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음이 병들어 있다고?

2020년 증심사 템플스테이관이 산사태 피해를 입었다. 산사태가 처음 발생했을 때는 분노가, 산사태 근원지를 확인하고서는 교만이,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두려움이 일었다. 상황 따라 일어나는 감정들은 과연 ‘자연’스러운 것인가?
그렇지 않다. 자연에는 감정이 없다. 감정이란 삼독심에 의해 일어나는 부작용일 뿐이다. 해독의 시작은 병을 인지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가 삼독심으로 인해 병들었음을 알고 부처님의 말씀으로 하여금 해독해나가는 것. 그것이 불교의 수행이며 삶을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방법이다.

#감정, 무명, 삼독심, 알아차림, 일체유심조, 자연재해

산사태와 분노

올 여름 수해로 온나라가 난리였습니다. 3년 전인 2020년 8월 우리 증심사도 큰 비로 인한 산사태 피해를 입었습니다. 템플스테이관인근에 산사태가 발생한 날의 날씨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 해 여름엔 54일간 비가 왔습니다. 그 긴 장마의 끝자락이었고요. 전날도 밤새도록 비가 왔는데 다음날 낮이 되니 폭염이 들이닥쳤습니다. 엄청난 습기에 햇빛이 작열하니 사우나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느낌이었습니다. 응급 복구 작업을 하면서 화와 짜증이 함께 나더군요. 

열흘이 지난 8월 18일 저녁 무렵에 포행을 하러 나섰다가 문득 산사태가 난 자리를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템플스테이관에서 시작해 물과 흙이 밀려든 자리를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시작한 일이었는데 가다보니 ‘네가 얼마나 잘났기에 우리를 이렇게 고생시켰는지 그 시작을 기필코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산으로 들어가자 두 발로 걸어갈 수가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팔월 중순을 넘어가는 시점이었으니 잡초와 잡목이 사람 키를 넘어서서무질서하게 자라있는 데다 경사도 몹시 가팔랐습니다. 네 발로 기다시피 한참 산을 올라가다 보니 30~40평 정도 되는 무덤터가 나왔습니다. 무덤은 이장을 해가고 무덤터는 잔디밭으로 잘 가꿔져 있었습니다. 

확인과  교만

산사태의 시작이 이곳이었을 것이라는 직감이 왔습니다. 폭우가 내리면 비들이 잡목과 잡초 사이로 흩어져서 내려가는데 평평하고 잘가꿔진 잔디밭이 나오니 여기로 빗물이 모이는 겁니다. 물의 무게가 쌓이니 잔디밭의 축대 중에서 가장 약한 부분이 무너지고, 무너진 부분으로 물들이 순식간에 몰려서 흘러내리기 시작했겠지요. 

‘아! 여기에서부터 산사태가 시작됐구나!’ 이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약간의 허탈함과 허무함이 느껴졌습니다. ‘별 것도 아닌 걸로 사람들을 이렇게 힘들게 했나.’ 싶고 말이지요.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불안하고 두려운 것의 정체를 확인하고 나면 별 것 아니게 느껴집니다. 

자연에 대응하는 인류의 역사가 그렇게 진행되어 왔습니다. 처음에는 자연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갑자기 비가 와서 농사 지은 것을 싹쓸어가버리거나 비가 안 와서 농사를 못 짓게 되는 것이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두려우니까 자연의 힘을 숭배하고 내가 잘 모르는 신을달래보고자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현대에는 태풍이 온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태풍이 어디에서 발생하여 어떤 경로로 갈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를 때는 불안하지만 알면 교만해집니다. 불안과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알게 된 후의 자만심이나 교만심이 커집니다. 교만은 인간으로 하여금 막 저지를 수 있게 합니다. 우리도 모르게 자연을 더욱 많이 파괴해왔고 그 과보를 지금에 와서 돌려받고 있는 것이지요. 

조난과 두려움

산사태 시작점을 확인하고 그대로 돌아서 내려왔었어야 했는데, 문득 토끼등 등산로 쪽으로 나가고 싶은 겁니다. 해서 원래의 방향이아닌 쪽으로 난 덤불을 헤치고 들어갔습니다. 몇 발자국 걷지 않아서 깨달았습니다. 길을 잃었구나. 등산화도 아닌 털신 하나 달랑 신고동서남북도 분간되지 않고 발밑도 보이지도 않는 덤불 속을 10여 분 헤매다가 겨우 계곡 쪽으로 빠져나왔습니다. 

밖으로 나와서 보니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되어 있고, 팔다리에는 긁힌 생채기들. 옷도 진흙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안도하는 거죠. ‘휴, 다행히 살아 나왔구나.’

