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일요강좌, 초기불교 이해 2

제1장에서 초기불교의 핵심은 ‘해체해서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2장에서는 초기불교의 기본 주제가 ‘행복 추구’라고 설명했다. 제3장 ‘열반-초기불교의 궁극적 메시지’는 앞의 두 장이 더욱 심화된다.
행복의 추구라는 인간 공통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목표에 도달하는 레시피(법칙)이 있어야 한다. 부처님이 제시한 행복 레시피는 사성제이며, 사성제는 곧 불교가 인간을 어떻게 보는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인식과 존재론을 어떻게 제시하는지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불교의 시각을 정리한 것이 초기불교의 교학체계이며, 이러한 교학체계는 단순히 지식으로써의 불교가 아닌 ‘어떻게 살 것인가?’ 혹은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 라는 우리 인생의 명제와 맞닿아 있다.

#각묵스님, 교학, 사성제, 연기, 오온, 초기불교

https://www.youtube.com/watch?v=kq-ygtsBvEo&list=PLoHDOofmKm4PZpa-QKP_MQMMC7o8oCWM0&index=2

제3장, 제1장의 ‘해체해서 보기’의 구체적 설명

지난 시간에 각묵스님의 <초기불교 이해> 제1장과 제2장을 공부했습니다. 제1장에서는 초기불교의 핵심은 ‘해체해서 보는 것’이라는이야기를 했고요, 제2장에서는 불교의 목표는 궁극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초기불교를 공부할 때 생소한 용어가 진입장벽이 되어 쉽게 접하는 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말씀을 드렸었고요. 그렇지만 초기불교를학문적으로 깊이 파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자주 나오는 용어 몇 가지를 기억해 놓는 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오늘은 제3장 ‘열반 – 초기불교의 궁극적 메시지’와 제4장 ‘어떻게 열반을 실현할 것인가’를 공부합니다. 초기불교의 핵심이 무엇이냐? 그것은 열반이며, 열반을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의 내용이 이어집니다. 먼저 26쪽으로 돌아가 초기불교의 핵심인 ‘해체해서 보기’를복기해보겠습니다.

  • 나라는 개념적 존재는 오온으로 해체해서 보고, 일체 존재는 12처로 해체해서 보고, 세계는 18계로 해체해서 보고, 생사문제는12연기로 해체해서보게 되면 온, 처, 계, 연 등으로 해체해서 설해지는 모든 존재의 무상, 고, 무아가 극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통찰함으로 해서 염오하고 탐욕이 빛 바래고 그래서 해탈, 열반, 깨달음을 실현한다는 것이 초기불교의 도처에서 강조되고 있다. (26~27p)

인간의 목표 ‘행복’은 곧 불교의 목표 ‘열반’

이 문장의 내용을 제3장에서 구체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제3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열반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사용하는 ‘열반의 성취’라는 표현은 실은 올바른 표현이 아닙니다. 성취라고 할 때는 이루어서 가진다는 의미를 가지는데요. 열반 그 자체는 대상이나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도달해야 할 목적지로 삼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엄밀하게 따지면 ‘열반의 성취’는 맞는표현이 아닌데요. 이런 표현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열반이라는 개념 자체가 애매하고 헷갈리게 됩니다. 

열반은 괴로움의 소멸입니다. 번뇌의 소멸입니다. 번뇌라는 불길이 완전히 꺼진 상태가 열반입니다. 그렇다면 불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그냥 열반입니다. 열반이라는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죠. 열반을 획득하거나 성취하거나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어쨌든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열반인데요. 불교의 목표는 곧 인생의 목표라 할 것입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가 곧 불교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같은 이야기지요. 부처님이 보시기에 인간이 무엇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아서 추구해야겠냐 하면 그것이 열반이었다는 겁니다.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열반이라는 것은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열반이라는 것입니다. 제2장에서 초기불교의기본 주제는 행복의 추구이며, 보시 지계 수행 등을 통해서 행복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핵심은 인간은 궁극적으로 열반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궁극적으로 삼아야 할 목표입니다. 그래야만 ‘인간은 행복을 추구한다’는 명제를 충족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열반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지요. 

목표, 소원, 원력은 이음동의어

이 문장의 맥락을 이해하려면 우선 목표, 소원, 법칙, 진리 등과 같은 개념들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목표라는 것은 정해진 타겟(taget)입니다. 무언가를 목표를 삼고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것을 간절하게 원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같은 내용에 대해서 목표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소원, 희망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같은 내용이지만 다만 초점이 다를 뿐입니다. ‘목표’라는 표현을 쓰면 그것을 얻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다양한 노력을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는 것이고요. ‘소원’, ‘희망’이라고 말할 때는 바라는 바와 원하는 바, 그 욕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원력’은 마음에서강렬하게 원하는 바에 초점이 가 있습니다. 

