 마음으로 불국정토에 가는 것과 반야지혜를 이루어서 왕생극락하는 것은 같은 말입니다. 앞에서는 탐심과 진심을 버리라고 이야기하고 이번에는 어리석은 마음 즉 치심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어리석은 마음이란 삿된 마음입니다. 미혹한 마음입니다. ‘삿되다[邪]’라는 말을 우리말로 풀면 ‘어긋난 것’이다. 이쪽으로 가야 하는데 저쪽으로 가는 것. 비껴난 것이죠. 가야 하는 길이 정도(正道)라면 삿된 길은 옆으로 새는 길입니다. 어리석은 마음은 반야지혜로 가는 길에서 삐끗한 마음입니다.

한편 ‘미혹(迷惑)하다’라는 말은 ‘헤맨다’, ‘헷갈린다’라는 뜻이다. 헷갈리는 것은 잘 모르는 상태입니다. 잘 모르면 우왕좌왕합니다. 미로와 같습니다. 따라서 미혹은 뭔가를 잘 몰라서 헤매는 상태입니다. 미혹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긋나서 가는 삿된 마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어리석은 마음에서 탐욕과 화가 생긴다

어리석은 마음은 다른 말로 밝지 못한 마음, 무명(無明)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밝지 못하다는 것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어리석어서 마구 헤매다보니까 돌부리에 발이 걸려서 넘어지고 머리가 깨지고 화가 납니다. 하루 종일 헤매다보니 배가 너무 고픈데 사방천지를 둘러보아도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먹을 것에 대한 욕심이 생깁니다.

탐심과 진심은 바로 치심(어리석음)에서 나옵니다. 치심은 반야지혜를 올바로 알지 못하는 마음이고 옆으로 삐끗한 마음입니다. 이 마음에서 욕심내고 화내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제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았습니다. 내 마음이 반야지혜를, 부처님이 말한 올바른 진리를 몰라서 삼독심으로 괴롭고 힘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삼독심만 버리면 반야지혜를 이루는 것이고 마음이 청정해지는 것이고 이 세상이 불국정토이며 극락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성인(聖人)이 내보이신 반야지혜의 모습

원인을 알았으면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야겠지요. 다음 구절에서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어떻게 반야지혜의 모습을 보이셨을까요? 두 가지 일화로 표현하고 있다. 부처님은 관 밖으로 양쪽 발을 내보이셨고, 달마대사는 총령을 넘어갈 때 짚신 한 짝을 가져가는 모습으로 반야지혜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첫 번째 일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부처님 열반 당시에 당신의 상수제자인 마하가섭 존자가 다비가 끝나도록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부처님은 마하가섭 존자가 올 때까지 신통을 발휘하여 관 밖으로 발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마하가섭 존자가 다비장에 도착하여 부처님의 발에 예를 표하자 그제야 모든 의식을 마칠 수 있었지요.

두 번째 일화는 달마대사의 일화입니다. 인도의 왕자였던 달마대사는 중국으로 넘어와 선의 도리를 전하고 동굴에서 참선수행을 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이 달마대사가 돌아가신 자리를 살펴보니 관 안에 달마대사는 없고 짚신 한 짝만 놓여있었습니다.

후에 한 스님이 인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총령을 넘는데 험상궂은 사람이 짚신 한 짝을 지팡이에 달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원래 인도의 왕자로 아주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던 달마대사가 육신을 버리고 산적의 몸을 빌려 인도로 돌아가는 길을 목격한 것입니다.

이런 일화들은 이심전심의 도리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불법은 지금처럼 말로,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바로 전하는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핵심은 우리나 영가님 역시 부처님이 발견한 진리를 깨달으면 생과 사를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생과 사를 넘어선다는 것은 죽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나고 죽는 것에 끄달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고 죽는 것에 안달복달하거나 애달파하지 않는 것입니다. 생사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슬퍼하지 않습니다.

윤회하는 것은 식(識), 아는 마음

마지막 구절에서는 ‘사대육신 흩어지고 업식만을 가져간다’고 말합니다. 업식은 마음입니다. 기쁘고 슬프고 화내고 탐내는 기타등등의 마음이 다 같이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근본적인 마음인 ‘아는 마음[識]’이 윤회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윤회할 때 쓸데없는 삼독심이 붙어있으면 다음 생도 삼독심으로 살아가게 되므로 그 세계는 지옥세계, 아수라세계가 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윤회하는 식을 청정하게 닦는 것입니다.

이번 구절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극락왕생하는 방법은 청정한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청정한 마음을 가지는 일은 반야지혜를 이루는 일입니다. 반야지혜를 이루는 것은 삼독심을 버리는 것이다. 삼독심을 버리면 극락왕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극락세계란, 청정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바로 그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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