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원문, 제대로 알고 있나요?

예불이나 불공 등의 의식에 빠지지 않는 것이 축원문이다. 축원문은 1) 삼보에 귀의하고 2) 발원자가 누구인지를 고하고 3) 축원의 내용을 말하고 4) 서원하는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귀의는 부처님이 깨달은 바 ‘무상’을 깨닫기 위하여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겠다는 다짐이다.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곧 수행하는 일이며, 그 수행의 공덕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도록 해달라는 것이 개인축원이다.
축원문은 삼귀의로 시작하여 사홍서원으로 마치는 불자들의 수행 과정과 같으며, 모든 축원에는 귀의와 수행이 전제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경전, 공덕, 기도, 수행, 예불

https://youtu.be/HdpBAknr0Ro

오늘 법당에는 생일축원 두 건이 올라왔습니다. 일반적으로 본인의 생일보다는 부모가 자식이나 손자 손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또 생일자의 건강이나 소원 성취를 위해 생일 불공 발원을 올리곤 합니다. 생일축원뿐만 아니라 절집에서는 매일 사시예불을 볼 때 축원을 합니다. 축원문은 어느 스님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것이며, 조계종단에서 권장하는 표준 의식집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법당에서 한 번쯤 들어보았을 축원문을 떠올리며 이번 법문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랍니다.

축원문의 구성; 귀의 – 발원자 – 축원 – 서원

축원문은 크게 네 가지 파트로 나눠집니다. 제일 처음으로 삼보에 귀의하면서 축원문을 시작합니다. 두 번째로 발원자 각각의 주소 등 신상을 이야기 하고, 세 번째 파트는 영가들에 대한 축원을 한 후 마지막으로 바라는 바 원을 세웁니다. 축원문의 네 파트를 단계별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방삼세 부처님과 팔만사천 큰법보와

보살성문 스님네께 지성귀의 하옵나니

자비하신 원력으로 굽어살펴 주옵소서.

불교에서는 행사를 할 때는 가장 먼저 삼귀의를 하고 제일 마지막으로 사홍서원을 합니다. 축원문의 구성도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삼귀의로 시작하여 원을 세우는 것으로 마칩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 불자들의 신행생활은 항상 삼보에 귀의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여 나의 수행의 공덕으로 하여금 원을 세우고 그 원을 굳건히 하는 것으로 꽃을 피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귀의, 부처님처럼 살겠다는 다짐

삼귀의(三歸依)란 불법승(佛法僧) 삼보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부처님[佛]께 귀의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부처님께 돌아가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행한 바 그대로 나도 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무엇을 했습니까? 불자라면 누구나 부처님의 일대기를 알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삶에서 대표적인 깨달음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사문유관(四門遊觀)이며 두 번째는 새벽 별을 보고 견성하신 순간입니다.

평생 고통이라는 것을 모르고 풍요롭게 살던 싯다르타 태자는 어느 날 성문 밖에서 병든 자와 늙은 자, 죽은 자를 만나면서 세상의 고통을 목도합니다. 그 이후 여법하게 걷고 있는 수행자를 보고는 ‘내가 본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수행을 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부처님은 사문유관을 통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확실하게 보고 결심하여 수행자의 길로 나섰습니다.

부처님은 인간세계는 고통으로 가득 차있고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나 이 때는 아직 본인 안의 번뇌를 털어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로부터 5년 뒤, 새벽 별을 보고 정각(正覺)을 이루었다고 하는 그 순간에 부처님은 당신 안의 모든 번뇌가 다 사라진, 진정하고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했습니다.

이후 부처님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중생들에게 당신께서 깨달은 바를 전하는 길 위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삶입니다. 우리가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것은 우리도 이렇게 살겠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수행하여 깨달아 나만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중생들을 위해 내 삶을 온전히 다 바치겠다고 하는 것이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것의 참된 의미입니다.

우리 삶에서 나타나는 앎과 깨달음

한편, 부처님의 첫 번째 깨달음(사문유관)과 두 번째 깨달음(새벽 별을 보며 정각)은 무엇이 다를까요?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나는 2년 전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심장이 안 좋은 상태인데 올 가을 접어들어 호흡곤란 증상이 자주 나타났지요. 몸무게를 재보니 올 초에 비해 몸무게가 3킬로그램이나 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여름에는 덥다는, 가을에는 여러 행사에 바빴다는 이유로 포행을 게을리 했고, 먹는 양은 평소보다 많았습니다. 몸이 불편해지자 이러한 상황을 스스로 반조하게 되었으며, 열흘 전부터는 철저한 오후불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도 건강하기 위해서는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열흘 전에 그 사실을 ‘그냥’ 안 것이 아니라 ‘뼈저리게’ 깨달은 것입니다. 내가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해서 그 순간 살이 빠지고 내 건강을 해치는 모든 요소들이 몸 안에서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각성의 순간부터 나의 건강을 해치는 요소가 다 사라질 때까지 많이 포행하고 조금 먹는다면 어느 순간 부정적인 요소들은 모두 사라지고 건강을 되찾을 것입니다.

