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시대 미륵신앙과 현재의 미륵신앙
어제 길따라절따라에서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을 보고 완주 송광사에 들르는 일정으로 문화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이번 답사를 하면서 익산-완주 지역은 백제시대 당시에 미륵신앙이 아주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백제를 비롯해 삼국시대에는 미륵신앙이 아주 두드러졌는데요. 현대에 와서 요즘 사찰에서는 미륵전이나 용화전, 대자보전 같은 미륵부처님 전각이 있는 경우가 아주 드뭅니다. 관음전이나 지장전, 극락전, 심지어 산신각도 있는 절도 많은데요. 미륵전이 있는 절은 별로 없습니다. 미륵신앙이 우리 불교 내에서 많이 약화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은 요즘 절에서 미륵부처님을 모시지 않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첫째, 미륵부처님이 누구인지를 알아야합니다. 둘째, 삼국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현재에 이르기까지 미륵신앙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어떤 변화의 과정 속에서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어려워졌는지 그 이유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셋째, 미륵신앙이 약해진 원인을 진단해보고 현재 우리의 신앙생활의 방향을 톺아보겠습니다.
미륵부처님은 어떤 분인가?
작년과 재작년 법문을 하면서 불교 안의 다양한 불보살을 신앙을 이야기해왔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미륵부처님에 대해서는 다뤄보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도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심지어는 미륵 부처님이라고 해야 하는지 미륵 보살님이라고 해야 하는지조차 헷갈립니다. (두 명칭 다 맞는 명칭입니다.)
미륵불은 인도말로 마이뜨레야라고 합니다. 미륵신앙과 관련된 경전은 미륵삼보경이라 하여 세 가지가 있는데요. 미륵상생경, 미륵하생경, 미륵성불경이 그것입니다. 경전에 보면 미륵부처님이 어떤 분인지가 나옵니다.
미륵부처님은 인도 바라나시에서 고귀한 바라문 집안의 자제로 태어났습니다. 그 어머니는 본디 까칠하고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성품이었는데, 미륵부처님을 임신하고 나자 온화하고 배려하는 성품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윽고 아이가 태어났는데, 아이가 참 똑똑하고 훌륭한 성품을 지닌 것입니다. 이 아이는 전륜성왕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지요.
전륜성왕이 될 아이, 석가모니불의 수기를 받은 보살
소문을 들은 나라의 왕은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울 것을 염려하여 아이를 죽이고 자했습니다. 그 사실을 미리 안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몰래 피난시켜 아주 멀리에 있는 학자에게 데려갔다고 합니다. 장성한 아이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로 출가를 했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아이에게 수기를 내립니다.
“너는 56억7천만 년 뒤에 부처가 될 것이다. 너의 이름은 미륵불이고…(중략).”
불교에는 삼세불이 있습니다. 현재불은 석가모니불이고 과거불은 연등불이고 미래불은 미륵불입니다. 왜 과거 현재 미래불이 따로 있는가? 그 이유를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발견한 진리는 연기법입니다. 연기법은 변하지 않는 진리이므로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당연히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연기법을 현재에 발견하고 깨달음을 얻은 분이 석가모니 부처님이라면 과거 시대에도 연기법을 발견하고 깨달은 부처님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하여 연등불이라는 부처님을 상정했습니다.
미래불도 마찬가지입니다. 연기법이라는 것은 영원불멸의 진리이므로 미래 시대의 그 누군가는 연기법을 발견하고 깨달음을 얻어서 중생들에게 깨달음을 전할 것이라고 상정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미륵불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것이다 라고 상정한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초기불교에서도 미륵불의 존재를 이야기했습니다.