제2장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한다.’ 이것은 법칙입니다. 일종의 레시피 같은 것입니다. 요리를 할 때 레시피 대로만 하면 언제, 누가, 어디에서 하더라도 정해진 맛이 나옵니다.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든지 법칙대로만 하면 원하는 결과가 나옵니다. ‘행복의 법칙’은 곧 ‘행복의 레시피’라는 말입니다. 언제, 누가, 어디에서 하더라도 레시피 대로만 하면 행복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과학자들은 자연 현상을 연구해서 법칙을 찾아냅니다. 그것도 하나의 레시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 차이가 있다면 요리나 인간의 삶은 레시피 대로 하는 주체가 있는데 자연현상에는 주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연을 관장하는 누군가가 있어서 정해진 법칙대로 모든 삼라만상을 조작하고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레시피를 실제로 집행하는 주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연(自然)은 ‘스스로 그러합’니다. 

목표를 이루려면 레시피(법칙)이 있어야

가령 오늘 내가 맛있는 빵을 만들겠다고 계획을 세웠다고 합시다. 그런데 나에게 빵을 만드는 레시피가 없거나 빵을 만들어본 적이 없거나 심지어 빵을 먹어본 적도 없고 빵을 구경해본 적도 없다면 어떨까요? 빵이라는 말만 듣고 빵을 만들겠다고 결심해서 빵을 만든다면실패할 확률이 높고 성공하더라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내게 빵을 만드는 레시피가 있다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주 쉬울 겁니다. 이것이 법칙입니다. 그래서 목표를 세울 때법칙을 아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필요충분조건입니다. 그래서 목표를 이루자면 법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목표를 세웠다고 합시다. 대기업에 취직하고 싶다, 공무원이 되고 싶다, 사업에 성공하고 싶다, 결혼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고 할 때 이 많은 목표들을 하나의 큰 목표로 치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목표를 실현하려면 삶의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레시피를 알고 있으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인 행복에이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발견한 것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레시피입니다. 어떻게 살면 우리가 원하는 바, 다르게 말하면 궁극적인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그 레시피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사성제는 부처님이 제시한 ‘행복 레시피’

불교에서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행복의 추구’ 불교식 표현으로 ‘열반’이라고 정확하게 표현했습니다. 열반은 번뇌의 불꽃이 완전히 꺼진 상태이며, 궁극적인 행복입니다. 이것은 식빵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 식빵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맛인지, 몸에는 어떻게 좋은지 제대로 알고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제2장에서 ‘인간은 행복을 추구한다’고 이야기한 데 이어, 제3장에서는 그 행복이라는 것이 ‘열반이다’라고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열반에 도달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의 대답을 체계화시킨 것이 부처님의 말씀이고, 부처님이 발견한 법칙 곧 진리입니다. 부처님의 진리를 네 가지로 요약한 것이 사성제(四聖諦)이고요. 

부처님이 발견한 자연의 법칙, 더 넓게 보면 존재의 법칙이 바로 사성제라는 것입니다. 사성제라는 인생의 레시피를 정확하게 알면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인 열반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중간 정리를 하겠습니다. 목표, 소원, 원력은 같은 이야기인데 초점이 어디에 맞춰져 있는가에 따라 다르게 표현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법칙이란 레시피와 같고, 궁극적인 법칙을 진리라고 이야기 합니다. 법칙과 진리는 같은 맥락입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레시피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한편 불교가 추구하는 것(목표)은 열반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기본 법칙인 행복을 부처님은 ‘열반’이라고 명명했으며, 번뇌의 불길이 완전히 꺼진 상태가 열반입니다. 

여기까지 기본적인 목표, 원력, 진리 등의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고, 각각의 개념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바탕에 깔고 제3장의 일부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3 열반 – 초기불교의 궁극적 메시지

  불교에서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열반에 두고 있습니다. 열반은 괴로움의 소멸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괴로움이란 사성제의 첫번째인 고(苦)이고요, 소멸이란 사성제의 세 번째인 멸(滅)을 말합니다. 고의 원인은 사성제의 두 번째인 집(集) 즉 갈애이고요, 괴로움이소멸하는 원인은 사성제의 네 번째인 도(道) 즉 수행입니다. 이렇게 사성제는 부처님이 발견하신 우주를 관장하는 법칙입니다. 

  • 열반이란 소멸과 동의어요 해탈 – 구경해탈지와 같은 의미이기도 하다. 성스러운 진리인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43p)

 불교가 보는 이 세계, 인간, 진리, 존재하는 것들이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하면, 서두에 언급했던 26쪽의 문단인데요. 그 문단을 45쪽부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인간관, 세계관, 존재-인식관

  • 나라는 존재는 물질(몸뚱이), 느낌, 인식, 심리현상들, 알음알이의 다섯 가지 무더기의 적집일 뿐이라는 것이다. (46p)

이것이 불교의 인간관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오온에 불과하다는 것이 불교가 인간에 대해서 가지는 생각입니다. 불교가 세계에 대해서 가진 생각이 다음 문장에 나옵니다. 

  • ‘세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12처(혹은 6내처와 6외처)와 18계로 말씀하셨다. (46p)

즉 불교에서는 세상을 12처로 나누거나 18계로 해체해서 설명합니다. 불교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12처, 18계라는 틀을 바탕으로합니다. 그렇다면 일체가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사라지는가, 그런 것들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그 다음 단락입니다. 

