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당신의 나한님은 누구십니까?

증심사 오백대재와 나한님

증심사는 매년 오백전의 나한님들과 인연을 맺고 그 인연을 잘 이어가겠다고 발원하는 오백나한대재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오백대재 회향을 맞이하여 올해 오백대재의 캐치프레이즈인 ‘당신의 나한님은 누구십니까?’를 주제로 법문하겠습니다.

오백전에 계신 나한님들은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아라한과를 증득하신 분들입니다. 부처님 당시에 깨달은 아라한입니다. 깨달은 분과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부처님께서는 <아함경> 우바새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제자가 질문하기를 “재가자가 수다원과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고, 부처님께서 이에 대한 대답을 하는 중에 이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여래를 반연하여 마음이 편안하고 기쁨을 얻어 만일 나쁜 욕심이 있으면 곧 멸할 수 있고, 마음 가운데 선하지 않은 더러움과 싫음 괴로움과 걱정 그리고 슬픔이 있으면 또한 멸할 수 있다. 그리고 법에 반연하고 승가에 반연해서도 이와 같다.”

깨달은 이와 반연한다는 말은 인연을 맺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연을 맺는 이익에 대해서 깨달은 이와 인연을 맺으면 내 안에 있는 나쁜 마음이 없어지고, 선하지 않은 싫음 걱정 슬픔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 또한 멸해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증심사 오백대재는 이런 부처님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 신도 한분 한분이 나한님들과 인연을 쭉 이어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것에 다름 아닙니다.

재가가자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 삼보와 오계

우바새경에서 부처님은 어떻게 하면 재가자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답으로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오계를 지키고 삼보를 항상 생각하라. 그러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깨달은 이와 인연을 가지는 것은 넓게 보면 삼보를 항상 마음속에 두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삼보는 여러분이 잘 아시듯 불보, 법보, 승보의 불법승을 말합니다. 이 세 가지를 항상 마음속에 생각하면 재가자들도 수다원과에 이를 수 있고, 일곱 생을 지나면 반드시 완전한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삼보를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깨달은 이와 인연을 맺고, 그 인연을 중히 여기고, 항상 그 인연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가자들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를 증심사 오백대재에 대입하여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오백대재를 봉행하여 나한님과 일 년 동안 인연을 맺는 것의 의미는 첫째, 삼보를 항상 생각하며 오계를 지킨다는 다짐입니다. 오계를 지키는 것과 삼보를 생각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부처님은 재가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오계만 지키라고 하지도 않았고 삼보만 생각하라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두 가지는 같이 갑니다.

오계를 잘 지키면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 항상 부처님이 계시는 것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나와 함께하는 것이고 내가 있는 곳이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집단의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오계를 지키면 자연스럽게 삼보와 함께하게 되고, 삼보를 항상 생각하는 마음이 간절하면 자연스럽게 오계를 지키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 두 가지가 떼려야 뗄 수 없을 때 재가자들은 반드시 수다원과에 이르고 일곱 생이 지나면 반드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열심히 수행하겠다는 나한님과의 약속

두 번째 우리가 나한님과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곧 열심히 수행을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앞서 말한 오계를 지키고 삼보를 항상 생각하는 자체가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며, 깨닫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수행을 제대로 하려면 저처럼 출가하여 절에서 스님들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재가자들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문에 대해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어떤 비구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승가에서 홀로 떨어져나와 열심히 수행을 했습니다. 주위에서는 이를 우려하면서 부처님께 묻습니다. “저 비구처럼 승가에서 홀로 떨어져 수행을 해도 괜찮은 겁니까?” 부처님께서 답합니다. “과거는 버리고 미래는 바라지 않으며 현재는 자신의 욕망과 탐애를 모두 버리는 마음 자세로 수행한다면 홀로 수행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여러분들은 저처럼 출가한 것도 아니고 시민선방에서 일 년 365일 내내 수행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사회생활을 해야 하고 가정을 지켜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합니다. 그런 와중에 수행하는 마음이야말로 수행자가 홀로 수행할 때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과 같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상생활을 하는 와중에 과거에 대해 후회하지 말고, 미래에 대해 바라거나 불안해하지도 말고, 지금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내 가족, 내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살면 그게 바로 수행인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나를 독려하고 부추기는 것이 바로 오늘 나와 인연을 맺은 나한님입니다. 오늘 오백대재의 두 번째 의미는 내가 비록 출가는 하지 않았더라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수행을 하겠다는 마음을 간직하는 데에 있습니다.

