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와 듣기
듣기와 말하기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행하는 일입니다. 세 살 먹은 아이들도 할 줄 알지만 팔십 먹은 어르신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눈도 두 개, 귀도 두 개, 입은 하나입니다. 눈은 두 개인데 하는 일은 하나입니다. 보는 것이죠. 귀도 두 개인데 하는 일은 듣는 것 하나입니다. 입은 숨쉬고 말하고 먹고 가끔은 연애도 하는 등 오만 걸 다 합니다. 분수를 모릅니다.
일상생활에서 듣기와 말하기는 참 중요한 일입니다. 일제강점기에 국민학교에 다니지 않는 이상 학교에 처음 가면 하는 일이 받아쓰기와 읽기입니다. 받아쓰기는 얼마나 잘 듣느냐를 테스트하는 것이고 읽기는 읽는 능력을 보는 것입니다.
참 중요한 일이면서 듣기와 말하기만 잘 하면 부처님 같이 깨달은 사람은 되지 못해도 최소한 현자 즉 지혜로운 사람은 될 수 있습니다. 비록 마음속의 번뇌를 완전히 털어내지는 못하더라도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현명하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먼저 듣는 것을 먼저 살펴봅시다. 자투리 시간에 <유퀴즈>라고 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거기에 인질 협상 전문가가 출연하여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았는데요. 그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인질범과 협상을 하는 데에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세 가지가 있답니다. 첫 번째는 “진정하세요.” 두 번째는 “이해합니다.” 세 번째는 “나오세요.”랍니다.
협상가의 세 가지 원칙
인질극을 벌이는 범죄자가 어떤 심리상태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건데요. 인질범은 대게 억울함을 호소할 길이 없어서 일반적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극단적으로 인질을 붙잡음으로써 평상시라면 절대 없었을 막강한 권력이 생기는 것이죠.
이렇게 인질범은 극도로 불안한 심리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 억울한 심정이나 이야기를 들어줬다면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도 않았겠지요. 일단은 화가 어마어마하게 나있고, 자기가 지금 정상적인 행동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엄청나게 불안한 상태인 거죠.
이런 사람에게 진정하라고 이야기해봤자 진정이 되겠습니까? 바로 반발심이 치고 올라오지요. 인질범과 협상하는 사람은 저 사람이 무엇때문에 저런 일을 벌인 건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듣고 싶습니다.”라는 거랍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인지 이야기를 해 달라는 거죠. 들어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을 돕고 싶다는 것을 알려야 하는 겁니다.
이해한다는 말도 같은 맥랍입니다. 당사자가 아니면 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그 사람의 감정이나 심리, 그 사람이 경험했던 당시의 고통에는 공감할 수 없습니다. 자기는 어마어마하게 흥분해 있고 불안해 있는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이해한다고 말하면 오히려 인질범을 더 흥분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세 번째, 나오세요 라는 것은요. 일단 나오라는 것은 해결책만 제시하는 겁니다. 감정이 어떤지 고통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 해결책을 받아들이면 당신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어필하는 겁니다.
잘 듣기, 말 이면의 감정을 듣는 것
우리가 언쟁을 할 때 흔히 하는 말이 “그래서 도대체 어쩌자는 건데? 어떻게 해달라는 건데?”라는 겁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해결책이 아니라 심리적 공감을 바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되면 대화 자체가 안 됩니다. 서로 하고 싶은 말이 다른 겁니다. 인질범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질범의 감정이나 고통에 공감하지 않고 상황만 어떻게든 정리해보겠다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기가 쉽다고 합니다.
협상가가 이야기하는 세 가지 원칙을 가만히 보면 결국 한 가지로 귀결됩니다. “잘 들으라.”는 겁니다. 잘 들으면 인질범과 같은 극단적인 사람과도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잘 듣는 것일까요?
인질 협상가는 인질범의 말 액면 그대로를 듣는 것이 아니라 말의 이면에 있는 감정을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인질범의 감정을 고스란히 공감해야만 대화의 여지가 생긴다고 하는데요. 인질범의 극도의 흥분 상태, 평온한 상태가 아닌 감정을 놓치지 않고 들어야 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도 엄청나게 힘들다고 합니다.
이 말은 듣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말을 듣는 그 이상, 말의 이면에 있는 생각과 의도를 수용해야만 잘 듣는 것입니다. 결국 소통을 잘 하려면 잘 듣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잘 듣는다는 것은 대화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그 이면에 있는 감정을 잘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머리로 듣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들어야 제대로 듣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보통 가슴으로 듣지 않고 머리로 듣습니다. 딴생각을 하기도 하고 상대방이 말을 할 때 내가 할 말을 생각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말을 끊고 자기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듣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아서 그럽니다. 인질 협상범과 같은 수준의 훈련은 아니더라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듣기 정도는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합니다.