한편 총명한 아이가 왕의 시기를 받아 피난을 갔다는 미륵불의 이야기를 가만히 보면 비슷한 구조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기독교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는데 동방박사가 별을 보고 메시아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아이를 찾아다니자 왕이 자초지종을 묻습니다. 왕은 메시아가 자기 나라와 본인을 해칠 것을 우려하여 2살 이하의 아이를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자 아이를 급히 강물에 띄워 보내 화를 면하게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미륵상생, 부처님 오시기 전에 찾아가겠다
미륵신앙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미륵삼보경에서 미륵상생경과 하생경이 나눠져 있는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미륵불은 미래불입니다. 56억7천 년 뒤에 이 땅에 오셔서 중생들을 제도하는 부처님입니다. 누군가 미륵불로부터 제도를 받아 깨달음을 얻으려면 56억7천만 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누가 어느 세월에 그 세월을 기다립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그 전에 미륵불이 계신 곳으로 가서 설법을 듣고 깨달으면 되지 않으냐고 생각했습니다. 미륵부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시기 전에 미륵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찾아겠다는 것이 미륵상생경의 내용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사바세계에 오시기 전에 계셨던 곳이 도솔천 내원궁입니다. 그곳에서 천인들을 대상으로 법문을 하고 제도하면서 언제쯤 사바세계로 내려갈 것인가를 살펴보며 때가 되기를 기다리셨습니다. 미륵부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솔천 내원궁에서 천인들을 제도하면서 용화세계에 내려올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성질이 급해서 그 때까지 못 기다리겠다면 도솔천 내원궁으로 가서 미륵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면 됩니다. 이것이 미륵상생 신앙입니다. 살아생전에 지은 죄를 참회하고 선업을 많이 지어서 그 복덕으로 다음 생에 도솔천에 왕생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미륵상생 신앙은 내가 이번 생에 열심히 수행하여 왕생극락이 아니라 왕생도솔천 하여 미륵보살님의 법을 듣고 그곳에서 깨닫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륵신앙의 한 축입니다.
미륵보살님? 미륵부처님?
여기에서 분명히 해야 할 개념이 있습니다. 앞서 미륵보살님과 미륵부처님 둘 다 통용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지요. 도솔천에 계시면서 천인들을 제도하고 계실 때는 아직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 것이 아니므로 미륵보살이고요, 56억7천 년 뒤에 용화세계에 내려오셔서 그 세계에서 완전한 열반을 증득하면 미륵부처님이 됩니다.
미륵보살님을 표현한 불상 중에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이 있습니다. 금동미륵반가사유상입니다. 보관을 쓰고 생각하는 사람 같은 자세로 앉아계신 분, 그분이 미륵불입니다. 반가사유상은 미륵불이 도솔천에서 깊은 생각 혹은 명상수행에 빠져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이런 형태의 미륵반가사유상이 통일신라시대에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미륵불이 부처님인지 보살인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먼저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는 형태로 하여금 미륵부처님이 아니라 미륵보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웅전 삼존불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부처님은 머리에 아무 것도 쓰지 않았고요, 양쪽의 협시보살님들은 보관을 쓰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불상의 자세를 통해 보살인지 부처님인지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도솔천에서 미륵보살은 느슨한 자세로 깊은 생각에 잠겨있습니다. 그러나 용화세계로 내려오게 되면 설법을 하시게 됩니다.
예를 들어 관촉사 은진미륵을 생각해봅시다. 은진미륵은 신체비율이 7등신이나 8등신이 아니고 3등신에 가깝습니다. 단순히 머리가 커서 그런 것이 아니고요, 아직 미륵불이 출현할 미래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신체의 3분의 1만 드러나 있지 가슴 아래부터는 땅 속에 묻혀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이렇지는 않습니다. 의자에 앉아계신 미륵불도 있습니다. 반가사유는 아니고 그냥 앉아있는데요, 이 부처님은 삼화령의 미륵삼존불로 경주국립박물관에 모셔져 있습니다.
미륵하생, 훗날 용화삼회에 직접 참여하겠다
미륵하생 신앙은 무엇일까요? 미륵보살님이 도솔천에 계시다가 56억7천만 년 뒤에 이 세계에 내려오셔서 우리 중생들을 제도하는데요. 미륵보살님이 이 세계에 오기 위해서는 먼저 전륜성왕이 나타나서 백성들이 살기 좋은 태평성대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세계를 용화세계라고 합니다. 즉 미륵하생 신앙에서는 미륵부처님이 출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륜성왕이 등장해야 한다는 측면이 있고요.