오계, 청정한 삶을 살겠다는 다짐

오백대재의 세 번째 의미는 청정한 삶을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재가자가 깨닫기 위해서는 오계를 지키고 삼보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고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오계를 지킨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오계를 지킨다는 것은 청정하게 산다는 뜻입니다. 흔히 청정하게 산다는 것을 많은 것을 욕심내지 않고 적게 가지고 삿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조금 더 넓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청정하게 살려고 할 때는 그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부처님은 청정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괴로움을 두루 알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욕계입니다. 욕계에서 모든 것은 다 고통입니다. 욕계에서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변하는 모든 것은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올바로 직시하는 것이 바로 청정한 삶입니다. 괴로움을 직시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매 순간 깨어있어야 하고, 매 순간 깨어서 성찰하는 삶은 곧 수행하는 삶입니다. 나한님과 내가 인연을 맺겠다고 하는 것의 세 번째 의미는 이렇듯 청정한 삶을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하심과 공경

네 번째, 나한님과 인연을 맺는 것은 내 자신을 낮추고 부처님을 공경하겠다는 마음의 발로입니다.

연로하신 부처님께서 자제들을 모아놓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넉 달 뒤에 열반에 들겠다.” 제자들 중 아라한과를 증득한 제자들은 그 말에 동요하지 않았지만 아직 미처 수다원과에 들어가지 못한 제자들은 슬프고 비통하며 마음에 근심걱정이 가득 찹니다.

그 중에는 띠사라는 비구가 있었는데 아직 깨닫지 못한 비구입니다. 그는 이제 부처님을 뵐 수 있는 시간이 네 달밖에 남지 않았으니 네 달 안에 무슨 일이 있어도 깨달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띠사 비구는 먹을 때고, 걸을 때도, 잘 때도, 무엇을 할 때도 열심히 수행했습니다. 그가 승단과 사람들과 온통 단절한 채 열심히 수행에만 몰두하자 제자들 사이에서 나쁜 말이 돕니다. 띠사 비구는 사람을 무시하고 너무나 불경하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부처님께 고자질을 하고 부처님은 띠사 비구를 불러 그 연유를 묻습니다. 비구가 승단과 단절하여 홀로 수행에 매진하는 이유를 설명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게 꽃과 향을 올리며 존경을 표하는 사람은 나를 진실로 존경하는 사람이 아니다. 높고 낮은 법을 얻기 위해 열심히 수행하는 사람이 나를 진실로 존경하는 사람이다.”

<법구경>의 이야기입니다. 부처님은 이 때 띠사 비구에게 <법구경> 266번째 게송을 설합니다.

벗어남의 맛을 알고 내려놓음의 맛을 아는 이는 근심과 악행에서 벗어나 진리의 기쁨을 만끽한다.

높고 낮은 법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수행을 하는 것이야말로 당신을 진정으로 존경하는 것이라고 부처님이 말했듯, 우리가 열심히 수행하는 것은 부처님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길입니다. 이 시점에서 여러분 스스로 절에 와서 기도를 올리고 등을 켤 때의 마음가짐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해 부처님 전에 복을 비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수행해서 내 안에 있는 고통을 없애겠다는 마음으로 등을 켜고 기도를 하는 것이 올바르게 부처님을 공경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인연 맺은 나한님들과 함께 하는 일상

저도 오백대재를 입재하면서 한 나한님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천안존 존자입니다. 당시에 정기적으로 가야 하는 안과를 못 가서 눈에 탈이 나는 게 아닌가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오백대재에 접수를 하자 희한하게도 천안존 존자님과 인연을 맺게 된 것입니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미혹한 중생이기에 무언가 운명적인 인연이 있는가 싶었습니다.

그런 덕일까요? 오백대재에 입재를 하고 나서는 벌컥 화를 내다가도 멈추게 되고 식탐을 부리다가고 스스로 그치게 되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 천안존 존자님이 자리를 잡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시작은 우연의 일치였지만 이렇게 일상 속에서 천안존 존자님이 내 모습 하나하나를 돌아보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오백재대를 통해 나만의 존자님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앞으로 일 년간 그 존자님들과 함께 일어나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생활하고 함께 길을 걷고 함께 잠이 드는 생활을 하시면 장담하건데 일 년 뒤에는 훨씬 더 일취월장한 불자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