“말하지 말라”는 많은 말들
한편으로 이런 이야기는 처세술이라던가 격언 등으로 자주 접하는 평이한 수준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돌아봅시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듣는 사람은 계속 듣고 말하는 사람은 계속 말한다는 겁니다. 말하는 사람은 항상 말만 합니다. 항상 떠들고 항상 문제를 일으키고 주변 사람과 갈등을 빚습니다.
한번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내 주변에서 누가 제일 사고를 많이 치는가? 누가 제일 권력을 휘두르면서 주변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가? 모두가 똑같이 말하고 똑같이 듣지 않습니다. 혼자서만 잘 들으려고 해봐야 반쪽짜리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 반은 무엇입니까? 말하는 것을 잘 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나는 주로 듣는 쪽인가, 떠드는 쪽인가?
이제 말하는 문제를 봅시다. 이 부분은 부처님 경전에도 많이 나오고요. 공자님이나 이웃종교에서도 하는 이야깁니다. 성인들이 말 많이 하지 말라고 엄청나게 많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역설입니다. 말을 많이 하지 말라고 말을 많이 하고 있으니 그렇습니다.
자경문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입은 화의 문이므로 반드시 엄격하게 지키라.” 구산스님의 <생활불교의 길>에도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혀는 나 죽이는 도끼이니 입은 병입과 같이 말이 없고 뜻은 성문과 같이 굳게 닫으라.” 입을 잘 다스려야 마음을 안정시켜서 선정에 들 수 있기 때문인데요. 선정에 들기 위한 첫 번째 관건은 혀와 입을 잘 다스리는 데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모든 성인들은 한결같이 이야기합니다. 말을 아끼라. 말을 하지 말라. 말을 작게 하라.
막말, 침묵, 그리고 적절한 말
아무리 그렇다 한들 매사에 입을 닫고 살 수는 없습니다. 할 말은 해야 합니다. 말을 안 해야 하는데, 안 해야 하는데 하다가 결국 못 참고 한 마디를 하면 그게 꼭 사달이 납니다. 내가 옳니 네가 그르니 따지게 되고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업이 있습니까? 견업, 청업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경전을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구업이라는 말은 있습니다. 입으로 짓는 업은 따로 말이 하나 있을 정도로 경계해야 하는 업입니다. 천수경에 보면 거짓말하는 것도 참회를 하고, 여기에서 이 말 하고 저기에서는 저 말 하는 것도 큰 죄이고,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것도 입으로 짓는 업이라고 합니다. 우리 중생들이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말을 중심으로 두고 사람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무 생각 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막 말하는 사람입니다. 말하고 나서 “아이고 이 말 하면 안 되는데. 실수했네.” 합니다. 이것은 하수입니다. 공자님이 이르되 말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라 했습니다. 세 번을 생각했는데 말을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이 된다면 사실 안 하는 게 좋은 말입니다.
그 다음은 자기가 생각해도 자기 말을 책임지는 게 힘드니까 아예 말을 안 하는 부류입니다. “내가 참고 말지. 내가 말을 안 하고 말지.” 하는 것이죠. 중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말을 해놓고 분란을 만들고 후회하고 괴로워하는 것보다 말을 안 해서 나 혼자 괴로운 것이 나은 거죠. 이 사람들은 그나마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라는 말이 나온 이유입니다.
잘 말하기, 지혜와 용기를 구족한 것
제일 상수는 어떤 부류입니까? 해야 할 말은 하고 하지 않아야 하는 말은 하지 않는 사람이 상수입니다. 조선시대에 안방준이라는 선비가 있었습니다. 이 분이 ‘구장’이라 하여 입을 경계하는 글을 지었습니다. “말을 해야 할 때는 말을 하고 말 해서 안 될 때는 말을 하지 마라. 말을 해야 할 때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되고, 말 해서는 안 될 때 말을 하는 것 역시 아니된다. 이렇게만 하여라.” 이 말을 좌우명처럼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 합니다.
해야 할 말인지 해서는 안 될 말인지를 잘 알고 행해야 합니다. 이 말이 해야 할 말인지 해서는 안 될 말인지 아는 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사람이 지혜롭지 못하면 할 말 못 할 말 분간하지 못합니다. 그것을 올바로 알고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올바로 아는 것이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길입니다.
해야 할 말을 하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지혜로운 동시에 용기가 있는 것입니다. 용기가 없는 사람은 해야 할 말도 마음속으로만 하고 입으로는 못 합니다. 말을 잘 하려면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정리하자면 듣기와 말하기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입니다. 듣기에서 중요한 것은 가슴으로 들어서 말 그 자체가 아니라 말 이면에 있는 상대방의 감정과 경험 고통 체험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말을 할 때는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을 올바로 분간해서 해야 할 말은 하고 하지 않아야 할 말은 하지 않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사람의 처세술이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