  • 나와 세상은 조건발생이요 여러 조건들이 얽히고설키어서 많은 종류의 괴로움을 일으킨다. 이러한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구명하여 그 괴로움을 없애야 해탈, 열반은 실현된다. (46p)

이것이 불교의 연기관입니다. 실은 연기관이라는 표현은 좀 어색합니다. 연기라는 표현은 불교에서만 쓰는 것이므로 ‘불교의 존재 및인식에 관한 생각’ 즉 불교의 존재론 및 인식론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연기관을 일반적인 표현으로 풀어보자면 불교에서는 연기로써 존재를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무언가가 있다, 없다, 이것은 무엇이다, 저것은 무엇이다 등 존재에 대한 설명을 불교에서 12연기로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 구절은 불교의 존재관이 되겠지요. 즉 불교는, 인간은 오온으로 나누어서 보고, 세계는 12처와 18계로 나누어서 보고,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12연기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구명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삼법인에서는 일체개고, 즉 일체는 모두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괴로움은 곧 일체입니다. 괴로움이라고 말하는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시각인데요. 여기에서존재하는 것이 어떻게 발생하고 소멸하는가, 괴로움이 어떻게 발생하고 소멸하는가, 그 구조를 연기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관(觀)’을 정리한 것이 초기불교 교학체계

이것이 초기불교의 교학 체계입니다. 초기불교는 인간을 이렇게 설명하고, 세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존재론과 인식론은 12연기로 설명합니다. 이 이론체계와 실제로 열반에 이르기 위한 수행체계인 8정도를 합쳐서 체계화시킨 것이 사성제입니다. 

  • 이처럼 불교는 인간과 세계와 진리와 연기에 대한 교학체계를 토대로 37보리분법을 실천해서 무상, 고아, 무아를 꿰뚫어 해탈, 열반을 실현하는 체계이다. (48p)

여기에서 인간에 대한 교학체계는 오온, 세계에 대한 교학체계는 12처와 18계, 진리에 대한 교학체계는 사성제, 연기에 대한 교학체계는 12연기를 말합니다. 진리는 인간과 세계와 연기에 관한 교학체계를 압축적으로 체계화한 것입니다. 이어서 ‘37보리분법’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다른 용어로는 ‘37조도품’이라고 말합니다. 

무상, 고, 무아는 존재의 본질입니다. 일체는 모두 고이고, 제법은 무아이고, 제행은 무상입니다. 이 전체를 다 합친 것이 일체입니다. 따라서 ‘무상, 고, 무아’는 삼법인을 의미하는 것이고요. 삼법인을 정확하게 이해해서 열반을 실현하는 것이 불교라는 겁니다. 

삼법인을 체계화시킨 것이 불교의 교학체계이고, 이러한 교학체계를 바탕으로 부처님이 제시한 수행법으로 수행을 하게 되면 일체의본질을 알게 됩니다. 즉 삼법인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면 열반에 이릅니다. 괴로움을 완전히 소멸하는, 번뇌를 완전히 끊는 상태에 도달합니다. 이것이 불교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레시피는 ‘지식’ 아닌 ‘우리 인생의 일’

지금 하는 부분은 일종의 총론인데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불교는 이런 것이구나’ 하는 지식의 습득이 아닙니다. 12연기 하나하나가 어떤 내용이다 하는 것도 아닙니다.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이냐’는 것을 정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지, 우리의 인생과 무관한 지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3장에서는 이것을 머릿속에 확고하게 넣어야 합니다. 

부처님은 우리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이 세계가 무엇이라고 설명했는지, 인간의 존재론과 인식론을 어떻게 제시했는지. 그것을제3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고요. 이 내용이 바로 부처님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레시피입니다. 그것을 정확하게 알아야 우리가 원하는궁극적인 목표인 열반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  오온, 12처, 사성제, 연기의 가르침은 불교의 인간관, 세계관, 진리관, 연기관이고 이것은 해탈, 열반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이해다. 이것을 교학이라 부른다. (48p)

이것이 불교가 처음 태동할 때의 모습입니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직계 제자들이 설했던 내용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하는것이 초기불교를 이해하는 것이라는 설명이 제3장의 내용입니다. 

이어서 제4장에서는 열반을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를 서술하는데요. 읽어보면 앞에 3장에서 말한 내용을 실제 초기 경전에서는 어떻게이야기하고 있는가를 발췌하여 제시합니다. 직접 초기경전의 내용을 보고,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으신 분들은 제4장을 정독하기를 권하고요. 오늘 이 시간에는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겠습니다. 

오늘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7쪽에 나왔던 초기불교의 핵심을 풀어낸 것이 제3장의 내용이고, 그것이 실제로 초기 경전 어느부분에서 어떤 식으로 제시되고 있는가를 서술한 것이 제4장의 내용입니다. 3장에서 꼭 기억해야 할 문장을 다시 한 번 읽어보면서 이 시간 마치겠습니다. 

  • 이처럼 불교는 인간과 세계와 진리와 연기에 대한 교학체계를 토대로 37보리분법을 실천해서 무상, 고아, 무아를 꿰뚫어 해탈, 열반을 실현하는 체계이다. (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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