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화를 낼까?

심리학 연구 결과 사람들은 불공평한 상황,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상황, 부도덕한 것을 목격한 상황에서 화를 낸다. 이렇게 화가 나는 상황에는 공통점이 있다. ‘나’ 혹은 ‘나의 생각’이 공격 당한다고 느낄 때 화가 나는 것이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화는 내가 있다는 생각, 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 즉 무명에서 발생한다. 또한 화는 오로지 내가 공격받는 상황에서 나오며, 내가 안전하다고 여기는 상황에서 표출된다.
화가 치솟을 때에는 화가 생기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 누구의 잘못인지를 따지기보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찾아서 그 문제를 해결하면 분노 상황은 대부분 원만하게 해결된다.

#무명, 분노, 알아차림,

증심사 홈페이지에 지금까지 한 법문들을 텍스트로 정리해서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카테고리를 정리하다 보니까 ‘화’에 대한 법문을두 번 했더라고요. 2019년도에는 ‘화는 감정이기도 하지만 에너지이다. 이 에너지를 올바로 다스리기 위해서는 화를 알아차려야 하고, 화를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마음에 빈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2020년 5월에 한 법문에서는 세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화를 윤리적 관점이 아니라 불교적 관점으로 대하라, 화도 하나의 고통이다, 존재의 실상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법문 정리한 것을 읽어보니 제일 중요한 ‘화를 왜 내게 될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화에 대한 세 번째 법문으로 화를 왜 내게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랜만에 직면한 ‘화’

오백전에 에어컨을 설치했습니다. 에어컨 설치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위치를 정해주기 위해서 “잠깐만요. 거기에 달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하자, 설치 기사님이 불뚝 화를 내더라고요. 화에 화로 응수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차근차근 다시 이야기를 했습니다. 설치기사님과 함께 온 분이 대신 사과를 하면서 변명을 하더라고요. “이 양반이 성질이 급해서 그렇다.”고요. 

근자에 저에게 그렇게 심하게 화를 낸 사람이 없어서 좀 당황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후에 곰곰이 생각을 했습니다. 왜 그 사람은 나에게 그렇게 화를 냈을까? 우리는 왜 화를 내는 걸까? 하고요. 

에어컨 설치 기사님이 화를 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먼저 에어컨이 엄청나게 무겁습니다. 땀은 비 오듯이 오고, 에어컨 위치를 바꾸려면 그만큼 힘이 드는데 절 관계자라는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제각각 한마디 씩을 하는 겁니다. 여기에 놓아야 한다, 저기에 놓아야 한다 의견이 분분하지요. 성질이 슬슬 나고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건드린 사람이 저였던 겁니다. 

이 분 생각으로는 자기 나름대로 엄청나게 고생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도 거기에 보조를 맞춰서 일이 매끄럽게 진행되도록 해줘야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 공정하지 못한 겁니다.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만큼 저쪽에서도 성의를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불공평하게 느끼게 됩니다. 

화는 ‘내가 공격당한다’는 느낌에서 온다

실제 심리학에서 말하는 화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봤습니다. 영국의 한 대학에서 전 세계 대학생 3000명을 표본 삼아 ‘어떤 때 화가 나는가?’를 조사했습니다. 약 60%가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불공평하다고 느낄 때 화가 난다고 대답했고요. 그 다음으로는 부도덕한것을 목격했을 때 화가 난다는 대답이 20%, 또 나머지 20%는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화가 난다고 답했습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불공평한 대우를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무시를 받아 자존심이 상했을 때 화를 낸다는 연구 결과를 불교적으로바라보면 이런 이유들은 결국 하나의 핵심으로 귀결됩니다.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 다른 사람들도 나를 인정해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겁니다. 부도덕한 것에 분노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땅히 그러 해야 하는 사회의 규범과 규약을 지켜야 하는데 누군가 따르지 않으면 화가 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도덕에 대한 기준과 생각을 누군가 무시한 것이죠. 

이런 생각의 공통점은 ‘나’가 남들로부터 공격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라고 하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데에서 화가 비롯됩니다. 과연 이 생각이 맞는 생각일까요? 

