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몰랐던 나의 나쁜 습관
며칠 전 증심사 유튜브에 <스님과 차 한 잔> 두 번째 에피소드를 올렸습니다. 촬영을 제 방 차 마시는 공간에서 했는데요. 영상을 보니까 제가 앉아서 몸을 계속 까닥까닥 하고 있는 겁니다. 할 때는 몰랐는데 영상으로 보니까 바로 눈에 들어오는 행동이었습니다.나부터가 저런 잘못된 습관을 행하는데 신도님들에게 좋은 습관을 들이라고 법문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반성을 했습니다.
가장 큰 의문은 나는 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 몰랐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의문은 왜 내가 가지고자 하는 좋은 습관 즉 내가 희망하는 모습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이런 의문을 바탕으로 생각하면 좋은 습관을 들인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행동을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어떤 행동을 바꾸려면 내가 지금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비유를 들자면, 그림을 그릴 때 하얀 백지가 있다면 그냥 그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미 다른 그림이 그려진 종이에 다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기존의 그림들을 먼저 지워야 합니다. 지우기 위해서는 그려진 그림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기존의 그림이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그림을 덧칠하면 이도저도 아닌 이상한 그림이 되는 거죠.
우리가 특히 어른이 된 후에 담배를 끊는다던가 살을 뺀다던가 화를 덜 낸다던가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이유는요. 어른들은 이미 하얀 백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려진 무언가를 잘 살펴보고 깨끗하게 지우고 나서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우리는 사전 작업을 하지 않고 그냥 담배를 끊은 내 모습, 살이 빠진 내 모습을 그리려고 하는 거예요. 그림은 이도저도 아니게 되고 결국 흥미를 잃게 됩니다.
너무나 잘 보이는 남의 나쁜 습관
얼마전에 용산역에서 KTX 열차를 타고 광주로 내려올 일이 있었습니다. 제 옆자리 어떤 여자분이 탔는데, 타자마자 코를 훌쩍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밖에서 막 들어와서 추워서 그러는 거겠지 생각했는데, 30초 간격으로 계속 코를 훌쩍였습니다. 그게 10분정도 지나니까 엄청 신경이 쓰였습니다. 나중에는 짜증도 같이 나는 거예요. 마음 같으면 휴지를 건네주면서 “밖에 나가 코를 한 번 풀고오시지요.”라고 말하고 싶은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게다가 스님이 튀는 행동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속으로는 짜증이 확 올라오는 것을 참았습니다.
그 일을 겪고 나서 다음 날 새벽에 혼자 생각을 했습니다. 콧물 훌쩍이는 소리에 나는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짜증이 나고 화가 났는데,왜 그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았을까? 왜 그랬을까? 사실 저도 찬바람을 쐬고 들어오면 몇 분 정도는 코를 훌쩍거리거든요. 그런데 나는 내가 코를 훌쩍거리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아마 그 보살님도 본인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옆에 있는 나는 왜 깜짝 놀라고 화가 났을까?
왜냐하면요, 내가 훌쩍거리는 게 아니니까 그렇습니다. 이게 큰 차이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눈 코 귀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바깥에 있는 세상을 보고 듣고 냄새 맡는 역할을 한다고 흔히 생각합니다. 그런데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에요. 바깥의 것만 인식하는 게 아니라 내 눈은 내 몸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을 봅니다. 내 귀는 내가 내는 소리를 다 듣습니다. 내 코는 내가 나에게서 풍기는 냄새를 다 맡습니다.
내것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병
그런데 내 바깥에 있는 것만 보고 듣고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잘못된 생각을 할까요? 어떻게 보면 우리 사람들은 태어날때부터 일종의 지병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눈을 멀쩡하게 뜨고 있고 귀도 코도 멀쩡하게 뚫려있는데, 어떤 소리는 듣고 어떤 소리는 못듣습니다. 자기가 내는 소리는 안 들리고 옆에서 들을 때는 그게 엄청 신경이 쓰이는 겁니다. 이게 우리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병입니다. 내 생각, 내 몸, 내 말, 내 행동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해요. 이 병의 이름을 불교에서는 무명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이 세상 모든 것, 나라고 생각하는 것까지 다 포함해서 모든 것들을 인지합니다. 어떤 느낌이나 감정, 슬프다 화난다 질투심이난다는 감정들을 나만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그런 감정들을 느낍니다. 기쁘고 슬프고 미워합니다. 감정이라는 것은 내 몸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신경 쪽에서 캐치하는 겁니다. 단지 내 몸에서 일어나는 신호를 나 자신만 캐치할 수 있는 것이지, 누구나 다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신호를 캐치할 수 있습니다. 나만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이걸 먼저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이런 겁니다. 나는 내 몸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사람은 다 똑같습니다. 내 몸이나 남의 몸이나 다를 게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의 몸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느끼지를 합니다. 왜? 나라는 생각에 빠져서 그렇습니다. 이게 우리가 가지는 제일 큰 병입니다. 이런 병 때문에 기차 안에서의 일이 생긴 겁니다. 똑같은 소리에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고 어떤 사람은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어떤 사람은 못 듣고 어떤 사람은 매우 예민하게 듣기 때문이에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여러분. 과연 좋은 습관을 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은 현재 내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나라는 도화지를 깨끗하게 만들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깨끗하게 만들려면 우선은 어떻게 생겼는지를 봐야 해요. 문제는 이 보는 것입니다.
“나쁜 습관은 버리고 좋은 습관을 가지고 싶다.”는 말을 하죠? 벌써 내가 취사 선택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나쁜 것, 저것은 좋은 것.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은 더 발전시켜야 해. 이렇게 취사 선택을 하게 되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도 영향을 줍니다. 우리 사람은 좋은 것만 보고 싶고,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더 크게 보지 않습니까? 즉 이미 머릿속에서 취사선택이 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하는 행동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겁니다.
내 자신을 냉정하게 관찰하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있는 그대로를 보아야 합니다. 좋다 나쁘다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첫째, 그것을 어떻게 할 지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미리서 ‘이런 건 고쳐야지.’ 하고 자신을 들여다 보면 이미 마음이 한쪽으로 몰려있단 겁니다.
좋은 습관을 가지려고 할 때 제일 중요한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영상 속 나의 모습에 놀란 것은 평상시에는 자기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다가 영상에 나오는 모습을 보고서야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으로 자기 자신을객관적으로, 그리고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습관은 둘째치고 변화조차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내가 아님을 잘 본다는 것
불자들이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내 몸은 내 몸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고 할만한 게 없다, 이런 무아사상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사실은 분명하게 머리속에 새겨놔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내 몸이 하고있는 행동, 말하는 것,말을 하면서 취하는 제스처 등등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객관적으로 봐야 그 다음에 내 자신이 변화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집니다.
바뀌고 싶다는 희망에만 마음이 가있으면 바꾸는 게 힘듭니다. 반드시 나라고 하는 도화지를 꺠끗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약을 하자면 내 몸은 내가 아님을 알고, 나 자신을 매 순간 있는 그대로 관찰합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좋은 습관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