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관광
내년 3월 나라와 교토 지역으로 떠나는 길따라절따라 일본 사찰 순례를 앞두고 사전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답사는 저혼자 다녀왔는데요. 나이 육십에 배낭을 메고 혼자 전철 타고 돌아다니려니 힘이 들더라고요. 배낭여행은 이제 더이상 못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답사길에 느낀 불교 외적인 이야기를 몇 가지 해볼까 합니다. 먼저 여행과 관광은 다르다는 이야기를 먼저 할 거고요. 여행에 부여하는 의미를 돌이켜서 일상에서 수행의 재료로 삼을 수 있다는 내용을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행과 관광은 좀 다릅니다. 관광은 우리가 흔히 잘 아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버스로 다녔고 요즘은 사람들이 몰려 다니는 것을 싫어하니까 가족 몇, 친구 몇 명 모여서 다녀오기도 합니다. 이런 여행은 대게 패키지 여행입니다. 가이드가 붙어서 모든 코스를 안내해주고 참가자는 따라다니기만 하면 됩니다. 누구나 한두 번은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관광은 평소 일상생활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오늘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정해져 있고 그대로 실행만 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청소를 해야 한다, 공과금을 내야 한다는 것들을 늘 해오던 방식으로 처리하면 됩니다. 단지 장소와 대상이 다르기에 기분은 신나고 재미있고 몸은 좀 피곤할 뿐, 일상생활의 연장입니다.
여행이라고 표현할 때는 다릅니다. 가고 싶은 장소가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스스로 찾아보아야 합니다. 비행기, 호텔도 내가 예약해야 하고 전철 표도 내가 끊어야 하고, 어디로 갈지 계획도 내가 짭니다. 목적지에 갔는데 직원이 영어를 아예 못하면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아서 서로 답답하고요. 막상 여행길에 오르면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옆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고 불안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떨어져 나와 낯선 장소, 낯선 상황, 낯선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것이 여행입니다. 말도 낯설고 환경도 낯설기 때문에 주변 환경과 내가 섞일 수가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여행은 자발적으로 이방인이 되는 것입니다. 혼자 뚝 떨어진 상태로 돌아다니는 것이 여행입니다. 관광을 할 때는 평소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지만 여행은 그렇지 않아요.
여행, 환경과 내가 분리되는 낯선 경험
관광이 아닌 여행을 하는 경우에 우리는 일상에서 느끼지 못한 두 가지를 느끼게 됩니다.첫 번째는 주변 환경과 내가 분리되는 낯선 경험입니다.
일상에서는 매일 보는 사람, 익숙한 환경, 매일 보는 집 등 내게 익숙한 것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특별히 생각하지 않아도 다음 전개가 어떻게 될 지 빤합니다. 그런데 여행을 가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다음 전개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가 어려워요. 다음을 예상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총동원해서 생각을 많이 해야하기 때문에 무척 피곤합니다.
이번 여행에서 어떤 일이 있었냐면요. 우동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일본말을 모르니까 대충 그림을 보고 들어갔고, 사진으로 된 메뉴판을 보고 손가락질을 해서 주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종업원이 나에게 뭐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내가 서양인이면 외국 사람인줄 그냥 알 텐데, 동양인이니까 일본인인 줄 알고 일본어로 뭐라고 말을 해요.
메뉴판을 보니 면을 차갑게 할지 뜨겁게 할지 선택하게 되어 있길래 “핫”이라고 말을 했는데, 또 뭐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저대로 주문을 다 한 줄 알고 잠자코 기다리고 있고, 종업원은 돌아가지를 않고 나에게 자꾸 말을 겁니다. 상황이 좀 이상하게 돌아가기에 “일본사람이 아니니 영어로 말해주세요.”라고 하니까, 양이 많은 걸 먹을지 적은 걸 먹을지 결정해달라는 것이었어요.
외부 자극에 끌려 가지 않고 내면을 관찰하는 기회
점심 시간이라서 식당이 엄청나게 시끄러웠습니다. 그런데 저는 별로 시끄러운지 모르겠더라고요. 어차피 못 알아들으니까 이 사람들의 소리가 새소리와 다를 바가 없게 느껴졌습니다. 반면 다시 한국에 돌아와 김해공항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광주로 오는데, 뒷자리 아저씨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자 짜증이 일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양쪽에서 크게 떠들어도 전혀 시끄러운줄 몰랐는데, 우리나라에 와서 알아듣는 언어로 이야기를 하니까 조금만 떠들어도 신경이 쓰이는 겁니다.