두 번째, 미륵부처님이 이 세계에 내려오시면 반드시 용화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고 45년 동안 쉬지 않고 설법을 했습니다. 그랬는데도 우리같이 제도되지 못한 중생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런데 미륵불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륵불은 용화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 딱 세 번만 설법을 합니다. 그걸 용화삼회(龍華三會)라고 합니다. 그 세 번의 설법을 통해 석가모니 부처님이 미처 제도하지 못한 중생들을 전부 제도합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내가 게을러서 늦잠을 자느라고 용화수 아래에 가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미륵하생 사상에서 중요한 두 번째 포인트가 나옵니다. 미륵하생에서는 미륵불이 용화수 아래에서 법을 설하는 그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합니다.
경전에는 첫 번째 법을 설할 때 96억 명이 제도를 받고 두 번째 법을 설할 때 90억 명이 제도를 받는다고 나옵니다.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한다는 뜻인데요, 어쨌든 제도를 받기 위해서는 설법하는 그 자리에 내가 꼭 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 자리에 갑니까? 악업을 참회하고 선업을 쌓아야 합니다. 수행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참회하고 열심히 미륵부처님의 명호를 외우면 그 공덕으로 도솔천으로 왕생을 하든 훗날 미륵불의 설법 자리에서 제도를 받게 된다는 것. 어디서 많이 보던 구조입니다. 미륵신앙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정토사상과 비슷합니다. 미륵불을 아미타불로 바꾸고 도솔천을 서방정토로 바꾸면 정토사상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미륵사상은 자연스럽게 아미타불 정토신앙으로 흡수되었습니다.
삼국시대, 통치이념으로 쓰인 미륵신앙
미륵불의 파트너로 전륜성왕이 있다는 부분은 어떻습니까? 삼국시대 백제에서 이 부분을 차용하여 나라의 통치 이념을 만들었습니다. 백제의 왕들은 ‘내가 바로 미륵불의 파트너인 전륜성왕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백제를 미륵불의 세계로 천명하고 이웃나라는 나쁜 나라라고 상정한 것입니다.
신라는 조금 달랐습니다. 신라 사람들은 왕즉불(王卽佛), 왕이 곧 부처라는 통치 이념을 사용했습니다. 신라 사람들에게 경주 남산은 수미산입니다. 경주 자체가 불국토입니다. 경주의 가장 높은 사람인 왕은 부처이고 귀족은 보살이고 백성들은 중생이었습니다.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젊었을 때 용화향도라는 화랑 모임을 조직했습니다. 용화라는 말이 들어가면 일단은 미륵신앙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김유신은 우리 귀족들이 바로 보살인데 공부를 게을리 하고 전쟁에 나가서 승리할 체력도 없다면 신라라는 불국토를 건사할 수 없다는 기치 아래 용화향도를 조직해 수련했습니다. 화랑의 기본 정신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곧 보살이니 불국토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수행해야 한다는 것.
혼란의 시대, 도구로 전락한 미륵신앙
이러한 신라불교를 깨뜨린 것이 중국에서 들어온 선종입니다. 선종은 왕즉불, 왕이 부처가 아니라 심즉불, 마음이 부처라고 합니다. 왕이 부처고 귀족이 보살인 체제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지방의 호족들은 선종의 논리를 적극 받아들였습니다. 왕과 귀족에 반기를 들 수 있는 근거를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통일신라시대에 구산선문이라고 하는 선종 사찰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은 이런 연유에서입니다. 구산선문 중 대표적인 곳이 화순 쌍봉사, 장흥 보림사, 문경 봉암사 등인데요. 위치를 보면 신라의 한가운데인 경주 부근이 아니라 지방 호족들이 있던 신라의 변방입니다.
이처럼 미륵사상은 자칫 변질될 소지를 안고 있었습니다. 실제 우리 역사 속에서 미륵불을 자처한 사람이 있습니다. 궁예입니다. 궁예는 스스로도 본인이 미륵불이라고 믿었습니다. 심지어 아들들을 협시보살로 여겨 좌우보처로 두고 경전을 쓰기도 했습니다. 삼국시대를 지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자칭 미륵불이 마구 등장했습니다.