화는 ‘내가 안전하다’고 느낄 때 표출한다

화는 다른 감정과는 다른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내 문제가 아닐 때에 일부러 화를 내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영화를 보는데 아주 웃긴 장면이 나오면 따라 웃고, 슬픈 장면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그런데 화를 내는 장면은 다릅니다. 주인공의 감정에 공감은 할 수 있겠지만 생물학적으로 나도 따라서 화가 나 심장이 벌렁거리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일부러 화를 내게 하기는 무척 힘든 일입니다. 왜냐하면 화는 내가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화의 두 번째 특징은 만만한 사람에게 향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안전하다고 느낄 때 화를 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운전하는 상황입니다. 운전할 때 나는 나의 차 안에서 안전합니다. 다른 차에서 나에게 화를 내도 나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공간 안에서쉽게 화를 내고 욕을 하지요. 

우리가 가장 화를 많이 내는 대상을 떠올려 보아도 화의 두 번째 특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아주 가까운 사람, 가족에게 화를 잘 냅니다. 짜증 정도가 아니라 벌컥 소리를 지르고 나무라는 수준의 화를 말하는데요. 내가 가족에게 화를 내도 나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화를 만만한 사람에게 내는가? 똑같은 갈등 상황에서 직장 상사에게 화를 내는 경우는 30%, 부하 직원에게 화를 내는 경우는75%라고 합니다. 상사에게 화를 내면 나에게 불이익이 생기지만 부하직원에게 화를 낸다고 해서 나에게 불이익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여기에서도 화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내가 더 인정받기 위해서 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화를 낼 때 우리의 신체는 짐승들이 공격을 할 때 나타나는 신체 변화와 비슷합니다. 심장이 빨리 뛰고 혈압이 높아지고 근육이 긴장하고 눈이 커진다는 것은 지금 바로 싸움을 해서 끝장을 보겠다는 신호와 같습니다.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를 보면요. 전혀 요란을 떨지 않고 가만히 보고 있다가 어느 순간 팍 튀어나가서 쥐를 제압합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개가 고양이를 위협하면 어떻게 합니까? 몸이 둥그렇게 말리고 털이 삐쭉 곤두섭니다. 입으로는 캬악 캬악 소리를 내면서 위협합니다. 

우리가 화를 낼 때의 신체 변화는 고양이가 상대를 위협할 때의 신체 변화와 같습니다. 분노는 내 의사를 존중받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는 것을 강력하고 효율적으로 표출하는 직선적인 표현 방식입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화를 내는 상황에서 내가 잘못한 것이 아무 것도없다는 판단이 들면 나의 화가 3배 더 난다는 심리학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합니다. 

화는 무명과 번뇌의 끊임없는 악순환

그렇다면 화를 표출하는 것과 화가 났지만 참는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왜 불교에서는 우리에게 ‘화를 내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걸까요? 불교에서는 나 자신을 잘 관찰하여 화가 커지기 전에 화가 날 싹을 없애라고 합니다. 이미 화가 나버렸으면 그것조차 참으라고 합니다. 왜일까요? 

화를 표출하면 뇌의 한가운데에 있는 시상하부가 부신을 자극합니다. 부신은 콩팥 위에 있는 자그마한 부위인데요. 부신에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코르티솔 같은 호르몬을 분비합니다. 이 호르몬이 다시 시상하부를 자극하고 시상하부는 다시 부신을 자극합니다. 악순환이계속되는 것이지요. 제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그렇습니다. 화를 내고 표출하기 시작하면 이 화가 계속해서 증폭됩니다. 이 화를 참아버리면 감정도 서서히 추스를 수 있는데 말입니다. 

나라고 하는 것이 훼손당하고 위협당하는 상황에 봉착했을 때 우리는 분노합니다. 위협을 가하는 행동을 표출합니다. 이런 행위를 불교적으로 들여다보면 근본적인 원인이 무명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있다는 생각 때문에 화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일상생활의 사례조차 부처님 말씀에서 벗어난 것이 없습니다. 

누구의 잘못인가? vs 무엇이 문제인가? 

그러나 우리는 중생이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안다고 해서 화가 치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화가 생기는 원인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겁니다.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앞세워 화를 버럭 내기보다 오히려 차분하게 상황을 돌아보면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살펴야 합니다. 누가 잘못했는가? 누구의 잘잘못인가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문제인가를 찾아서 그 문제를 해결하면 대부분 원만하게 풀립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지 소임을 살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화를 잘 낼 수도 있고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가화를 내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화가 나면 오히려 원인을 찾습니다. 그러면 해결이 좀 더 원만합니다. 

결국 무명이 우리로 하여금 번뇌에 빠지게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온갖 번뇌 중 특히 번뇌는 우리의 무명 때문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 나는 상황에 당면하면 누가 잘못했는가를 따지기보다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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