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로 받는 커피?
무신불입(無信不入).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는 뜻의 공자님 말씀입니다. 오늘은 무신불입을 주제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지난 12월 보이스피싱을 당해서 혼쭐이 났습니다. 관련 절차를 밟고 나자 저는 금융감독원에서 지정하는 거래 제한 대상자가 되었습니다. 혹시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으니 통장이나 카드를 사용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겁니다. 본의 아니게 3주 가량 카드 없이 현금만 쓰는 사람이 되었는데요. 그 시간을 보내고 나니 카드라는 것이 믿음을 담보로 한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예를 들어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시키고 카드로 계산한다고 합시다. 나는 카페 사장님에게 커피 한 잔을 받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사장님은 나에게 받는 게 없습니다. 내가 건넨 카드를 받았다가 다시 돌려주잖아요. 다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일련의 변화가 일어날 뿐입니다. 사장님이 카드를 긁으면 은행 전산망에 기록되어 있는 중현이라는 사람의 숫자 데이터 1,000,000에서 커피값 10,000이라는 숫자가 빠지고 카페 사장님의 데이터에 숫자 10,000을 합니다.
즉 내가 커피를 카드로 계산했을 때 변하는 것은 오늘 컴퓨터상의 데이터 뿐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굳이 현금을 주고받지 않더라도 현금을 주고받는 것과 똑같이 어딘가에서 처리된다는 믿음이 우리 사이에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 통장과 사장님 통장의 잔고가 변한다는 믿음이 없다면 카드를 받지 않겠지요. “왜 나에게 플라스틱을 주세요? 돈 주세요.” 라고요.
우리사회는 ‘카드’를 믿는다
금융 전산망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믿고 있습니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현금 사용 비율은 15% 밖에 안 된다고 하니, 대다수가 이 시스템을 믿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사찰에서도 이러한 믿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증심사 기도접수 프로그램으로 기도비 납부 방식 통계를 살펴보았습니다. 2012년도에는 계좌이체 비율이 10%였고 2023년에는 현금이외의 방식이 75%를 차지했습니다. 전화로 접수한 후 계좌이체를 하거나 종무소에 와서 카드로 결제하는 사람이 4명 중 3명, 현금으로 내는 사람은 4명 중 1명인 겁니다. 불과 10년 사이의 변화입니다.
반면 일본은 카드나 스마트폰 결제가 우리보다 덜 보급되어 있습니다. 자연재해가 수시로 일어나기 때문에 비상상황에도 변함없이 통용되는 것이 현금을 선호합니다. 달리 말하면 금융 전산 프로그램에 대한 믿음이 우리보다 낮은 겁니다.
경제활동에 대한 믿음이 우리 사회의 근간입니다. 돈이 오가는 방식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믿음이 없으면 우리 사회는 한순간에 멈추게됩니다. 그 믿음이 지금의 우리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카드를 쓰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 지급 시스템을믿는다는 것이 엄청나게 중요한 사실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한 사회를 굴러가게도 하고 멈추기도 한다는 것이죠.
일상 속의 믿음들
신에 대한 믿음을 생각해봅시다. 올해 1월 1일 오후 4시쯤 일본에 지진이 났다고 합니다. 일본사람들은 신정에 신사에 가서 올 한해 운수대통하기를 기원하고 신수를 봅니다. 말하자면 신사에 신에게 기도하고 있는데 온 땅이 흔들린 겁니다. 신에게 빌면 응당 신이 무언가 좋은일을 줘야 하는데 엉뚱한 일만 일어난다면 신에 대한 믿음이 강해질 수 없겠지요. 이렇게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믿음이 중요합니다. 어느한 쪽이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 관계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체감되지 않지만 올해 큰 문제 중 하나가 중동에서 일어난 전쟁입니다. 이스라엘-팔레스팔인 전쟁이 점차 레바논, 이란, 예멘 방면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정을 깨고 이스라엘을 침공했기 때문입니다. 평화 협정이라는 상호간 믿음을 져버리자 더이상의 관계 유지가 불가능해진 겁니다.
