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해설 2 고통과 행복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보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반야심경의 첫 구절에 불교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과연 고통이란 무엇일까?
고통의 원어인 두카(dukkha)는 수레바퀴가 어긋났다는 데에서 유래했다. 무언가 어긋나있어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가 두카이며 괴로움이다.
괴로움은 내 마음속 욕망과 나를 둘러싼 조건이 어긋날 때 일어난다.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생각과 마음이 따로 노는 상태가 괴로운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
스스로 욕망과 불안, 분노를 다스릴 수 있으면 그것은 괴로운 상태가 아니다. 우리는 괴로움 아닌 상태를 더욱 오래 유지하기 위해 수행을 하고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경전, 고통, 반야심경, 사성제, 행복

https://youtu.be/bMs7IR1Fzm0

고통, 무언가 어긋난 상태

첫 번째 구절에서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났습니다. 고통은 무엇이며 고통의 반대인 행복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알아야 어떤 상태가 고통에서 벗어난 상태이며, 어떤 것이 행복한 것인지,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통(苦)은 빠알리어 두카(dukkha)를 한역한 것입니다. 두카라는 말의 원뜻은 수레바퀴를 연결하는 부위가 어긋나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흔히 고통이라는 말에서 괴로움, 힘듦, 어려움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읽어내지만 본래 부처님께서는 무언가 어긋나 있으며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를 두카라고 칭했습니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말한 고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사성제입니다. 일반적으로 고성제는 ‘이것이 괴로움이다.’ 집성제는 ‘괴로움의 원인은 집착이다.’ 멸성제는 ‘집착을 멸하면 어떻게 되는가?’ 도성제는 ‘멸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가?’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처음 불교에 입문할 때는 이렇게 어렴풋하게 이해해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공부가 깊어질수록 사성제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사성제 바로 알기

고성제를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괴로움이라는 것이 내 밖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합니다. 하늘이 있고 나무가 있고 기왓장이 있는 것처럼 내 밖에 고통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합니다.

고통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에너지 내지는 실체가 있어서 누군가로부터 괴로움을 받아서 괴롭고, 괴로움이 사라지면 즐거워지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표현해서 고성제는 ‘내가 지금 괴로운 상태에 있다’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집성제는 괴로움이 일어나는 구조와 과정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괴로운 상태에 있을 때 이 괴로움이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구조로 발생하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괴로움은 내 밖의 이야기도 아니고 추상적인 이야기도 아닙니다.

집성제의 집은 한자로 집착이나 지키다는 의미를 가진 ‘잡을 집(執)’이 아니라 ‘모을 집(集)’을 씁니다. 오온의 덩어리들이 모이고 모여서 괴로움이 생겨나기 때문에 모을 집자를 썼습니다. 오온은 내가 있다는 혹은 이 세계가 존재한다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이 쌓이고 쌓여서 괴로움이 발생함을 알아차리는 것이 집성제입니다.

멸성제는 고통이 멸하는 것에 대한 진리입니다. 고통이 멸한 상태를 정확하고 또렷하게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온전히 내 마음의 상태로 알아차리기는 힘듭니다. 만약 내가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면 이미 깨달음의 상태이고 부처의 경지에 이르렀다 할 것입니다.

스스로 고통이 멸한 상태를 마음에서 또렷하게 알아차리기는 힘들지만 부처님 말씀이나 수행자들의 경험을 통해 ‘이런 상태가 고통이 멸한 상태구나.’ 하고 아는 것이 멸성제입니다. 아주 짧게 이야기 하면 마음이 고요하고 깨끗한 상태가 고통이 멸한 상태입니다. 이것이 고가 멸한 것에 관한 진리, 고멸성제이며 줄여서 멸성제라 합니다.

사성제의 구조는 인과관계, 결론과 원인

도성제는 고통이 멸함을 이루는 방법에 대한 진리입니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수행의 길에 대한 문제이며 팔정도를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수행을 하면 마음이 고요하고 깨끗해진다. 그것이 바로 부처의 마음이고 그때는 네가 바로 부처이다.’ 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사성제는 고통에 관한 이야기이며, 고통은 무언가 어긋난 것, 만족스럽지 못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성제의 순서가 조금 이상합니다. 고통이 무엇인지를 말하고[고],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 지를 말하고[집],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하고[도], 마지막으로 그렇게 하면 고통에서 벗어난 상태에 도달한다[멸]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사성제는 구조적으로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고 결론에 이르게 된 원인을 이야기하고, 다시 결과를 이야기하고 결과에 이르는 방법을 이야기 합니다.

집성제는 원인입니다. 이러이러한 잘못된 생각이 쌓이면 내 마음이 괴로운 상태에 빠진다는 것이 하나의 인과입니다. 이어서는 멸성제가 결론입니다. 고요하고 깨끗한 마음이 고통에서 벗어난 마음인데 이 마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러이러한 원인행위를 통해서 다다를 수 있습니다.

고성제와 집성제, 멸성제와 도성제가 각각 결과와 원인 즉 인과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성제는 고집멸도의 순서대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인과의 원리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통의 원인은 마음의 욕심

앞서 고통은 무언가 어긋나있는 것, 불만족스러운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고통은 마음이 괴로운 것, 불안한 것, 슬픈 것, 짜증나는 것,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가득 차있으니까 괴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과입니다. 어떠한 행위의 결과로 괴로운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미 두카라는 용어를 선택할 때 두카가 생겨나는 원인을 그 단어 안에 넣어두었습니다. 예를 들어 일개 평사원이 불과한 사람이 승진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합시다. 이 사람이 모임에 나갔는데 친구들은 이미 과장도 하고 있고 팀장도 하고 있다면 마음이 불편하고 괴로울 것입니다. 이런 괴로움은 결국 승진하고 싶은데 아직 승진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반대로 이 사람이 식당에서 식사를 주문했는데 종업원이 불친절하게 대한다면 ‘번듯한 직장 다니는 나를 알바가 무시하는 거야?’ 라면서 불쾌한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이런 마음도 같은 맥락에서 생겨납니다. 내가 사람들의 지위를 정해놓고 응대하는데 스스로는 내가 가고 싶은 지위에 아직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상황에서 불편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괴로움입니다.

두카, 욕망과 조건 사이의 어긋남

중요한 것은 이런 괴로움을 마주했을 때 ‘내가 승진하고 싶은 욕망이 있구나. 그러지 말아야겠다.’ 라고 툭 털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승진하고자 하는 욕망, 남들에게 내 지위를 뽐내고 싶은 욕망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생각과 마음이 따로 놉니다.

내 마음이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 됩니다. 고통은 이런 상태를 말합니다. 내가 내가 아닌 상태입니다. 내가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조절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을 때 괴로운 상태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화가 나거나 불안하거나 두렵거나 심심한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그게 안 될 때, 그 때가 괴로운 상태입니다. 그 이유는 두카입니다. 무언가 어긋나있는 것입니다. 나와 인연되어 있는 여러 가지 조건들과 내 마음 속에 있는 생각 혹은 욕심이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긋나니까 욕망과 불안에 끌려 다니게 되고 그래서 괴롭습니다. 스스로 욕망과 불안, 분노를 다스릴 수 있으면 그것은 괴로운 상태가 아닙니다. 이것을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고통이라는 것은 무언가 어긋난 상태, 인도말로 두카라고 합니다. 어긋남은 내 마음속의 세계와 현실세계간의 어긋남을 말합니다. 그 속에서 욕망과 탐욕, 이런저런 감정들이 나오는데 그런 감정들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그 상태를 고통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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