이 차이가 엄청나게 큽니다. 말이 안 통하는 곳에 가면 이런 것들이 나에게 자극이 되지않습니다.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니까 ‘좀 시끄럽구나’ 하고 끝이에요. 그런데 내가 생활하는 곳에서는 말이 바로 이해되기 때문에 나의 감정들도 바로바로 반응을 합니다.
달리 말하면 언어가 통하지 않는 해외에 나가서 여행을 하면 본의 아니게 나 자신과 주변 환경이 어느 정도 차단됩니다. 주변에서 어떤 정보가 주어져도 나에게 자극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인식의 대상들과 스스로가 차단됩니다. 외부 환경과 자신이 차단되면 자신의 마음은 어디로 향하나요? 오롯하게 내 자신, 나의 내면으로 향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이라는 것이 다른 게 아닙니다. 주변 환경이 나에게 주는 자극에 내마음이 얼마나 끌려다니지 않는가, 이것이 수행입니다. 보는 것, 듣는 것, 맛보는 것, 냄새 맡는 자극들을 얼마나 잘 차단하는가 하는 것이에요.
일상생활에서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익숙하기 떄문에 내 마음이 쉽게 반응합니다. 외부자극에 마음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잘 모르는 곳, 안 통하는 곳에 가면 별로 자극이 안 돼요. 주변이 시끄러워도 마음에 별로 방해가 안되니까 오히려 고요하게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고요함이 확장되고 깊어지면 깨달음으로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어설프게라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경험이 참 중요합니다.
단,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이유로 불안함이 더 증폭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합니다. 혹시라도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나, 혹시라도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무슨 일이 생기면 혼자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걱정이 들기도 하죠. 그러나 ‘나는 간이 조금 배 밖으로 나왔다’ 생각한다면 굳이 이런 경험을 해보아도 좋겠습니다.
여행,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여 힘든 일을 해내는 것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경험은 여행 준비를 스스로 한다는 겁니다. 패키지 관광은 돈만 내면 모든 일정이 알아서 나오지 않습니까? 편하지요. 그런데 여행은 일부러 고생을 해서 내가 하고자 하는 뭔가를 이루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이 힘들고 귀찮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동기부여가 됩니다. 비유를 하자면, 짜장면이 먹고 싶을 때 전화로 주문을 하는 것은 관광이고요. 내가 직접 마트에 가서 재료를 사다가 요리를 하는 것은 여행입니다.
일상에서는 전철을 타는 게 전혀 어렵지 않은데, 여행을 나가면 기차 하나 타는 것에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행동이 외국에 나가면 노력과 고생을 동반하는 행위입니다. 힘든 일을 해내려면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의지가 있으려면 동기부여가 되어야 합니다. 동기부여 없이 ‘이것을 하겠다’는 의지를 끌어올리기는 힘든 일이지요.
평소에는 일상이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자신을 살피지 못합니다. 내 안에 어떤 감정들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어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감정이 커지고 커져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야 알아차리게 되는데, 그때는 이미 늦었죠. 혼자 힘으로는 다스릴 수 없어요. 이런 감정은 나 자신도 힘들게 하지만 주변 사람들도 힘들게 합니다. 나도 주변도 고통에 빠지는 악순환이 됩니다.
해외 여행을 하면 그런 것들을 안 살피려고 해도 살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불안하니까요. 불안하니까 계속 면밀하게 살피게 되지요. 이런 여행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국내에 돌아오면 스스로의 마음을 훨씬 잘 챙길 수 있습니다. ‘수행을 이렇게 해야 하겠구나’, ‘평소에 마음을 잘 챙겨야 되겠구나’, 혹은 ‘내가 평소에 정말 생각 없이 살고 있었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결국 수행이란 것은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훈련입니다. 마치 처음 와보는 나라에 혼자 뚝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마음 자세로 일상을 낯설게 살펴보면 평소에는 못 보던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