최근 일어난 국회의원 이재명 피습 사건 믿음에 관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믿음이 깨진것이고요. 피의자 역시 언론과 경찰을 통해 자기만의 신념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은 깨어져도 문제고 너무 강해도 문제를 일으킵니다.
‘믿을 신(信)’에 나타난 믿음의 의미
한자 ‘믿을 신(信)’은 ‘사람 인(人)’ 변에 ‘말씀 언(言)’을 붙여서 씁니다.
‘말씀 언’은 ‘입 구(口)’ 위에 가로로 된 작대기 네 개로 이뤄져 있는데, 작대기 네 개는 제사를 지낼 때 쓰이는 제단을 표현한 것으로, ‘말씀언’은 신에게 올리는 말과 그 말에 대한 신의 계시를 뜻합니다. 한문에서 ‘사람 인’은 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의미하고요. ‘믿을 신’의 원뜻을 종합하자면 신의 계시 혹은 우리가 신에게 올리는 말씀은 믿을만하지만 그에 비해 사람이 하는 말은 믿을 게 못 된다는 겁니다.
‘믿을 신’에는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편지라는 뜻, 두 번째는 정보라는 뜻, 세 번째는 이번 시간에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믿음이라는 뜻입니다. 왜 편지라는 뜻이 나왔을까요? 사람이 하는 말은 별로 믿을 게 못 되는데 옛날 옛적 편지를 보낼 정도면 아주 중요한말입니다. 아주 중요한 정보를 엉뚱한 사람에게 보낼 수는 없겠지요. ‘믿을 신’은 편지라는 뜻에서 출발해서 거기에 중요한 정보가 담겨져 있으며 믿을만한 사람이 받는다는 속뜻이 담겨있는 셈입니다.
‘믿을 신’과 깊은 관련이 있는 한자가 있습니다. ‘정성 성(誠)’입니다. 뜯어 보면 ‘말씀 언(言)’ 옆에 ‘이룰 성(成)’이 붙어있습니다. 말이 이뤄져야 한다, 언행이 일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믿을 수 있지 않습니까.
공자의 무신불립
금융 전산망이든 신이든 당연히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기 때문에 작동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익숙해지면 ‘정성 성’처럼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퇴색되어 버립니다. 공자의 무신불입은 바로 이런 점을 지적한 말입니다. 자공이 묻고 공자가 답합니다.
“경제, 군사, 백성 중에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합니까?”
“다 중요하다.”
“셋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합니까?”
“가장 먼저 군사를 포기해야 한다. 설령 다른 나라의 속국이 되더라도 백성들이 배고프지 않게 살면 죽는 것보다 낫다.”
“경제와 백성 중 어느 하나를 포기한다면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합니까?”
“경제를 포기해야 한다.”
“왜입니까?”
“어떤 나라일지라도 백성이 죽는 일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백성이 위정자를 믿지 않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
요즘 말로 하면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 사회가 굴러갈 수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베네수엘라 같은나라는 인플레이션이 너무 심해서 자국 화폐 한 보따리를 가지고 빵 하나를 겨우 산다고 합니다. 베네수엘라 화폐에 가치가 있음을 믿지 않기 때문에 미국 달러로만 거래를 하는 것이죠. 이렇게 화폐, 돈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지 못합니다.
2024년이 시작한지 이제 불과 5일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세상이 어수선하고 흉흉합니다. 어떤 곳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추워야 하는 곳은 춥지 않고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데 지진이 일어나는 시절이니 말입니다.
이런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면 결국 서로를 공격하고 약탈하고 미워하는 것 밖에 남지 않습니다. 믿음에서부터 더욱 생산적인 것, 더욱 견고한 것이 생겨납니다.
이런 때일수록 함께 살아가는 가족, 이웃, 친지, 그리고 이 사회와 세계에 대한 믿음을 가집시다. 무신불립이라는 네 글자를 마음에 새기고 믿음을 버리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갑시다.