30분 상간에 이런 감정들이 내 안을 휘몰아쳐 갔습니다. 분노와 산사태 시작점을 찾으러 들어섰고 시작점을 찾고 보니 자만심이 생겼고 덤불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불안하고 두려웠으며 그곳을 빠져나오자 안도감이 스며들었지요.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느끼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기쁠때는 기뻐하고 슬플 때는 슬퍼하고 살다 보면 괴로운 일도 있고 희로애락으로 살아가는 게 인간사 자연스러운 일이지, 사람이 나무토막도 아닌데 아무 감정 없이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말이 보편타당하게 성립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닥쳐도 그대로 수용해야지 딴소리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될 수 있습니다. 

희로애락은 자연스러운 감정?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밤 사이에 수해를 당해서 겨우 몸만 빠져나와 묵숨을 부지했다고 합시다. 집이고 살림이고 다 떠내려가서 아무것도 없이 임시대피소에 왔어요. 이때 그 사람의 심정은 첫 번째, 왜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했다고 이런 일이 일어났나? 하면서 분노가 생길 것이고요. 두 번째, 당장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 것입니다. 세 번째, 이유 없는 분노를 표출해야 하니까 정부나 자자체를 향해서 화를 내고 읍소를 하겠지요. 

이 사람에게 ‘희로애락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인생이라는 게 원래 기쁠 때는 기쁜 거고 슬플 때는 슬픈 거야.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고 답할 수 있을까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자연은 산, 바다, 강, 햇빛, 바위, 돌, 나무 같은 것들입니다. 바위나 햇살 같은 것들이 우리처럼 화도 냈다가 기뻐했다고 슬퍼했다가 절망했다고 우울해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자연은 그저 인연 따라 자기의 모습을 바꿔가면서 흘러갑니다. 

산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폭우나 산사태를 놓고 인간들은 ‘자연의 분노다.’ ‘자연의 복수다.’라고 표현하는데요. 마치 산사태라는 것이인간처럼 감정이 있는 것처럼,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자연을 인간적인 방식으로 대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자연을 인간화시킵니다. 마치 감정이 있는 것처럼요. 

자연에는 삼독심이 없다

이런 일을 당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처님께서 어떻게 이야기하셨는지를 살펴보면 참고가 됩니다. 부처님은 이런 때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경전에 ‘삼독심은 마음의 병’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삼독심은 탐진치를 말합니다. 욕심내고 화내는 것. 그리고 욕심과 화냄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어리석음, 무명. 이 세 가지를 합쳐서 삼독심이라고 하고, 삼독심이 우리 안에 여러 가지 감정들을 만들어냅니다. 

삼독심에서 파생되는 감정들은 엄밀하게 말하면 병이 든 상황입니다. 정상이 아니라는 거예요. 나무는 인간처럼 화내거나 슬퍼하거나기뻐하지 않고 인연대로 살다가 인연대로 갑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렇게 안 합니다. 부처님 입장에서는 이것이 정상이 아니라, 세 가지독을 먹고 마음에 병이 들어서 그런다는 겁니다. 부처님이 볼 때 우리는 환자예요. 이 때 ‘나는 절대 환자가 아니야!’라고 하면 탐독심이만들어낸 감정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초발심을 강조합니다. 초발심이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이 병들었구나를 알고 병든 마음을 고치겠다고 결심하는 겁니다. 결심하고 나면 의사에게 진단을 받고 병이 나을 수 있는 약을 먹는 것이지요. 불자에게 의사는 부처님이고 부처님의 제자 내지는우리를 올바르게 지도하는 스승입니다. 약은 무엇인가요? 부처님의 말씀이며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해독의 시작은 병을 인지하는 

법문을 듣고 강의를 듣는 것은 ‘어떤 증상에는 어떤 약을 먹어야 하는구나.’하고 아는 것입니다. 절에 나간다고 해서 약을 먹는 게 아니에요. 약을 먹는다는 것은 내가 배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겁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매일 접하고 매일 경전을 써도 그 말씀대로실천하지 않으면 마음의 병은 나을 기약이 없습니다. 

출발은 우리의 마음이 병들었다는 것을 아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이것이 발심입니다. 우리가 화를 내고 괴로워하고 불안해할 때마다나를 힘들게 하는 그 무엇에 대해서 원망하는 대신, 병든 내 마음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무슨 약을 먹을지 찾아서실제 입으로 삼킬 수가 있습니다. 

전국이 수해로 난리입니다. 와중에 중국 쪽에서 큰 태풍이 더 온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을 대할 때 우리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할까요? ‘태풍이 온다’는 것은 자연 현상입니다. 그 현상을 두고 온갖 감정을 만드는 것은 남이 아니라 내 마음이에요. 탐진치로써 자연 현상을 대해서는 안 됩니다. 비에 대해서 화내고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내 마음이 병들었기 때문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물론 잘못된 사회의 병폐나 제도, 법은 바꿔야 합니다만, 오늘은 자연을 대하는 우리 마음의 병을 주제로 이야기 나눴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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