전북 고창 선운사 옆 도솔암에 가면 커다란 마애불이 있습니다. 마애불은 미륵불입니다. 조선시대 풍문에 도솔암 미륵불의 배꼽에 비기가 있어 그 비기를 꺼내는 사람이 왕이 된다는 설이 있었습니다. 비기의 주인이 아닌 사람이 그것을 꺼내면 벼락을 맞아 죽는다는 금기도 있었습니다. 당시 감찰사로 부임해온 인물이 그 풍문을 듣고 비기를 꺼냈는데요, 그 비기의 첫줄에 본인의 이름이 등장한 것을 보고 너무 놀라서 다시 되돌려놓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 동학농민운동을 지휘했던 손희창이 마애불 비기를 꺼내보았습니다. 그런데 벼락이 치지 않고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은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전라도의 농민들은 미륵불이 우리를 지킨다는 믿음으로 분기탱천하여 동학운동을 전개했다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이야기의 흐름과 같이 삼국시대까지는 미륵신앙이 불교의 중심이었고 국가의 통치이념에 가까웠습니다만 통일신라시대를 지나면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사람들에게 이용되는 안타까운 측면이 있었고 또 많은 문제를 야기하면서 약화됩니다.
미륵사상의 변화 양상
고려시대가 되면 미륵불이 마을 어귀에서 동네를 지키는 장승으로 변화합니다. 미륵불이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과 같은 장승으로 변화했다는 중요한 근거가 무엇이냐 하면 이번 익산 답사에서 보았던 석조여래입상입니다. 석조여래입상이 한 쌍으로 조성되어 있는데요, 한 쪽은 남자의 형상 다른 한 쪽은 여자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돌로 만들었다가 차츰 나무로 바뀌는 형태를 보입니다.
더불어 미륵신앙은 불교보다는 증산교라던가 용화교와 같은 사이비 종교의 형태로 빠져나가버리고 기존의 불교에서는 그 흔적이 희미해져버렸습니다.
중국의 경우에는 미륵부처님이 포대화상으로 변화합니다. 포대화상은 실존인물인데요 미륵부처님의 화신으로 추앙받았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쌀과 풍년을 기원하는 신으로 변화되는 양상을 보입니다.
미륵불이 등장했던 시대는 혼란한 시대였습니다. 세상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굴러가는 시대였습니다. 전쟁, 천재지변, 기아 등 세상이 너무 흉흉할 때 미륵신앙이 힘을 많이 얻었습니다. 때문에 미륵신앙이 불교의 고유한 신앙으로 자라잡기보다 사회적인 변혁, 변화와 결합하면서 변질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결국은 불교의 미륵신앙이 세속에 이용되는 꼴이 되고 만 것이지요.
결국 그 근본에는 사람들의 삶이 너무나 팍팍하고 어려웠던 시대상이 있었고요. 그렇게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기댔던 것이 미륵신앙이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달라진 시대, 불교를 어떻게 쓸 것인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미륵신앙이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첫 번째, 세상이 그다지 흉흉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요. 두 번째, 더 이상 종교와 정치가 하나가 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과거 이집트에서 파라오는 곧 태양신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신이고 부처라고 하면 당시의 사람들은 믿었습니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왕즉불과 같은 사상이 나왔던 것이지요. 그런데 현재는 어떻습니까? 누구도 종교와 정치에 전과 같은 권위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달라진 시대에 불교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현대 사회에서 불교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나라에 가장 알맞은 사회복지 시스템을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찾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2500년 전의 말씀으로 현대의 사회복지 시스템을 구현할 수는 없습니다.
불교의 핵심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불교가 추구하는,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수행을 하는 것은 불자로서 내가 할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불자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민이기도 합니다. 국민으로서 이 나라가 어떻게 굴러가는 지를 잘 봐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불자이면서 국민이기도 하므로 자비심을 바탕으로, 연기사상이 입각해서 우리나라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가를 성찰해야 합니다.
불교가 정치, 경제적인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자로서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을 충실히 하고 국민으로서 해야 할 역할과 의무, 그리고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가진다면 지금처럼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 있는 현대사회에서 불자이자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마음자세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