부처님이 사문유관 때 깨달은 것은 말하자면 열흘 전 나의 모습일 것이고, 내가 완전한 건강을 되찾는 시점은 말하자면 부처님께서 새벽 별을 보고 깨달은 순간일 것입니다. 이처럼 깨달음은 오직 한 번의 순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처님처럼 산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길로 가야할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고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단순히 내가 수행자니까 수행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보장된 제왕의 길을 버리고 수행자의 길로 가야 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그리고 수행에 그토록 매진한 것은 삶이 고통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따른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불자니까 기도를 하고 불자니까 절에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내가 불자로서 열심히 수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자신의 삶에서 깨닫는 시점이 있어야 합니다.

자비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변함을 알며

한편 삼보 중 법(法)에 귀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자비의 마음으로, 봉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고 나서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산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들에게 그것을 전하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오롯이 바쳤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모든 중생을 위한 무주상보시를 행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세 마디로 요약됩니다.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입니다. 모든 행은 무상하며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고통스럽습니다. 왜일까요? 우리에게는 ‘나’라 하는 것이 있기에 변하는 것을 싫어하고 변하는 것을 붙잡고 변하는 것에 집착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는데 변하지 말라고 애착하기에 중생들의 삶은 고통이며, 이것을 번뇌라고 합니다.

법에 귀의한다는 것은 법으로 돌아가 법에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완전히 들어가서 완전하게 이해하며 그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무엇입니까? 중생들의 삶은 고통이며 모든 번뇌의 뿌리는 ‘내가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깨닫는 것입니다.

계율을 내 삶으로 삼아

마지막으로 승(僧)에 귀의하는 것은 승가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승가는 사부대중입니다. 비구, 비구니, 청신사, 청신녀로 이루어진 대중들의 모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개개인의 스님, 개개인의 불자에게 의지할 것이 아니라 승가라는 집단, 조직에 의지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이 집단이 가지고 있는 규율을 완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어서 지키며 그것을 곧 내 생활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는 계율을 철저하게 지키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홀로 수행하지 않고 굳이 대중 속에서 내 자신을 탁마하고 계율을 지킨다는 것은 승가가 표방하는 계율을 내면화하고 표면화하는 것입니다.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마음

불법승 삼보에 귀의한 다음 축원문에는 발원자의 주소가 나오고, 발원자가 지금 어디에서 이 축원을 하고 있는가를 불보살님에게 고합니다. 발원을 올리는 그곳을 ‘청정수월도량’이라고 표현합니다.

수월(水月)이란 무엇일까요? 물에 비친 달입니다. 물에 비친 달은 과연 진짜 달인가요 가짜 달인가요? 그것은 그림자입니다. 허상이고 허깨비입니다. 발원을 올리는 이 도량은 청정한 도량임과 동시에 환(幻)입니다.

이 말은 도량에 있는 부처님과 전각 모든 것이 허깨비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신심이 넘치도록 장엄한 이 도량이 허깨비라니요? 대웅전 부처님이 단순한 조각품이라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부처님이 아무리 경건하고 신심나고 경외롭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자체로 부처님에게 집착하는 일입니다.

무얼 하든 간에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열심히 하다보면 집착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 집착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부처님을 신앙생활의 기준으로 삼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 이상으로 매달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수행공덕 서원하며 서원으로 수행한다

일반적인 사찰에서 사시불공의 구성은 천수경, 정근, 칠정례, 축원, 반야심경 순으로 이뤄집니다. 불공에서 앞서 수행한 공덕을 내 안에 쌓지 않고 이러이러한 소원을 이루도록 가피력을 내려달라는 것이 개인축원의 명분입니다. 공덕이 있어야 발원을 할 수 있습니다. 내 몸과 입과 마음으로 열심히 정근 수행하고 불보살님을 지극한 마음으로 찬탄하고 소원을 말하는 모든 과정이 기도며 공덕입니다.

모든 부처님들의 더할나위 없는은혜 갚사오며

세상마다 보살도를 실천하여

끝내는 부처님같은 일체지혜가 원만하게 이뤄지이다.

일체지혜를 이루기 위해서는 보살도를 실천해야 합니다. 이번 생만이 아니라 세세생생 보살도를 실천하여 반드시 깨달음을 얻겠다고 하는 나의 소원을 마지막으로 불보살님 앞에 천명하고, 그러니 가피력을 내려달라는 것으로 축원문을 마칩니다.

이처럼 축원문은 삼귀의로 시작해서 사홍서원으로 마치는 불자들의 수행의 과정과 같습니다. 아무리 내가 잘나도 부처님보다는 못합니다. 중생계에서 아무리 잘나도 불보살님과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수행하는 자라면 제일 먼저 삼보에 귀의하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내가 열심히 하면 된다.’는 아상을 버리고 부처님 법대로 생각하고 승가의 계율에 따라서 살겠다는 귀의하는 마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내 수행의 공덕을 주변에 나누겠다는 마음으로 수행하며, 깨달음을 얻고자하는 의지를 불보살님 앞에서 서원하고 맹세하는 식으로 수행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매일 듣는 사시불공 축원문에 그 모든 과정이 들어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신행생활에 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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